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문의





    검색

    닫기
    t mode
    s mode
    지금 읽고 계신 글

    한동훈의 글자발견 #6 ‘타슈’ 타고 대전 글자여행

    빵집 ‘성심당’이 있는 바로 그곳, 대전


    글·사진. 한동훈

    발행일. 2022년 08월 25일

    한동훈의 글자발견 #6 ‘타슈’ 타고 대전 글자여행

    대전으로 가는 기차에서 본 바깥 날씨가 잔뜩 찌푸렸다. 8월 초 수도권을 휩쓴 호우전선이 아래로 내려간다더니 딱 거기에 맞춰 따라가는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전역에 내리자마자 비가 슬슬 오기 시작했다. 비는 여행 기간 내내 필자를 따라다니며 때로는 장관을 때로는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Ta-Shu~

    대전 명물(?) 중 하나가 공영자전거 ‘타슈(Ta-Shu)’다. 요즘 각 지역별로 다양한 공영자전거가 있다. 서울의 ‘따릉이’, 여수의 ‘여수랑’, 전라도 광주의 ‘타랑께’, ···. 어렵거나 길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위트를 담아야 하는 작명 릴레이 속에서 충청 지역 특유의 여유를 보여주는 ‘타슈’의 작명 센스는 타 지자체에 밀리지 않는다. 시즌 1이 있고 자전거 모델과 대여 방식이 개선된 시즌 2가 있는데, 과도기라 두 방식의 대여소가 섞여 있다. 오렌지빛 도색에 더 깔끔한 신형 자전거인 ‘타슈 2’를 타고 싶었지만 대부분 점검 혹은 업데이트가 필요해 보였다. 이동하는 내내 시도했는데 한 번 빼고는 대여에 실패했다.

    대전시 공영자전거 ‘타슈’

    타슈 프레임 한쪽에는 영문 표기 ‘Daejeon Citizen Public Bike “Ta-shu~”’가, 다른 쪽 프레임에는 ‘대전 시민 공영자전거 “타슈~”’가 표기돼 있다. 한글 서체는 [윤고딕200]을 연상시키는 평범하고 경쾌한 인상이다. 그런데 라틴 알파벳 서체가 장체(condensed)에 X-하이트(height)도 높아서 독특하다.

    보통 이런 극단적인 룩(look)은 전문적인 곳에 쓰이기 쉬운데 이런 서체로 “Ta-Shu~”를 써 놓았다. 외국인의 어설픈 한국어, 정장에 삼선 슬리퍼를 신은 듯한 유쾌한 미스매치가 웃음을 자아낸다. 아마 제일 합리적인 이유는 긴 문자열을 다 넣기엔 자전거 프레임 길이가 짧아서였을 것이다. 타슈 2에서는 한글 표기가 사라지고 영문 표기는 보다 평범한 지오메트릭 산세리프(geometric sans serif)로 바뀌었다.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든다. 향토성을 상실하고 국제화가 되어 가는 듯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타슈 1의 대여는 대여소마다 위치한 키오스크에서 이용권 결제 후 거치된 자전거를 들어서 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반납할 때는 반대로 타슈 프레임에 달린 유닛을 대여소 거치대에 끼우면 된다. 독특하지만 자전거를 살짝 들어서 끼워 넣어야 하기에 근력이 부족한 노약자에겐 은근히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높이를 낮춰서 굴려서 끼워 넣을 수 있으면 더 좋았을지도.

    타슈 2에선 ‘따릉이’나 공유 이동수단처럼 QR코드를 이용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승차감은 보통이다. 24시간 야외에 노출되는 공공재임을 감안하면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고 시민 이용률도 높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인지 모르겠으나, 인상적인 부분은 안장이 타 지자체 자전거에 비해 두툼하다는 것이다.

    중앙시장의 간판 글자들

    대전역에서 길 건너면 바로 진입할 수 있어 접근성이 높은 대전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중앙시장 주변은 인쇄 관련 가게, 약재상, 금은방 등 구역별로 업종이 특화돼 있다. 시장의 중심은 천장을 덮고 업종마다 뒤에 ‘~역’을 붙여 브랜딩까지 해 놓았다. 규모와 역사가 있는 이런 시장은 보통 오래전에 흔한 디지털 폰트로 서체 환경이 바뀐 경우가 많다. 따라서 표면에 덮인 디지털 폰트 속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옛 글자를 발견하는 것이 핵심 탐방 목표가 된다.

