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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새봄의 미미와 소소 #8 명조 탐구: ‘가로줄기’ ②

    미미하고 소소해 보이지만 글자 완성도를 좌우하는 요소들 ― 명조의 가로줄기 ②


    글. 이새봄

    발행일. 2021년 10월 29일

    이새봄의 미미와 소소 #8 명조 탐구: ‘가로줄기’ ②

    글자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최정호’라는 이름을 한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미미와 소소」에서도 거의 매회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이미 언급을 많이 했던 터라 조금은 지겨울 수도 있겠지만, 그는 현대 디지털 활자 명조계의 아버지다.(고딕계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미미와 소소」 2회 참고.)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명조의 시초가 바로 최정호인 것일까?

    명조의 뿌리를 찾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다. 김진평은 1700년대 이후를 중심으로 명조의 원형에 대해 찾아본 결과 “한글 활자체 최초의 정형은 오륜체[〈오륜행실도〉(1797)의 서체 ― 필자 주]”라 하였으며, 박지훈은 이용제와의 공저 『활자흔적』에서 “특히 〈한성체 4호〉(1884년 이전 추정)와 〈최지혁체 2호〉(1880)는 이후 본문용 한글 활자꼴의 초기형으로 오늘날 한글 활자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또한 같은 책에서 이용제는 ‘박경서’를 설명하며 “조선 말기의 조각공으로 (중략) 현재 한글 활자꼴의 바탕을 마련한 최정호, 최정순, 장봉선도 그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최정호 자신은 본인의 글에서 “명조체는 조선 여인들에 의해 다듬어졌던 한글 궁서체(폰트 궁서체가 아닌 ‘궁체’를 말한다 ― 필자 주) 중 해서체를 다듬은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명조의 원형들
    [좌] 오륜행실도 ―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하여 필자가 수정을 가함
    [중] 최지혁체 2호 ― 출처: 『활자흔적』, 141쪽
    [우] 박경서체 ― 출처: 『활자흔적』, 50쪽

    이러한 연구를 종합해보면 옛 활자 시대(1443~1879) 때 궁체와 〈오륜행실도〉의 활자로 시작하여 새 활자 시대(1880~1949)의 최지혁체와 한성체, 그리고 박경서체를 거쳐, 원도 활자 시대(1950~1988)의 최정호·최정순의 손길로 ‘명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최정호 명조’ 그 이후의 명조들

    그렇다면 오늘날 디지털 활자 시대의 명조는 어떠한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최정호는 ‘명조계의 아버지’라 할 수 있을 만큼 지금 사용되고 있는 명조의 꼴을 확정적으로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용 명조를 만들고자 하는 폰트 디자이너들에게 최정호의 명조는 마치 제주도 어디서나 보이는 한라산과 같은 존재다. 중심에 우뚝 서 있기에 그 위엄을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어서 때로는 나침반의 역할도 하는 그런 큰 존재 말이다.

    최정호가 만든 명조는 원도 활자(납 활자, 사진식자 활자)일 때부터 지속적으로 일반 서적이나 공문서 등의 본문 등에 주로 사용되어왔다. 아마 어르신 중에 최정호의 이름은 몰랐어도 그의 활자로 인쇄된 글이나 책을 단 한 번이라도 읽지 않았던 분은 없었을 것이다. 이후 1980년대 후반 디지털 활자 시대가 도래하여 최정호의 명조 사진식자 원도를 바탕으로 디지털화하면서 최정호 명조가 폰트로 다시 부활했고(SM신명조, SM신신명조, 애플명조, HY신명조, 윈도우 바탕) 이후로도 그의 DNA를 갖고 있는 폰트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져 여전히 본문용 서체로 사용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최정호 명조’의 영향력은 강력하다. 그 형태는 본문용 명조의 ‘고전’이자 ‘정석’이나 다름없다. 오래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 글자 형태가 익숙해졌고 그로 인해 글을 읽을 때 글자의 형태보다는 글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현재 본문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명조 폰트들의 형태가 그 DNA를 공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정호’라는 동일한 DNA를 갖고 있다면 이들을 하나의 계열로, 즉 ‘최정호 명조 계열’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엔 어떤 폰트들이 속할까? 우선 1차적으로 생각해보면 최정호의 원도를 바탕으로 제작된 폰트가 여기에 속할 것이고, 그를 바탕으로 하였으나 디자이너의 의도에 따라 다소 변형된 것 또한 여기에 속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시중에 있는 명조 폰트 들 중에 위와 같은 기준으로 몇개로 추려보았다. SM신명조, SM신신명조AG최정호체, 산돌명조, 산돌명조네오 등이 속하겠다.(물론 이 외에도 다른 폰트들도 포함될 수 있겠지만 객관적인 기준을 두기 위해 폰트 설명에 ‘최정호’라는 표현이 들어 있는 것 위주로 선정해보았다.)

