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눈으로 기억하기도 하고 사진이나 글로 남긴다. 그런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좋으니까” 기억이 희미해지면 사진이나 글을 찾거나 다시 그곳을 찾아간다. 왜? 그것을 회상하고 싶거나 그 향수를 다시 맡고 싶어서이다. 캘리그래피도 마찬가지다. 좋은 글씨를 써야만 다시 그것을 찾게 된다. 어떻게 쓰는 글씨가 좋은 글씨일까? ‘감성표현이 잘 된 글씨’ 소재에 맞게 표현하고 그것을 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씨가 좋은 글씨라는 것을 우리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모두가 보고 감동하는 글씨를 우리는 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캘리그래피 작가들은 “한 사람이라도 내 글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만족한다.” 고 말한다. 모순 아닐까? 모두가 자신의 글씨를 좋아했으면 하는 욕심을 부리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 한다.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건물이 무너지지 않듯, 기본적인 서체공부의 토대 위에 다양한 표현을 해야 함을 여러 번 언급했었다.
문자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선과 여백이다. 각각의 자리에서 그 선들이 역할을 하고 그 선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공간은 최고의 글씨로 만들어주며,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좋아하게 될 것이다. 그 선과 여백은 가장 아름답고 경이롭고 위대한 자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두가 좋아하고 그 매력에 빠져드는 자연속의 생물들과 풍경에게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선과 여백을 찾아 쓴 글씨는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예를 들어 산을 바라보자. 먼 곳의 산을 바라볼 수도 있고, 산의 정상에서 또 다른 산을 볼 수 있으며, 산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자연의 선들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들은 그 선들을 발견하고 활용해야 한다. 다른 풍경이나 생물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감성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은 각각 다를 것이다. 전체를 바라볼 것인지? 부분을 바라볼 것인지? 겉만 볼 것인지? 속을 들여다 볼 것인지? 자연은 최고의 예술작품이 된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고민해야지 않을까?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선생의 ‘그 꽃’이라는 시이다.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느끼는 감정에 따라 표현이 다르고, 같은 곳을 바라보더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고, 같은 길을 걷더라도 바라보는 것 또한 다르다. 좋은 것을 일부러 찾아서 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좋은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 있다. 이것은 관심이라 생각한다. 조그만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바라본다면 또 다른 작품을 연출할 수 있다. ‘書畵同源(서화동원)’이라 했다. 글씨와 그림은 그 원류가 같고, 그림이 글씨가 되고, 글씨가 그림이 된다. 그림 같은 글씨가 최고의 표현이다. 단순한 필선의 표현을 넘어 대 자연의 거침없는, 아름다운, 경이로운 선들을 이제는 자신의 글씨에 입혀보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라보는 시점과 관점에 따라 각각 다른 사진 – 산
바라보는 시점과 관점에 따라 각각 다른 사진 – 나무
바라보는 시점과 관점에 따라 각각 다른 사진 – 자연
나뭇가지와 필선 – 사진과 캘리그래피의 콜라보레이션
자연의 선과 공간을 활용한 서화동원(書畵同源)1)의 작품
山자를 반복하여 산을 표현하였다. 그 안에 한시를 행초서로 정갈하게 쓴 작품이다. 이은혁 선생은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서예가로 작가의 심성이 잘 베여져 있으며, 자연의 위대함과 평온함이 함께 느껴진다.
1) 서화동원(書畵同源): 글과 그림의 근원은 같다는 뜻
왼쪽 작품의 江자는 거침없는 선질과 농담까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한 폭의 그림이다. 문인화는 일반적으로 그림과 화제글씨로 구성이 되지만, 이례적으로 문자를 그림처럼 표현한 작품이다. 박종회 선생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인화가이다. 오른쪽 작품의 주인공 히라노소겐 선생은 일본을 대표하는 캘리그래피 작가로 이 작품은 한자 水자를 가지고 물줄기를 표현하였다. 문자를 이미지화하여 그림처럼 느껴지며, 하나의 붓이 아닌 여러 붓으로 선의 표현을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오민준
현재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상임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대학정통서예를 공부한 후 신고전주의 캘리그라피/서예작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