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에서 뭐 하지?” 할 것도 많고, 볼 것도 많다는 홍대앞에 왔건만 막상 뭘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한다면 당장 『스트리트 H』를 펼쳐보자. 특히 3주년 기념호 ‘홍대앞에서 꼭 해봐야 할 36가지’를 만나는 순간 ‘아하!’ 하고 무릎을 칠지도 모른다. 물론 주사위를 굴린 뒤 나온 숫자에 적힌 그 ‘일’을 해도 좋다. 마치 홍대앞이라는 공간을 두고 보드게임을 하듯.
홍대앞이라는 공간 속 이야기와 사람들, 그리고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동네잡지 『스트리트 H』. 지난달 3주년을 맞은 이 잡지가 특별한 이유는, 자칫 시간의 흐름을 따라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릴 어느 공간의 ‘말’을 묵묵히 기록하고 공유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디자인이라는 도구를 통해 재미있고, 유쾌하게!
시간과 공간의 ‘말’을 ‘글’로, 글을 다시 ‘시각적 언어’로 풀어내는 『스트리트 H』의 디자이너이자, 이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디자인스튜디오 203(DS 203)의 류아진, 이현지, 김인영, 이혜령을 만났다.
‘홍대앞에서 꼭 해봐야 할 36가지’는 마치 보드게임 같다. 의도한 건지?
부루마블 판 같다는 사람들도 있다(웃음). 이 페이지를 작업할 때 오히려 36가지가 모여있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따로따로 두는 게 좋을까를 두고 많이 고민했다. 재미있게 봤으면 좋겠다는 느낌으로 만들었는데, 결국 프레임이 나뉘면서 각각 보게 만드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더라. 중간중간 큰 그림들은 레이아웃의 요소로 활용했다.
작업을 하며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그림에 전부 그리드가 들어가 있어, 모든 것을 그리드에 맞춰 그려야 했다. 이 작업이 가장 신경 쓰였고, 어려웠다. 그래도 캐릭터가 하나 둘 탄생할 때마다 보람 있었다.
‘36’이라는 수
처음에는 3주년 기념호니까 1년에 12달씩, 3년 36개월간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그런데 36개월은 너무 길고, 광범위하다는 생각이 들어 기획팀과 조율 끝에 36가지가 되었다. 기획팀에 홍대앞에 오래 있던 사람들이 많아 아이디어를 보태고, 나중엔 한번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을 붙였다.
가장 해보고 싶은 것
역시 가장 낭만적인 건 30번, ‘VINYL의 비닐 봉다리 칵테일 입에 물고, 정문 앞 놀이터 버스킹 구경하기’ 아닐까? 36번 ‘친구들과 밴드 결성, 무대포로 공연 강행하기’는 아마 못해볼 것 같고···.
『스트리트 H』 3주년 기념호를 만들며 가장 좋았던 점
회의를 많이 했다. 디자이너가 함께 기획을 해나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류아진에게 묻는 소소한 질문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디자이너
하라 켄야를 좋아한다. 유행이나 최신 기술이 아닌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한다는 그의 철학이 좋다. 또 작품을 보면 여백이 많지만, 그게 비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꽉 차있는 깊은 농도가 느껴진다. 결핍과 부재의 미학이라고들 말한다. 그의 작품에서 나오는 ‘아무 것도 없으나 모든 것이 있다’는 마인드야말로 꼭 배우고 싶은 부분이자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다.
디자이너가 된 계기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그림 그리는게 너무 재미있는 거. 그래서 쭉 미술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순수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디자인 쪽에서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디자인을 하게 됐고··· 결과적으로는 그림을 그리다 물 흐르듯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다른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고 자극을 받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래서 웹사이트나 잡지를 많이 보며 수시로 자료를 모아둔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카테고리별로 모아둔 자료를 다시 보면 처음에 느꼈던 것과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최근 관심사
최근에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다. DS 203이 작업하는 잡지 중에 『까사리빙』도 있는데, 거기에 보면 리빙 인테리어 쪽으로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주로 전시회나 잡지를 통해 접하고, 집에서는 소품들을 이용해 시도해보고 있다.
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나는 누군가의 청춘이다. 시간이 흐른 후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열심히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누군가의 청춘이다.
‘홍대탐구영역’, 제목이 재미있다.
재미라는 요소를 가미해 컨셉과 어울리도록 디자인했다. 유희능력시험이다 보니 시험지 느낌을 주고, 각 문제마다 시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요소들을 고려했다. 예를 들어 출판사가 운영하는 카페에 대해 묻는 문제에서는 커피 위에 라떼아트로 책을 그린다든가. 이런 부분에서는 재미를 우선 시 했다.
특별히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각 문제별로 원고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그렇다 보니 깔끔하게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중간중간 개성 있는 아이콘도 들어가야 했고.
문제를 풀어봤는데··· 난이도가 너무 높은 거 아닌가?
사실 이 페이지를 만든 디자이너에게도 쉽진 않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난이도가 처음에 나왔던 문제들보다 훨씬 낮아진 것이라는 점. 출제된 문제들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는데 너무 어렵다는 의견이 많아 난이도를 낮췄다.
