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와 소소]는 폰트 디자이너 이새봄의 연재 칼럼이다. 또한 ‘공부노트’다. 후자 쪽이 「미미와 소소」를 좀더 알맞게 규정하는 수식어일지 모른다. 이새봄의 연재 의도와도 잘 맞는 표현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이 글쓰기를 의뢰했을 때, 이새봄은 “독자들과 함께 공부하는 태도로 써보겠다”고 응답했다. 칼럼니스트로서보다는 독자들의 ‘학우’로서 편편이 폰트 디자인에 관한 배울 거리를 기록해본다는 의미였다.
‘미미’하고 ‘소소’해 보이지만 글자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요소들/이론들을 숙지한다, 라는 뜻으로 칼럼명은 [미미와 소소]로 지어졌다. 필자 이새봄이 [미미와 소소]를 통해 의도한 바는 ‘폰트 보는 안목 기르기’다. 폰트 디자인을 공부하는 이, 현업 폰트 디자이너, 일반 독자 모두의 폰트 감별력을 반올림한다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과일을 꼼꼼이 잘 보고 고를수록, 그 동네 슈퍼마켓엔 좋은 과일들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우리의 폰트 보는 안목과 감별력이 상향될수록, 우리 주변의 폰트들도 상향평준화될 것이다. 필자 이새봄이 「미미와 소소」 연재를 시작한 까닭이다.
지금까지 연재된 1~5회는 한마디로 ‘한글 고딕’ 챕터였다. 위에서 소개한 필자의 의도대로라면 ‘폰트 보는 안목 기르기 ― 한글 고딕 편’인 셈이다. 8월부터 이어질 6회부터는 ‘한글 명조’ 챕터로 넘어간다. 챕터 전환 전에 복습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아래 이새봄의 칼럼들을 북마크 해두고, 모범생의 학습장처럼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건 어떨까.
“언뜻 보면 고딕은 무미건조해 보인다. 명조처럼 부리와 맺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획의 굵기가 변하는 것도 아니고, ··· 멋을 부여할 수 있는 곳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정말 단순한 한글의 원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폰트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고딕을 자세히 뜯어보면 생각보다 특징을 줄 수 있는 곳이 꽤 많다. 이 말인즉슨, 폰트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고딕의 다름을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 많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알려주고 싶었다. 고딕이라고 다 같은 고딕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이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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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 디자이너는 정사각형 판 위에서, 또는 그것을 1,000개 / 1,024개 / 2,048개로 쪼갠 그리드 위에서 글자 하나씩을 만들어간다. 그리드 위에 점을 한 칸씩 움직이며 선을 만들고, 그 선들을 모아 글자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글자가 작은 크기에서도 잘 읽히는지를 모니터 화면을 반복적으로 확대·축소해가며 선을 끊임없이 가다듬는다.
이때 디자이너가 한 칸씩 만지는 수치를 굳이 ㎜로 환산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1,000upm의 폰트를 10pt(3.53㎜)에서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 만들고 있다고 가정하고, 디자이너가 그리드 위에서 한 포인트씩 움직이는 수치(1/1,000)를 계산해본다면 0.00353㎜라는 수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오랜 기간 숙련된 디자이너들은 이렇게 소수점 다섯 자리만큼의 미세한 차이까지 들여다보고 잡아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폰트 디자이너답게 세밀한 눈으로 폰트의 특징을 구별해내려 한다. 타이포그래피 책을 보면 알 수 있는 글자들의 포괄적인 특징이 아니라, 실제 고딕과 명조의 폰트들을 뜯어보면서 각 부위에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즉, ‘미미’와 ‘소소’를 찾아 여러분께 소개하려 한다. 귀납적으로 하나하나 세부 특징들을 알아가다보면 이것들이 모여서 전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고딕의 사전적 정의는 ‘글자 줄기 끝에 부리가 없고 그 굵기가 일정한 글자꼴’이다. 이 ‘부리 없음’의 특징이 명조와 고딕을 가르는 대표적인 차이다. 그래서 명조를 부리글자, 고딕을 민부리글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딕은 대략 1910년 이후부터 책 제목과 광고에 등장했다. 이때는 고딕을 고짓구라 불렀는데 이는 고딕의 일본식 이름이다. 처음에는 필요한 글자를 임시로 손조각하여 광고 등에 사용되었고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정식 활자체로 제작하여 고짓구체와 같은 이름을 붙이고 각 기사의 제목, 광고 따위에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프린터를 이용하여 글 한 페이지를 손쉽게 인쇄할 수 있지만 이때는 활판인쇄(活版印刷)라 하여 글 내용에 따라 납으로 만든 활자를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 판에 짠 뒤 잉크를 묻히고 강한 압력을 가해 종이에 찍어내는 방법 등으로 인쇄했다.
이렇다 보니 강한 압력으로 인해 잉크가 활자체 모서리에서 밀려나오곤 했다. 이 부분을 ‘마지널 존(marginal zone)’, 우리말로 ‘인쇄 여분 띠’라고 한다. 이 마지널 존은 볼록판 인쇄 방식에 의해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디지털 인쇄 방식에서는 마지널 존이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가 없다. 그 시대의 부산물인 것이다.
