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가 김순기는 대학 시절 전통 활쏘기를 배웠다고 한다. 일흔이 넘은 작가는 활을 쏠 뿐 아니라 과녁도 그린다. 오랜 시간 그린 과녁들을 자신의 전시에 소개한 바도 있다. 〈일화(一畵)〉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열 때, 작가는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들을 했다. “마음이 불편하거나 얼굴을 찡그리면 활을 제대로 쏘지 못해 몸에 멍이 든다”, “바른 마음으로 활을 쏴야 한다”, “빈 마음으로 그린다”. 이 언표들에 대하여 ‘작가가 그리는 과녁이란 자신의 마음이고, 활을 쏠 때 작가는 자기 마음을 겨냥한다’라고 해석해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보이어(BOWYER)’의 뜻이 ‘활 만드는 장인’이라 되는대로 김순기 선생의 이야기를 갖다붙인 건 아니다. 스튜디오 보이어의 두 사람, 이화영·황상준과의 대화에서도 마음이 읽혔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믿는다’, ‘믿고 있다’라는 종결어미를 심심찮게 사용했는데, 왠지 상대방(인터뷰어)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혼잣말하는 투로 들렸다. “저만의 취향일지라도, 저와 비슷한 경험이나 생각을 지닌 이들 사이에 접점을 형성해줄 거라 믿습니다.” 이화영 “남과 다르기 위해서는 가장 자기다운 작업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황상준 이화영·황상준은 인터뷰 내내 자주 믿었고, 줄곧 믿고 있었다. 믿음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일이다. 그러니 두 사람이 믿는다, 믿고 있다 말할 때, 그 말들의 과녁은 그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활쏘기 같은 대화에서 청자는 화자의 언표가 화자 자신의 마음으로 향하는/명중하는 걸 관전하게 된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가 더없이 마음겨웠던 까닭이다.
이화영·황상준 작가님과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초면이 아니죠. 두 분이 스튜디오 플랏(PLAT) 멤버일 때 뵌 적이 있습니다. 벌써 6년 전이네요. 당시 인터뷰를 다시 읽어보니 ‘졸업’, ‘좌충우돌’, ‘월세’, ‘도전’ 같은 풋풋한(?) 단어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때는 두 분도 다른 멤버(임은지·조형석) 분들도 신진 디자이너였습니다.
황상준 작가님이 쓰고 그린 만화책 『나부장 리스트』 말인데요. “사람은 대부분 꼰대가 된다. 비유하자면 높은 곳에서 태어난 인간이 꼰대라는 늪으로 추락하는 것이다.”라고 쓰셨어요. 6년 전과 달리 어엿한 ‘업계 선배’가 된 두 분께 묻겠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반드시 피해야 할 ‘꼰대-늪’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이화영
꼰대란 ‘자기가 본 세상을 진짜 세상으로 단단히 착각하는 사람들’ 아닐까 싶습니다. 철저히 개인적 경험으로 축적한 외부 세계에 대한 견해를 절대적 진리처럼 생각하는 이들이랄까요. 그래서 주로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세상은 이런 거야”, “사람은 이래야 해.”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 역시 나름 어떤 경험을 해봤다고 이야기하는 나이가 되면서 이런 함정에 자주 빠지는 듯합니다.
디자인을 업으로 하다 보니, ‘디자인이란 이런 거야’, ‘디자이너는 이래야지’, ‘이 디자인은 좋고, 저건 나빠’ 류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고, 오히려 디자이너로서의 고유한 방향성을 만드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이 철저히 자신만의 생각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봐요. 그러니까, 나의 견해는 철저히 나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것이지 타인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겠죠.
이런 관점에서 디자이너에게 반드시 피해야 할 ‘꼰대-늪’은, 디자인이나 디자이너에 대한 자신의 견해, 혹은 스스로가 존경하는 디자이너의 견해가 절대적 진리인 양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늪에 빠질 경우 세상의 아주 일부분만 보며 살아가게 될 거예요. 이 늪이 아주 편할 수도 있습니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내가 정한 대로 세상을 보면 되니까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내 맘 같지 않아서, 화나는 일을 겪고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내가 설 자리가 쪼그라드는 경험도 하게 될 겁니다.(제 경험입니다.)
