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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12 타인의 저작물, ‘잠깐만’ 써도 괜찮을까요?

    법학박사 하동철과 함께 알아보는 우리 일상 속 저작권 ― 저작물 ‘잠깐 사용’의 법적 허용 기준


    글. 하동철

    발행일. 2020년 03월 20일

    하동철의 저작권 일상 #12 타인의 저작물, ‘잠깐만’ 써도 괜찮을까요?

    유튜브 콘텐츠의 경우, 저작권이 있어 보이는 자료를 잠깐씩 보여주는 영상물이 꽤 많다. 내가 몸담고 있는 방송국 PD들도 자주 묻는다. “영상에 잠깐 쓰는 것은 괜찮지 않나요?”라고. 자신들이 만드는 영상 콘텐츠에 타 저작물을 짧은 분량으로 삽입해도 괜찮느냐는 질문이다. ‘잠깐’이나 ‘짧게’란 과연 어느 정도일까. 필자 생각으로는 영상물에서 ‘잠깐’이란, 1~3초쯤 아닐까 싶다. 3초 이상 되면 시청자가 충분히 저작물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방송 프로그램은 보통 한 시간 짜리니, 전체 분량 중 수 초는 짧은 시간이긴 하다. 그럼에도 이 짧은 시간만으로 시청자에게 큰 임팩트를 줄 때도 있다.

    그렇다고 시간만으로 ‘저작물의 잠깐 사용’ 가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짧지만 화면 전체에 부각될 수 있고, 긴 시간을 썼다 하더라도 아웃 포커스를 시키면 식별이 어렵다. 등장인물의 대화 장면에 배경으로 쓰인다면, 저작물 자체가 눈길을 끌지 않기도 한다. 해당 장면에 나온 사물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저작물을 이용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영상물에 짧게 쓰인 저작물은 저작권 침해일까? 이 물음을 보다 감각적으로 고민해보게 해주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해본다.

    #사례 1. HBO TV 시리즈 〈ROC〉

    성공한 현대 미술가 패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는 ‘교회 야유회(Church Picnic Story Quilt)’라는 퀼트 작품을 만들었다. 1900년대 아프리칸 미국인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실크를 이용해 야유회에 참석한 한 기독교인의 생각을 표현했다. 그 기독교인의 딸이, 이미 다른 여자와 사귀고 있는 목사와 사랑에 빠진 장면이 묘사돼 있다.

    미국의 방송사 HBO가 〈ROC〉라는 TV 시리즈를 제작했다. 볼티모어에 거주하는 중산층 아프리칸 미국인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주인공 ROC는 재즈 트럼펫 연주자 Joey를 시켜 교회에 있는 아이들에게 트럼펫 레슨을 하게 한다. 레슨을 받은 아이들은 그 교회 홀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아이들의 트럼펫 공연 씬은 어느 에피소드에서 약 5분 분량으로 나왔다. 이 장면에서 패이스 링골드의 ‘교회 야유회’ 포스터가 사용되었다. 교회 홀 벽에 이 작품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에서 그림이 노출된 횟수는 아홉 번 정도였다. 어떤 샷에서는 화면 중앙에 나타났지만 대화, 동작, 카메라 워크를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그림에 특별히 시선이 가도록 하지는 않았다. ‘교회 야유회’가 노출된 샷들은 각각 1.86~4.16초 범위였다. 전체 분량으로 환산하면 아홉 개 장면에 26.75초 길이였다.

    패이스 링골드의 원작과, 해당 그림이 쓰인 〈ROC〉의 한 장면 / 출처: PNW Startup Lawer

    〈ROC〉는 1992년 HBO에서 방영되었고, 1994년 10월 케이블 방송사 BET에서 재방송되었다. 패이스 링골드는 재방송을 보다가 자기 작품이 교회에 걸린 장면을 발견하고 소를 제기했다. HBO와 BET는 포스터 이용은 ‘사소한 이용’이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닌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지방법원은 방송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드라마 배경에 나온 포스터는 ‘사소한 이용’이 아닌 저작권 침해라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사소한 이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실질적 유사성’이라는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은 저작물을 얼마나 이용했는지에 대한 양적인 판단을 한다. 그런데 저작물 이용 분량(횟수)이 아주 소량일 경우, 실질적 유사성은 판단 기준으로서 기능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항소법원은 드라마 속 포스터의 초점이 정확히 맞지 않았다 하더라도, 색과 스타일이 상당히 선명히 보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포스터 전체가 선명하게 보이는 장면이 4~5초가량 되었다. 일반 시청자들도 포스터 속 그림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임을 충분이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명확히 보였다.

