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한국은 ‘펭수’ 열풍이다. 교육방송 채널 EBS가 만든 캐릭터가 이렇게 인기를 끌다니···. 같은 방송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러울 따름이다. 등장한 지 겨우 10개월 만에 유튜브 구독자 100만 명, 조회수 200만 회를 넘는 클립도 나왔다. 이모티콘 최단 기간 판매 기록도 갱신했다. 미디어 섭외 후보도 1순위다. 광고주들에게도 인기를 독차지해 펭수 캐릭터와 이름을 쓰고 싶어 하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이런 열풍 속에 국내 한 편의점 회사가 펭수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트위터에 올렸다. 쌓인 눈과 바다를 배경으로 한 팔을 들고 서 있는 어떤 뒷모습. 이 실루엣은 남극의 펭수를 떠올리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트윗 문구에는 “펭-하!”, “엣헴엣헴”이라는 펭수 특유의 말투가 쓰였다. 아니나 다를까, 펭수 캐릭터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경쟁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이 트윗은 화젯거리가 되었고, 여러 언론 매체가 관련 기사를 내기도 했다.
요즘 EBS는 골머리를 앓는다.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펭수 무단 이용 때문이다. 4.15 총선 후보자가 자기 얼굴을 펭수 캐릭터에 합성해 선거 홍보물을 만드는가 하면, 심지어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일명 ‘짝퉁 펭수’인 ‘괭수’와 ‘펑수’를 내놓기까지 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에 대하여 EBS는 ‘저작권과 초상권 침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펭수는 사람이 아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거대한 펭귄 형상의 봉제인형’이다. 좀 더 냉정하게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펭수는 캐릭터이면서 ‘물건’(봉제인형)이라고. 인형 안에 사람이 들어가 연기를 하고 있어도, 대중이 즐기고 기뻐하는 대상은 (인형 안의 사람이 아니라) 펭수 인형이다.
그런데 펭수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펭귄 캐릭터다. ‘의인화된 펭귄’인 셈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진다. 펭수는 의인화된, 즉 인격체로 여겨지는 동물 캐릭터니까 펭수의 형상을 한 봉제인형에도 인격권의 하나인 ‘초상권’이 성립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일단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펭수 인형(복장)을 착용한 연기자는 초상권자가 될 수 없다는 것. 아직 연기자의 정체(얼굴)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 또한 지금 펭수 캐릭터가 누리는 인기는 연기자 본인의 모습/외형이 아니라 누가 뭐라 해도 펭귄 펭수의 형상으로 얻게 된 것이다. 펭귄 캐릭터 펭수의 무단 이용 사례에 대해서는 ‘초상권’보다는 ‘저작권’의 시각으로 바라봄이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편의점 회사 트윗의 ‘펭수 실루엣’을 저작권적 시각으로 좀 더 들여다보자. 실사 인물, 인형, 사진을 실루엣으로 모방하는 경우도 ‘복제’에 해당한다. 우리가 어떤 모작(模作)을 바라볼 때, 원본과 완벽히 똑같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면 충분히 원본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펭수 실루엣은 어떨까? 펭수를 연상시킬만큼 비슷할까? 필자의 시선으로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펭수의 외관이나 디자인을 복제했다고 판단하기엔 외곽의 선이나 귀 부분이 달라 보인다. 세부 묘사(얼굴이나 앞면의 모습)가 드러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트윗 문구(“펭-하!”, “엣헴엣헴”), 남극스러운 배경이 없었다면, 펭수 실루엣을 펭수로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초상권과 닮은 듯 다른 ‘퍼블리시티권’
초상권과 비교하여 종종 언급되는 권리가 퍼블리시티권(the right of publicity)이다. 퍼블리시티권은 ‘성명, 초상 등이 갖는 경제적 이익 내지 가치를 상업적으로 이용·통제하거나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권리’를 뜻한다. 유명인의 성명이나 초상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통제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다. 우리나라 법원은 퍼블리시티권을 유명인의 권리로 보고, 타인에 의해 유명인의 이름과 초상 등이 무단 이용될 경우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다. 초상권이 개인의 초상(얼굴) 자체에 대한 보호 장치라면, 퍼블리시티권은 개인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라 판단할 수 있는 초상, 이름 및 닉네임, 목소리, 유행어, 행위 등을 포괄적으로 보호하는 개념이다.