황상준
6년이나 지났다니 어떤 의미로는 소름 끼치네요. 저희가 ‘어엿한’ 업계 선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6년 전과 비교해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고요. 이화영 디자이너가 얘기한 꼰대의 정의에 동의합니다. 사람이 사회 생활을 하는 한, 꼰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노화처럼 말입니다. 누구도 노화를 피할 수 없음에도 부정하거나 유예하잖아요. 저는 꼰대화 또한 인간이 맞닥뜨리게 될 생로병사의 길 어딘가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꼰대라는 늪’이라 표현한 거예요. 꼰대가 안 되려고 발버둥칠수록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드니까요. 늙음을 받아들이듯, 꼰대가 돼가는 흐름도 겸허히 수용하는 게 좀더 유효한 태도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처지를 냉정히 볼수록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남들에게 꼰대로 비치는 모습을 부정하기보다, 나 자신의 변화를 느긋이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타 매체 인터뷰들에선 대개 이화영 작가님이 (인터뷰이로 혹은 인물 사진으로) 전면에 등장하던데요. 보이어의 대외 홍보 활동은 이화영 작가님이 주로 맡나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디자인 듀오로서, 두 분이 어떤 역할 분담 체계로 스튜디오를 꾸려가는지 궁금해요.
화영
황상준 디자이너는 스튜디오 일 외에 다른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업무 시간에 스튜디오가 아닌 다른 장소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외 업무 등은 주로 제가 맡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풀타임으로 근무하다 보니, 스튜디오 일의 작업량이 더 많기도 하고요.
저희 둘의 역할 분담을 정해두기는 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황상준 디자이너는 기획, 전략, 구상 등 주로 ‘보이지 않는 영역’을 담당합니다. 저는 디자인이나 스타일 같이 ‘보이는 영역’을 맡고요. 각자의 관심사, 자신 있는 분야를 나눈 분담 체계죠. 둘 다 똑같은 영역을 선호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해, 내게 없는 강점이나 경험이 상대에게 있다는 뜻이겠죠. 서로를 디자인 파트너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역할 분담을 해도 같이 일을 하다 보면 때때로 삐그덕댑니다. 제가 황상준 디자이너의 기획을 이해 못하거나 내심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있고, 반대로 그가 제 그래픽디자인에 대해 기획을 잘 반영하지 못했다고 느낄 때도 있고요. 영혼과 신체의 부조화 현상 같은 거랄까요. 이런 경우엔 어쩔 수 없이 힘든 조율의 과정을 거칩니다.
상준
어떤 프로젝트를 소개하거나 의견을 피력해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담당자의 목소리라고 생각해요. 현재 이화영 디자이너의 프로젝트 참여도가 높기 때문에 매체에 전면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역할 분담은 세 가지 느슨한 원칙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작업 가능한 시간, 두 번째는 해당 프로젝트에 적합한 감수성의 여부입니다. 이에 따라 주/부 담당자가 가려지죠. 세 번째가 좀 전에 이화영 디자이너가 말한 ‘이상적인 방식’입니다. 한 프로젝트 안에서 기획 담당, 디자인 담당으로 참여하는 거죠. 주 담당자가 두 명인 구조입니다.
규모가 큰 일에 적합한 분담 방식인데요. 그런데 사실, 저희 둘 모두 투입될 만큼의 대형 프로젝트가 그리 빈번히 들어오는 편은 아니에요. 아무래도 소규모 스튜디오라서요. 다만, 어떻게 일을 분담하든 각자 영역을 존중하고 상호 간 생산적 피드백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앞서 언급한 단행본 『나부장 리스트』부터, 『PRISM OF』, 『CA』, 『GRAPHIC』 등 잡지, ‘PIN! UP! CAL!’이나 ‘Mountain ABC’·‘Monthly Flower’ 같은 일종의 페이퍼 굿즈까지. 보이어가 제작한 인쇄물들은 ‘어떻게든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고 싶은’ 매력이 있습니다. 간단히 ‘예뻐서’라고 말해버리기는 싫어 골똘히 이유를 고민해봤어요. 처음엔 ‘컬러 활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고심해보니 제 결론은 ‘물성’이었습니다. 보이어는 종이의 물성을 대단히 세심히 고려한다, 라는 결론이었는데요.
