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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의 호리틱 #2 국민연금 BI

    기존의 한글 디자인을 호리틱[이호+critic]하게 바라보기 ― 국민연금 BI


    글. 이호

    발행일. 2020년 12월 04일

    이호의 호리틱 #2 국민연금 BI

    이번 시간에 소개할 BI는 2006년 발표된 ‘국민연금 BI’입니다. 필자의 판단으로 국민연금 BI는 기존의 상용화된 폰트를 그래픽 디자이너가 재해석한 사례로 보입니다. 참고한 폰트는 한때 브랜드나 상호명에 많이 쓰였던 ‘HY울릉도B’입니다. HY울릉도체는 사각형 틀에 꽉 차 있어 가로쓰기와 세로쓰기에 적합하고, 외형적 특징이 어느 분야에 쓰여도 될 만큼 무난해 회사명으로 많이 활용된 폰트입니다.

    폰트를 사용할 때 디자이너들이 일반적으로 신경쓰고 얘기하는 부분이 ‘가독성’과 ‘판독성’입니다. 가독성은 문장에서 해당 글꼴이 잘 읽히는지를, 판독성은 해당 글자가 짧은 시간에 바로 인식되는지를 가늠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도로 교통 안내 표지판에 쓰이는 글꼴은 외형적 특징보다 2~3초 사이에 해당 지명이 바로 읽히는 판독성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국민연금 BI를 세 가지 주안점에 따라 분석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세로모임꼴 ‘국’, ‘금’의 중성 ‘ㅡ’와 초성 ‘ㄱ’이 연결된 부분.
    폰트 작업 시 중성 ‘ㅜ’와 ‘ㅡ’는 초성 ‘ㄱ’과 구분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두 번째는 중성 ‘ㅣ’의 길이가 ‘국’ ‘금’에 부분적으로 맞춰진 부분.
    폰트 디자인에서 ‘ㅣ’의 길이는 임의로 맞추기보다 종성의 형태에 따라 길이를 달리하곤 합니다. 종성에 따라 중성의 길이가 달라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한글 자소 특유의 다양한 형태를 최대한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유사한 글꼴에서 종성 형태별로 중성 ‘ㅣ’의 길이가 달라지는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아래 윤고딕 700 이미지를 참고하셔도 되겠습니다.

    종성의 형태에 따라 중성 ‘ㅣ’의 길이가 달라지는 예(윤고딕 700)

    세 번째는 속공간을 초성이 커 보이도록 나눠준 부분.
    열려 있는 자소의 경우, 속 공간이 본래 크기보다 시각적으로 더 커 보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다소간 조정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앞서 열거한 세 가지 주안점을 토대로 국민연금 BI를 ‘호리틱 버전’으로 재해석해보겠습니다.


    ‘국’ ‘금’ 중성 ‘ㅡ’와 초성 ‘ㄱ’ 연결부

    ‘국’, ‘민’, ‘연’, ‘금’ 이렇게 네 글자가 모여 있으면 ‘국민연금’으로 즉각 읽히는 데 전혀 문제가 없지만 ‘국’과 ‘금’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폰트 디자이너의 시각으로는 판독성에 다소 아쉬움이 느껴집니다.(아래 이미지 참고)

    물론, 이렇게 한 글자씩 똑 떼어 들여다보는 습성(?)은 아마도 폰트 디자이너만의 직업병일지도 모르겠군요. 호리틱 버전에서는 ‘국’의 ‘ㅜ’, ‘금’의 ‘ㅡ’ 길이를 늘려주고 각 자소마다 공간을 조금씩 조정해주었습니다.

    중성 ‘ㅣ’ 길이가 ‘국’과 ‘금’에 부분적으로 맞춰진 점

    약간 과장해 말하자면 ‘민’과 ‘연’의 서 있는 모양새가 얼마간 위태로워 보입니다. ‘미’와 ‘여’가 금방이라도 오른쪽으로 쓰러질 것 같다고 할까요? ‘민’과 ‘연’의 종성 ‘ㄴ’은 오른쪽이 열려 있는 자소입니다. 즉, 우측 공간이 비어 있어서 시각적으로 중성(‘미’, ‘연’)을 받쳐주는 지지대 부분, 즉 종성이 불안정해 보이는 것이죠. 이를 보완해주는 역할이 바로 중성 ‘ㅣ’의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속공간

    ‘국민연금’을 이루는 ‘구’, ‘미’, ‘여’, ‘그’의 높이를 균일하게 맞춰주면 초성이 커 보이고 통일성 있게 보일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연’의 경우, 다른 글자들에 비해 조형적으로 복잡한 형태이므로 상대적으로 작게 보일 수 있죠. 따라서 전체적으로 속공간을 균등해 보이도록 조정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중성 ‘ㅕ’의 곁줄기가 두 개이니, 초성 ‘ㅇ’을 키워 공간을 조정하는 편이 좀더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 BI ‘호리틱’ 버전
    국민연금 BI 원본(위)과 ‘호리틱’ 버전(아래)

    지금까지 ‘국민연금’ BI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글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기존 폰트를 활용해 로고나 타이틀 작업을 할 때는 특징을 부여하거나 임의의 조정을 거친 뒤 반드시 자간이나 각 자소 간의 공간을 조절해주어야 합니다. 각 글자와 단어가 한 덩어리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지요.(BI 이미지 출처: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 한양정보통신 폰트바다)

    닥터폰트 대표. 1993년 ㈜큐닉스컴퓨터 서체개발실을 시작으로 서울시스템, ㈜모리스디자인, ㈜산돌커뮤니케이션, ㈜윤디자인그룹 등 여러 기업에서 활동했다. 삼성 전용서체(2002), 현대카드 전용서체(2003), 중앙일보 신문 전용서체(2006), 경향신문 제목용 서체(2012) 등 다종다양한 글자를 짓고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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