    공정이용을 인정받는 대부분의 사례는 변형적으로 이용할 때다. 그런데 HBO는 장식 목적으로 그림을 걸었으므로, 애당초 그림의 본래 용도로 이용한 셈이었다. 패이스 링골드의 작품을 장식 목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그림을 구매하거나 허락을 얻어 복제품이라도 걸어야 했다. 복제품을 허락 없이 영화에 쓴 것은 원작의 잠재적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준 것이었다.

    #사례 2. 영화 〈세븐〉

    1995년 개봉한 〈세븐(Seven)〉은 연쇄 살인범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악한 사진가가 일곱 건의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는 내용이다.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배우 모건 프리먼과 브래드 피트가 형사로 나온다. 극중에는 이 두 형사가 살인 용의자인 사진가의 아파트를 약 1시간 16분 동안 수색하는 장면이 있다. 아파트 벽면에 여러 사진 슬라이드가 올려진 라이트 박스가 있는데, 여기 부착된 사진 슬라이드는 산도발(Jorge Antonio Sandoval)이라는 사진가가 찍은 초상화였다. 그는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며 소를 제기했다.

    영화에서는 라이트 박스와 산도발의 사진이 1분 30초 동안 서로 다른 일곱 개 장면에서 나왔다. 라이트 박스의 가장 긴 장면은 6초였지만, 라이트 박스가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보이는 전체 시간은 35.6초였다. 사진의 초점은 두 개 샷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맞지 않았고, 거리가 떨어진 배경에서 보였다. 두 개 샷(4초, 2초)에서는 사진의 인물이 겨우 구별될 정도였다. 이 경우도 과연 ‘사소한 이용’에 해당할까?

    산도발의 사진(화면 왼쪽 상단의 라이트 박스)이 등장한 영화 〈세븐〉의 한 장면
    출처: 넷플릭스 〈세븐〉 스트리밍 화면 촬영

    미국 제2항소법원은 〈세븐〉 속 산도발의 사진들이 ‘사소한 이용’의 판단 기준인 ‘실질적 유사성’의 양적인 문턱 아래에 있는지를 우선 확인했다. 저작물이 이용된 시간의 총량과 형태를 검토함으로써 영화 안에서 산도발의 작품이 명확히 인식되는지, 관객들이 극중 사진을 산도발의 작품으로 식별할 수 있는지를 판단한 것이다.

    사례 1의 패이스 링골드 사례에서는 작품이 ‘분명히 인식이 가능하거나 그림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세븐〉의 화면은 사진이 먼 거리에서 촬영됐고 주변이 어두웠다. 초점도 맞지 않았으며 각각의 다른 장면들마다 잠깐씩 나타났을 뿐이었다. 더구나 사진에 나온 인물이 누구인지 인식하기도 어려워 누적 효과(짧더라도 여러 번 사용)도 없었다. 이런 점에 주목하여 법원은 산도발의 사진은 순간적이며 명료하지 않고 초점도 맞지 않게 사용됐으므로 ‘사소한 이용’이라고 판단했다.

    #사례 3. 영화 〈직계가족〉과 〈왓 위민 원트〉

    그래픽 아티스트 암싱크(Amsinck)는 1985년 파스텔 색상의 테디 베어 작품 ‘베이비 베어 아트워크(Baby Bears Artwork)’를 만들었다. 그는 이 작품의 라이선스를 생활용품 회사들에게 주었다. 그중 한 회사가 암싱크의 디자인을 기초로 ‘베이비 베어 음악 모빌’이라는 제품을 생산 및 판매했다.

    1989년 영화사 컬럼비아 픽처스는 〈직계가족(Immediate Family)〉을 제작해 상영하고 홈비디오로 만들어 판매했다. 이 영화는 불임 부부가 임신한 젊은 여인의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극중 주인공 부부가 아기방을 꾸미는 씬이 있다. 몇몇 장면에서 ‘베이비 베어 음악 모빌’이 나왔다. 컬럼비아 픽처스는 유아용 침대가 아닌 천장에 모빌을 달아 화면에서 잘 보이도록 위치를 바꿨었다. 모빌이 나오는 샷은 2초에서 21초 사이였는데, 전체 노출된 샷의 길이는 1분 36초였다. 모빌이 겨우 보일 만큼 멀리서 촬영된 장면이 있는가 하면, 클로업 샷도 있었다.

