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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13 모든 사진이 저작물인 건 아니랍니다

    법학박사 하동철과 함께 알아보는 우리 일상 속 저작권 ― 사진 저작물이 되는 조건


    글. 하동철

    발행일. 2020년 03월 27일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13 모든 사진이 저작물인 건 아니랍니다

    사진이 저작권법으로 보호 받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839년 인류는 사진기라 불리는 기계를 발명했다. 법원이 사진을 저작물이라 판결한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훨씬 지난 1884년이다. 당시 사람들은 사진이란 자연이나 사물을 기계를 이용해 복제하는 것에 불과하기에 창작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진의 저작물성을 처음 인정하게 된 계기는, 유명한 극작가인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초상 사진에 대한 미국 대법원의 판결 덕택이었다.

    1882년 사진가 나폴레온 새로니(Napoleon Sarony)가 촬영한 오스카 와일드

    사진기가 발명된 지 40여 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사진은 ‘기계가 사물을 복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런 시대상 속에서 법원만은 다른 시각을 가졌다. 창작성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 사진을 찍을 때 인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주의 깊게 바라본 것이다.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피사체의 포즈, 의상, 배경, 장식물 등을 선정하고 조명의 방향과 세기를 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런 선택의 과정이 있기에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연출할 때 전혀 다른 사진이 나오게 된다. 법원은 이런 차이점은 저작권 보호에 필요한 창작성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사진이 저작물이라는 관념이 정착되었다.

    사진 저작물의 창작성은 피사체의 선택, 구도 설정, 빛의 방향과 양의 조절, 카메라 앵글의 설정, 셔터 찬스의 포착, 트리밍, 현상·인화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의 사진은 저작물에 해당한다. 굳이 사진을 찍는 사람이 전문가일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모든 사진이 저작물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찍지 않고 센서가 감지해서 기계가 자동으로 찍는 것이나, 책 페이지를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은 사진이 아닌 스캔한 복제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저작물 종류만큼 사진도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기에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많다.

    최근 우리 법원은 제품 자체를 찍은 사진이나 성형 전후 사진은 저작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진을 찍는 기술적 측면만 생각한다면 제품 사진과 다른 사진을 구별할 이유는 없다. 다만, 제품 사진은 제품을 설명 또는 소개할 목적으로 촬영된 것이고, 이 목적에 따라 가급적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광범위하게 배포 또는 복제된다. 누가 찍었는지 명기된 경우도 드물다. 법원은 이 같은 현실적 문제를 고려해 제품 사진을 바라본 것으로 생각된다.

    마트 전단지 사진은 저작물일까?

    원칙적으로는, 상품을 찍은 사진이라도 저작권으로 보호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람을 찍은 사진은 저작물이고 자연이나 사물을 찍은 사진은 그렇지 않다는 법칙도 없다. 촬영 기술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제품 광고 사진에 대해서만 독특한 해석을 한다. 마트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전단지엔 다양한 상품 이미지와 가격이 표시돼 있다. 아래 예시 이미지를 보면 아래쪽 배나 굴비 등은 제품을 그대로 정면에서 찍은 사진이고, 위쪽 과일과 고기 등은 연출(접시, 배치와 구도 등)이 가미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상품 광고용 사진은 제품 자체 그대로 찍은 사진과, 다른 장식물을 배치해 찍은 ‘이미지 사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마트 전단지

    A 마트가 B 마트의 전단지를 이용해 햄 사진이 들어간 전단지를 만들어 배포한 일이 있었다. B 마트의 사진 저작권 침해 주장에 대해 법원은, 피사체인 햄 제품 자체만을 충실하게 표현한 사진은 광고라는 실용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므로 저작권으로 보호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제품 사진을 찍은 사람이 그 분야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창작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 이에 반해 다른 장식물이나 과일, 술병 등과 조화롭게 배치하여 촬영한 햄 사진은 제품의 이미지를 부각시켜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진(이미지 사진)이므로 저작권으로 보호된다고 했다.

    햄 제품을 있는 그대로 찍은 사진(왼쪽)과 연출을 가미한 이미지 사진(오른쪽) 예시
    (해당 제품들은 ‘A 마트와 B 마트의 전단지 사진 저작권 소송’과는 무관함)

    사실 법원의 논리에는 의문점이 남는다. 촬영 기술 혹은 조명 기술만을 따진다면 햄을 있는 그대로 찍은 사진과 이미지 사진의 차이는 없으나, 그렇다 해도 제품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 방법은 ‘제품을 사실 그대로 찍는 것’밖에 없으므로 저작물로 독점권을 주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성형 전후 사진에 대한 엇갈린 저작권 판례

    제품 사진 외에도 성형 전후 사진도 문제가 되었다. 성형외과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홍보용으로 만든 성형 전후 사진이 눈에 띈다. 방문자들로 하여금 ‘정말 이렇게 확 달라진다면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성형 전후 사진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목적으로 촬영된 것이다. 그런데 제품 사진과 비교하자면, 성형 전후 사진은 촬영 각도나 조명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편집에도 손이 많이 가게 마련이다. 성형 전후 사진이 저작물인지에 대해서는 국내와 해외가 다르게 판단한 사례가 있다.

