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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4 램프의 받침대가 남긴 유산

    법학박사 하동철과 함께 알아보는 우리 일상 속 저작권 ― 실용품 저작권의 기원


    글. 하동철

    발행일. 2020년 01월 17일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4 램프의 받침대가 남긴 유산

    평소 알고 지내는 드라마 제작사 김 PD가 전화를 해 왔다. 국가대표 축구경기를 응원하는 장면을 찍겠다고 했더니 연기자들이 ‘Be The Reds!’ 옷을 입고 오겠다고 한다. 막내 PD도 축구경기 응원은 이 옷을 입어야 분위기가 살아서 꼭 화면에 넣자고 한다. 김 PD가 굳이 나에게 전화를 한 건 최근 신문에 폰트(글자체) 저작권을 갖고 있는 회사가 저작권 침해로 고소를 많이 했다는 기사를 봐서 그런지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축구 응원할 때 입는 빨간 옷에 새겨진 ‘Be The Reds!’는 글자체이긴 하지만 명조체나 고딕체와 같은 폰트와는 다르다. 폰트는 저작물이 아니다. 문자만인공유(文字萬人公有)의 원리가 적용된다. 저작권으로 보호를 받는 것은 폰트를 생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다가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은 저작권과 무관하다. 만약 빨간 옷에 인쇄된 글자체가 고딕체였다면 담당 PD가 화면에 나온 글자로 책임질 일은 없다. 물론 불법 복제한 폰트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말이다.

    김 PD가 걱정한 옷에 인쇄된 ‘Be The Reds!’는 서예가가 쓴 캘리그래피, 즉, 서예 작품이다. 티셔츠 자체는 디자인으로 디자인법을 적용받을 수 있지만, 티셔츠에 인쇄된 글자나 그림은 저작권법의 적용을 받는다. 이게 무슨 차이가 있냐 하면, 디자인으로 보호를 받으려면 특허와 유사하게 특허청에 심사를 거쳐 등록을 받아야 하나,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권리가 발생한다. 그리고 디자인 등록을 받았더라도 디자인은 제품이나 서비스 형태로 사용되어야 하지만 저작권은 그런 제한이 없다. 인간의 오류를 줄이는 것도 놀랍지만, AI는 결과를 빠르게 내놓기 때문에 인력 부족으로 진단이 늦어지는 문제도 쉽게 해결된다.

    저작권 역사에선 옷과 같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동일한 디자인을 여러 벌 만들어내는 실용품이 저작권으로 보호해야 하는지 논란이 되어 왔다. 실용품의 디자인은 순수미술에 대응하여 응용미술이라고 불린다. 공예품, 장신구, 가구에 새겨진 조각, 직물 패턴(도안)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실용품은 예술적인 감상이 아니라 기능적이고 실용적이라는 사고에 따라 저작권으로 보호되지 않았다.

    실용품을 저작권으로 보호한 최초의 판결

    195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실용품이라 해도 물품의 기능적 부분과 분리되어 미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 해당하는 것은 저작물로 보호 받는다고 판결했다. 실용품을 저작권으로 보호한 최초의 판결이다. 이것이 이른바 ‘Mazer v. Stein’ 판결이다.

    Mazer v. Stein 판결은 전기 램프가 실용품으로 대량 생산 되던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법원은 램프를 받치고 있는 춤추는 인물상이 램프의 높이나 무게를 지지하는 기능적 역할 외에도 인간의 미적 감각에 호소할 수 있는 예술성을 갖는 것으로 보았다. 램프 윗부분을 분리하면 아래는 하나의 조각상이 된다. 분리된 조각은 저작물로 보호하더라도 어려움이 없다. 이 판결을 계기로 미국 의회는 실용품이 저작권으로 보호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분리가능성’이라는 용어를 저작권법 개정 시 집어 넣었다. 분리가능성 테스트는 실용품의 디자인이 지닌 예술적 특징이 실용품과 분리되어 2차원 또는 3차원 미술저작물로 인식될 수 있는지, 실용품으로부터 (물리적 또는 관념적으로) 분리될 수 있다면 그 특징이 회화, 그래픽 혹은 조각 저작물로 인정될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바나나 옷’과 ‘히딩크 넥타이’

    바나나 옷(banana costume)이라 불리는 의상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바나나 모양의 옷에 얼굴만 나오는 디자인이다. 라스타 임포스타(Rasta Imposta)라는 회사가 만들었는데, 2010년 저작권 등록을 하고 라이선스 사업을 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의류업체가 라스타 임포스타가 만든 바나나 옷과 비슷한 옷을 제작해 판매하기 시작하자 라스타 임포스타가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며 소를 제기했다. 라스타 임포스타의 바나나 옷은 색상, 선, 모양 및 길이와 같은 특징이 예술적 성격을 갖고 있어 실용적 기능과는 거리가 멀다.

    바나나 옷 끝부분의 검은색이나 구부러진 모양도 마찬가지다. 마치 조각 저작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바나나 옷을 저작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아이디어를 독점하게는 못 할 것이다. 바나나 형태를 표현하는 다른 방법이 많기 때문이다. 모양, 곡선, 길이, 폭, 질감 및 재료를 달리하여도 ‘바나나 옷’은 만들어질 수 있다.

    ‘원조’ 바나나 옷(맨 왼쪽)과 ‘모방’ 바나나 옷(가운데, 맨 오른쪽)
    출처: 「Court of a-peel: nasty split over banana costume leads to legal monkey business」, The Guardian, 2019. 8. 1.