    암싱크는 영화에서 모빌 전체가 화면에 보였다고 주장했지만, 영화사는 모빌 전체는 보이긴 했으나 모빌 전체가 등장한 화면은 수 초에 불과하고 총 시간도 96초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양자의 주장에 대해 법원은 일반적으로 저작물 전체를 복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지만, 영화에서 짧게 이용되었고 이 때문에 모빌의 잠재적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고는 보기 어려우므로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직계가족〉과 〈왓 위민 원트〉 / 출처: IMDB

    비슷한 사건이 또 있다. 영화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 에서는 주인공 멜 깁슨의 사무실 안에 핀볼 기계가 세트로 사용되었다. 해당 핀볼 기계를 만든 회사는 핀볼의 뒷유리 디자인, 핀볼의 경기 레이아웃의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영화에서 핀볼 기계가 나오는 장면은 총 3분 30초였다. 하지만 몇 초에 한 번씩 드물게 나왔으며 초점도 맞지 않았다. 또한 핀볼 기계 자체가 클로즈업 된 장면도 없었다. 주로 배경으로 나와서 항상 주인공이나 다른 가구에 일부 가려졌고, 뒷유리와 경기 레이아웃 디자인은 완전히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점에 착안해 법원은 관객과 같은 일반 관찰자가 핀볼 기계의 디자인을 인식할 수 없었기에 ‘사소한 이용’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사소하지 않은 ‘사소한 이용’ 판례들

    우리 저작권법은 저작권 면제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타인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사용하면 저작권 침해라 규정한다. 그런데 ‘양적인 기준’은 정해진 바 없는 터라 아주 소량을 복제한 경우, 즉 ‘사소한 이용’의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서는 항상 ‘아주 적은 양을 잠깐 쓰는데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 고민이 된다.

    참고할 만한 판례가 두 가지 정도 있기는 하다. 어느 배우가 SBS 프로그램에서 1960년대 자신이 출연한 영화 〈대괴수 용가리〉 중 3분 정도의 분량을 보여줬는데, 이것이 저작권 침해로 인정된 사례다. 다른 하나는 영화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것이다. 극중 주인공이 작은 텔레비전으로 약 30초간 일본 영화 〈러브 레터(Love Letter)〉의 주요 장면을 보는 씬이 나온다. 이에 대해 법원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두 판례 모두 ‘양적인 기준’ 측면에서 ‘사소한 이용’이라고 할 수 없어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앞서 알아본 〈ROC〉, 〈세븐〉, 〈직계가족〉과 〈왓 위민 원트〉의 경우는 비록 해외 사례이긴 하지만, 법원이 ‘침해가 아주 작아서(사소해서) 권리자에게 실질적 피해가 없다’라고 판결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침해인지를 판단하려면 복제물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봐야 한다. 양적으로 복제의 정도가 미미해서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경우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위에서 든 해외 판례들처럼 시간, 초점, 조명, 카메라 앵글 등에 의해 식별이 잘 되지 않는 경우까지 저작권 침해라 보기는 무리일 것이다.

    한편, 사건을 보도할 때 그 과정에서 보이거나 들리는 저작물처럼 ‘분리하는 것이 곤란한’ 경우엔 우리 저작권법이 ‘부수적 이용’이라 하여 저작권 침해가 아닌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거리에 인파가 모이는 장면을 보도하다가 가게에서 들리는 음악이 배경에 삽입되거나, 거리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추격전을 촬영할 때 보이는 건물이나 조각물 등이 그런 경우다. ‘부수적 이용’은 시사 보도에 한정하여 어쩔 수 없이 배경으로 나오는 저작물에 대해 저작권을 면제하는 것이기에 ‘사소한 이용’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현재 KBS 공영미디어 연구소 연구원(법학박사)이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등에서 강의 활동을 하였다. 동 대학원에서 「공연권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믿기 힘든 저작권 이야기』,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 『음악 저작권』 등 저작권과 관련한 다수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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