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거시기, 머시기(Anything, Something)’라는 주제로 “‘거시기’한 일상을 바꿀 ‘머시기’한 상상력”을 선보인다는 것이 그 방향성을 대변한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예술비엔날레와 격년으로 치러지는데 2005년 처음 시작하여 올해로 5회째를 맞고 있다. 그 3회째에 해당하는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때 예술감독을 맡은 은병수 감독의 요청으로 ‘기획 큐레이터(planning curator)’라는 직함을 달고 전시를 총괄할 기획 업무를 담당하여 함께 비엔날레를 준비하던 때의 기억이 새롭다.
전시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감독의 비전은 ‘더할 나위 없는’이라는 표현에 담겨 있었다. 더하거나 덜함이 필요 없는 상태가 바로 제품 디자이너로서 그가 추구해온 비전이었던 만큼 그 생각을 반영한 비엔날레를 기획하고 싶었다. ‘더할 나위 없는’이라는 표현이 비엔날레를 위한 ‘이상’을 대변한다면 비엔날레의 구체적 실행 기획은 어떻게 접근되어야 할 것인가가 이를테면 기획 큐레이터의 역할인 셈이었고, 바로 이 부분에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로서 디자인에 대한 나의 비전을 실을 수 있을 터였다. 그 과정에 비엔날레의 아이덴티티 작업과 도록의 프로듀싱에 관여하게 되니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체적 상황은 나에게 하나의 통합적 디자인 프로젝트로 다가왔다. 그때 도록에 실었던 ‘기획자의 글’을 빌어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위한 콘셉트 디자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실마리(The Clue)’를 찾아서
언제부터인가 대중의 삶 속에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스스럼없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발견한다.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대화 속에 디자인에 대한 관심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며 이제 디자인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중에게 디자인은 무엇일까.
1.인식의 전환_ 총체적 삶을 통해 바라보는 디자인
대중에게 디자인은 아침 식사를 마련해주는 편리한 토스터와 커피 메이커, 그날의 일과에 어울리는 의상이나 구두와 같은 것일 수 있다. 나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을 가능하게 할 것 같은 최신 모델의 휴대전화나 희소성 높은 수입 브랜드의 자동차, 멋쟁이들이 애용하는 카페의 인테리어와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예술적 테이블 세팅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읽기 편하게 바뀐 신문의 서체나 정말 몸에 좋을 것같이 느껴지는 웰빙 음료수병, 깔끔하면서도 개성 있는 거리의 간판과 처음 가는 곳의 길 찾기를 도와주는 지하철역의 사인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 디자인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대중의 일상에 관여하는 모든 것이며, 대중의 삶을 보다 효율적이고 즐길만하게 하도록 기여하는 모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중은 디자인이라는 것이 나의 즐거움, 나의 편리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일은 아닌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성과 여성, 노인과 어린이를 비롯해 신체적•경제적•심리적 관점의 다양한 내용의 ‘차이’를 지닌 이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똑같이, 삶을 보다 효율적이며 즐길 만한 것으로 개선해주는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새로운 자각이 생겨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영원한 소비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지구 환경’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됨에 따라 디자인은 또 한 차례 인식의 전환을 맞는다. 우리 삶에 대단한 멋과 효율을 선사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헤아림 없이 현재의 즐거움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멋지거나 효율적인 일이 될 수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우리 삶 속에 벌어지는 일의 과정과 결과가 미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보다 많은 이들의 관심이 옮겨가면서 디자인에 대해서도 새로운 가치 판단의 기준이 생기게 되었다.
오늘날의 대중은 어느 한 사회에 멋과 효율을 제공하기 위해 또 다른 사회의 희생이 강요된다면 그것은 아무리 멋진 디자인이어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디자인에 의해 발생한 일이지만 디자인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무리 멋진 디자인이어도 사회와 사회 간에 불화를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미래 사회에 위협이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멋과 효율을 위한 일이 소중한 자원과 에너지를 함부로 낭비하는 일이 된다면,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는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삶을 황폐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대중은 잘 알게 되었다. 궁극의 선(善)을 동반하지 않은 디자인은 겉치레에 불과하며 삶에 해악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발생한 것이다.
