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캘리그라피 전시 〈너와의 흐름 – calligraphy flows in you〉가 지난 3월 17일까지 삼원페이퍼갤러리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15인의 작가가 참여하였고 한글이 아닌 로마자 알파벳으로 표현된 작품들로만 구성되었다.
특이한 점은 닙(nib)을 사용하였다는 부분이다. 닙은 펜촉을 의미한다. 뾰족한 펜 끝은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고전 영문 서체의 느낌을 살리기에 적합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탤릭, 로만캐피탈, 카퍼플레이트, 고딕체 등의 서체들은 닙이라는 도구를 통해 클래식한 감성이 더욱 풍부하게 표현되었다. 즉 작가들 개개인이 가진 고유의 필체가 펜촉을 따라 흐르면서 근사한 캘리그라피 작품으로 변모한 것이다.
몇몇의 작가들은 봄이 오고 있는 지금의 계절에 맞게 내적 요소로서 꽃을 활용하였다. 붓으로 수채화를 그린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잎을 말려 붙이기도 하였다. 꽃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하였고 종이를 붙여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들도 있었다. 이와 같이 작품의 일부에 꽃을 활용한 캘리그라피들은 시의적으로 적절하기도 하지만, 시각적인 측면에서도 꽃과 문자의 조화는 나쁘지 않았다. 생소하였지만 두 요소의 조합은 봄을 표현하기에 충분하였다.
갤러리는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으로 정돈되어 깔끔하고 아담한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은은하게 비치는 텅스텐 조명으로 인해 따뜸함이 느껴진다. 한 마디로 클래식하게 표현된 작품들과 현대적 감성의 공간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갤러리 한 켠에는 관람객들이 직접 캘리그라피를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 역시 마련되어 있었다. 주최측의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쓰기는 인간이 선을 잘 긋고, 신을 숭배할 만한 도식화된 언어를 정교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필요를 느끼면서 발명되었다. 이는 인류 역사 상, 시간의 개념이 아직 존재하지 않을 시기에 우리 선조들에 의해 쓰여진 필사본과 파피루스지에 기록된 엄청난 기술과 기교에 의해 증명되었다. 비록 쓰기와 캘리그라피가 명확하게 같은 것이 아니고, 그 둘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고 할지라도 같은 나무에서 수확된 두 개의 열매와도 같다. 쓰기의 발명은 캘리그라피의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었다.”
– 클로드 메디아빌라(Claude Mediavilla), ‘Calligraphy’ 중 –
클로드 메디아빌라(Claude Mediavilla)의 저서, Calligraphy의 본문 중 기원과 관련한 내용을 인용한 부분이다. 현대사회는 문자가 발명된 이래, 문맹률이 가장 적은 시기이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본문에 밝혔듯이 쓰기가 캘리그라피의 성장을 위한 전제조건이라면 현대 사회는 캘리그라피가 발전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캘리그라피 열풍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아닐까? 향후에도 캘리그라피 열풍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어 이러한 전시가 좀 더 활발히 주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시내용
일정 : 2017.02.20(월) ~ 2017.03.17(금)
장소 : 삼원페이퍼갤러리 제 1관 (군자역 1번 출구)
관람시간 : 10:00 ~ 18:00, 월요일~토요일 (공휴일 휴관)
주최 : 삼원특수지, 삼원페이퍼갤러리, Firstscriptor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