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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러프디자인’ 왕춘호

    “디자인 대상의 입장이 돼 보려고 합니다. ‘의자’가 사람을 앉히는 기분은 어떨까, 같은.”


    인터뷰. 인현진

    발행일. 2012년 12월 27일

    스튜디오 ‘러프디자인’ 왕춘호

    창문 너머 겨울나무를 보다가 문득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변화(變化). 겨울나무가 봄에 꽃을 피우고, 여름에 무성한 잎들을 세우고, 가을에 황홀한 단풍을 들이듯, 진정한 변화란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는 것이리라. 상상의 힘으로 사물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사람, ‘러프디자인(LufDesign)’ 왕춘호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이 근사하네요. 천정이 높아서 여유로워 보여요.

    조용하고 편안해요. 서울에 사무실이 있을 땐 일단 주차가 너무 불편했어요. 보통 디자인 사무실은 합정이나 홍대 근처를 선호하는데 이런 데는 사실 술집이 좋잖아요(웃음). 하라 켄야가 한 말이 있는데 인테리어에 투자하지 말고 좋은 건물로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과감히 7월 말에 이사했죠. 여름까진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가을도 정말 좋았고요. 단, 겨울이 되면서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추워서 뇌가 얼어요(웃음).

    최근 하고 있는 작업 얘기 좀 해주세요.

    신제품 몇 가지 준비 중이에요. 이번엔 아이디어 상품에서 끝내지 않고 메시지를 담아 진정성 있는 제품을 만들려고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자 장수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생각하시면 될 듯해요. 컬트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제품인데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특이한 것이 될 거에요. 기존의 저희 제품과는 많이 다를 테니 기대해주세요. 내년 2월 도쿄에서 기프트 쇼 계획이 잡혀 있어요. 아, 리프타이 신제품도 곧 나올 예정이에요.

    디자인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아기자기해요. 아이디어는 어떻게 찾으세요?

    보통 예쁘고 고운 여자 분이 만들었을 거로 생각하시는데 정작 곰 같은 사람이 나타나니까 어이쿠 하세요(웃음). 외모만 보고 평가하시면 안 돼요(웃음).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많이 발견해요. 네 잎 클로버 찾듯. 술 마시며 얘기도 자주 나누고 음악도 듣고. 스케치북을 늘 옆에 두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간단히 스케치하고 메모도 많이 해요. 앉아서 디자인에 파고들기보다 다양하게 움직이는 편이에요.

    러프디자인이라는 이름에 특별한 뜻이 있나요?

    리슨 투 유어 유즈풀 팩트(Listen to your useful facts)를 줄여서 러프(Luf)라고 했어요. 디자인을 할 때 대상이 되는 사물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거든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죠. 예를 들어 의자면 의자의 입장에서 사람을 앉히는 기분은 어떨까(웃음). 리프타이도 케이블이 동그랗게 말려있는데 저게 나무줄기처럼 보이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내 생각을 갖고 일을 하지만 고민할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하세요?

    저희 직원들이 바로 태클을 겁니다(웃음). 형, 이건 아니지(웃음). 아, 그런가? 바로 수긍해요(웃음). 소통이 많이 원활한 편이이에요. 한 친구는 제 강의를 듣고 인턴 신청을 했어요. 한 달 있어봐 했는데 3년이 지났네요(웃음). 다른 한 친구도 현장학습으로 왔다가 눌러앉았죠(웃음). 채용공고를 따로 내지 않는데 해외 디자이너들이 연락해오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미 저 친구들이 밀고 들어왔기 때문에(웃음).

    ▶ Leaf Tie
    ▶ Fork and Cream Sauce
    러프디자인의 제품들은 미국과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섬에까지 수출한다. 전 세계에서 리프타이를 창조적으로 쓰고 있는 사진도 많이 보내온다. 사용자의 적극적인 피드백은 새로운 힘을 준다. 인기가 많은 만큼 고민도 있다. 유명세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피해가 큰 짝퉁의 습격이다. 법적 대응도 하고 있지만 대처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을 때 누군가는 깨지고 부서지지만 누군가는 의연하게 통과하면서 더 단단해진다. 그는 단연 후자 쪽이다. 

    전 세계로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데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요?

    사소하고 일상적인 물건인데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해요. 자연 친화적인 디자인도 좋다고 하시고. 리프타이 같은 경우 일본,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에서 창의적으로 연출한 사진도 보내주시고. 여성분들은 머리 묶을 때도 잘 써주시고(웃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분들인데 자발적으로 메시지를 보내 주시니 감동이죠. 정말 감사드립니다.

    초기에 해외 루트는 어떻게 개척을 하셨나요?

