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는 21세기 감성적 미감의 코드이다.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우리의 생활영역 또한 기계와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졌다. 이로 인해 인간미, 감성미 등이 결여되면서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는 감성적 표현방법과 도구, 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감성적 미감의 표현’이라 불리는 캘리그래피를 표현방법에 따른 도구의 특성과 활용이란 측면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도구와 재료는 서로 유기적 관계에 있어야 한다. 글씨를 쓰는 도구와 먹물, 종이에 따라 같은 글씨를 쓰더라도 다른 느낌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각각의 도구와 재료에 대한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도구와 재료를 선택해 활용해야 한다. 기본적인 선질(線質)을 이해하지 못한 채 ‘캘리그래피는 어떤 도구와 재료를 써도 괜찮다’, ‘재미있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자칫 표현기법에만 치중할 경우 캘리그래피의 본질에서 벗어나 자아에 도취된, 테크닉 위주의 작업으로 몰락할 수 있다.
화려하고 기교가 많은 글씨가 당장은 멋있고 눈에 들어올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외면을 당할 것이다. 진정한 멋은 기교와 테크닉에서 오는 화려함이 아닌 진실된 마음과 잔잔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 순수한 글씨에서 깊이감과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캘리그래피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도구는 서화용 모필(毛筆)이다. 붓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표현도구로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할 뿐만 아니라 기운과 정서, 그리고 감성을 그 어떤 도구보다 잘 표현할 수 있어 캘리그래피의 표현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서화용 붓은 그 종류가 많고 역사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붓에 대한 특성과 특징을 숙지한다면 다양한 선(線)을 표현 할 수 있다.
붓의 종류는 크게 유호필(柔毫筆:털이 부드러운 붓), 강호필(剛毫筆:탄력이 큰 털로 맨 붓), 겸호필(兼毫筆:유호에 강호심(剛毫蕊)을 박은 것)로 나누고, 털의 길이에 따라 장봉(長鋒), 단봉(短鋒), 중봉(中鋒)으로 구분한다. 털의 종류에 따라 붓의 종류를 구분하면 아래 표와 같다.
모필은 부드러운 동물의 털을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먹물을 머금었을 때 탄력이 있으며 글씨를 쓰는 사람에 따라 붓을 잡는 방법, 즉 집필법(단구법(單鉤法), 쌍구법(雙鉤法), 오지집필법(五脂執筆法), 발등법(撥鐙法), 악필법(握筆法) 등)과 운필법(정봉(正鋒), 중봉(中鋒), 장봉(藏鋒),역봉(逆鋒), 노봉(露鋒), 편봉(偏鋒), 순봉(順鋒) 등)에 따라 자유로운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양호필, 황모필, 마필 등이 많이 쓰이며 그 밖에 모든 털은 붓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위의 다양한 붓들을 다 구비한다면 상당한 비용이 필요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붓을 잡는 방법과 붓의 용필법 즉, 선의 굵고 가늠과 길고 짧음, 필압의 강약, 경중, 운필의 속도 등을 이해하고 숙지한다면 몇 가지의 붓으로도 원하는 선의 표현이 가능하다. 다른 방법으로는 직접 붓을 만드는 것이다. 붓대로 활용할 수 있는 나뭇가지나 나무젓가락, 펜대 등을 활용하고 실, 털실, 끈, 빗자루 등을 사용하여 직접 붓을 만들어 쓸 수 있다. 붓처럼 쓰는 것이 자유롭지는 않겠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선의 표현이 가능하며 다루기가 쉽고, 쉽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밖의 표현도구로는 연필, 펜, 볼펜, 색연필, 사인펜, 매직, 크레용, 분필, 롤러 등이 있으며 면봉, 이쑤시개, 수세미, 스폰지, 칫솔, 채소류 등 모두 붓을 대신해 글씨를 쓰는 것이 가능하다.
캘리그래피는 글자를 통해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따라 다양한 도구를 선택할 수 있다. 글씨에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여기에 쓰는 사람의 의지와 창의력, 감성 등의 요소들이 어우러진다면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 이미지출처
필묵, 공병각, 백종열, KBS, 오민준글씨문화연구실 홈페이지
오민준
현재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상임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대학정통서예를 공부한 후 신고전주의 캘리그라피/서예작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