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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민준의 서(書) #12 캘리그래피로 ‘작품’ 만드는 법

    서예가 오민준의 캘리그래피 시론 ― 다른 많은 예술 작품들처럼, 테크닉에만 의존한 캘리그래피는 오래가지 못한다


    글. 오민준

    발행일. 2014년 04월 17일

    오민준의 서(書) #12 캘리그래피로 ‘작품’ 만드는 법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캘리그래피 전시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곳에서 교육을 하면서 수료전시를 하고 있으며, 캘리그래피 작가들도 개인전, 그룹전을 통해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소도 갤러리를 비롯해 카페, 서점, 야외 등 공간에 대한 제약 없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디자인과 관련된 상업적 캘리그래피 뿐만 아니라 이제는 순수예술 캘리그래피 작품에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럼 상업적 캘리그래피와 순수예술 캘리그래피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상업적 캘리그래피는 정해진 문구를 클라이언트가 결정을 하고, 순수예술 캘리그래피는 작가 본인이 문구를 정하고 작품도 본인이 결정해야 하는 차이가 있다. 적게는 2~3개의 시안에서 많게는 10개 이상의 시안을 주고 그 안에서 컨택하는 상업적 캘리그래피는 클라이언트가 주가 되지만 순수예술 캘리그래피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 본인이 주가 된다. 작업을 하는데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순수예술 캘리그래피를 갈망하고 있고 작가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작품을 하고 싶어 하며 작가의 길을 가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멋지고 예술적인 캘리그래피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떤 글씨가 좋더라 어떤 문구가 좋더라’가 아닌 작가적 철학과 사상이 고스란히 밴 작품을 해야 한다. 작품에 대한 고뇌와 열정이 좋은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장르를 망라한 다양한 분야를 이해하고 캘리그래피는 물론 다른 장르의 공부도 해야 할 것이다. 단순한 테크닉에 의존한 작품은 처음에 눈에 띄어 좋을지 모르겠으나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먼저 작품을 하기 위해서는 글의 소재가 있어야 한다. 물론 선인들의 좋은 문구나 노래가사, 시 등도 좋겠지만 가장 좋은 글의 소재는 작가 본인의 경험에서 한 이야기이다. 캘리그래피의 가장 큰 특징은 감성표현이다.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완성도가 높아질 것이며 작가의 색깔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가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보다는 실제 있었던 상황을 각색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대중들의 감수성을 불러일으켜 함께 느끼고 소통하게 된 것이다. 몇몇 작품들은 사회적 문제를 들어내었고 그 문제를 해소하기도 했다. 소소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써서 작품을 한다면 자신은 물론 보는 사람들이 느껴지는 부분은 더욱 클 것이다.

    작품에 대한 글의 소재가 정해지면 그 소재를 어떠한 방법으로 표현하느냐이다. 글씨에 대한 서체부터 구성, 표현방법에 따라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화선지에 쓸 것인가? 화선지가 아닌 다른 종이에 쓸 것인가? 도자기나 사진에 쓸 것인가? 옷이나 비단, 천 등에 쓸 것인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은 많을 것이다.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의 소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를 선택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글의 소재를 표현하는 대상이 결정되면 다음은 어떠한 도구로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표현 도구에 따라 글씨의 분위기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표현할 대상과의 관계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다음은 실제 작업이다. 내가 생각하고 구상한대로 잘 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막상 실제 작업과정에서 작품의 형태가 많이 바뀌게 된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재료에 대한 이해와 그 경험이 다음 작업의 폭을 넓어지게 할 것이다. 이것이 작가의 고뇌가 된다. 어떻게 했을 때 최대의 효과를 나타내는지 그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을 하는 시점에 따라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과 주위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많은 시도와 도전이 필요하겠다.

    붓을 잡은 연기자로 잘 알려진 이상현 캘리그래피 작가는 “상업적 캘리그래피 또한 내가 작업하는 하나의 콜라보레이션이다”고 했다.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를 작가적 입장에서 이야기함으로 자신의 하는 모든 작업은 하나하나가 캘리그래피 작품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원하는 스타일의 글씨를 써 주는 글씨 잘 쓰는 사람이 아닌 작가적 관점에서 또 하나의 작품을 작업하는 것이다. 상업적이든 순수예술이든 작가적 관점에서 작가의 철학이 담긴 작업을 해야 함은 당연할 것이다. 기능인이 아닌 작가가 돼야 하는 이유다.