    중앙시장 귀금속점 ‘일일양행’ 간판 글자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이 ‘일일양행’이라는 간판을 건 귀금속점. ‘일일양’까지는 색다를 것 없는데 마지막 ‘행’자의 종성 이응[ㅇ]을 길게 늘였다. 세로형 간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로 간판에서도 심지어 원래 평범한 비례였던 글자를 떼고 종성이 긴 글자로 교체했다. 이런 디자인 요소가 가게의 아이덴티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행’의 중성도 숫자 4를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간략하게 만들었다. 시트지를 유리창에 잘라 붙였지만 자를 댄 부분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시장 외곽의 한 전기 자재점 글자는 다른 글자도 파생해 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시트지 글자가 인상적이었던 전기자재점

    한빛탑과 엑스포체

    엑스포다리를 건너 한빛탑이 보이는 엑스포과학공원으로 향했다. 대전광역시는 1993년 엑스포를 유치했다. 갑천을 가로지르는 엑스포다리, 다리를 건너면 정면으로 보이는 한빛탑은 그 주요 무대가 되었던 곳이다. 행사가 끝난 후 목적을 잃고 한동안 표류하기도 했지만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나름의 용도를 찾은 듯싶다.

    마침 한빛탑 주변에서 ‘2022 달밤소풍’이란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곳곳에 자리잡은 푸드트럭과 음악분수, 저녁이 가까워옴에 따라 켜지는 조명이 여름밤 분위기를 고조시켜 준다. 많은 사람이 휴식하는 곳에 가면 필자까지 활기찬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다. 산책 나온 근처 시민이 되어 어느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잔이 하고 싶었다.

    1993년 대전엑스포의 주요 무대였던 한빛탑

    한빛탑 우측에는 대전엑스포기념관과 대전통일관이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원래 대전엑스포 공식 로고타입으로 써 있던 글자를 철거하고 [엑스포체]로 대신한 흔적이 보인다. 대전엑스포의 아이덴티티 작업은 처음 로고타입이 발표된 후, 이를 바탕으로 2,350자의 한글을 만든 전용서체 [엑스포체]의 개발 순으로 진행됐다. 그런 흔적이 마치 일부러 보여주려는 듯 또렷하게 보였다. 한빛탑 주변에 있는 광장스토어는 종성 치읓[ㅊ]을 탑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디자인했고, 한빛탑 전망대에 있는 카페 ‘비노’는 한빛탑 디자인의 중심 테마인 정원과 비슷한 원형 로고타입을 하고 있는 등 주변 글자들이 탑의 영향을 받은 모습이었다.

    한빛탑 광장스토어
    한빛탑 전망대의 카페 ‘비노’
    한빛탑 전망대에서 바라본 빗속의 노을

    한빛탑 전망대에 올라 주변 풍경을 살피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노을이 지는 가운데 쏟아지는 비가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은 카메라에 채 담기지 않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대전은 공원이 좋은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유성온천 주변엔 노천 공원에 시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족욕탕을 조성해 놓은 유성온천공원도 있다. 시간이 급하지 않다면 발을 깨끗이 씻고 길가 옆에 있는 탕에서 잠깐 사색의 시간을 가져볼 일이다. 나름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작지만 온천족욕문고까지 조성해 놓았다.

    유성온천역에서 다시 ‘타슈’를 타고 중앙 시가지로 돌아오려는데 중간에 또다시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다. 대여소도 마땅치 않고 크게 피할 곳이 없어 의도치 않게 빗속을 자전거로 질주하여 숙소로 복귀했다. 몸은 흠뻑 젖었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물은 금방 마르지만 색다른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 마련이니···.

    이미 그런 인식을 갖고 있어서 유난히 눈에 띄는지도 모르지만 대전 곳곳은 타 지역보다 엑스포체 사용률이 높았다. 각종 공공기관 표지판, 유성온천 일대, 국립중앙과학관 등 곳곳에서 엑스포체를 볼 수 있었다. 다른 형태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수직·수평·사선·원형으로 만든 엑스포체는 손맛 가득한 고딕이 주류였던 등장 당시(1990년대 초반)만 해도 상당히 미래적인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서체 디자인 전 과정이 매킨토시 컴퓨터로 이뤄진 최초의 공공 행사 전용서체이기도 하다. 정적인 도시에 지극히 정직하고 기본적인 요소로만 세워진 건축물과 정직한 요소로 만든 사실상 대표 서체. 왠지 도시의 인상이 하나로 잡혀 가는 느낌이다.

