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캘리그래피 문화 시발점은 대략 1990년대 후반으로 보고 있다. 벌써 15년이 훌쩍 넘어갔고 양적, 질적 향상을 가져왔으며 캘리그래피는 새로운 직업군으로 형성되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는 분야로 발전했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이 캘리그래피 작가로 활동하고 있고, 그들의 작품은 갤러리, 카페 등의 오프라인은 물론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많은 작품을 접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캘리그래피 작품을 완성하는 인장(印章), 일반적으로 말하는 낙관(落款), 전각(篆刻)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 것. 인장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이번 칼럼의 주제로 삼게 되었다.
먼저 용어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전각, 낙관은 엄밀히 말해 잘못된 것이다. 인장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며 전각은 ‘전서(篆書)를 새긴다’는 것에서 전서를 새긴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 외에 서체를 새길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전서체와 비슷한 한글판본체 또한 전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용어 선택이 아니다. 또한, 낙관은 낙성관식(落成款識)이 줄여진 것으로 서화(書畵) 작품을 완성한 후에 그 작품에 쓰인 연유와 내용 그리고 완성된 연월일과 장소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음각과 양각의 인장을 압인(押印)하는 전체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캘리그래피 작품에 쓰인 인장은 전각, 낙관이라는 용어 사용은 적절하지 못하다. 아울러 인장이라는 용어에서도 도장, 인감 등 실용성을 갖는 신표로서의 인장과 예술성을 강조하는 예술작품의 인장으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의 서화작품에 사용된 인장의 배경은 중국 송대 이후에 나타났으며 명, 청대에 이르러 전문서예 작가들이 대거 출연하게 되었고, 작품에 이름을 쓰고 낙관을 찍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대부분 실용 목적으로 기록에 중점을 두었고, 글씨에 이름이나 인장을 쓰거나 사용하지는 않았다. 전문 예술가들이 출연하면서 작품에 대한 품격을 격상시키는 방법으로 인장을 사용하게 되었고, 인장을 찍음으로써 진정한 작품에 대한 완성으로 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인장이 날인되고 되지 않음에 따라서 완성, 미완성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런 연유에서 동양 캘리그래피의 모태인 서예작품에서 나타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캘리그래피 작품에도 인장을 찍어 완성하게 되었다고 본다.
인장에 대한 종류는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여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다. 여기에서는 서화작품에 사용하는 인장에 대한 종류만 언급하고자 한다. 서화작품에 사용되는 인장은 위치에 따라 성명인(姓名印), 아호인(雅號印), 두인(頭印), 유인(遊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명인은 백문으로 음각으로 새기며, 아호인은 주문으로 양각으로 새긴다. 두인과 유인은 음각과 양각 모두 가능하며 두인은 일반적으로 오른쪽 머리 쪽에 찍으며, 유인은 적절한 공간에 공허함을 메우기 위하여 찍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글씨의 반대쪽이나 넓은 공간에 찍고, 성명인이나 아호인보다 조금 큰 것을 사용한다. 캘리그래피 작품이나 현대서예에서 성명인과 아호인을 같이 찍지 않고 하나만을 찍을 때는 음각과 양각에 대한 구분이 없이 날인(捺印)하기도 한다.
인장의 주재료는 돌(石印材), 나무(木印材), 대나무 뿌리(竹根印材), 도인(陶印材), 상아, 옥 등으로 재료에 따라 그 선질(線質)이 다르게 나타나며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재료는 돌이다. 인장을 새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붓맛에 칼맛이 더해져 그것들의 적절한 조화가 요구된다. 하지만 캘리그래피 작품에 사용된 인장들은 작품에 사용하는 인장이기보다는 도장, 인감에 가까운 것들이 많아 안타까움이 크다.
최근 돌도장, 수제도장이 새로운 도장의 유형으로 유행하면서 일반인이 자신의 손글씨에 돌도장이나 지우개에 만들어서 재미로 작가의 작품처럼 만드는 것은 무방하겠지만 적어도 작가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캘리그래피 작가들은 그 부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신표의 도장, 인감이 아닌 예술작품에 쓰이는 인장의 차이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정장에 운동화를 신는 격이라 할까? 글씨와 어울리는 인장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가로쓰기와 세로쓰기에 따라 인장의 배자(配字)의 순서도 바뀌어야 한다. 세로쓰기의 경우 오른쪽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쓰며 가로쓰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인장을 새겨서 사용해야 하며 서풍에 따라서도 그에 어울리는 자형으로 새겨 사용한다면 작품의 격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도장이나 인감으로 사용하는 인장은 아무래도 귀엽고 예쁜 자형과 선을 취하기 때문에 예술작품에 사용하는 인장과는 차이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전문작가가 새긴 인장의 경우는 붓으로 쓴 듯한 느낌에 칼맛과 돌맛이 더해져 그 깊이감이 배를 더 한다. 적어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 짓는 인장에도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작품에 사용하는 인장은 위치, 크기, 모양 등 서체와 서풍과 잘 어우러져야 하며 인장에 대한 인식은 상업적으로 많이 쓰이는 캘리그래피에 날인하는 인장에 대한 개념과 새김글씨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캘리그래피 작품의 질적 향상은 가를 꿈꾸는 수많은 후학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보다는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그것의 근원지는 무엇인지, 적어도 캘리그래피 작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과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는 다르지 않은가?
오민준
현재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상임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대학정통서예를 공부한 후 신고전주의 캘리그라피/서예작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