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를 완전히 다르게 즐기기 위해
읽고 쓰는 도구 너머의 폰트 신세계를 위해
디지털 환경이 아닌 디지털 ‘시대’의 폰트를 위해
레터빌런―Letter Villain이 되기로 작정한
엉뚱상상의 이야기
레터빌런은 기존 브랜드 이미지를 일관되게 통일하는 전용서체와는 다른,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의 전용서체를 기획한다. 그 사례라 할 수 있는 레터빌런의 대표 프로젝트를 『타이포그래피 서울』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8화 [K-리그 공식 서체](2022), 9화 [평창군 전용서체](2022)에 이어 이번 화는 [OK금융그룹 전용서체](2022)를 기록해본다.
‘탈 엄근진’ 금융그룹의 목소리
‘Original Korean 글로벌 금융그룹’을 표방하는 OK금융그룹은 2022년 고객 소통의 핵심 수단으로 전용서체 [읏맨체]를 제작·배포했다. 왠지 어렵고 딱딱할 것만 같은 금융의 이미지를 친근하고 유머러스하게 전환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친절하게, 위트 있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말을 거는 금융그룹의 목소리’가 콘셉트였다. 고객들과의 인간미 넘치는 소통! 이것이 [읏맨체]의 특명이었다.
서체명을 보고 짐작하셨겠지만, [읏맨체]는 OK금융그룹의 대표 캐릭터 ‘읏맨’과 연결된다. OK금융그룹은 읏맨을 통해 다양한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진행해 오고 있다. 어떻게 보면 든든하고, 또 어찌 보면 어딘가 천방지축 기질도 느껴지는 오묘한 캐릭터 읏맨. [읏맨체]는 이 ‘친구 같은’ 슈퍼히어로의 목소리를 형상화한 글자다. 특정 캐릭터의 성격을 글자로 표현한 국내 최초 ‘캐릭터 서체’인 것이다.
[읏맨체]는 총 3종이다. 힘찬 [읏찬체], 진지한 [읏궁체], 귀여운 [읏뚱체]. 읏맨의 힘차고 진지하며 귀엽기까지 한 캐릭터 콘셉트를 반영한 패밀리 구성이다. 또한 이 세 가지 콘셉트, 그러니까 비주얼 아이덴티티는 ‘탈 엄근진(엄숙·근엄·진지)’을 지향하는 OK금융그룹의 음성이기도 하다.
읏맨과 함께 놀아요 = 읏맨체를 가지고 놀아봐요
[읏맨체]는 2022년 5월 15일 마이크로 사이트를 통해 무료 배포되었다. 5월 15일은 세종대왕의 탄신일[태조6년(1397년) 음력 4월 10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익혀 날마다 편히 쓰도록 창제된 한글처럼, [읏맨체] 또한 그렇게 널리 사용되길 바라는 공익적 목적으로 이날을 배포일로 정한 것이다. 서체뿐 아니라 디지털 굿즈인 ‘부적’도 함께 배포하여 재미를 더했다.
특히 [읏맨체]로 글자를 타이핑하는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읏맨 캐릭터 이모지(emoji)는 남녀노소 모든 고객의 ‘깜짝 웃음벨’이었다. [읏맨체]로 단어, 문장, 문단을 완성하는 일이 읏맨 이모지를 채굴(?)하는 경험이 되는 셈이랄까. 서체를 사용한다는 평이한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서체를 가지고 논다’라는 표현이 좀더 [읏맨체]에 어울린다.
이 같은 아기자기한 재미 요소는 [읏맨체]의 확장성을 높여주었는데, 실제로 [읏맨체]는 OK금융그룹의 다채로운 굿즈에 활용되면서 기업 이미지 제고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고객에게 말을 거는 브랜드의 목소리, 그리고 누구나 가지고 놀 수 있는 디지털 놀이 도구, 게다가 다종다양한 굿즈로의 확장. 이렇듯 [읏맨체]는 기업 전용서체의 가능성을 업그레이드한 사례로 사용자들과 업계로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자음 14종과 모음 1종에 딩벳이 숨어 있다.
타이핑할 때 읏맨과 기타 아이콘이 ‘뿅’ 나타났다 사라진다.
타이핑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캐릭터 이모지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의외성과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약간 진지하게 얘기해보는 [읏맨체] 제작기
OK금융그룹 캐릭터 읏맨은 금융권에서는 이례적인 마케팅 사례로 손꼽힌다. 다소 사무적인 이미지가 강한 국내 금융권에서는 보기 드문 방정맞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극강의 친밀함’이야말로 히어로 읏맨의 초능력이다. 캐릭터 읏맨은 OK금융그룹의 각종 광고, 소셜미디어 캠페인, 굿즈 제작, 그리고 소속 배구단인 ‘안산 OK금융그룹 읏맨 프로배구단’의 마스코트로도 활용됨으로써 금융사와 소비자 간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기업 전용서체 개발 프로젝트는 딱히 특기할 만한 이벤트가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브랜딩의 일환으로 전용서체를 개발·배포한다. 2019년 10월 기준 국내 기관 및 기업, 협회 등 86곳이 전용서체를 개발하여 무료 배포했고, 그 수는 180여 종에 달한다.
즉, 어느 기업이 전용서체 개발을 기획했다면 위와 같은 통계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180종이 넘는 무료 기업 서체들 사이에서 어떻게 변별력을 획득할 것인가, 하는 고민 속에서 자사 서체의 완성도와 매력을 홍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인지 점차 비슷비슷한 서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각 기업의 서체들이 대중으로부터 차별성 있는 모양새로 인지되지 못하고 있다. OK금융그룹 전용서체 [읏맨체]는 이러한 도전적인 시장 환경 속에서 기획된 프로젝트다.
만약 어느 기업이 캐릭터와 서체를 개발한다고 가정해보자. 국내의 경우는 캐릭터, 서체를 별건으로 진행한다. 캐릭터 개발 팀과 서체 개발 팀이 별도로 조직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캐릭터와 서체의 아이덴티티가 일치하기 어려워진다. OK금융그룹 또한 [아프로체(Apro font)]라는 전용서체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룹 캐릭터인 읏맨과 [아프로체]의 아이덴티티가 일치하지 않았다. 이에 OK금융그룹은 대한민국 최초로 그룹 캐릭터와 일관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서체 [읏맨체]를 추가 개발하여 고객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고도화한 것이다.
서체 공개 후 OK금융그룹은 2030 MZ세대를 대상으로 [읏맨체] 사용 후기를 설문했다. 조사 결과 “OK금융그룹의 아이덴티티가 잘 반영되었으며 읏맨 캐릭터가 생각나는 폰트”, “[읏찬체]·[읏궁체]·[읏뚱체] 3종 콘셉트가 뚜렷하고 개성이 있어 타이틀과 SNS 등에서 적절하게 쓸 수 있는 활용도 높은 폰트라고 생각한다” 같은 호평이 이어졌다.
이렇듯 [읏맨체]는 OK금융그룹의 이미지를 활기차게 변화시켰으며 디지털 콘텐츠 및 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고객층에게 색다른 영감을 불어넣었다. 이들은 [읏맨체]의 색다른 디자인, 그리고 캐릭터 딩벳까지 포함된 세심한 서체 구성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