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국내 유일의 타이포그래피 전문지 『the T』 제10호(혁신2호) 중 ‘문자·활자·타이포그래피’ 코너에 실린 에세이 일부를 옮겨 온 것입니다. 『the T』 제10호에서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출판사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지금
김다희(북디자이너)
‘잘 만들어진 책’에 대한 갈망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북디자인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한다. 실제로 같은 내용이더라도 표지 디자인과 책의 만듦새가 어떤가에 따라, 시장에 내놓았을 때 독자들의 반응이 확연하게 다름은 물론 매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최근 대형 온라인 서점을 중심으로 여러 차례 진행된 리커버 혹은 한정판 이벤트들은 북디자이너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작년 황금가지에서 펴낸 『이갈리아의 딸들』 한정 특별판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민음사 출판그룹의 장르문학 브랜드인 황금가지의 첫 번째 책이다. 1996년 첫 출간 이후, 20년 동안 이어져 온 스테디셀러다. 쇄를 거듭하며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지만, 특히 작년에는 페미니즘 이슈와 함께 더 큰 수요가 발생했다. 때마침 모 온라인 서점에서 리커버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왔다. 회사에서도 조판 상태나 전체적인 디자인이 오래되고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리커버 프로젝트로 태어난 『이갈리아의 딸들』 한정판 양장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출간 직후 초판 3,000부가 빠르게 매진되어 급히 2,000부를 더 찍었다. 그 또한 며칠이 지나지 않아 매진되었다. 이후 일반판도 한정판 양장본과 궤를 같이한 표지와 본문으로 단장했는데, 독자들의 구매와 후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대체로 일정하다. 편집부에서 고민하고 결정한 편집계획을 통해 책의 내용과 방향, 그리고 일정이 정해진다. 그다음 디자인 작업이 시작된다. 표지와 본문의 콘셉트를 통해 디자이너의 생각이 직간접적으로 반영되지만, 기본적으로는 편집부와 마케팅부가 전체적인 방향의 중심 역할을 한다. 책의 제작사양과 후가공에 들어갈 품을 결정할 때는 예상 판매량과 인세, 판매가격, 분류 같은 것에 큰 영향을 받는다.
반면 리커버 프로젝트가 인하우스 디자이너에게 주는 경험은 매우 생소하고 신선했다. 그동안 해왔던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리커버라는 마케팅 콘셉트 자체가 디자인을 중심에 놓는 것을 의미했다. 표지를 새로이 하는 것은 물론, 다시 잡은 판면에 재교열한 텍스트로 재조판하는 작업을 포함했다. 신간을 출간하는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림작가를 섭외해야 할지, 한다면 어떤 그림작가를 선택하고 책의 내용을 얼마나 담을지에서부터 새로운 판형과 제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대부분의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주도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했다. 기획 단계부터 관여하면서 책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등 더 큰 즐거움이 있었다. 디자인이 전면에 배치되었고 후기가 소개되었다. 디자인의 힘으로 판매량이 오르는 일은 북디자이너에게는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리커버 프로젝트는 즐겁게 작업을 할 수 있게 힘을 북돋워주는 경험이었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책이 가진 정신과 내용을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작년 한 해 이루어졌던 온라인 서점들의 리커버 또는 스페셜 에디션 프로젝트와 이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책의 요소 중에서 디자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는 뜻이다.
책을 표현하는 방법도 점점 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전자책의 발행이다. 출판업계에서는 불황에 대비하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전자책 발행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자연스럽게 종이책과는 전혀 다른, 전자책만을 위한 디자인이 새로운 화두가 된다. 온라인상에서 제목이 눈에 잘 들어오고 색감이 이상하지는 않은지, E-ink나 태블릿에서 본문은 어떻게 보이는지 등의 고민들이 추가된다.
홍보 채널이나 플랫폼의 다양화도 디자인의 숙제다. 잡지나 신문을 통한 광고가 기존의 방식이었다면, 요즘은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 전략에 따라 소셜미디어를 통한 온라인 홍보가 중요해졌다. 이는 디자이너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을 변화시켰다. 배너에 삽입되는 이미지부터 본문의 디자인 페이지까지 톤앤매너(ton & manner)의 통일성과 세련됨을 요구한다. 또한, 채널 간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디자이너가 신경 쓸 부분이 많아졌다.
글. 김다희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재학 중 한글꼴연구회 및 한울 활동을 했고, 활자공간에서 글꼴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민음사 출판그룹 ㈜민음인 미술부에서 북디자인과 출판 관련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파운데이션』 완전판 전집, 『이갈리아의 딸들』 개정판, 『스페이스 오디세이』 완전판 전집 등을 디자인했다.(dahee@minum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