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를 완전히 다르게 즐기기 위해
읽고 쓰는 도구 너머의 폰트 신세계를 위해
디지털 환경이 아닌 디지털 ‘시대’의 폰트를 위해
레터빌런―Letter Villain이 되기로 작정한
엉뚱상상의 이야기
1948년생 ‘요잘알’ 미쿡 할머니가 망원동에 오셨다. 아메리칸 브런치 카페를 표방하는 브런치그랜마(Brunchgrandma)다. 망원시장의 친근함과 망원한강공원의 여유로움이 교차하는 바로 그 길. 그렇다. 브런치그랜마는 망리단길 맛집인 것이다. 레터빌런은 브런치그랜마의 로고타입을 제작했다. 식당 특유의 콘셉트인 아메리칸 빈티지 스타일을 듬뿍 반영하되, 망원동 거리의 문화와 정서에 이질감 없이 녹아들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목표였다.
[초기 시안] ‘할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한글 로고타입
프로젝트 초기 브런치그랜마 로고타입 형태의 주제는 ‘할머니의 손맛’이었다. 우리의 할머니들은 배고픈 손주를 위해 한상차림을 뚝딱 준비해내신다. 손자와 손녀의 입에서 “할머니… 배불러서 이제 못 먹겠어요…”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할머니의 얼굴엔 한상차림 못잖은 푸짐하고 따스한 웃음이 피어난다. 비단 한국 할머니들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할머니들의 손주 사랑은 만국 공통일 테니.
한국에 온 미국 할머니 또한 마찬가지. 게다가 이 할머니가 차린 음식점 콘셉트는 ‘미국 빈티지 감성’이다. 빠다(?) 느낌 제대로다. 레터빌런들의 머릿속에 재미난 한글 로고타입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또한, 푸근하면서도 익살스러운 할머니 캐릭터를 개발한다면 로고타입의 시인성이 배가될 것이라 판단했다. 숱한 브레인스토밍과 시안 작업 끝에 세 가지 한글로고타입과 할머니 캐릭터를 만들었다.
[확정 시안] ‘할머니’가 아니라 ‘그랜마’와 어울리는 라틴 알파벳 로고타입
프로젝트 초기에 로고타입 디자인 제안 후 좋은 반응이 있기는 했지만, 한글 대신 라틴 알파벳 로고타입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정해졌다. 식당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기에는 한글보다 영어가 더 적합하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점 할머니’가 아니라 ‘브런치그랜마’ 아닌가. ‘할머니’가 아니라 ‘Grandma’인 것이다.
우리는 아메리칸 빈티지 스타일에 부합하는 해외의 여러 간판 레퍼런스를 조사하면서 새 로고타입 제작을 시작했다. 레퍼런스를 연구하다 보니 옛 간판들이 스몰캡스(small caps, 작은 대문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브런치그랜마의 빈티지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스몰캡스를 활용하기로 했다.
스몰캡스는 소문자의 높이인 엑스하이트(X-height)보다 높게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브런치그랜마의 라틴 알파벳 로고타입은 보통의 스몰캡스 높이보다 더 올려서 제작했다. 그리고 예스러움이 묻어나는 세리프(serif)체를 써서 아메리칸 빈티지 스타일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