누구에게도 삶은 분절된 것일 수 없다. 커피를 마시는 삶의 주체와 신문을 읽는 삶의 주체가 다를 수 없다. 혼자만의 삶, 또는 우리만의 삶일 수 없고 현재만의 삶일 수도 없다. 오늘날 대중의 삶 속에서 디자인을 논할 때 이제 ‘총체적’이란 수식어가 빠질 수 없게 되었다. 일상의 모든 것이 어우러진 총체적 삶으로부터 동떨어지고 단절된 사고의 디자인은 상상할 수 없으며 더불어 사는 삶, 현재와 더불어 미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디자인은 받아들일 수 없다. 삶에 대해 총체적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고 노력하는 총체적 삶의 방식을 생각해내려는 태도로서의 디자인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 실마리_ 문화를 통해 바라보는 디자인
‘총체적 삶’에 시간의 축을 적용하면 그것은 일상의 역사를 통해 인류가 이루어놓은 삶의 업적이 된다. 대중의 일상을 통해 축적된 공동의 업적과 가치, 그것이 바로 ‘문화’임을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화란 긴 시간의 역사를 통해 정착된 총체적 삶의 방식으로, 무엇을 먹고 입었으며, 어떠한 환경에서 살며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러한 가운데 어떠한 즐거움을 누리고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설명한다. 사람들의 삶을 통해 몸소 실험하고 개선하며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정착된 것이 바로 문화이다. 오랜 세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만큼 많은 사람에게 대단한 설득력을 가져온 무엇, 디자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문화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근대 디자인의 발생을 1800년대 중반 산업혁명 이후로 본다면 200년에도 못 미치는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질 낮은 기계제품에 대한 반발과 수공예의 부활 사이에서 비로소 출발 지점을 찾게 된 디자인의 역사를 인류의 시작과 동행해온 문화의 관점에서 반추해본다면 디자인의 뿌리는 문화에 있지 않을까 한다. 디자인이란 결국 인류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문화 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술과 산업 사이에서 분분했던 이념 중심(ideology oriented)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기술 중심(technology oriented),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 불나방처럼 몰려다니던 시장 중심(market oriented)으로 축을 옮겨가며 발전을 거듭해온 디자인계의 동향은 이제 개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라이프스타일 중심(life style oriented), 그리고 지구 환경을 돌보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이슈 중심(issue oriented)의 시대적 요구를 만나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총체적 삶’으로서의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디자인을 통해 우리가 새롭게 나아가야 할 삶의 방식과 태도를 묻는다면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긴 시간을 거쳐온 문화는 이에 대한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
3.다양성_ 서로 다름으로 서로에게 가치가 되는 것
‘이탈리아 디자인’은 자유롭고 느긋하며 장인의 수작업과 산업의 접목으로 독창성과 함께 고도의 품질을 자랑한다. ‘독일 디자인’은 전체와의 조화로운 연속성을 전제로 절제적이면서도 시간을 초월한 굿 디자인을 추구한다. ‘네덜란드 디자인’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위트가 넘치고,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깔끔하고 실용적인 자연주의적 사고를 중요시한다. ‘미국 디자인’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앞서 가는 삶의 스타일을 제안하는 일에 뛰어나고, ‘젠 스타일’로 대변되는 ‘일본 디자인’은 극도의 절제된 조형미 속에 동양적 생각의 깊이를 발휘한다. 삶의 필요를 충족하고 개선하기 위한 동일한 출발지점을 지녔으나 나라마다 다른 문화적 특성을 만나 다양한 문화 중심(culture oriented)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어떤 나라의 디자인이 왜 더 특별히 자유롭고 느긋한지, 기발한 상상력으로 위트가 넘치는지, 더 자연주의적이거나 실용주의적인지, 또한 동양적 카리스마가 넘치는지는 그 나라의 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오랜 세월 한자리에 모여 사는 동안 그 지역이 지닌 지리적•자연환경적 여건에 따라 그 나라만의 차별화된 개성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독특한 칼라나 조형적 모티브와 같은 일차원적 디자인의 요소를 넘어 그 나라의 문화 속에 포함된 모든 것, 삶을 사유하는 방식과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 사람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 등이 모두 그 나라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한다. 이렇듯 문화는 디자인 작업을 통하여 찾아내야 할 모든 질문과 답, 이유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총체적 삶으로부터의 콘텐츠이다.
문화와 디자인의 공통점은 점수를 매겨 순서를 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 자체가 서로 가치 있게 하는 것이 문화이며, 디자인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국가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기대감을 품고 다른 문화권으로 여행을 떠난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디자이너가 존재하고 세상에 수없이 많은 디자인의 전화기가 존재해도 세상은 더욱 독창적인 디자이너를, 더욱 새로운 디자인의 전환기가 필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 다른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땅은 서로 맞닿아 있으며 서로 다른 디자인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의 목적 역시 한 지점에서 만난다는 사실이다. 보다 나은 삶, 더불어 사는 삶이 바로 그것이다.