현재 미디어 환경에서 종이의 위상은 꽤 모호한 것 같아요. 책과 잡지에 한정해 말해보면, 독자가 줄어도 기본 발간 부수는 정해져 있잖아요. 활자를 읽는 용도로서의 종이 수요와, 활자를 읽히도록 인쇄하는 용도로서의 종이 수요 차이가 큰 셈이죠. 아예 없애자니 안 될 말이고, 쓰자니 수요/공급 타산이 잘 안 맞는, 모호한 상태로 보입니다.
말이 좀 길어졌는데요··· 음, 보이어는 이런 ‘종이의 사정’을 명확히 인지하는 듯해요. 종이의 기능성(텍스트 정보 전달) 너머의 가치를 입체화시키는 일련의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라고 제 나름대로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실험의 키워드가 ‘물성’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보고요. 보이어의 ‘예쁜’ 작업에 대한 ‘작가의 말’ 부탁드리겠습니다.
상준
‘종이의 사정’이 요새 어떤지는 잘 모르겠네요. 다만, 테크놀로지 발달에 따른 사장 산업과 성장 산업은 생기기 마련이겠죠. 종이의 숙명이 단순히 ‘활자의 전달’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활자 전달의 효율적 수단은 앞으로도 계속 발명될 겁니다. 저는 종이 같은 구시대 유물들이 ‘소유욕을 채워주는 완벽한 물성’을 지녔다고 보는데요. 소유에서 오는 만족감과 물건의 효율성은 많은 경우 반비례하는 듯합니다. 스트리밍 시대에 바이닐(LP)을 수집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떤 디자인에 대해 ‘예쁘다’라고 내뱉는 것, 예전에는 마냥 무책임하고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조금 철학적으로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라고 자문하기도 합니다. 디자인이 기본적으로 미감을 수반하는 개념이라면, ‘예쁘다’라는 감상 안에 미감(아름다움에 대한 ‘감’)이 함축돼 있는 거겠죠. 누군가가 저희 작업에 대해 느낀 그 ‘감’을 곰곰이 고민하고, 저희에게 부합하는 함의는 무엇인지를 찾아내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시선과는 별개로, 제 나름의 ‘예쁨’의 기준도 있습니다. ‘남과 달라야 한다’라는 것인데요. 남과 다르기 위해서는 가장 자기다운 작업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종이책이 남(전자책)과 비교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고유의 가치를 찾아나가는 것처럼요. 물론 예쁨을 찾는 일련의 과정은 퍽 주관적인 데다 비효율적이기도 해서, 상업 프로젝트에 적용했다간 클라이언트에게 큰 실망을 안겨줄 겁니다.
화영
종이에 대해 말씀하신 견해에는 저도 깊이 동감합니다. 제 생각에 이러한 현상은 비단 종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만져지지 않는 정보에 비해 만져지는 물질의 입지가 과거에 비해 점점 축소되면서 다방면으로 확산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해요.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 정보로 변환되는 오늘날, 물질의 ‘소유’가 더 이상 필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따라서 과거에 비해 물질의 소유는 더욱 개인적이고 한정적인 가치로 결정되는 듯하고요. 과거에는 기능이나 효율성을 따져 물건의 소유 여부를 결정했다면, 요즘에는 개인의 미적 취향,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물건을 소유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가 물질적 형태로 마무리되는 어떤 것을 디자인할 때 고려하는 점은, 이것을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할 것이냐, 즉 누군가의 취향과 삶에 접점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부분입니다. 쉽지 않은 문제죠. 타인의 취향이나 인생관을 어떻게 속속들이 다 알겠어요. 많은 사람들의 취향을 예측해 어떤 걸 디자인하는 것이 저로서는 불가능하게 여겨지기도 해요. 그래서 차라리 지극히 개인적 취향을 반영하는 작업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저 자신 또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여러 개인들과 관계 맺으며 취향을 발전시켰거든요. 그러니 저만의 취향일지라도, 저와 비슷한 경험이나 생각을 지닌 이들 사이에 접점을 형성해줄 거라 믿습니다.