퍼블리시티권은 ‘양도 가능한 경제적 권리’라는 점에서 인격권 성격인 초상권과 구별된다. 또한 손해배상액 면에서도 차이가 난다. 초상권 침해의 경우, 초상권자가 (펭수만큼) 온 국민이 다 알 법한 저명인사가 아니거나 피해 범위가 크지 않다면 손해배상액이 수천 만 원을 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퍼블리시티권 침해 시 손해배상액은 초상권보다 고액이다.
초상권이든 퍼블리시티권이든, 유명인의 외형(외모)이나 목소리를 허락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쓰면 당연히 권리 침해가 된다. 그렇다면 특정인의 얼굴, 특이한 행동거지를 사진이나 그림, 영상으로 묘사하거나 비슷하게 모방하는 행위는 어떨까? 40년 전쯤만 해도 ‘진퉁’이 아닌 ‘짝퉁’을 이용하면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 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초상을 모사한 것(‘짝퉁’)뿐 아니라 초상과 유사한 것(이를 테면 고유한 목소리나 행동거지)도 법적으로 보호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미국의 실제 사례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어느 비디오테이프 체인점이 유명 영화감독 겸 배우인 우디 앨런의 닮은꼴 광고모델을 기용해 그의 독특한 몸짓을 흉내내도록 하는 행위. 둘째, 한 광고회사가 인기 가수 베트 미들러의 허락 없이 그녀의 노래를 모창 가수에게 부르도록 해 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행위. 미국 법원은 이 두 건을 모두 금지시켰다. 셋째, 한국의 모 기업 미주법인이 현지의 유명 방송인 바나 화이트의 동의 없이 그녀와 닮은 로봇을 방송 광고에 등장시킨 일이 있었다. 바나 화이트는 해당 기업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고, 퍼블리시티권 침해라는 판결을 받았다.
‘연상시키기만 해도 불법’ 퍼블리시티권 침해 사례 둘
1997년 SBS가 〈임꺽정〉이라는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 임꺽정 역은 당시 신인 배우였던 정흥채가 맡았다. 임꺽정 하면 많은 이들이 정흥채를 떠올릴 만큼 〈임꺽정〉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드라마 방영이 한창이던 1997년 3월, 한 제약회사의 신문 광고가 이목을 끌었다. 수염이 텁수룩하고 머리에 두건을 쓴 남자 캐리커쳐가 사용된 광고였다. 정흥채는 누가 봐도 〈임꺽정〉 속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해당 제약회사가) 드라마 〈임꺽정〉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일본 사무라이의 모습을 딴 것이라고 주장하나, 드라마 주인공 임꺽정의 특징인 두건과 턱수염, 눈썹 등이 광고에 그대로 사용된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미국에는 이런 판결도 있다. 담배 회사가 레이싱카를 TV 광고에 등장시켰는데, 법원은 그 레이싱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특정 선수(레이서)를 연상시킬 수 있다며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인정했다. 미국 법원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해준 당사자는 모트센바허(Lothar Motschenbacher)라는 프로 레이서였다. 국제적으로 많은 팬들을 거느린 유명인사였다. 그는 경쟁자들과의 차별을 두기 위해 자신의 경주차를 독특하게 꾸몄다. 차체 외관을 빨간 배경색과 얇고 하얀 스트라이프 패턴으로 채우고, 엔트리 번호는 흰색 타원형에 검은색 숫자 11을 쓴 형태로 각인했다. 엔트리 번호 표식이 타원형인 경주차는 모트센바흐의 것이 유일했기에, 그는 경쟁자들과 쉽게 구분될 수 있었다.
