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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균 칼럼 #3 아시아 디자인 네트워크 ‘DNA’의 꿈

    지난 2월 말, 보름 사이에 짧은 해외 출장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이 세 번의 출장을 통해 지난 10여 년 동안 노력해왔던 아시아 디자인 네트워크의 꿈이 현실로 조금 더 다가오게 되었다.


    글. 김경균

    발행일. 2013년 03월 07일

    김경균 칼럼 #3 아시아 디자인 네트워크 ‘DNA’의 꿈

    지난 2월 말, 보름 사이에 짧은 해외 출장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이 세 번의 출장을 통해 지난 10여 년 동안 노력해왔던 아시아 디자인 네트워크의 꿈이 현실로 조금 더 다가오게 되었다. 도쿄에서 하라 켄야를 만나 회의를 하고 왔고, 닷새 뒤에는 교토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가했다. 그리고 다시 사흘 뒤에는 베이징에서 개인전을 오픈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은 도쿄에서, 다케시마의 날에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소식은 교토에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소식은 베이징에서 들었다. 개인적으로 아시아 디자인 네트워크를 구축해야겠다는 큰 구상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투어, 출판, 전시, 워크숍, 심포지엄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 구상을 실천해 왔고, 이제는 그 감춰져 있던 관계망이 이제 조금씩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정치적 관계는 오히려 냉전의 시대로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도쿄에서

    도쿄에서는 하라 켄야를 만나 올해 공동 진행할 수업 협의를 최종 마무리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디자인과 4학년의 내 스튜디오 수업과 무사시노미술대학 디자인과 4학년의 하라 켄야 세미나 수업을 공동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프로젝트의 테마는 ‘익스포메이션(ex-formation) 서울-도쿄’로 정했다. 익스포메이션은 하라 켄야가 지난 10년 동안 진행해 왔던 세미나의 명칭으로 인포메이션과는 대척되는 개념이다. 익스포메이션이란 우리가 평소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객관화시켜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여자, 반숙, 알몸 등으로 테마를 바꿔가며 매년 워크숍과 전시, 출판을 해 왔는데 이번에는 그 테마를 ‘서울-도쿄’로 정하고 두 대학이 함께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매일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친숙하다고 생각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그리고 바로 옆 나라인 일본의 수도인 도쿄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같은 세대의 한국과 일본의 졸업을 앞둔 디자인 전공의 젊은 대학생 시각에서 두 도시를 함께 비교 연구하고, 그 결과를 전시와 출판으로 발표하여 사회와 공유하는 프로젝트이다.

    하라켄야와의 미팅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동질성과 그 차이를 학생들 스스로 느끼고 표현하는 과정을 앞으로 1년 동안 함께하게 될 것이다. 이런 공동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서도 한국과 일본의 디자이너가 경쟁자가 아니라 문화생산의 동반자로서 교류를 지속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일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반목과 갈등의 시대를 넘어 서로 힘을 합쳐 미래를 함께 구상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학기 중에는 하라 켄야와 내가 몇 차례 서로의 학교를 방문하여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름 방학에는 학생들과 함께 서로의 도시를 방문하여 일주일씩의 공동 워크숍을 두 번 개최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과 결과물을 정리해 서울과 도쿄에서의 순회전을 개최하는 동시에 백서를 출판하기로 합의했다. 디자인의 정답은 교실 안에 있지 않다는 것,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 현장을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 이런 생각들을 다음 세대들과 공유할 좋은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하라 켄야와 의기투합했다.

    출판된 익스포메이션 ‘알몸’ 과 ‘여자’

    교토에서

    교토에서는 교토조형예술대학의 졸업작품전 오픈에 맞춰 ‘동아시아에서 크리에이터로 산다는 것은….’이라는 테마의 한·중·일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오랜 친분을 쌓아왔던 츠바키 노보루 교수가 진행을 맡고, 교토를 중심으로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와 고헤이, 상하이를 중심으로 현대미술과 디자인을 겸업하고 있는 판장핀, 그리고 내가 토론자로 함께했다. 이제 아트와 디자인의 장르적 경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문화적인 국경 역시 희미해졌지만, 정치적 갈등의 벽은 오히려 높아만 가고 있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가 동아시아에서 크리에이터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학생들은 졸업 후 자신이 추구하는 크리에이티비티의 좌표를 과연 어디에 찍어야 하는지를 함께 토론하는 자리였다.