4.가능성_ 한국의 문화로부터 풀어보는 글로벌 디자인의 실마리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개막을 한 달 남짓 앞둔 2009년 8월의 어느 날, 우리는 신문과 라디오, TV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벅찬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한 소수민족이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할 문자로 ‘한글’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는 내용이다. 인구 6만여 명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은 자신들의 문자가 없어 언어 소멸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한국의 훈민정음학회가 이들의 언어를 기록할 수 있는 문자로 한글을 채택할 것을 건의, 이를 공식화하여 한글로 된 찌아찌아어 교과서를 제작•보급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언어는 7천여 개에 달하는데 그중 문자 체계를 가진 언어는 300여 개에 불과하다고 알려졌다. 물론 300여 개가 모두 서로 다른 것은 아니고 많은 부분이 로마자에서 파생된 문자이다. 말로 소통은 할 수 있을지라도 기록할 수는 없는 인간의 삶은 상상하기가 어렵다. 삶은 이어지되 ‘역사’는 존재하지 않고, 지식과 정보, 지혜와 감정은 존재하되 책이나 신문, 편지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지구 상에 수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니 문자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된다. 그렇듯, 사라져가는 글로벌 문화유산인 지구 상의 한 토착어를 한글로 살릴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니 이 일은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전 세계와 공유하는 동시에 한글을 디자인한 세종대왕의 ‘문맹 타파’의 뜻을 전 세계의 대중을 향해 베풀게 된 일이니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일은 디자인의 관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화적 실마리를 통해 세계 디자인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던 이번 비엔날레의 목적이 지구상 어디에선가 이미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니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한다. 게다가, 우리는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한글을 디자인한 ‘이 도’를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디자이너로 내세우지 않았던가.
뉴스를 보도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앵커가 인도네시아에서 오지인 부톤 섬 바우바우 시가 어떻게 한글을 알게 되었고 한글에 대해 신뢰를 하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에 대한 답이 또한 인상적이었다. 직접 가보니 바우바우 시의 시장은 이미 ‘현대’ 자동차를 타고 ‘삼성’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LG’의 LCD 모니터 TV에서 ‘한류스타’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있더라는 것이다. 한국의 문자인 한글을 삶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한 모든 정황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의 한 도시에 사는 그에게도 디자인은 이미 총체적인 삶 속에 누리는 무엇이었으며 그의 삶을 보다 나은 것, 즐길 만한 것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무엇으로 ‘한국적인 무엇’들이 이미 접목되어 있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준 셈이다.
우리 민족은 기록에 남아 있는 흔적만으로 보아도 ‘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신라/발해-고려-조선-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5천 년(역사학자에 따라 2700~2800년으로 보기도 한다.)에 이르는 역사를 지녔다.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닌 문화가 시대별로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고 그 내용을 추적할 만한 기록도 남아있다. 한국이 지닌 문화유산은 곧 세계가 지닌 문화유산이니 ‘문화를 통해 바라보는 디자인’의 관점에서도 이 점은 국경을 초월하여 인류가 함께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문화가 지닌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 세계의 대중으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디자인 문화의 실마리(clue)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5.연구_ 다섯 개의 주제, 세 개의 프로젝트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통해 우리가 펼치고자 한 디자인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두 가지 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총체적 삶’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디자인과 ‘문화’를 통해 바라보는 디자인이 바로 그것이다. 지엽적인 분야나 개별적 아이템 중심으로 발전해오던 그간의 디자인과는 다른,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상태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공론화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나아가, 문화를 총체적 삶의 콘텐츠로 보아 문화를 통해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즉, 문화 중심(culture oriented)의 새로운 디자인을 위한 실마리를 모색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The Clue-더할 나위 없는’이라는 주제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바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체계화하기 위하여 디자인의 분야를 삶을 구성하는 가장 보편적인 틀인 입고[衣], 먹고[食], 휴식하고[住], 공부하고[學], 즐기는[樂]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순수 한국말인 ‘옷’, ‘맛’, ‘집’, ‘글’, ‘소리’로 표현하였다. 이에 더하여,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접목, 삶을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각의 축을 더하였다. 그린 디자인 또는 에코 디자인과 같은 단어로 알려져 있는 ‘Design to Save’의 관점, 그리고 Universal Design이란 표현으로 잘 알려진 ‘Design to Care’의 관점, 더불어 사는 삶, 함께 나누고 함께 즐기는 삶의 시각을 더하기 위한 ‘Design to Share’의 관점이 그것이다. 이를 다시 ‘살림’, ‘살핌’, ‘어울림’이라는 순수한 한국말로 표현하였는데 이 말들 속에 이미 담겨 있던 선조들의 삶의 태도에서 한국의 문화가 제시하는 디자인의 새로운 실마리를 발견한 것도 기획과정에서 얻은 소득이었다.