많은 분들이 ‘예쁘다’라고 평해주시는 제 작업은, 과거부터 축적된 개인적 경험에 기인한 개인적 취향의 결과물입니다. 그 취향이라는 것은, 제가 성인이 되기 전 소녀 시절 겪은 시각적 경험들 가운데 정서에 강한 영향을 줬던 파편들이 제멋대로 조합된 결과물이에요. ‘꿈’, ‘환상’, ‘반짝이는’, ‘감미로운’ 같은 단어들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이 타인에게는 사소하고 의미 없어 보일지 모르죠. 하지만 그 개인에게는 자기 삶을 조금이나마 반짝이게 해주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제가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가 세상에서 본 아름다운 요소를 재생산함으로써 저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아주 미미하더라도 삶의 정취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에서 언급해주신 작업들 모두 그러한 목표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저 자신은 믿고 있습니다.
지난해 〈뷀트포메트 국제 포스터 페스티벌3〉 참여작 얘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제목이 ‘外師造化 內得心源(외사주화 내득심원)’이었죠. 상단의 한자 레터링과 하단 영역의 그림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글자들이 꼭 용의 발톱과 비늘 같더라고요. 그 아래로 점점이 원을 이룬 형상은 젠스톤(zen stone)처럼 보였고요.
外師造化 內得心源, 밖으로는 자연을 스승 삼고 안으로는 마음의 근원을 얻는다. 작품명과 스튜디오명(bowyer: 활 만드는 장인)이 참 잘 어울렸습니다. 이 포스터를 디자인한 이화영 작가님이 『마음을 쏘다, 활』이라는 선(禪) 책을 읽은 게 아닐까 싶었어요. 왜 이런 주제를 선택한 것인지, 어떻게 작업했는지, 작업 얘기를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화영
국내 작가 섹션의 주제가 ‘단도전(Monochrome Show)’이었는데요. 명칭 그대로 먹 1도만 사용해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먹이라고 하니 동양의 수묵화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붓으로 쓴 듯한 글자들과 사군자의 난초를 조합해 포스터를 디자인해보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수묵화는 매력적인 소재였어요. 동양의 수묵화는 외부 세계의 풍경이 아닌 마음의 풍경을 그린 것이라는 내용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거든요. 정확한 견해인지는 조금 자신이 없지만, 과거 어디에선가 본 기억으로는 서양의 풍경화·정물화가 외부 세계를 보다 정확히 포착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면, 동양의 수묵화는 내적인 이상향으로서 풍경을 그리거나 그리는 행위 자체를 통해 내적 고요를 추구했다고 하더군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기 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이런 내용을 찾았습니다. 8세기 중엽 중국의 화가 장조(張璪)가 자신의 기법을 “밖으로는 자연을 스승 삼고, 안으로는 마음의 근원을 얻는다(外師造化 內得心源)”라고 설명했다고요. 이 말이 어쩌면 수묵화,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미적 행위의 근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장조의 한자성어를 현대적 버전의 강렬한 서예 형식으로 표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단에는 밤의 난초를 그렸는데, 사실 난초는 그냥 형식일 뿐 선을 그릴 때 느껴지는 마음의 집중과 고요를 표현하는 게 주였습니다.