    엑스포체는 한빛탑 주변뿐 아니라 대전시내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글의 간소함을 닮은 대전육교

    개인적으로 대전에서 가보고 싶은 장소가 있었다. 한동안 경부고속도로의 일부를 담당했던 대전육교다. 1969년 건설되어 1970년 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이 방면을 연결한 대전육교는 높이가 35미터에 달하는, 준공 당시 국내 최고 높이의 아치교였다. 선형 변경과 노후화로 2001년 근처 신형 육교에 본 역할은 내주었지만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다.

    대전육교는 단순한 육교가 아니라 당시 한국 토목기술의 정수를 집약한 시설물이었다. 그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지금은 국가등록문화재 783호로 변신했다. 대전육교가 있는 길치근린공원으로 다가갈수록 거대한 아치와 수직 기둥이 이루는 장대한 규모와 우아한 디자인이 장관을 이룬다. 아치와 기둥, 상판. 왠지 엑스포체의 근간이 된 훈민정음의 수직·수평·원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직하고 정석적이다.

    지금은 폐도(廢道)가 된 육교 상판에 올라가 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인터넷 등지의 후기를 보면 같은 생각을 하는 탐방객들이 꽤 있는 모양인데, 아예 입장료를 받고라도 상판 산책이 가능하게 만들면 어떨까? 너무 불합리한 가격만 아니라면 수요가 있어 보인다. 위치가 대전 평균 고도보다 높은 산지에 있고 육교 자체의 높이도 있어 전망대로서의 기능도 충분할 것 같다. 전용 심볼과 서체로 브랜딩하기도 딱이다. 아는 사람만 암암리에 찾아오는 장소가 아니라 더 많은 홍보와 이에 따른 관리가 이뤄지면 좋겠다. 문득 고가도로였다가 공원으로 바뀐 ‘서울로7017’의 사례가 떠오른다.

    대전육교

    둔산대공원에서 꼭 가봐야 할 곳들

    대전 중심부의 둔산대공원에는 여러 시설이 있다. 거대한 녹지에 각종 식물로 조성한 한밭수목원과 함께 대전예술의전당, 이응노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등의 시설이 같이 있다. 방문객도 많지만 부지 자체가 그것을 덮을 만큼 더욱 넓고 한가하여 정직하고 정적인 도시라는 대전의 인상을 한층 강화시킨다.

    로고타입의 ‘ㅇㅇㄴ’ 심벌이 눈에 들어오는 이응노미술관에선 이응노 화백과 이성자 화백을 엮어 마련한 〈파리의 마에스트로〉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 아이덴티티의 메인은 아주 길고 좁은 컨덴스드 슬랩 세리프(condensed slab serif) 로만 알파벳과 컨덴스드 고딕 한글이 이루고 있다. 이 한글 서체는 미술관 내부 작가 연보나 전시 캡션 등 광범위한 곳에 쓰이며 전시에서 작품의 뒤를 받친다.

    이응노미술관의 심벌
    이응노미술관 〈파리의 마에스트로〉 전시를 위한 아이덴티티 서체
    대전시립미술관 〈미래도시〉 전시

    근처 대전시립미술관에서도 재미있는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의 일환인 〈미래도시〉전. 미래라는 인상에 맞게 거친 픽셀을 주조로 디자인한 로고타입이 보인다. 같이 쓰인 알파벳 서체도 폭을 비슷하게 맞추고 거칠게 툭툭 굴절된 모습으로 컴퓨터나 기계로 상징되는 ‘미래’를 은유한다.

    전시를 보다 보면 아무리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어도 그 구현 자체는 나도 얼마든지 가능하겠다는 느낌이 드는 것들이 있는데, 〈미래도시〉 속 전시물은 그런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려면 이 정도 힘을 쏟아야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창작자의 일환으로서 필자의 전시 참여에 대한 자세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여기가 바로 그 ‘성심당’

    대전시에 살거나 그 근처 지역에 거주하는 지인과 대전 얘기를 하면 꼭 나오는 랜드마크가 있다. 빵집 ‘성심당(聖心堂)’이다. 삼대째 이어지고 있다는 성심당. 도대체 어떻길래 그런 것일까? 직접 가 본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인근 성심당 근처엔 계열 건물 몇 채가 완전히 성심당 거리, 성심당 타운을 이루고 있었다. 대표 메뉴는 1980년 선보인 튀김소보로.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 8,000만 개에 달한다. 입장을 위한 끝을 모르는 줄은 시간도 시즌도 타지 않는 듯했다.

