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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6 BTS의 춤, 시크릿의 춤, 싸이의 춤

    법학박사 하동철과 함께 알아보는 우리 일상 속 저작권 ― 춤 저작권 알아보기


    글. 하동철

    발행일. 2020년 02월 07일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6 BTS의 춤, 시크릿의 춤, 싸이의 춤

    며칠 전 동료들과의 대화 중 펭수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선배가 “펭수 인형 안에서 연기하는 사람은 누굴까?” 하고 궁금해 하자 다들 한마디씩 거든다. 한 후배는 펭수가 양손을 흔드는 몸짓을 누가 따라 하면 위법이냐고 묻는다. 농담삼아 한 질문이었겠으나 곰곰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만약 어떤 동작이 (펭수만큼 널리 알려진) 유명인을 연상시켰고, 그 동작을 통해 상업적 이익을 도모했다면? 얼핏 보기엔 ‘초상권’이나 ‘퍼블리시티권’과 관련될 듯하다. 하지만 동작 자체는 ‘저작권’ 보호 영역에 속한다.

    동작 자체가 (초상권·퍼블리시티권이 아니라) 저작권의 소관이라 해도, 모든 동작이 저작물일 수는 없다. 춤을 예로 들어보자. 평범한 스텝, 색다를 것 없는 장르, 전형적이고 단순한 안무라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것이다. 동작 자체에 독창성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독창적 동작을 개발한 이에게는 마땅히 독점권을 주어야 하는 걸까? 누군가의 특정 동작에 ‘독점권’을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움직일 자유를 제한한다는 뜻이다. 탱고의 기본 동작을 한 사람이 독점했다고 가정해보자. 나머지 사람들은 탱고를 출 때마다 저작권료를 내야 한다. 상상만으로도 괴롭다.

    방탄소년단의 삼고무 춤, 그리고 전통춤의 저작권

    춤 얘기를 계속 이어가보자. 춤은 인간의 역사나 문화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춤의 동작과 장르는 전통 문화와 관련이 깊다. 이와 관련해 살펴볼 만한 사례가 세계적 한류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2018년 어느 공연 무대다. 당시 BTS는 자신들의 곡 ‘IDOL’을 국악 버전으로 편곡해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 무대에서 선보인 춤은 무용가 이매방 선생의 창작 무용 ‘삼고무(三鼓舞)’를 변형한 것이었다. 방탄소년단의 삼고무 춤 공연을 두고 저작권 논란이 일었다. 이매방 선생이 만든 무용이므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 전통춤을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 라는 두 가지 상반된 목소리들이 나왔다. 사회적 논의의 측면은 이 글에선 우선 차치하고, 저작권적 측면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도록 하겠다.

    BTS의 삼고무 춤 무대 / 출처: BANGTANTV 유튜브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온 전통춤 자체는 누구나 자유롭게 취할 수 있는 ‘공공의 영역’에 속한다. 구전가요나 민요도 마찬가지다. 민족 고유의 유산이기에 어느 개인에게 저작권을 귀속시키지 않는다. 창작자는 물론이고 그 기원조차 알 수 없는 오랜 춤이라면, 저작권 논의 자체가 어렵기도 할 것이다. ‘전통 예술 자체는 저작권이 없다’라는 인식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공공의 영역에 속한 대상이라 해도 그것을 변형하거나 창작성을 덧붙여 또 다른 창작물을 만든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2차 저작물’로 보호되기 때문이다. 단, 이때의 ‘변형’이라 함은 단순 조합의 수준을 넘어 새로운(기존에 없던) 창작적 표현이 부가된 것을 의미한다.

    북을 치며 추는 춤을 ‘북춤’이라 한다. 삼고무는 북춤의 하나로, 명칭 그대로 세 개의 북을 치며 추는 춤이다. 북이 다섯 개면 오고무, 일곱 개면 칠고무가 된다. 북 개수에 따라 북들의 배치도 바뀐다. 북의 개수와 배치에 따라 춤사위와 리듬 또한 달라진다. 국무(國舞)로 불리던 이매방 선생은 북춤의 전통적 ‘포맷’을 취하되, 그 ‘디테일’을 재해석하여 ‘이매방표 삼고무’, ‘이매방표 오고무’를 만든 것이다. 즉, 공공의 영역에 속한 전통춤을 바탕으로 2차 저작물을 완성한 셈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북춤과 같은 전통춤 중 하나인 ‘소고춤’은 무용 학원에서도 가르친다. 소고를 들고 추는 소고춤은 농악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전통춤이다. 소고춤은 두 종류로 나뉜다. 여성이 치마 저고리를 입고 추는 것과, 풍물놀이 판굿의 소고재비가 상모돌리기를 하면서 추는 것이다.

