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에 시작해 3년. 학생 신분으로 재미 삼아 시작한 노트 만들기 프로젝트는 이제 어엿한 문구 사업체로 발전했다. 옆에 두고 오래 쓰고 싶은 문구만 골라서 만드는 재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좋은 문구는 소소한 일상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준다. 소소문구의 유지현, 방지민 대표를 만났다.
소소문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학부 때 작업실을 같이 쓰던 네 명이 시작했는데 둘은 취직하고 저희 둘이 남아서 계속하게 됐어요. 브랜딩에 대한 얘기는 들어서 로고, 컬러, 톤 앤 매너 같은 것도 생각하긴 했는데 처음엔 모든 게 어설펐어요.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졸업하기 전이라 방학 때 단기 프로젝트로 노트를 만들었는데 일단 저지른 거죠. 운도 좋았던 것 같아요. 당시 편집숍이 유행이었거든요. 지나가다가 그냥 들어가서 저희 노트 좀 받아달라고 영업하고 그랬죠(웃음). 그땐 유통이 뭔지도 몰랐어요. 뒤늦게 유통마진이라는 게 있고 샘플관리도 한다는 걸 알았죠. 현장에서 하나씩 배운 셈이에요.
창업한 지 3년 정도 되었는데 그동안 진짜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아요.
무서운 게 많아졌어요.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니까 무서운 것도 없었거든요. 물건이 안 팔려도 우리가 좋으면 됐지, 라고 여기고 그걸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작업실만 해도 순수하게 보증금이랑 월세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복비, 공과금, 관리비에 계산서를 발행할지 안 할지, 동네에 상권이 앞으로 좋아질지 말지, 걱정해야 하는 옵션이 점점 많아지는 거예요. 매달 물건도 어느 정도 이상은 팔려야 하고. 어쨌든 저희도 거래처들이 있으니까 서로 책임이 있는 거잖아요. 그분들은 잘 팔아주는 것, 우리는 잘 팔릴만한 물건을 만드는 것. 하나둘씩 그런 것들이 생기니까 고려해야 할 점도 엄청 늘어나고 겁도 많아졌어요.
겁이 많아졌다는 건 그만큼 상황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생겼다는 거고 책임도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일 것 같은데요.
네. 그런데 저희는 아직 20대니까 애잖아요. 저희 몸뚱이 하나만 책임지면 되니까 앞날에 대한 설계를 잘 못 하겠어요. 다만 실무적인 업무에 익숙해진 건 있어요. 예전엔 메일 하나를 보내도 구구절절 쓰곤 했는데 이젠 용건만 간단히 잘 쓰게 되고(웃음). 그래도 소소문구가 가진 분위기나 느낌을 잃지 않으려고 필름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일상에서 위로가 되는 풍경도 찾고 있어요.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죠. 실무나 돈, 이런 것에만 휘둘리면 정신이 없잖아요. 그렇게 안 살려고 애쓰고 있어요.
소소문구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드셨어요?
회색노트, 하트타임, 고민상자 등 이름 후보가 많았어요. 그런데 정작 소소문구를 만든 친구는 여기 없네요(웃음). 당시 멤버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문구는 범위도 넓으니까 나중에 노트 말고 다른 것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죠. 예전엔 소소문고라고 부르는 거래처 분들이 많으셨어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를 떠올리셨나 봐요.
소소문구가 만든 것은 만지면 만질수록, 쓰면 쓸수록 애착이 가고 정겹다. 이들이 만든 문구만큼이나 두 사람한테서 감성과 보드라운 마음이 듬뿍 느껴진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부딪치는 만큼 현실의 무게와 고단함 또한 어깨 위에 놓여 있을 텐데 소녀의 풋풋함과 사랑스러움이 더 많이 느껴진다.
아이디어에서 물건을 만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세요?
기획은 같이하고 제조 직전까지 우리가 원하는 샘플을 만드는 건 한 사람이 해요. 의도했던 것과 맞아떨어질 때도 있지만 대폭 수정해야 할 때도 있어서 샘플 작업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거기서부터 이 물건이 자기 물건이 되는 것 같아요. 나눠서 할 일은 각자 하지만 아이디어 회의나 제품에 관한 일 등, 수도 없이 자주 의견을 주고받아요.
