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느낌으로 통한다. 말은 쉽지만 사실 굉장한 일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빌리자면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하게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와 같은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 '네이버'라는 느낌을 만드는 사람, 송호성 네이버 수석디자이너를 만났다.
네이버에서 오래 일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지금까지 일하시면서 어떠셨나요?
2006년에 입사해서 9년째 일하고 있어요. 한 회사를 꽤 오랫동안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리더(창업주)에 대한 신뢰가 높기도 하고 회사의 방향성에 대해 공감이 잘 되는 편이에요. 창업주가 추구하는 ‘사용자를 위한 가치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개인적인 디자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있어서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일의 역할에서는 네이버의 브랜드 개발과 관리를 맡고 있어서 회사의 설립부터 신규 서비스 런칭까지 브랜드의 이름과 얼굴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검색, SNS, 커뮤니케이션, 엔터테인트먼트 등 IT의 흐름의 최전방에서 시장 동향에 대해 예민하게 움직이는 게 중요했고 그러다 보니 지루할 틈도 없었네요.
네이버만의 특성이랄까, 강점이라면 뭘까요?
첫 번째로 조직 개편이 정말 많아요.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내부의 인사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고요. 1년에도 두세 번 자리를 바꾸기 때문에 이사 가기 쉽도록 짐을 최소화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변화가 대단히 고단한 일인데 이제는 훈련이 많이 됐죠. 자연스럽게 변화에 대해서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무형의 가치를 유형의 온라인 서비스로 만드는 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그림을 만드는 일에 기회가 많은데요, 회사에서도 능력 있는 개발자나 디자이너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어서 좋은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도 장점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왜 네이버에 입사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세요?
인 하우스 조직에서 일하면 아무래도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크게 네거티브 이미지가 없는 것도 강점이에요. 디자이너 관점에서는 애플 스타일, 구글 스타일이 존재하듯이 네이버 스타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어요. 그렇다고 네이버의 디자인 원칙과 같은 내부 지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사용자 중심의’, ‘플랫폼을 위한’ 디자인을 추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네이버 스타일이 형성되었고요. 외부로 보이는 기업의 이미지가 자신이 지향하는 디자인 가치관과 잘 맞아 떨어질 때 그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BX는 Brand Experience(브랜드 경험)를 목표로 한다.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폭넓게 보면 브랜드 마케팅을 통해 기업의 얼굴을 만들고 가치를 생산하는 작업이다. 네이버,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도 이 작업을 통해 만들어졌을 터. 조직 개편과 변화의 물결이 거세지만 그렇기에 더욱 조직의 맨 앞에서 브랜드의 가치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이 있다.
브랜드 경험 디자인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뭐라고 생각하세요?
일반적인 기업에서는 서비스(UI, 제품, 패키지 등)를 위한 디자인은 내부 디자인 조직에서 진행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브랜드나 마케팅 활동을 위한 디자인 조직은 아웃소싱을 통해 진행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네이버는 새로운 서비스의 브랜드 개발부터 광고, 캠페인, 프로모션 이슈가 많기 때문에 ROI 관점에서는 내부에 인력을 두고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을 했어요. 내부에서는 기업의 브랜드 마케팅을 위한 모든 디자인 활동을 브랜드 경험 디자인이라고 정의하고 있고요. 이러한 일들을 제대로 하기 위해 아이덴티티, 편집, 제품, 일러스트레이션, 공간, 영상 전문가들이 필요하게 되었죠. 다른 기업에서는 이러한 조직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 네이버에서 처음 시도했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브랜드 경험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면 어떤 역량을 키우는 게 좋을까요?
브랜드 경험 디자인은 아이덴티티, 편집, 제품, 일러스트레이션, 공간, 영상 등 다양한 디자인 전문가들이 함께 있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예요.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해 크로스오버하는 것이 자유로워야 하고 때때로 마케터가 되기도 해야 합니다. 물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겠지만 다른 분야까지 도전할 수 있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요. 또한, 브랜드 경험 디자인이 더욱 빛나려면 무엇보다 서비스가 견고해야 경쟁력이 높아지는데요, 맡은 서비스에 대해서 기획자만큼 깊이 있는 사고로 바라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개인으로 보면 공통점 같은 것이 있나요?
오히려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일 것 같은데…. 개인적인 취향이나 안목이 명확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본인이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어서 서로를 잘 이해해주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랜드나 여행지, 뮤지션, 아티스트들에 대해 공감대 형성이 잘 돼요. 그리고 네이버에는 나이 많은 선배가 드물어서 늘 멘토에 대한 갈증이 있어요. 그래서 성장이 빠른 디자이너들은 자기 스스로 동기부여를 시키려고 노력하고 나이를 불문하고 자극을 주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죠.
인간은 총체적이다.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지니고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한다. 어느 한 면만 보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사람은 늘 흥미로운 존재다. 이런 점에서 한 개인이 보여주는 가능성은 경이롭고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로 한 사람을 만나서 그를 통해 그가 속한 조직에 대한 호감을 결정하기도 한다. 송호성 디자이너를 만난 후 네이버가 좋아졌다.
친밀감 높은 내부 인테리어가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는데 실제 생활은 어떠세요?
네이버 사옥을 짓기 전까지는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일을 더 잘하려면 어떤 공간에서 일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실용적이고 쓰임새가 좋은 것, 보기에 아름다운 것, 합리적인 비용, 의식 있는 디자인 등 일하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제 생활하는 공간에 녹이려고 노력했죠. 결국은 일하는 공간에서 불편한 점을 최소한으로 하는 노력이 사용자의 불편함을 줄이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해오셨는데 가장 인상 깊은 일이 있다면 어떤 거예요?
많은 일이 떠오르지만 ‘한글한글아름답게’ 캠페인이 가장 생각나네요. 한글 캠페인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네이버에서 오래된 캠페인이기도 한데요, 아름다운 무료 한글 폰트라는 콘셉트로 나눔글꼴 시리즈가 개발되었는데,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역할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어요.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세요?
요즘은 웹툰 서비스의 글로벌 진출에 집중하고 있어요. 국내에선 양질의 만화 콘텐츠를 10년 동안 쌓아왔고 웹툰 서비스 방문자도 하루 620만 명이 접속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요. 해외에서는 작년 7월부터 글로벌 서비스를 오픈해서 해외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데요, 브랜드 관점에서는 일본의 망가, 미국의 그래픽노블처럼 한국의 만화를 해외에서 알릴 방법을 찾아보고 있고,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웹툰 작가들과 상생할 수 있는 수익 모델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제2의 마블이 되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