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코믹스에 『소음』이라는 만화 연재를 하고 계세요. 언제부터 작업해오신 건가요?
웹툰을 마음먹고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몰두한 건 1년 정도 밖에 안 됐어요. 『소음』은 4화짜리 단편인데요, 작업 기간은 2~3개월 정도 걸렸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실험하듯 만든 건데 다행히 반응이 좋아서 연재까지 하게 됐네요. 레진코믹스에 또 다른 작품을 연재할 예정이에요. 장르는 스릴러고, 지금 기획단계에 있어요.
『소음』은 공포물이에요. 스토리텔링도 직접 하시나요?
네. 직접 해요. 스토리는 일상에서 나오고요. 그렇다고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웃음) 영화나 만화, 드라마, 책을 보고 참고하고 아이데이션 하죠.
디자인택시에 실린 ‘록시땅(그린 얼루어 캠페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어떤 콘셉트로 만들어진 건가요?
록시땅의 대표 라인의 원료를 테마로 작업했어요. 올리비에 보쏭(록시땅 설립자)이 낡은 증류기로 지금의 록시땅을 만들기까지의 가치와 브랜드가 추구하는 자연의 아름다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상징하는 걸 콘셉트로 표현했죠.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에디터 분께서 제가 학생 때 만든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본 후 함께 하자고 제안을 주셔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작품들이 꽤 있어요. 특별히 타이포를 활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타이포그래피만 메인으로 하지는 않아요. 일러스트 작업을 주로 하죠. 타이포를 활용한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교 졸업전시회 때 타이포를 활용한 일러스트 작품을 만들었는데, 칭찬을 해주는 분들이 많았어요.(웃음) 제약 없이 자유롭게 했던 게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작품이 잘 나왔고, 반응도 좋았거든요. 그 이후부터 다른 타이포 작품들도 요청이 들어와서 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타이포 작품 중에 졸업작품이 가장 애착이 가요.
한글 서체로 작업한 것도 있나요?
네. ‘요괴인간’이라는 밴드를 아시나요? 인디 펑크 밴드인데, 앨범 재킷 디자인을 맡아서 하게 됐죠. 첫 번째 앨범에서 ‘요괴인간’이라는 글자를 이용한 타이포 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보였고, 그 후 발매된 두 장의 EP에서 각각 ‘요’와 ‘괴’를 새롭게 이미지화했습니다.
한글과 영문 활자 중에 활용하기 더욱 편한 건 어떤 건가요?
글쎄요. 어떤 게 더 편하다고 말씀드리긴 어렵네요. 제가 타이포 쪽에 전문 식견이 있는 건 아니라서요. 저는 타이포도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요. 굳이 따지자면 영문 쪽이 곡선 요소가 많아서 이용하기 수월한 면이 있긴 한데요, 한글, 영문에 제약을 두기보다는 각각 콘셉트에 맞춰서 작업을 해나가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타이포그래피가 있나요?
음…. 특별히 선호하는 건 없어요. 타이포도 이미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주로 웹툰 작업을 하다 보니 그림도, 글씨도 손으로 쓸 때가 많고요. 손으로 쓰는 게 더 편하거든요.
웹툰에 들어간 글씨도 전부 직접 쓰시는 거군요.
직접 손으로 쓰는 글씨를 선호하지만, 웹툰에 들어가는 대사 부분은 가독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성 서체를 쓰는 편이에요.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는 모습이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 보여요.
완벽주의일까요?(웃음) 우선 남의 손에 맡기는 걸 잘 못하기도 하고, 뭐든 제 손에서 나오는 것을 좋아해요. 작가로서 더 성장해 나가려면, 그런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아직까지는 그게 잘 안 되네요.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작업 프로세스와 아이디어 발상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저도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리서치하고, 자료 수집하고, 분석한 다음 스케치하는 순서로 진행해요. 아이디어 발상법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그냥 생각이 막힐 땐 샤워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해요. 작업과 관련 없는 일을 하다 보면 의외로 아이디어가 잘 나올 때가 있거든요.
정석한 만의 롤모델 또는 멘토가 있나요?
네. 저는 ‘데이브맥킨’을 좋아해요. 일러스트레이터인데, 만화, 영상, 밴드활동, 책까지 쓰는 다재다능한 사람이죠. 제가 영국을 가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제가 영국에 공부하러 가기 전엔 만화와 애니메이션 위주의 작업만 했었는데, 영국에서 데이브맥킨처럼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업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어요. 덕분에 사고와 표현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작품 스타일은 그때부터 만들어진 거군요.
언제부터 스타일이 구축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시류를 많이 따라갔어요. 자신감도 없었고요. 영국에서 4년 동안 공부하며 시류를 따르기보다 자유롭게 내 맘대로 작업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한국과 영국에서 디자인 작업을 해보셨잖아요. 두 나라의 디자인 환경에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저는 국가를 막론하고 학생이 아닌 이상,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과 결과물을 어느 정도의 퀄리티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가 업계에서 인재를 뽑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영국에서 느낀 차이점이라면, 한국은 결과물만을 중시하는 모습이고 영국은 결과물과 함께 과정, 즉 실험 또한 중요하게 본다는 거였어요. 제 영상 작업물은 실험 기반 위주였고,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는 끈기 있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진 않았죠. 제가 만약 Fine Art 분야로 집중했다면, 그 실험물들을 더 발전시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 활동 계획에 대해 알려주세요.
제가 스토리보드 작업을 해주던 런던의 영상제작크루 I OWE YOUTH가 있는데요. 패션브랜드 ‘HORIYOSHI III’와 밴드 ‘RUDIMENTAL’의 영상 스토리보드 작업을 같이 했어요. 앞으로 그들과 더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함께할 것 같네요. 만화 쪽으로는 독립출판 형태로 만화책을 만들 예정이고, 레진 코믹스에 연재될 장편에도 힘을 쏟을 거예요. 그리고 최근에는 대구 김광석길에 생기는 ‘Pimlico Fresh’라는 꽃 스튜디오의 그림을 그려 드렸어요.
디자인 외의 취미나 특기가 있나요?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요. 책도 자주 읽는 편이고요. 스토리텔링 할 때 도움이 되거든요. 생활하면서 취미 생활을 하기보다는 일을 많이 하는 편 같아요.(웃음) 일은 요청에 의해서 들어올 때도 있고, 안 들어 올 때는 만들어서 해요. 스스로 찾아서 하는 편이에요.
평소에 영감을 받거나 자주 이용하는 웹사이트가 있나요?
‘It’s nice that’이라는 영국의 디자인 큐레이팅 잡지인데요. 웹사이트와 발행물이 모두 있어요.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되기’라는 책이 있는데, ‘아드리안 쇼네시’라는 분이 지은 거예요. 그분 때문에 ‘It’s nice that’을 알게 됐죠. 비중 있는 필진으로 글을 자주 써주시더라고요. 그러다 유학할 때 우연히 ‘쇼네시’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어요. 저한테 그 인터뷰가 많은 도움이 됐죠. 그 잡지는 철학이 분명한 디자이너를 잘 선정하는 것 같아요.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새로운 것을 잘 찾아내고요. 후의 일이지만, ‘It’s nice that’ 사이트에 제가 스토리보드 작업을 해줬던 영상제작크루 I OWE YOUTH의 프로젝트가 실리게 됐어요. 매우 기쁜 일이었죠.
마지막 공식질문 드릴게요. 정석한에게 디자인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웃음) 디자인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 목적과 방향을 매번 찾고 있고요. 앞으로 디자인의 의미에 대해서 더 깊게 고민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