    지역 빵집 이상의 ‘지역 문화’ 상징물이 된 대전 성심당 본점
    (계열사인 ‘성심당 케익부띠끄’가 한 건물에 있다)

    서울로 진출한 군산 이성당과 달리 대전 성심당은 신문 기사에 따르면 대전에만 지점이 있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벗어날 계획은 없다고 한다. 창업주가 1956년 대전역 앞에서 시작한 작은 찐빵 가게가 성심당의 기원이다. 소위 ‘잘나갔던’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계열 사업이 실패해 사업체 전체가 넘어갈 뻔한 적도 있고 2005년에는 화재로 주요 집기가 전소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버틴 결과는 ‘전국 3대 빵집’이란 타이틀이다.(참고로 전국 3대 빵집으로 불리는 곳은 대전 성심당 본점, 군산 이성당 본점, 안동 맘모스제과다.)

    성심당 본점이나 케익부띠끄 등 파생된 지점의 규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근처에 있는 성심당문화원이었다. 본점 근처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성심당문화원은 성심당이 쌓아온 역사와 콘텐츠, 지역 공헌 사상을 기반으로 한 성심당 전성기를 상징하는 듯한 공간이다.

    1층 스토어에서는 컵과 에코백, 테이프, 뱃지, 자사 대표 메뉴인 튀김소보로를 모티프로 하여 만든 튀소비누, 그리고 동아연필과 협업한 ‘흑심×빵심’ 연필이 판매 중이다.(동아연필도 대전 로컬 기업이라고 한다.) 그 와중에 안쪽 구석 아래 전시된 판매용 머그컵이 시선을 끌었다. 추측이지만, 포장재 외부에 인쇄된 ‘성심당’ 한글 세 글자가 왠지 1970~1980년대 실제로 쓰이던 로고타입 느낌이다. 복고 느낌을 내려 어설프게 드로잉한 것이 아닌 ‘원본’ 느낌을 짙게 풍겼다.

    성심당문화원 1층 스토어
    성심당 대표 메뉴 튀김소보루(튀소) 40주년 기념 머그컵
    성심당문화원 갤러리

    성심당문화원에는 굿즈 스토어 말고도 분위기 좋은 카페와 전시 공간이 같이 있으니 성심당을 찾은 방문객이라면 들르는 김에 같이 방문해 봄직하다. 진행되는 두 가지 전시는 모두 성심당 자체를 모델로 한 것으로 웬만한 프랜차이즈가 따라하기 힘든 문화적 저력을 느끼게 했다.

    필자는 종로서적 세대는 아니지만 일개 서점을 넘어서 문화적 모범이 됐다는 서울 종로서적의 전성기 모습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다. 성심당 본점 간판은 한자, 성심당 케익부띠끄 간판은 [Sandoll광화문], 성심당문화원 간판은 기하학적인 고딕으로 쓰인 모습이 어쩐지 각 공간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성심당 방문을 마지막으로 기차에 올랐다. 대전은 듣던 대로 정직하고 정적인 도시였으나 넓은 이동 동선과 악천후로 인해 이동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그 갭에서 오는 강렬함이 오히려 기억에 오래 남았다. 어떤 도시에 방문하고 떠날 때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현지 시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이 들었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간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발견자는 다음을 기약할 뿐이다.

    ‘EXPO구두병원’ 시트지 글자 해석과 파생

    유사 이래 대전에서 개최된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일 1993년 대전엑스포는 그 흔적을 도시 곳곳에 남겼다. 대전 중앙시장 외곽에 위치한 작은 구두 수선 가게 ‘EXPO구두병원’ 출입문에 붙은 글자는 ‘잘라 붙여 만든’ 전형적인 시트지 한글 양식을 보여 준다. 그러나 초성까지 꽉 찬 글자틀이나 시옷[ㅅ] 등 독특한 자소가 있어 재조명하기 충분하다. 이 글자의 주요 DNA를 한번 살펴보자.