이현지에게 묻는 소소한 질문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디자이너
평소에 패션에 관심이 많다 보니 패션디자이너들에게도 관심이 많다. 미우치아 프라다를 존경한다. 프라다는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유행을 만드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하기 때문. 그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소재의 결합이나 형태가 나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이렇게 ‘멋진 일을 하는 여자’라는 점이 더 존경스럽다.
디자이너가 된 계기
입시미술을 하고 미대에 진학하다 보니 디자인을 하게 됐다. 사실 디자인 자체보다는 어떤 분야의 디자인을 할 지가 가장 고민이었다. 그래서 출판, 웹,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턴을 해봤는데, 그중에서 출판 쪽이 제일 잘 맞았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최대한 나 자신을 낯선 것들과 마주치게 한다. 평소에 가지 않던 길로 걷는다든가, 잘 듣지 않던 음악을 듣는다든가. ‘낯설게 하기’라고 할까. 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는 순간에 좋은 생각들이 ‘팟’ 떠오르기도 한다.
스트레스가 쌓였을 땐?
엄청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그냥 시원하게 우는 게 최고다. 딸꾹질이 날 때까지 시원하게 울고 나면 기분이 나아진다. 그럴 수 없을 때는 글을 쓰는데, 멋진 글이라기보다는 낙서 수준으로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적는다. 나중에 보면 오그라들지만 쓸 때는 뭔가 해소되는 기분이 든다.
3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니··· 정보량이 굉장했을 텐데,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을 것 같다.
작업할 때 색의 사용에 대해 스스로 약속을 정했다. 중간중간 삽입된 사진들은 각호에 실린 기사와 관련된 사진인데, 사진들의 색상 역시 어떤 기사냐에 따라 색상을 정해두었다. 그리고 숫자의 크기나 색상으로 포인트를 줘 시선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판형의 변화도 표시되어 있고, 『스트리트 H』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 시점에는 ‘H’ 표시가 되어 있다. 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그리고 볼 때마다 새로운 요소가 드러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방대한 기록을 한눈에 보여주려면 기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스트리트 H』 3주년 기념호인 만큼 기념의 의미도 있지만, 이 페이지의 경우 지난 3년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복잡한 것보다는 3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시간의 흐름을 통해 보여주려 했다. 그래서 색상 바를 바탕으로, 인터뷰이와 홍대앞에서 일어난 굵직한 일들의 사진을 배치했다.
어쩐지 눈에 잘 들어오더라. 특히 ‘이분’···.
맞다.(웃음) 홍대앞의 아이돌 아닌 아이돌이기 때문에 넣은 사진이다.
이번 특집기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다른 기획 페이지와 달리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하기도 했고, 3년치 자료를 죄다 꺼내본다고 무척 고생했다. 그래서인지 작업을 하면서 『스트리트 H』에 대한 애정이 강해졌다.(웃음)
김인영에게 묻는 소소한 질문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디자이너
한명수 디자이너를 좋아한다. 좋은 디자이너의 요건에는 ‘위트’도 포함된다고 생각하는데, 그에게는 좋은 디자인과 함께 말랑말랑함, 단단함이 함께 존재한다. 멋진 결과물에도 위트를 잃지 않는 그의 캐릭터가 멋지다.
디자이너가 된 계기
자연스럽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 그때는 잘 모르니까 막연히 화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크면서 디자인 쪽으로 오게 됐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그 프로젝트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를 보고, 하나하나 대입하면서 아이디어를 낸다.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그에 관한 생각을 하고, 생각이 날 때마다 메모를 한다. 시끄러운 곳보다는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 좋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청소를 한다. 진한 커피는 필수다.
최근 관심사
캘리그래피에 관심이 있다. 필기구에도 관심이 많은데, 붓이나 다양한 질감을 주는 재료들도 써본다. 캔 조각이나 나무 같은 재료들···. 그 외에도 전각 같은 손으로 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지난 3년간 홍대앞에서 사려져서···’를 작업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
시각적으로 재미있는 요소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많이 아쉽다.
DS 203에서의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상상마당 프로그램 리플릿 작업을 한 게 기억에 남는다. 클라이언트가 믿고 맡겨주었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뜻이 백 퍼센트 반영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게다가 수작업이라서 놀이하듯이 만들었는데, 덕분에 즐겁게 만들 수 있었다.
이혜령에게 묻는 소소한 질문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디자이너
폴 랜드를 좋아한다. 간결하고 위트있는 디자인이 좋다. 『폴 랜드와의 대화』에서 드러난 좋은 스승으로서의 모습에 반했다.
디자이너가 된 계기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된 것 같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평소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것들이 쌓여서 아이디어로 나오는 편이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물건이나 장소 하나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최근 관심사
최근에 카메라를 새로 샀는데, 이 카메라의 작동법이 관심사다. 그리고 효과적인 휴식방법 역시 큰 관심사. 또 요즘에는 영화 『토스트』를 보고 영향을 받아, 타르트를 만들기도 한다.
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해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