    작가의 길은 쉽지 않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한계에 좌절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랜 인내와 노력만이 좋은 작가가 된다는 것이다. 천재성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그 천재성을 보여주는 것은 남모르는 자신만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임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존감을 갖고 끈기있게 하나하나 이루어간다면 반드시 좋은 작가가 될 것이다.

    끝으로 작가성을 지닌 작품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간단한 작품설명을 하겠다.

    [좌] 여태명 작품 [우] 김성태 작품
    [좌] 강병인 작품 [우] 이상현 작품  

    여태명 작가와 김성태 작가는 작가 본인이 글을 직접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글을 소재로 선택하여 한 작품으로 글의 소재와 어울리는 그림을 함께 한 작품이다. 여태명 작가의 작품은 종이를 연탄재의 분위기로 염색하고 안도현 시인의 시 중에서 한 부분을 발췌하였고, 작품 전체적인 공간을 보고 세 곳으로 나누어 구성하여 글씨를 썼으며 낙관의 위치와 크기 등도 공간에 따라 달리한 특징이 보인다. 전체적인 구성과 밸런스가 좋다. 김성태 작가의 작품 또한 이해인 수녀의 산문집에서 어느 한 부분을 발췌하여 썼고 글의 내용에 어울리는 순수하고 소박한 그림을 그렸으며 공간에 따라 두인과 유인, 낙관 등으로 포인트를 주었으며 유려한 글씨가 좋다.

    강병인 작가와 이상현 작가의 작품은 표현방법이 일반적인 종이와 붓이 아닌 다른 도구와 재료로 쓴 것으로 자신의 느낌을 간단한 글과 단어로 썼으며 표현 도구와 재료가 적절하게 사용되어 작가의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강병인 작가의 글씨는 화선지가 아닌 다른 종이에 초록색 물감을 붓으로 써서 봄의 새싹의 느낌을 주기 위해 획 하나하나를 잎 모양으로 표현한 특징이 있다. 이상현 작가도 화선지가 아닌 다른 종이에 다른 표현 도구를 써서 작가가 생각하는 비상을 여러 선을 그어 입체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새가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형상이다.

    윤경희 작품
    오민준 작품
    방수정 작품

    윤경희 작가의 작품은 글의 소재를 연상시키는 설치를 한 작품이다. 노래가사의 한 부분의 내용을 캘리그래피로 쓰고 그와 잘 어우러지게 나무와 벤치를 만들고 그 안에 조명을 주어 글의 소재에 대한 추억을 연상시키는 하나의 설치 작품이다. 글씨 밑에 선이 적절하게 들어가 그 효과를 더해 주고 있다.

    오민준 작가의 작품은 사진에 캘리그래피를 쓴 것이다. 글의 내용과 사진 그리고 글씨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작품으로 제목을 한자로 쓰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한글로 쓴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진 안에 글씨를 써넣는데, 이 작품은 사진 밖에 글씨를 써서 다시 사진과 캘리그래피가 어우러지게 만들어 또 다른 느낌의 작품을 만들었다.

    방수정 작가의 작품은 재활용 종이와 가죽으로 만든 에코백에 글씨를 써넣은 작품이다. 핸드메이드 작품으로 실제 사용해도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가방 전체 라인의 자유스러움과 그 안에서 가죽으로 만들어진 부분과 글씨의 조화가 좋다.

    앞에 작품들에서 보듯이 글씨를 표현하는 방법과 표현 도구, 재료에 따라 작품을 대하는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가장 좋은 글의 소재는 직접 쓰는 것이지만 선인들의 좋은 말씀이나 시, 노랫말 등을 재해석하여 작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을 명확하게 하고 그에 맞는 그림이나 설치, 장식 등이 적절하게 이루어졌을 때 캘리그래피의 글씨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캘리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과 여백의 미에서 오는 감성, 감수성을 느끼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며, 문자조형과 다양한 선 표현에 필요한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오민준

    현재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상임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대학정통서예를 공부한 후

    신고전주의 캘리그라피/서예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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