    EXPO구두병원

    ▷ 글자가 사각형 틀에 들어 있다고 가정할 때, 세로로 긴 장체(condensed) 스타일이다.
    ▷ 가로세로 획 대비가 심한 고딕 스타일이다.
    ▷ 초성이 중성 대비 크기가 작지 않고, 상하좌우로 자로 대고 맞춘 듯 꽉 찬 비례를 가진다.
    ▷ [ㅅ]의 처리가 독특하며, 맨 위쪽 가로획을 오른쪽으로 길게 빼서 마치 왼쪽으로 진행하는 듯한 방향성을 만든다.
    ▷ [선]에서 초성 [ㅅ]의 세로획 두께가 다르다. 안쪽이 더 얇다.
    ▷ [남]과 [염]에서 받침 미음[ㅁ]의 디자인이 다르다. [염]의 [ㅁ]은 오른쪽 상단 모서리에 굴림을 넣었다.
    ▷ [여]의 중성 [ㅕ] 가로 곁줄기 사이가 크게 벌어져 있으며, 곁줄기 두께가 오른쪽으로 갈수록 미세하게 커진다. 즉 눕힌 사다리꼴 모양이다.
    ▷ [선]에서 보이듯 중성 세로기둥의 길이가 고정돼 있다. 이는 초성 [ㅅ], 종성 니은[ㄴ]이 만드는 공간과 연결되어 넓은 공백을 형성한다.
    ▷ [남]의 초성 [ㄴ]은 오른쪽으로 서서히 올라가며 중성과 연결된다. 초성 기역[ㄱ], 초성 [ㅅ]과 분위기를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 [두]의 초성 디귿[ㄷ]은 왼쪽 상단 모서리에 굴림을 넣었다.
    ▷ [여], [염]을 비교하면 초성 이응[ㅇ]의 곡률이나 획 대비가 수작업의 태생적 한계로 조금씩 다르다.
    ▷ [색]의 [ㅐ]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중모음 곁줄기가 중앙보다 위쪽으로 치우쳐 있다.

    DNA를 분석했다면 한글 파생 원리에 의해 다른 낱자도 만들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직한 도시 속에 숨은 재미’라는 견본 문자열을 제작해 보았다. 대전은 조용하고 특징 없는 도시라는 통념이 있는데 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위트를 살짝 드러내고 싶었다.

    EXPO구두병원 시트지 글자에는 고정된 제한 요소가 많아, 절제하고 정제하려 하면 서체가 다소 심심해질 수 있다. 따라서 몇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글자폭은 900유닛(unit))으로 잡고 온자 간 너비 차이가 없는 고정폭으로 설정했다.

    EXPO구두병원 시트지 글자를 바탕으로 제작한 견본 문자열

    가로모임꼴 민글자: [자], [시], [에], [대], [재], [미]

    [자]의 초성은 [선]에서, 중성은 [남]에서 가져왔다. 초성 지읒[ㅈ]은 원본 글자에 존재하지 않으므로 새로 제작해야 한다. 원본 [ㅅ]이 사다리꼴이므로 위에 가로줄기만 덧대는 선택과 아예 갈래지읒으로 새로 만드는 선택이 있다. 여기서는 가로줄기를 덧대 만들었다.

    [에]의 초성 [ㅇ]은 [여]에서 가져왔다. 한 가지 변화를 주었다. 왼쪽과 오른쪽 획 두께가 다른 [ㅅ]에서 모티프를 얻어, 초성의 획은 전부 이런 식으로 처리 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ㅇ]의 양 옆 세로획 두께도 [ㅅ] 느낌으로 서로 다르게 맞췄다.

    [에]의 이중모음 [ㅔ]는 [색]에서 가져오되, 그대로 아래로 늘리면 중성이 좁아 보이므로 왼쪽으로 키웠다. 이로써 받침 없는 이중모음과 있는 이중모음 면적을 다르게 간다는 법칙이 생겼다. [미]의 초성 두께는 [ㅇ]을 바탕으로 하고 왼쪽 위에 [ㄷ]의 굴림을 더했다.

    가로모임꼴 받침글자: [발], [견], [전], [정], [직], [한]

    원본 글자에는 초성 비읍[ㅂ]이 없다. 새로 제작해야 한다. 비슷한 위치에 굴림을 갖고 있는 [남]의 초성 [ㄴ]에서 따오되 양쪽 아래에 모두 굴림을 주었다. 왼쪽과 오른쪽 획 두께를 다르게 함으로써 일관성을 부여했다.

    종성 리을[ㄹ]도 없으므로 만들어야 하는데, 획이 복잡하므로 과한 개성보다 무난하게 만들기로 했다. 오른쪽 각도를 종성 [ㄱ]과 비슷하게 맞추고 나머지 획은 수직·수평으로 평이하게 했다. [ㄹ] 가로획은 가로보에서 가져왔다. 이렇게 해 봤더니 획이 뭉치면 가로획 두께를 보정해야 한다. 그러나 테스트 결과 여기까지는 보정이 필요 없다.

