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를 완전히 다르게 즐기기 위해
읽고 쓰는 도구 너머의 폰트 신세계를 위해
디지털 환경이 아닌 디지털 ‘시대’의 폰트를 위해
레터빌런―Letter Villain이 되기로 작정한
엉뚱상상의 이야기
『타이포그래피 서울』(TS) 시리즈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침공] 연재를 마친다. 단, 완전히 닫는 마침표는 아니다. 시간은 힘껏 열려 있고, 마침표 뒤로 어떤 이야기든 새로 쓰일 수 있다.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침공]은 2021년 1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총 14회에 걸쳐 이어졌다. 타이포 브랜딩 스튜디오 ‘엉뚱상상’의 폰트 디자인 팀 ‘레터빌런’ 디자이너 모두가 이 시리즈의 필자였다. 14부작의 서문이자 레터빌런의 매니페스토(manifesto)와도 같았던 1회의 한 부분을 소환해본다.
그냥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맞는 서체를 디자인하자!’라고 간단히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엉뚱상상은 한 발 더 나가보고 싶었다. 매체가 인쇄에서 디지털 디스플레이로 바뀐 지 오래다.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맞는 서체가 이미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서체들은 ‘인쇄 매체 시대에 만들어졌던 폰트를 디지털 디스플레이에 최적화한 것’이다. 그러니까 ‘디지털 시대’에 맞게 만들어진 폰트는 아니다.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침공] #1 그래서, 우리는 ‘빌런’이 되기로 했다
‘디지털 디스플레이’와 ‘디지털 시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본다. ‘디지털 디스플레이’는 미디어가 물성이 바뀐 것이지만, ‘디지털 시대’는 단순히 물성만의 변화뿐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양식 변화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세대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엉뚱상상은 다음 세대의 디스플레이를 위한 서체가 아닌, ‘다음 세대가 경험할 수 있는 서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지금의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침공]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거다.
디지털 ‘환경’이 아닌 디지털 ‘시대’를 위한 폰트 만들기. 이것이 레터빌런의 지상 과제다. 이 과업을 통해 가 닿고자 하는 레터빌런의 목적지는 다름 아닌 ‘폰트 문화’다. 미술, 영화, 음악이 대중에게 감상됨으로써 미술 문화, 영화 문화, 음악 문화를 생성하듯, 폰트 또한 독자적인 영역을 점유하며 무궁무진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 대중 문화의 기수로 받아들여지는 세상. 이곳을 향하여 레터빌런은 나아가고 있다.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침공]은 잠시 멈추지만, 글로 적히지 않는 무수한 ‘침공’이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이 침공들의 면면을 언젠가 다시 TS 시리즈로 소개할 것임을 레터빌런은 약속했다. 그 증표로, 지난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침공] 14부작을 ‘시즌 1’로 명명하기로 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침공] 시즌 1을 마무리하며 끝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그간 레터빌런 내부에서 많은 프로젝트들을 수행해 왔고, 여러분에게 다양한 내용들을 전해드리려 노력했습니다. 잘 전달이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폰트를 완전히 다르게 즐기는 경험, 읽고 쓰는 도구 너머의 폰트 신세계, 디지털 환경이 아닌 디지털 ‘시대’의 폰트 문화를 향하여 레터빌런은 앞으로도 모짜렐라 치즈처럼 쭈―욱, 더 다채로운 볼거리와 내용을 준비하여 [엉뚱상상: 레터빌런의 침공] 시즌 2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시즌 1 연재 기간(2021년 11월 ~ 2023년 1월) 동안 레터빌런을 응원해 주시고 찾아봐 주셔서 압도적으로 감사합니다. 엉뚱상상 레터빌런 팀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