돌기의 정의를 살펴보면 ‘줄기의 첫 부분, 맺음 부분, 꺾임 부분 등에 미세하게 튀어나온 부분’ , 혹은 ‘부리로 연결되어 글자 줄기의 머리나 맺음에서 꺾이거나 튀어나온 부분’ 또는 ‘첫돌기’ 등 다양하다. 종합해보면 ‘돌기’나 ‘부리’라고 할 수 있는데, 고딕의 정의―글자 줄기 끝에 부리가 없고 그 굵기가 일정한 글자꼴―를 고려한다면, ‘부리’보다는 ‘돌기’라 칭하는 편이 적절하겠다.
돌기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고딕을 만든 최정호의 글을 아무리 살펴도 이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정호 자신에게 돌기의 존재는 너무나 당연했던 걸까? 그래서 따로 설명할 생각을 못했던 걸까? 실제로 그가 만든 고딕 원도를 보면 대부분 돌기가 있다.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는 총 9종의 고딕 원도를 수합하여 분석했는데, 개발 연도별로 나열하면 동아출판사 민부리체(1957), 모리사와 세고딕(1972), 모리사와 태고딕(1972), 모리사와 중고딕(1973), 모리사와 견출고딕(1973), 샤켄 세고딕(1973), 샤켄 중고딕(1973), 샤켄 태고딕(1973), 샤켄 특태고딕(1973) 순이다. 이중 동아출판사 민부리체와 샤켄 세고딕, 모리사와 세고딕 이외에는 모두 돌기가 있었다.
명조는 실제로 한 획 안에서 시작과 중간, 끝의 굵기가 각각 다르고 선이 둥글며 필체의 흔적인 부리가 명확하게 존재하기에 붓의 필력으로 만들어진 서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딕은 획의 굵기가 같을뿐더러 자소 형태도 네모지기 때문에 붓의 필력이 들어갔다는 것을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 고딕의 원형을 만든 최정호는 고딕 안에도 붓의 필력이 들어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그는 명조를 둥근 붓으로, 고딕을 납작 붓으로 그리며 글자의 형태를 만들어갔던 걸까?
실제로 그가 납작 붓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그린 고딕 원도를 살펴보면 돌기가 살아 있고 이음보가 수평적인 선이 아닌 경사진 형태로 되어 있으며, 이음보의 단면이 앞뒤 모두 사선으로 되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붓의 필체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왜일까? 돌기와 필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지난 이야기에서 이미 언급했으니 부연은 생략하겠다. 남은 것은 이음보의 형태와 필체의 연관성에 대한 추적인데, 여기서 우리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글 코드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글자가 바로 ‘가’이다. ‘가’는 단어나 조사 등으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ㄱ의 형태가 중요하다. 가의 ㄱ은 가로줄기와 삐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래 예시들 중 가운데 ‘가’(AG 최정호 민부리)처럼 주로 삐침이 곡선을 완만하게 이루며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삐침의 곡률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직선 구간이 얼마만큼 있느냐에 따라 ㄱ의 속공간이 달라진다. 왼쪽 ‘가’(HG인문고딕)처럼 삐침에 곡선의 느낌을 약간 덜어내면 속공간이 좁아지긴 하나, 손으로 썼을 때의 ㄱ 형태와 유사해진다. 오른쪽 ‘가’(Tlab 돋움)처럼 삐침을 직선 구간처럼 내리다가 살짝 왼쪽으로 꺾으며 마무리하기도 하는데, 이런 형태는 속공간이 일반적 형태보다 훨씬 크고 세로모임꼴 ㄱ 형태와 유사하다.(이러한 ㄱ의 형태는 무료 폰트인 ‘아리따돋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ㅏ는 세로 형태 기둥에 곁줄기가 바깥으로 붙어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곁줄기에 있다. ㅏ의 곁줄기는 초성과 직접적으로 닿지 않는 영역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자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우선 곁줄기의 위치는 초성의 영역(초성의 중심)과 관련 있으며, 초성의 영역은 글자의 무게중심과 관련이 있다. 즉 글자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초성과 곁줄기의 위치가 정해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곁줄기는 초성의 중심에서 위나 아래에 위치한다. 왼쪽 ‘마’(산돌고딕)를 보면 곁줄기가 ㅁ의 중심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오른쪽(타이포 씨고딕)에서는 ㅁ의 중심보다 위에 위치해 있다. 이를 보아 왼쪽은 무게중심이 글자의 가운데나 약간 아래에 위치하고, 오른쪽은 무게중심이 글자의 위쪽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폰트 디자이너. 호호타입(HOHOHtype) 대표. 2005년 렉시테크에서 폰트 디자이너로 입문해 우리폰트 시리즈, 렉시굴림, 렉시새봄 등을 만들었다. 2013년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타이포그래피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방일영문화재단이 주최한 제4회 ‘한글글꼴 창작 지원사업’ 수혜자로 선정돼 새봄체를 제작·발표했다. 이후 ㈜윤디자인그룹에서 바른바탕체 한자, 윤굴림 700 등을 제작했으며, 현재 새봄체의 두 번째 시리즈를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