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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침공 #6 교과서 밖 글자를 찾아서

    교과서 밖 글자: 만화책적 세계관의 완성


    글. 엉뚱상상 레터빌런

    발행일. 2022년 04월 07일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침공 #6 교과서 밖 글자를 찾아서

    폰트를 완전히 다르게 즐기기 위해
    읽고 쓰는 도구 너머의 폰트 신세계를 위해
    디지털 환경이 아닌 디지털 ‘시대’의 폰트를 위해
    레터빌런―Letter Villain이 되기로 작정한
    엉뚱상상의 이야기

    [엉뚱상상: 레터빌런]은 타이포브랜딩 스튜디오 엉뚱상상의 ‘레터빌런’ 팀이 어떤 작업들을 하는지, 무슨 생각으로 작업하는지를 소개하는 시리즈다. 벌써 여섯 번째 연재다. 이번 시간에는 레터빌런 팀의 글자관(글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기술해보고자 한다. 우리의 글자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만화책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어쩌다 우리 레터빌런은 이러한 글자관을 갖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한 줄 한 줄 풀어내보려 한다.

    감정 실린 글자는 사랑받는다. 만화책이 그러했듯.

    “교과서는 매일 또 보고 찾고 싶을 만큼 정말 즐겁고 재미있어!”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규 교과 과정을 거치고 최종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교과서를 다시 펼쳐보는 일이 없다. 심지어 수학능력시험을 끝낸 학생들은 교과서를 버리기까지 한다. 왜 교과서는 대중 문화처럼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할까. 왜 사람들은 교과서에 열광하지 않을까. 레터빌런은 이러한 현상을 못내 안타까워 했다.

    글자들도 그렇다. 교과서 같은 글자들, 그런 글자들이 적잖다. 많은 글자들이 교과서처럼 만들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학교 교과서들처럼, 어쩌면 이 글자들도 ‘매일 보고 또 보고 찾고 싶은’ 무언가는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또 이 점이 끝끝내 안타까웠다.

    수업 시간에 몰래 보던 만화책의 재미를 기억하는가? 책상 위에 반듯이 세운 교과서, 그 펼침면에 살포시 포갠 만화책, 그리고 교단의 선생님 쪽과 교과서 이면의 만화책을 정신없이 오가던 반짝이던 눈동자···. 그러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고, 종국엔 빼앗긴 만화책의 등으로 정수리를 맞으며 통한의 낭패감을 맛봐야 했던··· 며칠이 지난 뒤 교무실에 불려가 담임 선생님의 장구한 교시 끝에 만화책을 돌려받을 때의 그 기쁨···!

    이른바 만화책 세대에게는 이런 추억 한두 개쯤은 있을 것이다. 또 그중 일부는 그 추억을 소중히 키워 어른이 된 지금도 과거의 만화를 다시 보고 또 보고 찾으며 소소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이 순수한(!) 독자들을 위해 지금의 만화는 다양한 형태로 몸을 바꾸어 다채로운 플랫폼을 통해 등장하고는 한다.

    자, 그렇다면 질문. 만화책은 왜 교과서보다 재미있는 걸까. 똑같은 정보라도 교과서보다 만화책으로 읽을 때 더 흡수가 잘 된다. 왜 그럴까. 레터빌런이 내린 답은 이거다. 교과서의 균일한 활자들과 달리, 만화책 속 글자들은 인물의 감정 혹은 주변 상황의 느낌에 따라 각양각색이다.(‘고오오오오’, ‘두둥’, ‘쾅’ 같은 만화책 속 의태어들이 어떤 모양으로 인쇄되어 있었던가를 떠올려보라.) 또한, 그러한 글자들은 이미지와 함께 실려 글자 읽는 맛과 그림 보는 맛을 동시에 살려준다. ······그래서, 우리 레터빌런은 만화책적 세계관을 글자에 투영하려는 것이다.

    만화책적 세계관: 글자가 표정을 짓고 말을 한다

    교과서는 정보를 사실적으로 담는다. 만화는 정보를 감정적으로 담는다. 똑같은 정보가 교과서를 거칠 때와 만화를 통할 때 다른 면모를 띤다. 만화는 텍스트 없이 이미지만으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다. 정보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레터빌런은 만화 또는 영화 장르처럼 설명이 필요 없이 형태(이미지)만으로 쉽게 이해되도록 정보를 전달하는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다. 이 방향성을 글자에 응축하여 보여주는 시도를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교과서대로만 글자를 바라본다는 건, ‘여기 이 획은 이런 의미를 담았습니다’, ‘요기 이 요소는 이러저러한 콘셉트를 표현한 겁니다’라고 글자를 설명한다는 뜻이다. 글자에 대한 이러한 시선을 만화책적 세계관으로 변환하는 것이 바로 우리 레터빌런의 관심사이자 주된 작업이다. 설명하기 대신 보여주기, 글자에서 캐릭터와 감정이 느껴지도록 하기, 우리의 글자를 보는 이들에게 자유로운 상상의 기회를 제공하기.

    모범생의 교과서가 아닌 ‘빌런’의 만화책 같은 글자들. 우리는 이 글자들이 폰트의 대중 문화를 형성해주리라 믿는다. 폰트도 영화나 음악처럼 대중 문화의 한 장르로서 검토되고 평론되고 유희되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계속 빌런으로 남아 있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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