    [견]의 초성 [ㄱ]은 [구]에서 가져왔다. 획을 일반적인 고딕처럼 길게 뻗는 것보다 수직으로 확 내리는 것이 일관성과 강한 인상에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구]의 초성 각도에서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았다. 중성 길이와 종성 [ㄴ]의 면적은 [선]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각 자소별로 보정이 필요한 서체 스타일이 있고 이렇게 몇 개의 단순한 조합 틀에 늘려서 맞추는 서체 스타일이 있는데, 이 서체는 후자인 경우다.

    [전]의 초성 [ㅈ]은 [자]를 바탕으로 하되, 왼쪽으로 치고 들어오는 곁줄기가 있으므로 폭을 10유닛가량 줄였다. 중성과 종성의 나머지 수치는 ‘선’에 맞췄다.

    [한]의 초성 히읗[ㅎ]은 원본에 없으므로 새로 제작해야 한다. 꼭지를 눕히는 것과 세우는 것 중 어느 방향이 나을지 고민했다. 첫째로, 실제 시트지를 자르는 작업자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세운 꼭지 쪽으로 작업하겠다 싶었으며 둘째로는 이 서체 자체가 모든 자소에 걸쳐 면적의 변동이 적으므로 공간을 비교적 적게 차지하는 세운 꼭지가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ㅎ]의 꼭지 부분과 [ㅇ]을 서로 붙이면 자칫 판독에 지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서로 떨어뜨렸으며 안쪽 이응은 초성 법칙 대로 왼쪽/오른쪽에 두께 차이를 주었다. [ㅏ]와 [ㄴ]의 높이 비례는 [ㅎ]이 차지하는 크기에 맞게 전체적으로 아래로 내렸다.

    세로모임꼴 받침글자: [글], [속], [숨], [은]

    [글]의 종성 [ㄹ]은 [발]에서 가져왔다. 가로모임꼴에서 세로모임꼴로 바뀌면서 종성 너비도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서체는 자소를 늘려 외곽선에 가깝게 맞추는 것이 콘셉트라 폭을 크게 줄이지 않았다. 초성 [ㄱ]의 너비도 [구], [굽]과 같다.

    [속]의 초성 [ㅅ]은 [수]에서 가져왔다. 윗선을 맞추고 종성 [ㄱ]을 [색]에서 가져왔다. 아무래도 세로모임꼴로 오면서 눌리는 압력이 늘어난다. [ㄱ]의 높이를 낮춰줘야 한다. [속], [숨], [은]의 초성은 가로모임꼴처럼 왼쪽과 오른쪽 획 두께에 차이를 주면 온자 자체의 힘이 약해질 위험이 있어 차이 없이 처리했다. 가로모임꼴에서는 오른쪽 기둥이 잡아 주고 있어 시도할 수 있었던 옵션이다. 이로써 가로모임꼴과 세로모임꼴에서 초성 두께 비율을 다르게 간다는 규칙이 생겼다.


    구 충남도청사

    역사가 오래된 도시엔 어김없이 근대 건축물이 있기 마련이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이 있는 구 충남도청사도 그중 하나다. 충남 공주에 있던 충청남도청이 1932년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신축된 구 충남도청사는 질곡의 한국현대사와 함께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 한국전쟁 중에는 임시정부청사, 전쟁이 끝난 후엔 다시 도청사, 현재는 근현대사전시관과 기타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그런 역사의 소용돌이 와중에 철거를 요하는 심각한 파손이 없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포치와 중앙계단, 타일을 깐 로비의 바닥, 기둥, 아치, 외부 장식과 개폐 장치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다. 외부 벽체와 로비 바닥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은 이 청사의 심벌이라 할 수 있다. 설명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문양과 비슷하다 하여 논란이 됐지만 특별한 조형적 연관성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도청사를 비롯한 근처 주요 근대 건축물로는 옛 조흥은행 대전지점, 옛 한국산업은행 대전지점 등이 있는데 용도는 달라진 곳도 있지만 모두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다. 모든 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 빠르게 흽쓸리는 한국의 도시 속에서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산돌을 거쳐 ㈜티랩에서 근무했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 등에 글을 기고했으며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 온라인 플랫폼 클래스101, 이도타입에서 서체 디자인을 가르쳤다.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donghoonhaan

    Popular Series

    인기 시리즈

    New Series

    최신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