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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9 건축물 사진과 모형, 저작물 맞다/아니다?

    법학박사 하동철과 함께 알아보는 우리 일상 속 저작권 ― ‘필라델피아 스카이라인’ 이슈 톺아보기


    글. 하동철

    발행일. 2020년 02월 28일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9 건축물 사진과 모형, 저작물 맞다/아니다?

    사진작가 A 씨는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 올라가 전경을 촬영했다. 광각렌즈를 이용해 도시 풍경을 너른 각도로 포착했다. 날씨가 맑아 기대 이상의 사진이 나왔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은 물론, 강남 코엑스와 한강 다리들까지 펼쳐진 근사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보니, 듬성듬성 빈 공간이 느껴졌다. A씨는 ‘건물이 꽉 차 있으면 더 멋질 텐데’라고 생각했다. 사진을 편집하기로 했다. 철거 현장으로 보이는 공터에 건물 한 채를 그려 넣었다. 편집을 마친 A 씨는 해당 사진을 본인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광고사 직원 B 씨는 소셜미디어 검색 중 A 씨의 사진을 발견했다. ‘강남 스카이라인’이라고 홍보하면 인기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몇 번의 회의를 거쳐 스카이라인을 얇은 판 형태의 네온사인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네온사인에 상품명도 같이 새겨넣어 편의점이나 상가에 배포해 광고 효과를 노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사내 법무팀이 우려를 표했다. 남의 사진을 허락 없이 복제해 네온사인을 만드는 행위가 저작권 침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럴까? 아래 사례가 답이 되어줄 것이다.

    ‘필라델피아 스카이라인’ 사진은 저작물인가 아닌가?!

    사진작가 브래들리 몰(R. Bradley Maule)은 2005년 필라델피아의 한 건물에 올라가 도심 빌딩숲 전경을 찍었다. 사진 속에는 필라델피아 중심구이자 비즈니스 지구인 센터 시티(Center City)의 풍광이 근사히 담겼다. 촬영을 마친 브래들리는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원본 사진에 없던 고층 빌딩 두 채를 넣었다. 촬영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으나, 향후 지어질 건축물들을 상상한 셈이다. 하나는 촬영 시점으로부터 10년 뒤인 2015년 완공된 58층짜리 건물 컴캐스트 센터(Comcast Center), 또 하나는 현재까지도 지어지지 않은 맨더빌 플레이스(Mandeville Place)다. 그는 센터 시티 마천루들의 크기와 형태를 참고해 제작한 ‘가상의 빌딩’ 이미지를 사진에 붙였다.

    앤하이저 부시(Anheuser-Busch)는 버드와이저 맥주 제조사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네온사인, 배너, 전단지, 신문 및 TV 광고, 웹페이지를 통해 버드와이저를 비롯한 자사 제품들을 대대적으로 광고해 왔다. 평소처럼 앤하이저 부시는 계약을 맺고 있는 광고사와 함께 버드와이저 네온사인 광고를 구상했는데, 이 과정에서 브래들리 몰의 필라델피아 도심 사진을 베꼈다.

    문제가 된 네온사인은 사진 속 필라델피아 스카이라인을 간결하고 덜 세밀하게 렌더링 한 형태다. 네온사인 속 빌딩들은 밝은 빨간색, 빌딩 각 층과 창문 들의 테두리는 검정색으로 각각 처리돼 있다. 앤하이저 부시의 네온사인과 브래들리 몰의 사진을 비교할 때, 유일한 차이는 컴캐스트 센터(Comcast Center)다. 네온사인에서는 이 건물을 회색 윤곽선으로만 묘사했다.

    브래들리 몰이 2005년 촬영한 필라델피아 스카이라인.
    가장 높은 두 건물이 (왼쪽부터) 컴캐스트 센터, 맨더빌 플레이스.
    출처: 「Did Budweiser steal artist’s image for ads during pope’s visit?」, The Philadelphia Inquirer, LLC, 2017. 2. 1.
    브래들리 몰의 사진을 이용해 제작된 버드와이저 네온사인
    출처: Maule v. Anheuser Busch, LLC, 2017WL3669999 (E.D.Pa.), 『저작권 동향』(한국저작권위원회, 2018년 제12호)에서 재인용

    브래들리 몰이 필라델피아 도심 사진을 촬영한 지 10년이 지난 2015년, 그는 한 상점의 창문에서 자신이 찍은 사진과 똑같아 보이는 네온사인을 발견했다. 본인의 사진을 허락 없이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확신에 찼고, 결국 앤하이저 부시와 네온사인 제작업체를 고소했다.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며 해당 네온사인 사용 금지 명령 및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브래들리 몰의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2018년 7월 27일, 펜실베니아 동부지방법원은 원고가 촬영한 사진 속 스카이라인을 구성하는 현존 건물들은 공공의 영역이며, 따라서 누구에게도 독점권이 부여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원칙적으로 스카이라인의 저작물성을 부정한 것이다. 원고가 그려 넣은 ‘건축되지 않은 건축물 ― 맨더빌 플레이스’가 앤하이저 부시 네온사인에 포함된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두 작품에 공통으로 묘사된 유사성이 있다 하더라도 두 작품은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으며, 동일한 미적 느낌을 공유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이다.

