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는 역시 ‘생존’이다. 원활하지 못한 자금 사정과 불규칙한 작업 수주 등이 원인이지만, 그렇다고 급여를 지급해야 할 때를 놓쳐서도 안된다. 밥을 굶으면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밥도 굶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될 말이다.
처음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나서 한두 달은 치열한 생존의 시간이었다. 급여를 제때 지급하는 건 껌껌한 방에서 바늘을 찾는 일만큼 불확실한 일이었고, 매 끼니 식사는 집에서 조금씩 챙겨온 반찬과 작업실의 3만원짜리 밥통으로 해결했다.
일은 많았지만 돈 되는 일은 없었다. 돈 되는 일을 찾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해서가 아니라 생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고작 60만원 정도 주머니에 들어왔지만 그마저도 학자금 대출 원금과 이자로 반타작이다. 남은 돈으로는 다음 한 달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지내면서 다음 달 급여를 걱정했다. 늘 그런식이었다. 그렇게 처음 몇 달은 힘겹게, 그후 또 몇 개월은 그럭저럭 버텼다.
사업자 등록을 하고 스튜디오 ‘밈(studio [mim])’을 오픈한 지 9개 월여가 지난 지금, 처음으로 한 달살이에서 석 달살이로 승진했다. 쥐꼬리만한 급여지만 적어도 3개월간은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3개월 뒤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불확실한 미래’, 그것을 늘 주홍글씨처럼 달고 사는 내게, 3개월이라는 시간은 잠시나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다. 3개월간은 식사 걱정, 급여 걱정을 안 해도 되며, 작업실 월세와 전기세 등등 기타 모든 고정비용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다. 3개월간은 디자인 작업에만 집중할수 있다는 사실이 기쁠뿐이다.
어렸을 적 TV에서 만화가 이현세 씨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는 만화를 그려 처음 받은 돈으로 3개월치 월세와 라면, 그리고 담배를 사는데 썼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3개월 동안은 아무 걱정 없이 만화를 그릴 수 있으니까요”라며 웃더라. 이제와서 보니 그 기분을 이해할 만하다.
이제 적어도 3개월은 걱정 없이 작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그 주홍글씨도 잠시 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