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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T』 10호 미리 보기 #3 〈다른총서〉의 다른 책들

    타이포그래피 매거진 『the T』 10호 미리 보기 ― 「〈다른총서〉의 다른 책들」


    글. 김수정

    발행일. 2017년 06월 20일

    『the T』 10호 미리 보기 #3 〈다른총서〉의 다른 책들

    이 글은 국내 유일의 타이포그래피 전문지 『the T』 제10호(혁신2호) 중 
    ‘문자·활자·타이포그래피’ 코너에 실린 에세이 일부를 옮겨 온 것입니다.
    『the T』 제10호에서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다른총서(Die Andere Bibliothek)〉(혹은 〈다른문고〉)는 1985년 문필가이자 편집자였던 한스 마그누스 엔젠스베르거(Hans Magnus Enzensberger)와 출판인이자 서적예술가였던 프란츠 그레노(Franz Greno)에 의해 나온 총서 시리즈이다. 엔젠스베르거와 그레노는 매달 한 권씩 좋은 책을 발행하겠다는 의도로, 엔젠스베르거가 글을 고르고 그레노가 디자인하여 뇌들링겐(Nördlingen)에 위치한 그레노의 인쇄소 겸 출판사에서 20여 년 간 240여 권이 넘는 책을 만들어냈다.

    〈다른총서〉는 20세기 후반인 1996년 12월까지 납활자를 이용한 인쇄와 가죽을 사용한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의 제본을 고집하였으나, 1997년 145번째 책부터는 오프셋 인쇄로 전환하여 컴퓨터 조판으로 디자인하였다. 1988년 〈다른총서〉에서 출간한 크리스토프 랜스마이어(Christoph Ransmayr)의 『마지막 세계(Die letzte Welt)』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 책은 그 다음해인 1989년까지 독일에서만 15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노의 출판사는 재정적 문제로 같은 해 파산한다.

    〈다른총서〉는 그 후 아이히보른(Eichborn) 출판사에 인수되었고 그레노에 의해 2007년까지 계속 디자인되었다. 2011년 아이히보른의 파산 이후 〈다른총서〉는 2012년 독자적으로 ‘AB – Die Andere Bibliothek GmbH & Co. KG’라는 출판사를 설립하여 총서를 계속 발행 중이다.

    〈다른총서〉의 리스트들을 살펴보면 문학과 비문학의 장르 구분 없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순수 문학보다는 여행기나 서간문, 일기처럼 형식 제한 없는 글(informal writing)들이 주를 이룬다. “우리가 읽고 싶은 책들을 발행한다”라는 엔젠스베르거와 그레노의 모토는 그동안 〈다른총서〉가 독일어권이나 그 밖의 문화권 출신 상관없이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자들의 좋은 책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U. D. Bauer의 『O. T.』 커버 

    무엇보다 다른(일반) 총서들과 차별되는 〈다른총서〉의 뚜렷한 특징은 매달 한 권씩만 발행된다는 점, 제한된 부수 인쇄, 그리고 표지를 감싸는 케이스를 비롯한, 다른 책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디자인이다. 내용과 표지 장정에서 최고의 품질을 표방해 ‘애서가의 문고’라 불리며 소유욕을 자극시키는 〈다른총서〉의 디자인은 각각의 책이 모두 다른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다(2007년 이후 그레노가 아닌 각기 다른 디자이너들이 책을 맡아 디자인하고 있다).

    총서를 나타내는 디자인 요소에서 유일하게 고정적인 것은 책등에 위치한 가죽판으로, 총서의 첫 발행 후 이 가죽판은 매 3년마다 빨강-초록-보라-검정색으로 규칙적으로 변화했으나, 145번째 책부터는 빨강으로 고정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전까지는 세리프 계열의 서체가 가죽판에 쓰여졌으나 274번째 책부터 논세리프 계열로 바뀌었다. 2012년 여름에 출간된 331번째 책부터는 이 가죽판에 〈다른총서〉를 알리는 별의 형태가 추가되었다. 또한 발행부수가 변화되어 4,444부가 발행되고 있다.

    Vladimir Jabotinsky의 『Die Fuenf(5)』 커버
    판권면에 있는 각 책의 번호

    로빈 킨로스(Robin Kinross)는 그의 저서 『왼쪽 맞춘 글(Unjustified Texts)』에서 〈다른총서〉를 소개하며 잘 만들어진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1995년 출간된 〈다른총서〉의 130번째 책인 W. G. 제발트(W. G. Sebald)의 『토성의 고리(Der Ringe des Saturn)』를 1998년 영국 하빌 출판사(Harvill Press)에서 발행된 번역본과 비교한다. 그는 이 비교에서 독일판은 소재와 구조 등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될 만하다고 말하며 두 버전의 차이점을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우선 독일판은 하드커버 376페이지이며 영국판은 소프트커버 296페이지인데, 두 권의 책 모두 575그램이다. 또한 영국판에서는 원서의 부제가 표기되어 있지 않고, 도판(이미지)의 배치 또한 차이점을 보인다. 독일 버전에서 도판은 이미지 위아래로 글줄이 2~3줄 놓여지는 경우가 있어도 텍스트가 그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곳에 정확하게 배치되어 있다(또한 도판들은 정확히 글줄의 윗선에 맞춰 위치한다).

    그러나 영국판의 도판은 다소 전통적인 접근법이라 할 수 있는 페이지의 맨 위 혹은 맨 아래쪽에 놓여 있다. 킨로스는 이밖에도 몇가지 점들을 더 지적하며 (영국판의) 이러한 디자인과 구성은 제발트의 글이 갖는 순수함과 그 의미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하며, 하빌이 낸 영국판 『토성의 고리(The Rings of Saturn)』는 제발트 책이 가진 요소들을 전달해주고는 있지만 만족스럽게 구현하고 있지는 못한다고 평한다.


    글. 김수정
    라이프치히 서적예술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와 서적예술을 전공했다. 책과 관련한 디자인과 번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저작을 집필 중이다.(suje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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