    [모발 이식 전후 사진]
    동업하던 성형외과 의사 한 명이 독립해 새로운 성형외과를 개업했다. 그 의사는 동업 시절 홍보용으로 쓰던 사진을 자신의 성형외과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를 발견한 동업 의사는 저작권 침해라 주장하며 사진을 사용하지 말라는 소를 제기했다. 법원은 성형 전후 사진은 모발 이식 수술을 받은 수술의 전후 모습을 대비함으로써 모발 치료 효과를 나타내고자 하는 목적에서 촬영한 것이고, 위 사진들의 구체적인 촬영 방법인 카메라 각도나 빛의 방향과 양의 조절, 촬영 시점의 포착 등에 있어 촬영자의 개성이나 창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촬영 후의 현상과 인화 과정에서 배경, 구도, 조명, 빛의 양 등에 원고의 개성이나 창조성을 가미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면서 사진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모발 이식 전후 사진

    사실 성형 전후 사진을 찍을 때는 움직이는 물체를 찍는 것이 아니기에 촬영 시점의 포착은 없지만, 사진을 찍을 때 빛의 양의 조절(조리개), 앵글의 조정 등 촬영자의 기술이 발휘될 수 밖에 없다. 인물 사진을 찍는 것과 성형 전후 사진을 찍는 행위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촬영 자체는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법원이 성형 전후 사진을 저작물로 인정하지 않은 데에는, 사진의 용도가 ‘비교’를 위해 촬영됐다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된 듯 보인다.

    [치아 교정 전후 사진]
    치과 의사 미첼(Mitchell A. Pohl)은 치아 교정 전후 사진을 찍어 자신이 운영한 병원 웹사이트에 게시했다. 교정 후 사진은 환자의 하얗고 고른 치아, 미소 짓는 듯한 인상을 담았다. 미첼은 촬영할 때 사진이 잘 나오도록 조명과 구도를 설정하고 줌렌즈를 사용했다. 미첼은 2016년 4월 구글링을 하다가 자신이 찍은 환자의 성형 전후 사진이 게시된 7개 웹사이트를 발견했다. 이들 웹사이트를 개발한 회사는 ‘Officite’라는 곳이었다. 치과 의사를 상대로 웹사이트를 제작해 주는 업체였다. 미첼은 Officite사에 사진 게시 중단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냈다. Officite사는 그해 6월경 모든 사진을 삭제했지만 미첼은 저작권 침해라 주장하며 소를 제기했다.

    미첼이 촬영한 사진 / 출처: Law.com

    지방법원은 미첼의 사진은 광고라는 실용적인 목적을 가졌고, 사진 촬영 방법은 기본적인 것이며 촬영 시간도 5분 정도로 짧았다는 이유로 독창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항소법원은 미첼이 사진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선택하고 환자가 바라보는 시선과 웃는 표정을 지시했으며, 치아 주변을 확대해 촬영하였기에 저작권 보호를 받을 만큼의 독창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전문 사진가가 찍더라도 증명사진은 저작물 아닐 수도

    표현 방법이 하나뿐이거나 극히 한정된 경우(스캔 사진), 누가 촬영하더라도 차이가 거의 없는 결과물이 되기에 저작자의 개성이 발휘될 여지가 없다. 또한, 표현에는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제품 사진처럼 그 표현이 평범하고 흔하다면 촬영자의 독창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사진은 창작성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여 저작물로 인정되지 않는다. 사람이 조작하지 않은 고정식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나 자동 증명사진 등은 저작물 요건 자체를 충족하지 못한다. 블랙박스 영상도 저작물이 아니기에 캡처 사진도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미경 사진이나 항공 사진 같이 저작물인지를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는 사진 저작물의 범위를 좁게 인정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전문 사진가가 찍은 증명사진이라도 저작물이 아니라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저작물로 보호 받지 못하는 사진이므로 마음대로 써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저작권법상 보호 받지 못하는 사진이라도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는 있다. 따라서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여 촬영한 사진을 영업상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이 허락 없이 사용하면 민법상 불법 행위가 되어 상대방이 입힌 손해만큼의 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현재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 연구원(법학박사)이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등에서 강의 활동을 하였다. 동 대학원에서 「공연권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믿기 힘든 저작권 이야기』,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 『음악 저작권』 등 저작권과 관련한 다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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