소소문구의 정체성이랄까,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흔히 말하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편은 아니에요. 지금 당장은 예뻐 보여도 5년 후 10년 후에는 별로 예쁘지 않은 것들도 있잖아요. 한 시즌 상품으로 반짝 나오고, 다음 시즌에 바로 묶음으로 낸다고 해도 그걸 모아놓고 봤을 때 어울리지 않기도 하거든요. 책상 위에서 소소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문구를 모두 만들고 싶지만, 단기간에 될 가라는 생각은 안 하고요. 오랜 시간 동안 리스트를 쌓으면서 함께 있을 때 잘 어울리는, 항상 그 자리를 지켜주는 문구를 만들고 싶어요.
항상 그 자리를 지켜주는 문구라, 소소문구가 주는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네요
거리를 봐도 매일매일 바뀌잖아요. 공사도 자주 하고 건물도 많이 짓고 항상 시끄러워요. 한 가지가 유행하면 다 같이 따라 만들고. 그런 것에 질린 것 같아요. 사람들이 왜 자꾸 그런 걸 추구하지? 왜 유행에 예민하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좀 더 진득하게, 천천히, 깊이 있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저희가 노출된 환경이 그렇다 보니 유행을 너무 좇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하고 있는데 어떠세요?
해외 첫 수출 땐 되게 기뻤어요. 첫 수출 미팅이라 엄청 긴장했는데 사장님이 프랑스 영화배우처럼 잘 생기셔서 기뻤죠(웃음). 그런데 일이 외모로만 되는 게 아니잖아요. 일의 리듬이랄까, 업무 문화가 많이 달랐어요. 우리나라는 피드백이 정말 빨라요. 일의 속도를 단축시켜야 다른 일을 하니까요. 각자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엔 해외에서 본 물건이 이미 한국에 있는 경우도 많아요. 유통이 빨라져서 그런 것 같아요.
소소문구는 단지 예쁜 문구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하나의 문구를 만들 때마다 정말 이것이 최선인지, 환경과 바른 유통에 대한 고민도 함께한다. 빨리 만들기보다 제대로 필요한 것을 만들려고 한다. 틀림없이 그래서일 것이다. 소소문구를 쓰는 순간, 지루하고 평범하던 일상이 반짝 빛나는 것은.
두 분은 서로에게 어떤 파트너라고 생각하세요?
유지현
저는 걱정이 너무 많아요. 그 걱정이 일과 맞물리면 의심이 많아지고요. 자기 의심부터 시작해 남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일도 잘 안되고, 잠도 잘 못 자고, 생활 전반이 힘들어져요. 그런데 지민이는 위급한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길게 보는 안목이 있어요.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일과 삶을 잘 분리하는 것 같아요.
방지민
언니가 생각이 많고 걱정이 많다고 얘기했지만 바로 그런 점이 도움될 때가 많아요. 사고가 생겼을 때 대처방법이나 다음 단계의 일까지 다 생각해두거든요. 일 처리할 때도 되게 똑 부러지고. 저는 한 가지 생각을 하면 다른 건 생각을 잘 안 해요. 그 생각에 갇혀서 한 곳만 보고 가는데 언니가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해주면 더 넓게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세요?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리듬에 맞춰서 하되 단독 매장을 만드는 걸 장기 목표로 생각하고 있어요. 소소문구라는 간판을 내걸고 1층에 매장을 내려면 그만큼 준비도 필요하겠죠. 그건 온전히 저희 몫인데 어떻게, 얼마만큼 할 건지가 고민이에요. 잘 안 됐던 물건을 보완하는 건 당연하지만 잘 됐던 제품을 스타 브랜드처럼 응용해서 만들고 싶진 않거든요. 소소문구에 저희 생각과 시선을 꾸준히 담으면서 감성을 유지하고 싶어요.
홈페이지에 올린 글들 보면 아, 참 풋풋하고 감성적이다, 좋다, 이런 느낌이 들던데요.
20대 초반이랑 중반에 쌓았던 레퍼런스를 잃어버리지 않고 유지하려고 글을 계속 쓰고 사진도 찍고 있어요. 새로운 전시가 있으면 챙겨서 보고, 흐름이 어떤지도 파악하고요. 소소문구가 제품을 통해 알려지는 면도 있지만, 일상의 감성을 드러낸 부분에서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저희 스스로도 그쪽이 충족되기를 원하고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저희도 선배들한테 들었던 얘긴데 결국은 실행력에서 실력 차이가 생기거든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한 가지죠. 제발 좀 해라(웃음). 뭐든 해봐도 되는 나이잖아요. 고민만 하지 말고 제발 했으면 좋겠어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할 건지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데 막상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가 안 될까 봐 겁나서인 경우가 많아요. 실패를 무서워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실력을 키우려면 실패도 꼭 해봐야 해요. 경험하는 게 중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