    이들을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각각 자소의 특징적인 형태로 구분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글자의 가장 기본적인 획인 ‘가로줄기’를 가지고 구분해보고자 한다.(다만, 폰트의 원도가 아닌 캡처 이미지로 확인하는 것이니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음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참고] 이 글에 담은 ‘명조 이미지’들은 유료 판매 중인 본문용 명조 폰트를 대상으로 필자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아래 사이트의 ‘미리 보기’ 기능을 활용해 이미지를 제작하였음을 미리 알린다.
    · 산돌
    · 직지폰트
    ·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

    최정호 명조 계열의 특이점: 가로줄기의 ‘부리’

    명조의 가로줄기들

    자, 어떠한가? 굉장히 유사해보이지 않는가? 각 폰트의 굵기가 상이하여 정확한 비교라 할 수 없지만 비교적 비슷한 굵기로 정했으며, 가로너비(width)를 동일하게 맞춘 상태이다. 이제 자세히 비교해보자.

    명조의 각기 다른 부리들

    먼저 이미지 왼쪽에 있는 부리만 떼어서 보자. 서로 다른 형태를 갖고 있다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그래도 여기서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눈다면, 산돌명조·SM신명조·SM신신명조가 하나로, 산돌명조Neo와 AG 최정호체가 나머지 하나의 그룹으로 묶일 수 있겠다. 첫 번째 그룹의 부리는 버선코 형태처럼 보이는데 우아하고 고전적인 분위기를, 두 번째 그룹의 부리는 이보다 날렵한 형태로 현대화된 분위기를 풍긴다.

    형태를 확대해서 살펴보자. 연한 살구색 동그라미 표시된 부분의 형태가 각기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궁체의 획 운필법에서 획을 들어갈 때(기필) 노출되는 ‘붓끝’에 해당하는 곳으로 부리의 시작점이다. 이는 워낙 작은 부분이라 글자가 작아졌을 때는 그 차이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작점의 크기(굵기)에 따라 글자가 단단해 보이거나 날렵해 보이는 느낌을 낼 수 있다.

    이중에 산돌명조가 비교적 도톰한 둥근 형태를 띄고 있으며 AG 최정호체가 제일 작고 동그란 형태를 갖고 있다. 그리고 산돌명조와 산돌명조Neo의 조합과 SM신명조와 SM신신명조의 조합을 보면 먼저 제작된 것보다 나중에 제작된 서체들(산돌명조Neo와 SM신신명조)이 좀더 날렵하고 가느다랗게 생긴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진한 코럴색 동그라미 부분을 보면 이는 기필 때 사선의 방향으로 들어갔다가 수평선을 긋기 위해 붓을 세워 진행 방향을 살짝 바꾸는 부분이다. 획의 꺾임 정도를 보여주며 부리의 굴곡을 나타내는 부분인데 이 또한 서체마다 그 정도가 다르다. 이 부분이 완만한 곡선을 보일 때 유연한 필력의 부드러운 인상을 주게 되고, 반대로 가파른 형태를 이루면 힘찬 필력의 강인한 인상을 주게 된다.

    바로 산돌명조가 가장 완만한 곡선을 가졌고 AG 최정호체가 가장 가파른 곡선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산돌명조Neo 또한 비교적 가파른 곡선으로 되어있는데 거기에다 꺾임 지점을 꼭지점으로 표현하여 보다 절도 있게 보이도록 표현하였다.

    최정호 명조 계열의 특이점: ‘맺음’

    궁체의 획 운필법
    출처: 『꽃뜰 이미경 쓴 한글서예』, 이미경 지음, 학원사, 1982, 11쪽 이미지를 필자가 수정함

    이제 맺음을 볼 차례이다. 먼저 궁체의 운필법에서 맺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가로로 획을 긋다가 이제 맺어야 할 그 자리에서 붓끝을 위로 살짝 올렸다가 오른쪽 대각선 아래로 방향을 틀어 누르고 다시 붓을 세워 왼쪽으로 붓끝을 감추며 획을 맺는다. 이로 인해 맺음의 형태는 부리보다 덩어리감이 있는데, 이를 부리와 동일선상에 두면 가로획이 오른쪽으로 내려가 보인다. 그래서 가로획을 우상향의 사선으로 그어서 위쪽에서 획을 맺는다.

    맺음의 각기 다른 형태

    그렇다면 명조에서의 맺음은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까? 일단 이미지 오른쪽에 있는 맺음만 떼어서 보자. 이 작은 맺음들을 보면 그저 획이 뭉친 것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여기에도 역시 필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필법을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했느냐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다.

    맺음의 확대된 형태를 자세히 보면 상부(중심선의 윗부분)가 마치 언덕처럼 보이는데, 이 언덕은 서체에 따라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내려가기도 하고 혹은 가파르게 내려가기도 한다. 맺음의 형태는 독자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리(꺾임 정도)와 그 결을 같이 한다. 그래서 앞서 부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장 완만했던 부리를 가진 산돌명조가 맺음도 역시 가장 완만하며, 가장 가파르게 보였던 부리를 가진 AG 최정호체도 가장 가파른 언덕의 맺음을 갖고 있다.