담배 회사 레이놀즈(R. J. Reynolds Tobacco Company)는 레이스 트랙에서 경주하는 차량 사진을 광고에 사용했다. 모트센바허의 경주차가 쓰였으나, 그의 얼굴은 노출되지 않았다. 레이놀즈는 광고 이미지 속 차량의 엔트리 번호를 11에서 71로 변경했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트센바허를 떠올렸다. ‘빨간색 배경과 흰색 스트라이프’, ‘타원형’이라는 요소, 즉 모트센바허만의 아이덴티티 때문이다. 미국 법원은 레이놀즈의 광고 이미지가 레이싱카 운전자를 충분히 연상시키게 하므로, 원고(모트센바허)를 시각적, 음성적, 명시적 또는 추론적으로 이용했다고 결론 내렸다.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보호하는 퍼블리시티권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물건에도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할 수 있을까? 우선 동물의 경우를 살펴보자. 일본에서는 경주마의 퍼블리시티권 인정 여부가 문제된 바 있다. 경주마 소유자가 해당 경주마의 이름을 무단 이용해 게임 소프트웨어를 제작·판매한 업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자기 ‘물건’의 퍼블리시티권을 침해당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경주마의 이름이 고객 흡인력을 가진다고 인정하면서도, 경주마의 소유자에 대한 퍼블리시티권(배타적 사용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말 소유자가 자신의 말 사진이 무단 사용됐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일이 있었다. 법원은 ‘광고에 이용된 말은 인간으로서 말 소유자를 인식하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했다.
도널드 덕, 미키 마우스 등 가상의 캐릭터가 인간이 가지는 퍼블시티권을 똑같이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실제 동물도 마찬가지다. 〈타잔〉에 나오는 동물들이 이야기 전개에 일정한 역할을 하더라도, 인간(타잔이나 제인)에게 주어진 권리를 갖는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러다가는 대중의 명성을 얻은 AI에게도 퍼블리시티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지 모른다.
퍼블리시티권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통제하는 권리다. 명성에 따른 손해를 입는 당사자는 인간이지 동물이나 가상의 캐릭터가 아니다.(동물이나 가상의 캐릭터와 관련한 손해 배상 요구는 초상권, 퍼블리시티권이 아니라 ‘부정경쟁방지법’과 ‘저작권’ 같은 다른 법에 근거해야 할 것 이다.)
누군가의 실제 모습을 접하지 않고서도 우리는 그 누군가를 인식할 수 있다. 개그맨 배칠수의 성대모사를 듣고 DJ 배철수를 인식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배철수를 배철수로 인식하는 데에는 특유의 콧수염 난 외모 외에도 목소리 역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외모(실물) 자체뿐 아니라 고유한 말투, 유행어, 몸동작 등도 그 사람을 대표하는 아이덴티티가 된다.
특정인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나 표현은 경제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일례로, 007 시리즈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명배우 숀 코너리는 〈드래곤 하트〉라는 영화에서 목소리 출연만으로 어마어마한 개런티를 받았다. 그는 극중 등장하는 지혜로운 용 ‘드라코’의 성우였다. 숀 코네리 특유의 중후한 음성(아이덴티티)이 더해지면서 드라코의 매력도 커졌다. 관객들은 ‘용’을 보면서도 ‘숀 코너리’를 떠올렸을 것이다.
2000년 초 이른바 ‘바보 캐릭터’로 큰 인기를 구가하던 개그맨 정준하. 당시 한 모바일 콘텐츠 제작사가 그의 얼굴을 캐리커쳐화하여 이동통신사에 무단 제공한 뒤 수익을 냈다. 해당 캐리커쳐는 정준하의 실제 얼굴은 아니나, 그것을 본 일반인들은 정준하임을 쉽게 인식할 것이다. 결국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개그맨 정준하의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했다. 이렇듯 타인의 정체성을 환기시킬 수 있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퍼블리시티권과 관련될 수 있다. 요컨대 퍼블리시티권은 인간 개개인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보호하는 권리인 것이다.
현재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 연구원(법학박사)이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등에서 강의 활동을 하였다. 동 대학원에서 「공연권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믿기 힘든 저작권 이야기』,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 『음악 저작권』 등 저작권과 관련한 다수 저서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