    도시의 건축물들, 그리고 ‘파노라마의 자유’

    공공장소에서 항시 전시되는 건축물이나 미술 저작물을 허락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권리를 ‘파노라마의 자유’라 부른다. 앞서 살펴본 ‘도심 스카이라인’도 파노라마의 자유 대상이다. 우리 저작권법 제35조 제2항은 ‘개방된 장소에서 항시 전시되는 건축·미술·사진 저작물’에 대해 판매 목적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라면 자유롭게 복제해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때 개방된 장소란 옥외 장소를 가리킨다. 예컨대 호텔 내부나 공연장 안에 설치된 조각상은 파노라마의 자유 범위에 들어가지 못한다. 호텔 로비에 설치된 조각상을 배경으로 광고를 촬영해 방송한 행위를 저작권 침해로 본 판례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가상현실·증강현실 기술의 발달로 파노라마의 자유를 더 확대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가령 VR 구현 과정에서 스포츠 경기나 가수의 공연 모습이 포함될 경우, 현행법상으로는 파노라마의 자유 대상이 되지 못한다.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VR 구현 화면에 특정 건축물이 배경으로 들어가 있고, 이러한 VR 기기가 시중에 판매됐다면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특정 도시의 상징물은 어떨까? 이를테면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같은 건축물 말이다. 파리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에펠탑 엽서’다. 말 그대로 에펠탑 사진이 인쇄된 엽서다. 주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판매된다. 필자도 파리를 여행한 경험이 있는데,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에펠탑 사진들은 ‘에펠탑 엽서’와 퍽 비슷한 느낌을 자아냈었다. 엽서 속 에펠탑 사진과 구분이 어려울 만큼 흡사한 사진들도 몇 장 있다. 엽서의 사진은 전문 사진작가가 찍었을 것이고, 따라서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 그렇다면 에펠탑 엽서와 유사한 사진을 찍은 필자는 저작권을 침해한 셈이 되는 걸까?

    필자 같은 여행자가 찍은 사진이라도 창작성을 충분히 인정 받을 수 있다. 창작성의 인정 기준은 독창성(originality)인데, 독창성이 성립되는 데 특별히 높은 수준의 조건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없던 새로운 것’만이 저작권 보호를 받는다는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행자가 찍은 여행지 사진이 사진작가가 촬영한 해당 지역 사진과 비슷하다 해도, 복제한 것이 아니라면 독창성이 성립될 수 있다. 왜냐하면 촬영 구도, 촬영 시점, 조리개 및 셔터 값 등을 선택하는 일련의 행위 자체에 이미 창작성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다운 정교한 기술이 없다 해도, 앞서 말한 촬영 과정에서의 ‘내 선택’ 자체가 이미 창작적이니까.

    광화문은 광화문이고, 광화문 모형은 광화문이 아니다

    건물을 축소해 만든 모형을 두고도 분쟁이 있었다. C 씨는 광화문, 숭례문 등 실제 건축물을 축소시켜 입체 퍼즐 모형을 만드는 회사를 설립해 운영했다. 그런데 이 회사 직원이었던 D 씨 등 네 사람이 퇴직 후 별도의 회사를 설립해 비슷한 입체 퍼즐 모형을 만들어 팔았다. 이 사실을 안 C 씨는 D 씨 등의 상품이 자사 제품과 유사하다며 소를 제기했다.

    광화문은 조선 후기 재건축된 건물로 저작권은 이미 소멸했다. 따라서, 해당 법적 분쟁의 관건은 ‘실제 건축물 모양을 축소시켜 만든 입체 퍼즐 모형에도 저작권이 있는가’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광화문이 아니라 ‘광화문 입체 퍼즐 모형’의 저작권 인정 여부가 문제인 것이다.

    A 씨의 입체 퍼즐 모형은 실제 광화문의 형태와 다소 차이가 있다 / 출처: 디자인맵

    A 씨 모형의 경우, 실제 광화문을 원형 그대로 축소해 만든 것은 아니다. 형상, 모양, 비율, 색채를 다르게 했다. 지붕 성벽의 비율과 높이를 더 강조하고, 지붕의 2단 구조, 처마의 경사도, 지붕의 색깔, 2층 누각 창문 및 처마 밑 구조물을 단순화했다. 또한 문지기의 크기, 중문 모양 등에 큰 변형을 가했다. 이 점을 인정하여 법원은 광화문 건축물의 디자인은 저작권이 소멸했지만,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광화문 모형’은 새로운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 연구원(법학박사)이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등에서 강의 활동을 하였다. 동 대학원에서 「공연권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믿기 힘든 저작권 이야기』,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 『음악 저작권』 등 저작권과 관련한 다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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