    법원은 착용자의 팔다리와 얼굴이 나오도록 옷에 구멍을 뚫은 것, 구멍의 치수나 위치는 (예술적이 아니라) 기능적이라 하여 저작물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바나나 옷을 무단으로 이용한 회사 또한 바나나 모양 자체가 자연물의 특징에서 나온 것으로 창작성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그렇다고는 해도, 자연의 바나나와 라스타 임포스타사의 바나나 옷 모양은 확실히 다르게 보인다.)

    앞서 실용품에 대한 ‘저작권 보호’ 판단 여부는 ‘분리가능성’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직물 패턴과 같이 물건 자체에 디자인이 합체돼 있는 실용품은 어떨까. 이른바 ‘대한방직 사건’이라 불리는 1993년 6월의 국내 판례를 한 번 살펴보자. 이 사건은 미국의 한 직물 회사가 자사의 직물 패턴을 한국의 대한방직이 무단 복제했다 하여 소를 제기한 일이었다. 우리 대법원은 미국 직물 회사가 만든 만든 꽃무늬 직물 패턴에 대해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적 특성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로 볼 수 없다며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방직 사건’과 함께 살펴볼 만한 판례는 2004년의 ‘히딩크 넥타이 사건’이다. 2000년 개정된 저작권법은 응용미술저작물에 대해 ‘물품과 구분되어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는 요건을 달았다. ‘히딩크 넥타이’ 저작권 분쟁은 그로부터 4년 후 일어난 것이었다. 2002년 월드컵 경기 중 히딩크 감독이 착용한 넥타이가 2004년 뒤늦게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국관광공사 진흥기획팀 과장이던 장 모 씨가 2002년 6월 귀빈 선물용으로 해외 지사에 보내기 위해 넥타이 530개를 만들었는데, 히딩크 넥타이를 거의 유사하게 베꼈으면서도 허락을 받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다.

    히딩크 넥타이(왼쪽)와 이를 모방한 제품(오른쪽)
    출처: 특허청 디자인맵

    2004년 대법원은 ‘(히딩크 넥타이에 적용된 패턴은) 우리 민족 전래의 태극문양 및 팔괘문양을 상하 좌우 연속 반복한 넥타이 도안으로서 응용미술작품의 일종’이며 ‘이용된 물품과 구분되어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서 저작권법으로 보호된다’고 보았다. 히딩크 넥타이를 모방해 제작 및 배포한 피고에게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대법원 판결의 논리는 히딩크 넥타이에 새겨진 문양은 넥타이와 관념적으로 분리돼 스카프 또는 가방 등 물품에 동일하게 복제 가능하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실용품의 저작권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다. 하지만, 태극과 팔괘문양은 우리 민족 전래의 고유 영역에 속하는 소재이고, 넥타이 업계에서 관행적으로 써 오기도 했기에 저작물로 인정할 것은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넥타이의 무늬는 대개 도트, 스트라이프, 체크 등으로 그 표현 형태가 다소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과연 어떤 디자인이어야 넥타이가 이견이나 비판 없이 저작물로 인정될지는 앞으로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분리가능성’이라는 모호한 잣대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을 구분하기 쉽지는 않기에, 일본의 법원은 오로지 미의 표현을 추구하여 제작된 것이나 감상의 대상으로 회화, 조각 등의 순수미술과 동일시할 수 있는 것만 보호한다. 우리 저작권법은 실용품과 분리하여 물리적 또는 관념적인 ‘독자성’을 인정할 수 있으면 저작물로 보호한다.

    물리적 분리는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관념적 분리라는 개념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재규어’ 자동차 보닛의 재규어 엠블럼은 쉽게 떼어낼 수 있다. 즉, 자동차와 엠블럼은 물리적으로 간단히 분리되는 것이다. 이와 비교하면 가로등, 자동차 바퀴 휠, 마네킹 모형은 물리적 일체형에 가깝다.

    관념적 분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를테면 전화기 모양의 연필깎이, 강아지 모양의 저금통을 바라본다고 상상해보자. 우리의 관념은 이 두 사물(실용품)을 ‘전화기/연필깎이’, ‘강아지/저금통’으로 분리해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 자전거 거치대, 필기구, 휴대전화 등 수많은 실용품에 대해서도 우리의 관념은 그 고유의 기능과 디자인을 분리해 인식할 수 있을까? 예측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직물 패턴 같은 2차원적 디자인의 경우, 물품과 분리된 패턴 자체가 저작권으로 보호 받을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옷감의 꽃 패턴처럼 디자인은 옷을 돋보이게 할 뿐이어서, 기능적인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의상 디자인은 옷의 ‘기능’과 합체돼 있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 몬드리안 스타일, 앞서 소개한 바나나 옷을 보면, 기능에서 벗어나 심미적 요소를 담은 디자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옷은 그 자체가 기능을 실현하기 위한 물품이다. 예를 들어 목선, 소매, 스커트 모양, 바지 재단, 주머니 등은 실용성과 디자인이 합체된 요소들이다. 옷의 기능과 물리적으로든 관념적으로든 떼어질 수가 없다. 그렇다. 물품의 실용 기능과 디자인의 분리는 각 실용품마다 적용 기준이 다르다, 라는 것이다.

    현재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 연구원(법학박사)이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등에서 강의 활동을 하였다. 동 대학원에서 「공연권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믿기 힘든 저작권 이야기』,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 『음악 저작권』 등 저작권과 관련한 다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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