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는 감성표현이라는 범주에서 순수예술 캘리그래피와 상업적 캘리그래피가 성행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많은 전시 경험을 토대로 순수예술 캘리그래피는 감성표현과 더불어 다양한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예술성이 두드러진 반면 상업적 캘리그래피는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몇몇 이름 있는 작가의 글씨 스타일이 주를 이루고 있어 대부분의 캘리그래피 글씨들이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캘리그래피 문화가 성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단순히 클라이언트만을 탓하기에는 작가성의 부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작가로서의 자질이 결여되다 보니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추기 급급한 글씨를 쓰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응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작가라면 클라이언트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데 어떠한 글씨를 요구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그 글씨의 사용 목적에 대한 본질적 해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전제 조건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글씨의 형태적인 부분을 넘어 진실성이 묻어나는 글씨를 쓰게 될 것이며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작가가 주도하게 되어 상업적 캘리그래피에서도 격(格)이 있는 글씨들이 많이 선보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 작가인가?
작가를 구분 지어 본다면 천재성을 지닌 작가와 부단한 노력을 하는 작가로 나눌 수 있다. 대부분이 재능, 재주가 없다고 말하면서 적어도 노력하는 성실한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할 것이다. 천재 과학자 에디슨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남긴 사람으로 미국 특허가 천 개가 넘게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천재 화가로 작가적 기질이 뛰어난 피카소도 그림과 조각품이 3만 여점에 이른다고 한다. 이 두 사람 외에도 많은 천재성을 지닌 작가와 과학자 등은 수많은 도전과 끊임없는 인내심으로 각각의 분야에서 많은 결과물을 얻었고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래 왔으니까, 그런 거니까”가 아닌 ‘왜’라는 의문점을 가져야 한다. 외형에 치우친 단순한 글씨표현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감정이입(感情移入)은 내적으로 충만한 글씨를 연출하게 된다. 단지 글씨를 잘 쓰는 작가이기보다는 글씨에 감정을 불어넣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씨를 쓰고 싶은 것은 캘리그래피를 하는 모든 작가의 바람이다. 감성을 키우고 많은 경험과 노력,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과의 소통은 반드시 좋은 글씨, 가식 없는 진실한 글씨를 쓸 수 있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일본의 캘리그래피 작가 히라노소겐은 “가장 좋은 글씨는 진실이 묻어나는 거짓이 없는 글씨다. 선 하나에 목숨을 걸고 그은 선은 절대 거짓이 없다.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씨는 가식적이기 때문에 절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라고 했다. 심금(心琴)을 울리는 글씨는 가식적이지 않은 진솔한 글씨로 먼저 작가 자신에게 당당하고 떳떳하며 온 기운(氣運)을 다 한 글씨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느낀다. 같은 글씨나 그림을 보더라도 느껴지는 부분은 사람마다 각기 다를 것이다. 무엇을 봐야 하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 문제는 결국 작가 자신의 감성적 사고와 눈높이가 결정한다. 작가 스스로 자신을 가두어서는 안 된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며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 있게 도전했을 때, 캘리그래피 작가로서의 자존감은 더욱 두터워질 것이다.
오민준
현재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상임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대학정통서예를 공부한 후
신고전주의 캘리그라피/서예작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