    앞서 알아본 북춤과 마찬가지로 소고춤 또한 오늘날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고 있다. ‘○○○ 명인 소고춤’이라는 이름으로 창작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최종실 명인 소고춤’은 상모돌리기를 없애고 소고를 활용한 새로운 장단을 더해 만든 소고춤이다. 이 장단에 맞춰 독특한 춤사위를 넣어 만들어진 소고춤은 ‘최종실류 소고춤’이라 불린다.

    최종실류 소고춤이 인기를 얻자 중견 무용가들이 너도나도 배웠다. 현재는 한국 무용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고, 소고춤을 배운 수강생들은 학원에서 최종실류 소고춤을 강습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임의로 춤을 변형해 자기 이름을 붙이고 마치 자신이 창작한 것처럼 홍보하기도 했다. 이를 발견한 최종실 선생은 저작권위원회에 자신의 춤을 등록했고, ‘최종실류 소고춤 보존회’ 정회원만이 강습이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조건을 붙였다.

    춤, 저작권 인정받기 참 힘들다

    미국의 게임 개발사 에픽게임즈(Epic Games)가 2017년 당시 신작 ‘포트나이트(Fortnite)’를 발표했다. 이 게임에는 아바타를 춤추게 하는 아이템이 등장한다. 이른바 이모트(emote)라는 것인데, 각각의 이모트마다 춤 동작이 다르다. 그 가운데 ‘스와이프 잇(Swipe it)’이라는 춤이 적용된 이모트가 문제를 일으켰다. 래퍼 ‘투 밀리(2 Milly)’의 실연자 다섯 명이 해당 이모트가 자신들의 창작 안무 ‘밀리 록 댄스(Milly Rock Dance)’를 허락 없이 베꼈다며 소를 제기한 것이다.

    이들은 ①밀리 록 댄스는 실연자를 특징적으로 구별하게 함에도 ②에픽게임즈의 이모트가 춤을 복제했고, ③에픽게임즈가 춤을 무단 사용한 것은 저작권 및 퍼블리시티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에픽게임즈는 자사의 ‘스와이프 잇’ 이모트와 밀리 록 댄스는 유사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원고 측에 밀리 록 댄스를 저작권 등록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원고인 실연자들은 판결대로 이행했으나 저작권청으로부터 등록을 거부당했다.

    포트나이트의 ‘스와이프 잇’ 이모트 / 출처: 유튜버 ‘TY_’ 유튜브
    투 밀리가 직접 추는 밀리 록 댄스 / 출처: GlobalGrindTV 유튜브

    미국 저작권청이 춤에 엄격한 잣대를 댄 사례는 밀리 록 댄스뿐만이 아니다. 칼톤(The Carlton)이라는 댄서는 이른바 ‘칼톤 댄스’로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모았다. 저작권청은 칼톤 댄스의 저작권 등록도 거부했다. 따라 하기 간단하며 흔히 볼 수 있는 세 가지 안무로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칼톤 댄스를 안무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칼톤 댄스는 가수 브루스 스프링턴과 영화배우 에디 머피의 춤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춤이다.(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에는 칼톤 댄스 이모트도 있다.) 인간의 춤은 ‘세상에 새로운 것이 없다’는 속설이 가장 잘 맞는 분야일지도 모른다.