다섯 개의 주제와 세 개의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 중심의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우리는 ‘한국 문화로부터의 실마리’를 예로 들어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자가당착에 빠진 일방적인 주장이 되지 않도록 국제적 관점의 설득력 있는 시각을 함께 제시하기로 하였다. 다섯 개의 주제와 세 개의 프로젝트를 각각 맡아 전시로 풀어낼 한국인 큐레이터와 플래너 등을 선임하고, 이에 국제적 시각을 더해줄 수 있는 다양한 문화권(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일본, 태국, 이란, 홍콩) 출신의 협력 큐레이터와 협력 코디네이터를 선임하였다. 각 큐레이터는 자신이 맡은 주제, 또는 프로젝트의 성격에 부합하는 문화적 실마리 한 가지씩을 한국 문화로부터 제시하기로 하였고, 해외의 협력 큐레이터는 한국 문화로부터의 실마리를 비교 검증할 수 있는 또 다른 문화권으로부터의 실마리를 제시하여 이를 중심으로 풀어낸 다양한 작품으로 전시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각각이 제안하는 ‘실마리’를 공론화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타당성을 점검하는 과정을 거치고자 2009년 5월 광주에 모였다. 이틀에 걸친 긴 토론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에 대한 깊은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디자인이란 무엇이며, 디자이너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디자인하는지, 문화란 무엇이며 각국의 문화 정체성을 찾는 일이 어떻게 서로 맞닿아 있는지, 인류 공동의 유산 관점에서 문화는 디자인을 통해 어떻게 함께 나누고 누릴 수 있는지…. 나라와 언어는 달라도, 또한 각각의 전문 분야는 달라도 ‘총체적 삶’의 관점에서 우리는 모두 동일한 목적을 지닌 디자이너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디자인의 새로운 실마리(The Clue)에 대한 토론은 개막 행사의 하나인 국제디자인포럼을 통하여 이어지게 된다. ‘Searching for the Clue’라는 주제 아래 전 세계 다양한 분야에서 초대한 전문가들과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관점에서의 ‘총체적인 삶’을 토로하게 될 것이다. 비즈니스 큐레이팅 시스템을 도입하여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제안하는 새로운 ‘실마리’를 산업과 연결하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이번 비엔날레의 특기할 만한 내용이다. 디자인이란 산업과 만나야 비로소 대중의 삶으로 다가가는 통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6. 2009년 9월_ 광주에서 만나는 세계 디자인의 미래
어느덧 전시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러 각 큐레이터부터 초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다. 제1•2회 때와 달리, 기존의 디자인 물건들을 모아 주제에 맞게 전시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최종 작품은 오픈이 임박해서야 그 결과물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결과물에 치우쳤던 디자인에 대한 그간의 관심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문제를 찾아내고 문제를 해결하며 끊임없이 더 나은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프로세스’로서의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제3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프로세스 그 자체로서 이미 세계 디자인계의 미래를 위해 기여할 중요한 디자인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인 내게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기획하는 일은 하나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과 같았다. 감독이 지닌 디자인에 대한 비전을 펼치기 위해 체계적인 생각의 틀을 만들어내고 설득력을 더하는 일, 그리고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모인 주제별·프로젝트별 큐레이터와 협력 큐레이터, 플래너와 코디네이터들과의 소통을 진행하는 일은 공동의 디자인 작품을 만들어가기 위한 쉽지 않은 프로세스였다. 우리만의 새로운 생각을 바탕으로 세상에 아직 선보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그것을 통해 세계 디자인계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전시하고자 하였던 만큼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예상하였던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로서 우리의 삶에 디자인비엔날레라는 것을 만들어가기 위한 ‘총체적 삶’으로서의 경험이었다.
비엔날레를 통해 대중이 함께 공감하고 얻어갈 수 있을 만한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 디자인계의 미래를 위한 작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디자인하는 것. 그것이 제3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위해 우리가 함께 준비한 최고의 디자인 작품이 아닐까 한다.
EIP 디자인, 포스터 디자인, 도록 기획/편집/디자인: 스튜디오 바프(BAF) ㅣ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로듀서_ 이나미 ㅣ 사진_ 스튜디오 바프 ㅣ 디자이너_이여형, 연지영, 강구룡
이나미
현재 스튜디오 바프(studio BAF) 대표,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9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2010년 대한민국공공디자인엑스포 총괄 기획,
2012년부터 서울 시민청 마스터플랜 총괄 기획과 시민청결혼식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