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디자인그룹이 만든 서체를 매달 하나씩,
월간 《the TS》라는 ‘타입플레이(Type Play) 룩북’으로 소개한다.
누구나 월간 《the TS》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다운로드 시 하단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확인)
레터빌런(Letter Villain)이라니? 세상의 선한 글자들을 위협하는 악한 글자들…? 오해를 막기 위해 변론을 하자면, 레터‘빌런’을 악당이기보다 ‘악동’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 윤디자인그룹의 타이포 브랜딩(typo-branding) 크리에이터 집단 엉뚱상상은 글자가 글자로만 취급되는 걸 완강히 거부하는데, 이러한 곤조(!)를 표명하고자 레터빌런을 창조했다.
이 ‘빌런’들은, ‘글자(폰트)는 자고로 가독성과 심미성을 갖춘 글자다운 모습이어야 한다’라는 태도에 반기를 들고 있다. 누군가에게 잘 읽힐 때만 글자로서의 존재 증명에 성공하는 기존의 글자다운 글자. 이런 류와는 애초부터 가는 길이 다르다. 레터빌런은 누군가가 읽어주기 전에 스스로 입을 떼버리는, 태생적으로 고달(점잔을 빼고 거만을 떨다)과 앙짜(점잔을 빼고 깐깐하게 굴다)엔 소질이 없는, 대략 이런 성깔을 부여받은 글자들의 명칭인 것이다.
엉뚱상상은 이 레터빌런을 활용한 설치 작품 ‘뚱이와 뿡이’로 제9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2021. 9. 1. ~ 10. 31.)에 참여했다. ‘뚱이와 뿡이’는 레터빌런에 의해 침공 당한 의자다. 이 침공을 주도한 엉뚱상상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여러 사람들이 앉는 의자. 말 없는 의자. 만약 의자가 입을 떼면 무슨 말을 먼저 할까. 우선, 아기가 입을 떼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아기는 태어나 처음, 그리고 가장 많이 들은 말로 첫 입을 뗀다. 의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여러 엉덩이의 다양한 ‘뿡’을 가장 많이, 그리고 아주 가까이에서 듣는 존재니까, 의자가 입을 뗀다면 그 첫 말은 분명 ‘뿡’일 것이다. 그래서 레터빌런을 데리고 의자를 침공해보았다. 방귀 소리 ‘뿡’을 다양한 악센트로 디자인했고,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시그니처 ‘뚱’의 텍스트로 의자에 앉는 이들의 흔적을 시각화했다. 우리가 늘 바라보는 모던한 의자 말고 우리가 숨기고 싶어하는 소리를 ‘뿡’ 폭로해버리는 의자, 스스로 입을 떼는 글자/의자 만들기. 레터빌런의 침공 목표다.”
월간《the T》 10월호는 엉뚱상상의 ‘뚱이와 뿡이’로 꾸몄다. 글자를 글자로만 바라보지 않는 누군가에게, ‘뿡’ 터지진 않더라도 ‘뽕’ 정도의 영감을 드릴 수 있기를. 한 번쯤 침묵하는 사물들의 음성을 상상해봤다면, 행여나 「아, 입이 없는 것들」이라는 시마저 떠올려봤다면, 당신도 충분히 빌런의 자격을 갖춘 거다. May Letter Villain Be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