이 작업을 저희 스튜디오명으로 연결 짓는 건 예상치 못한 견해입니다! 사실 스튜디오명은 큰 뜻 없이 정한 거라 딱히 작업과의 연관성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언급하신 『마음을 쏘다, 활』이라는 책 소개를 잠깐 보니 제가 이 작업을 통해 추구한 명상적 주제와 연결 고리가 있는 것 같아 신기했어요. 시간이 나면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만 너무 집중해서 질문한 것 같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최근 프로젝트,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상준
저는 앞서 말씀하신 『나부장 리스트』 같은 개인 작업이 기억에 남습니다. 평소 고민과 불만이 많은 편인데, 해소는 못하고 디자인 노동만 반복하니 심각한 두통과 소화 불량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가 일종의 심리 요법으로 작은 창작 활동을 제안했고, 일정 시간 글을 쓰고 그림 그리는 행동이 쌓이니 증상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조금씩 개인 작업과 그것을 엮는 행위를 반복하고자 합니다. 여전히 개인적 일상에 관심이 많고요, 그 일상에 포함된 여러 인물들을 비딱한 시선으로 그려볼 예정입니다.
화영
얼마 전 연초에 작업한 갈라파고스 출판사의 단행본 『철학자의 식탁』 표지 디자인이 기억에 남습니다. 책표지만 디자인한 경우는 이 작업이 처음이었어요. 내지 작업을 안 하다 보니까 오히려 독자 입장에서 텍스트를 읽고 느낄 수 있었던 점이 새로웠습니다. 무엇보다 텍스트 내용 자체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었거든요. 산뜻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디자인할 수 있었습니다.
작업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이 책은 굉장히 일상적인 ‘먹는다’는 행위를 철학적 관점에서 다각도로 관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인 ‘철학자의 식탁’을 현대적 정물화처럼 표현했어요. 일상적 사물들이 이루어내는 조화를 포착하고 관조하는 정물화의 성격이 책의 핵심 내용을 은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클라이언트도 저희의 생각을 많은 부분 신뢰하고 수용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최종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 또한 높아서 여러모로 뿌듯하고 즐거웠던 작업이었죠.
두 분은 대학교 졸업 후 곧바로 스튜디오 (공동)운영을 시작했죠. 커리어의 출발점이 취업이 아닌 창업이었던 셈입니다. 저희 『타이포그래피 서울』 독자 중에는 현재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은데요. 두 분과 같은 길을 걷게 될 후배들에게, 디자인계 선배 겸 창업 선배로서 현실적 조언 부탁드립니다.
상준
저보다 잘하고 있어서 딱히 할 말은 없네요. 쥐어짜서 말하자면, 창업은 일찍 시작하는 게 유리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게 될 거예요. 아무래도 일찍 창업을 하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시점을 앞당길 수 있는 듯합니다. 여차하면 스튜디오 운영을 포기하기에도 훨씬 쉽고요.
화영
누군가에게 조언을 한다는 일이 참, 여러모로 어려워요. 맨 처음 질문에 말씀드렸듯 제 경험은 제 경험일 뿐이라서 ‘이것이 이러하니 이렇게 하는게 좋겠다’ 류의 조언은 타인에게는 별로 유효하지 않을 듯합니다. 게다가 요새는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요. 제가 처음 스튜디오를 시작한 시기와 지금의 현실이 매우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꺼내보자면,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보다 내부에 집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낫지 않나 싶어요. 저도 잘 안 되긴 하는데요. 지금은 수많은 디자이너의 수많은 멋진 작업을 너무나 빨리 볼 수 있는 환경이잖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대체 뭘 할수 있나’, ‘나는 너무 초라한 것 같다’는 위축감이 반자동적으로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회에 나가 홀로 혹은 작은 무리의 친구들과 작업을 시작하면 이런 자조적 생각들이 제일 견디기 괴로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감정에 과몰입한 나머지, 무리를 하다가 좌절해 자괴감에 빠지거나 냉소적으로도 변하고요. 스스로에게 득 될 게 별로 없습니다. 이때 할 수 있는 일은 초라한 나를 보듬어주기, 미진한 나 자신 안에 내재된 가치 있는 것들을 믿기입니다. 말하기는 쉽지만 저 역시 지금까지도 잘 못하고 있는 것들이네요. 그래도 노력하다 보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 믿어야겠죠. 많은 분들도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