    일본과 미국에서 동시에 게릴라 전시를 했어요.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 앞에 있는 의자와 구조물을 리프타이로 다 묶어 버렸죠. 그리고 그 끝에 저희 회사 로고와 웹사이트 주소만 남겼는데 반응이 엄청났어요. 정말로 전 세계에서 어마어마하게 연락을 받았죠. 지금도 신제품 나오면 그때 인연을 맺은 바이어들에게 먼저 보내드린 후 시장 공개를 하고 있어요.

    반응이 뜨거웠던 만큼 힘든 일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올해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있었어요. 짝퉁 물건들이 갑자기 쏟아지더니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까지 들어왔더라고요. 러프디자인이라는 이름까지 달고 있으니 문제가 더 심각했죠. 폭스바겐과 추진 중이던 프로젝트가 취소되는 일마저 있었어요. 저희 제품이 나오는 즉시 카피가 되니까 타격이 컸죠.

    마음고생이 심했겠어요. 그런 일 겪을 때마다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요.

    하나씩 겪으면서 배우는 것도 많아요. 어렵지만 재미있어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서 오는 기쁨도 크고요. 이런 말 있잖아요. 그 산을 어떻게 올라가게 됐어요? 그냥 그 산이 있으니까(웃음). 저도 이 일이 너무 재미있으니까 매일 즐겁게 하고 있어요.

    ▶ Your Magnet
    ▶ Bottle Ring
    사이좋은 초록 잎새 두 장. 앙증맞은 마그네틱 스탠드, 눈길 닿는 곳 가까이에 놓고 매일 마주 대하고 싶다. 오래된 나무 등걸에서 솟은 새싹을 볼 때처럼 보기만 해도 방긋, 미소가 피어난다. 작은 물건 하나가 기분을 변화시킨다. 쓰는 사람을 생각한 섬세한 마음의 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좋은 디자인은 아이디어와 창조성을 샘솟게 한다. 사람을 생각하는 디자인은 마음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단지 바틀 링 하나를 쓰는 것만으로도. 

    정말 즐기면서 작업을 한다는 이미지가 있어요.

    절대로 누가 시킨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웃음). 러프디자인은 단순히 직업이나 회사라기보다 제 분신 같아요. 가위눌려서 깨면서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그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니까요. 물론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극복해요. 제 장점이 건망증이 심해요(웃음). 자고 나면 리셋 되어서 기분이 좋아져요(웃음). 저한테 잘 맞는 일을 찾은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강의하실 땐 구체적으로 어떤 얘기를 하시나요?

    디자인을 직접 해서 제품을 만들고 전 세계로 유통을 시작한 게 저희가 1세대에요. 저희 윗세대들은 거의 대기업 취업을 1순위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길만 있는 게 아니라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저희만의 프로세스를 얘기하면 대학생 친구들이 충격을 크게 받아요. 한 가지 예를 들면 저희는 ‘누구에게 팔 것인가’라는 타깃 설정을 하지 않아요. 모든 사람에게 팔 생각을 하거든요. 소수에게 어필하기보다 대다수 사람이 즐겁게 쓰기를 바라니까요.

    예술의 사회적 환원이나 재능 기부에 대한 관심도 많으시죠?

    출세라는 말이 있어요. ‘오랫동안 준비한 사람이 세상의 부름을 받고 나와서 만인을 위해 봉사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뜻이죠. 전 디자인 재단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어요. 결과물이 좋다고 언론 노출도 많았고요. 제가 혼자 잘나서 그런 게 아니거든요.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보답하고 싶어요. 아무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도울 때 그들도 누군가를 돕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영향을 받거나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있나요?

    오드리 헵번을 존경해요(웃음). 말을 앞세우는 사람보다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위풍당당’이에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 있다면 가는 길에 대한 두려움이 덜 한 것 같아요. 앞에 더 큰 그림이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자기 심장이 말하는 소리대로 살아가고 싶어요.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구조의 문제를 다르게 보면 좋겠어요. 국내, 해외라는 벽도 만들 필요가 없어요. 서울에서 만든 게 부산에서 팔린다고 서울 물건 부산 물건 그러지 않잖아요. 우리가 좋아하면 그들도 좋아해요. 요즘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정말 매우 좋아요. 그런데 자기 것이 좋은지 어떤지 판단을 못 내리더라고요. 그러지 말고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단 만들어보세요. 실패도 빨리하는 게 좋아요. 젊었을 때 일부러라도 실패를 많이 해서 내성을 키우고 경험에서 많이 배우세요. 자기가 옳다는 것을 믿으시고요.

    ▶ Bear St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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