     샌드위치에서 제작한 나와 고헤이의 작품

    크리에이터로서 기업이나 지자체의 의뢰에 따라 단순히 조형 활동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화생산자의 입장에서 장르와 국경을 넘어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치적 갈등의 구조 속에서 이런 탈 장르, 탈 국경의 융복합 시대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떤 실천을 해야만 할 것인가. 토론자 가운데 한 명인 나와 고헤이가 운영하는 스튜디오 ‘SANDWICH’는 이런 융합적 공간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스튜디오 ‘SANDWICH’는 교토 외곽에 있던 샌드위치 공장을 리노베이션하면서 생겨난 창작 플랫폼이다. 작품 제작을 위한 스튜디오, 오피스, 다목적 스페이스는 물론, 주방이나 숙박 시설까지 갖춘 이 공간은 나와 고헤이를 중심으로 한 아티스트나 디자이너, 건축가 등 다양한 장르의 크리에이터가 모여 활발하게 콜라보레이션를 전개하고 있다. 우리 학교와 교토조형예술대학과는 지금까지도 매년 여름방학 워크숍을 진행해 왔지만,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한·중·일의 젊은 크리에이터가 함께 연대하여 서로 신선한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교토에서 머물렀던 호텔 ‘Anteroom’ 역시 국경을 초월한 융합적 창작 활동과 교류가 가능한 공간이다. ‘Anteroom’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교토를 방문하는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호텔과 1년 이상의 장기 체류를 원하는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아파트가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1층의 다목적 스페이스와 식당에서는 전시, 워크숍, 세미나, 공연, 파티 등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anteroom’이란 다음을 위한 공간, 대합실을 의미한다. 호텔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마치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이 모인 곳에 놀러 오는 것 같은 편안한 마음으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신선한 자극이 넘치는 생황을 통해서 자신의 크리에이티비티를 확장해 나갈 기회의 공간인 것이다. 나 또한 서울 도심의 낙후된 지역에 크리에이터스 레지던시와 갤러리, 카페, 라이브러리 등이 공존하는 스페이스를 준비하고 있다. 역시 적극적인 문화 교류를 위해서는 인적 네트워크를 튼실히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그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창의적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 만들기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교토 여행에서는 앞으로 좋은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아시아의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베이징에서

    베이징에서는 영광스럽게도 내 개인전을 개최하게 되었는데, 그 전시장은 북 디자이너 뤼징런이 디자인 문화 발전을 위해 작년에 새롭게 만든 공간이다. 작년에 칭화대 교수를 정년퇴임 한 그는 젊은 디자이너와 학생들에게 보다 다양한 전시와 워크숍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종이 회사를 설득해 종이가 테마인 복합문화공간을 제시하였다. ‘Jingren’s Paperlogue(징런의 종이 이야기)’라는 이름의 이 복합문화공간에는 페이퍼 쇼룸, 서점, 갤러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워크숍이나 세미나 등의 행사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 이번 내 개인전에도 중국의 유명 디자이너들을 포함해 100여 명이 참석해 전시와 세미나 자리를 빛내주었다. 내가 진행한 세미나 주제는 ‘종이의 길’로 ‘한일 종이교류전’을 시작으로 작년 서울에서 개최한 ‘페이퍼로드, 지적 상상의 길’에 이르기까지 종이를 찾아다닌 지난 30년의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종이는 2,000년 전 중국에서 발명되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고, 또한 중동으로 거쳐 유럽으로 전파된 종이의 길을 역사적으로 되돌아보았다. 과거에는 실크로드, 페이퍼로드, 티로드, 세라믹로드, 누들로드 등의 좋은 문화 교류의 길이 있었지만, 서구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아시아 문화 교류의 길이 전부 끊어져 버렸다. 우리가 함께 그 길을 다시 연결하여 세미나, 워크숍, 전시, 투어 등의 보다 폭넓은 교류를 추진해 나가자고 제안했고, 이날 참석한 중국의 많은 디자이너가 크게 공감해 주었다.

    개인전                                                     징런스페이퍼로그

    지금 한·중·일은 문화의 길 트기가 필요하다. ‘도리’라는 말이 있다.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한다.’고 할 때의 그 ‘도리’ 말이다. 그런데 원래 ‘도리(道理)’란 길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길’이란 ‘타오’이다. 즉 우주 태극, 그 기(氣)의 소식을 ‘道’라고 쓰고 타오라고 읽는다. 이 사상이 종교화되어 도교를 낳았고,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다도, 서도, 유도 등을 만들었다. 마츠오카 세이고는 길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道’라는 문자는 목을 빼 머리(首)를 늘어뜨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상형하고 있다. 즉, 족장들의 무리가 희생자의 머리를 가지에 매달아 이것을 앞세워 나갈 때, 그 진행에 의해 산야를 헤치고 만들어지는 루트가 바로 ‘道’인 것이다. 따라서 ‘도리가 통한다’는 것은 원래 길이 제대로 닿아있다는 의미였다.

    누군가에 의해 먼저 한 개의 길이 생겼고, 거기에 또 하나의 길이 더해져 이 두 개의 길이 만나는 곳이 교차로(辻)이다. 이것은 길이 서로 통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길이 만난 것은 X자의 기원이자 ‘文’자의 기원이기도 하다. 이 X가 서양에서는 예수의 십자가가 되었고 동양에서는 불교의 卍자가 되었다고 한다. 아놀드 토인비는 ‘교차를 시작하는 것이 문화이고, 교차를 끝내는 것이 문명이다.’라고 했다. 길과 길이 만나는 곳에는 시장이 형성되었고, 그 시장은 점차 도시로 발전되면서 문화가 교류가 정착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힘든 속도로 무장한 디지털 미디어가 넘쳐나고 있는 시대에 종이라는 아날로그 미디어를 통해 그 문화 교류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천천히 차라도 마셔가면서 말이다. 한·중·일은 더 이상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상생의 동반자라는 것을 재인식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길 트기, 즉 도를 닦는 일이고, 도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동안 꿈꿔왔던 아시아 디자인 네트워크 ‘DNA(Designer’s Network of Asia)’가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김경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다수의 심포지엄과 전시회 기획,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십인십색』, 『일본문화의 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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