    ‘포트나이트’의 칼톤 댄스 이모트 / 출처: Fortnite Guides 유튜브

    기억할 만한 춤, 시크릿의 ‘샤이보이’

    볼룸댄스(사교댄스)를 소재로 한 일본 영화 〈쉘 위 댄스〉는 1996년 개봉 당시 큰 인기를 모았다.(우리나라에서는 한일문화교류 개방 이후 2000년 개봉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춤의 안무는 와타리 도시오라는 댄서가 고안한 것이었다. 그는 배우들에게 직접 춤동작을 지도하기도 했다. 〈쉘 위 댄스〉가 극장 상영 종료 후 DVD 및 VHS로 제작·판매되고 TV에서 방영되자, 와타리 도시오는 영화 제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자신의 안무를 2차 사용했다며 저작권 침해를 주장한 것이었다.

    일본 법원은 ‘영화 속 사교댄스는 기존의 스텝을 선택해 조합한 것이고, 이 기존 스텝이란 게 영화에서는 극히 짧게 등장하는 데다가 사교댄스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흔한 것’이라는 취지의 이유를 들어 저작물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춤이 ‘저작물성’을 인정받으려면 대체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까? 미국 저작권청은 나름의 기준을 마련했다. 일련의 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춤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주제의식 같은 추상성이 몸의 움직임을 통해 구체성을 띠고 전달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미국에서는 아무리 새롭고 독특한(novel and distinctive) 춤이라도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 법원은 어떨까? 우리 법원은 안무나 무용에 대해 저작물로 보호된다는 판결을 하고는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춤에 대해서만큼은 ‘단순한 동작’ 내지 ‘흔한 흐름’이라 평가한다. 안무가의 노력이 인정되더라도 ‘독창성을 인정할 수 있을 만큼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방송 안무의 경우, 기존의 다른 안무를 가져다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룹 크레용팝의 ‘빠빠빠’ 안무에는 파핑(popping) 동작과, 미국 댄서 돈 캠벨(Don Campbell)이 고안한 로킹(locking) 동작이 다수 쓰였다. 또한 후렴 부분에는 미국 댄서 미스터 위글스(Mr. Wiggles)가 만든 로킹 안무도 나온다. ‘빠빠빠’ 안무 일부는 어떤 안무에서든 응용할 수 있는 춤의 기초 동작에 가깝고, 다른 일부는 돈 캠벨과 미스터 위글스의 안무를 빌려 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엔 일부 저작권을 인정한 사례가 나타난다. 우리 법원은 그룹 시크릿의 ‘샤이보이’ 안무가 저작물로 보호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 안무는 일명 ‘아기새 춤’이라는 독특한 동작으로 인기를 끌었다. ‘샤이보이’ 안무는 각종 댄스 장르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동작을 쓰기는 했지만, 노래의 전체적인 흐름과 가사 진행에 맞게 재구성되었고, 그룹 멤버 네 명이 각자 역할에 따라 서로 다른 안무 동선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춤’과 차이가 있어 보인다.

    시크릿의 ‘샤이보이’ 안무(일명 ‘아기새 춤’)는 국내외 판례에서 보기 드문 ‘안무 저작물’이다. / 출처: 1theK 유튜브

    인간의 춤, 그러니까 ‘짧은 몸동작’을 저작물로 보호한다는 건 사실 만만찮은 일이다. 특정인에게 특정 춤의 독점권을 주면, 인간의 몸의 움직임을 제한하게 된다. 일종의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는 셈이다. 따라서 춤의 저작권 보호 강도는 다른 저작물보다 다소 약하게 적용해야 한다.

    2013년 가수 싸이는 당시 신곡 ‘젠틀맨’ 안무에 쓴 ‘시건방춤’에 대해 저작권료 명목의 비용을 지불한 바 있다. 이 춤은 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2009년 히트곡 ‘아브라카다브라’ 안무였다. 물론 이는 판례가 아니라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대중적인 춤이 국내에서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시크릿의 ‘샤이보이’ 댄스가 저작권을 인정받은 것은, 여러 동작들이 곡 리듬과 느낌에 어울리도록 조합되어 결과적으로 하나의 독특한 안무를 이룬다고 본 법원의 판단 덕분이다. 만약 ‘샤이보이’ 댄스가 다른 음악에 쓰였다면 우리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자못 궁금해진다.

    현재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 연구원(법학박사)이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등에서 강의 활동을 하였다. 동 대학원에서 「공연권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믿기 힘든 저작권 이야기』,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 『음악 저작권』 등 저작권과 관련한 다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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