    다만 완만한 곡선으로 표현됐던 SM신명조는 맺음에서 언덕의 꼭지 부분이 뾰족한 형태로 표현되었고, 산돌명조Neo는 그와 반대로 부리에서 뾰족한 꼭지점을 표현했다가 맺음에서는 비교적 완만한 형태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필법 중에 붓을 오른쪽 아래로 눌렀다가 방향을 왼쪽으로 꺾게 되는데, 이로 인해 기본적으로 획의 방향성이 오른쪽 아래를 향하게 된다. 이러한 형태는 명조의 맺음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궁체에서처럼 강하게 표현되기보다는 맺음의 끝부분이 오른쪽 아래로 모아지게 함으로써 그 방향성이 약하게 표현된다.

    이는 다섯 서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맺음의 상부에서는 점점 내려가는 언덕의 형태로, 하부에서는 오른쪽으로 갈수록 아래 부분에 살을 더하여 줌으로써 전체적으로 방향성이 아래로 향하도록 해주었다. 다만 산돌명조의 경우에는 상부를 언덕 형태로만 표현해주고 하부는 오히려 오른쪽 위로 살짝 올려 보내고 있어서 전체적인 방향성이 수평 혹은 오른쪽 살짝 윗부분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명조들의 가로줄기 각도 차이

    이제 다시 가로줄기를 전체적으로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궁체의 가로획은 원래 우상향하는 사선의 획이기 때문에 명조의 가로줄기에서도 그 느낌이 나타난다. 굳이 ‘느낌’이라고 하는 이유는 실제로 가로줄기의 뼈대가 사선인 경우도 있으나 그 뼈대가 수평임에도 부리와 맺음의 영향으로 사선의 느낌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지의 왼쪽에 있는 다섯 개의 가로줄기들을 보면 모두 우상향의 사선으로 보인다. 그중 산돌명조가 비교적 경사가 적어 보이고, 그다음 산돌명조Neo·SM신신명조·SM신명조 순으로 경사가 높아지고, AG 최정호체가 이중에서 가장 경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은 실제로도 이 순서대로 경사져 있을까?

    자, 이제 오른쪽에 있는 확대된 가로줄기 이미지를 보자. 가로줄기의 중심뼈대(분홍색 사각형)를 표현한 것이다. 다섯 개 모두 각도가 다를 뿐 모두 사선으로 되어 있다. 가로줄기의 가로중심선을 이용하여 각도를 재보았다.(이는 실제 원도가 아닌 이미지를 대상으로 측정했으므로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음을 미리 알린다.)

    산돌명조를 살펴보면 뼈대의 경사각이 약 0.85°로 보이는 것처럼 다섯 서체 중에서 가장 수평에 가깝게 되어 있다. 부리와 맺음의 형태를 살펴보면 길고 가느다란 부리에 비해 맺음이 굉장히 짧고 뼈대 위쪽으로 살이 도톰하게 붙어 있다. 맺음의 하부 역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상단을 향해 올라가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래서 가로줄기의 뼈대는 수평에 가깝지만 부리와 맺음의 크기감이나 높이를 이용해 시각적으로 사선의 느낌이 들도록 한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가장 경사가 있어 보이는 AG 최정호체를 살펴보자. AG 최정호체의 뼈대는 약 1.6° 경사를 갖고 있는데 이는 SM신명조보다 더 적은 수치다. 그런데도 더 경사져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부리와 맺음이 다른 서체들에 비해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부리의 꺾임 정도도 크고 맺음의 언덕도 높고 가파르게 내려온다. 그래서 시각적인 효과로 원래 수치보다 더 사선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로써 가로줄기 탐구를 마무리한다. 지난 글에서 보았던 명조들의 ‘다름’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면, 이번에 살펴본 최정호 명조 계열들의 ‘다름’은 거의 ‘틀린 그림 찾기’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그린 원도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더 유사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들을 가로줄기만으로 구분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미세한 부분까지 알고 난 뒤 보이는 글자의 세상은 좀더 밝아져 있을 것이다. 그전에는 모르고 지나갔지만 이제는 작은 부분에도 의미가 있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게 되었으니, 그 밝아진 눈으로 주변에 보이는 수많은 명조들을 구별해보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당신을 반길 것이다.

    폰트 디자이너. 호호타입(HOHOHtype) 대표. 2005년 렉시테크에서 폰트 디자이너로 입문해 우리폰트 시리즈, 렉시굴림, 렉시새봄 등을 만들었다. 2013년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타이포그래피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방일영문화재단이 주최한 제4회 ‘한글글꼴 창작 지원사업’ 수혜자로 선정돼 새봄체를 제작·발표했다. 이후 ㈜윤디자인그룹에서 바른바탕체 한자, 윤굴림 700 등을 제작했으며, 현재 새봄체의 두 번째 시리즈를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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