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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항식의 Designology #12 일본 디자인 문화와 천년의 두려움 ②

    일본 디자인에 대한 다소 비판적 서술 ② ― 기호학자 신항식의 디자인-학(design-ology) 강의


    글. 신항식

    발행일. 2014년 09월 18일

    신항식의 Designology #12 일본 디자인 문화와 천년의 두려움 ②

    구슬이 많아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소리나 조형도 그렇다. b 발음이나 동그라미에 정해진 뜻이 없으니 /bab/, /beaf/, 해, 달처럼 모습을 꿰어야(articulation) 뜻이 만들어진다. 르네상스는 인간의 눈길로 이를 꿰어 대상의 모습, 크기, 거리, 명암, 색상, 질감에 대한 과학 혁명을 일으켰다. 신의 눈에 꿰었던 세상을 인간에게 되돌려주었으니 르네상스는 곧 휴머니즘이었다. 이제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 18세기 에도시대의 일본의 화가들은 시점을 주워들어 모방했지만 세상을 꿰지는 못 했다. 길을 걷다가 멈춰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 지도에 맞추어 시선을 두는 것이다. 독립된 눈이 없으니 구도는 빌어 왔지만 화면이 부동적이다. 사물은 늘어섰는데 상호관계가 희미하다. 제 눈으로 세상을 배열하려고 시점을 선택한 것인데 이미 지도가 있다면 시점은 왜 받아들였을까?

    [좌] 그림 1, U. Toyoharu(1735–1814), View of a Kabuki Theater, 1770 [우] 그림 2, U. Toyokuni (1769–1825), The Actors Ichikawa Danzō IV and Iwai Kumesaburō, 1800

    일본의 근대 그림쟁이들은 시점에서 포착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리지만 세부 묘사와 포커스는 고려하지 않는다. “철수는 배가 아프다.”라 하지 않고 “철수, 배, 아파”처럼 말을 끊어 그린다. 즉 어휘는 좋은데 문법이 단순하고 독해가 약하다. ‘가부키 극장'(그림 1)의 소실점은 무대에 가 있지만 무대도 관중도 실내 어느 한 군데도 포커스는 없다. 즉 사람은 많이 그려 넣었지만 사건이 없어 어디에 집중하여 그림을 보아야 할지 포커스를 찾을 수 없다.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지나가는 군중을 볼 때와 같이 인물의 크기도, 행동도, 생김새도 서로 균등해 보인다(그림 1, 2, 3, 4). 화면의 상하좌우도 개인의 표정마저 균등하다. 내용이 어찌 되든 무조건 형상을 균등 배열하려 노력하는데, ‘그림 2’의 경우 상위의 남자가 화면을 장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도의 핵심은 여인의 얼굴에 있다. 사선 구도(/)를 통해 만들어지는 제스처의 중앙에도 여성이 있다. 여성이 차지하는 공간이 남성과 균등 분할되어 있다. 남녀의 사회적 위치는 불균등하지만, 형식은 균등한 것이다. 문법요소가 균등(철수=배=아파) 하면 뜻을 포착하기 어렵다.

    [좌] 그림 3 [우] 그림 4, A. Hiroshige(1797–1858)의 작품들

    ‘그림 3’을 보면, 소실점과 무관한 중간 인물을 기준으로 나무가 좌우로 5개, 사람이 4명씩 균등 배열되어 있다. 집과 나무의 무게중심도 그렇다. 1/2 수평구도를 중심으로 하늘과 땅이 균등 배열되어 있는데 이는 ‘그림 7’에서 보듯이 하늘, 강, 다리가 사이좋게 1/3씩 화면을 균등분할하는 것과 같다. ‘그림 4’는 중간의 등불을 중심으로 자연과 실내가 좌우로 갈리는데 도무지 이 풍경이 작가의 시선에 의한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 구도는 있지만 화면은 평면적이다. 한편, 사선이 움직임을 만들고 수평이 부동을 만든다. 형상이 움직임의 주체가 아니다. 움직임을 사선으로 포착하겠다는 작가의 관점이 아니라 사선으로 그리면 움직임이 발생하고 수평으로 그리면 부동이라는 공학을 따른 그림이다.

    [좌] 그림 5 구한말 조선여인(출처 바로 가기)  [우] 그림 6 메이지시대 일본 신여성(출처 바로 가기)

    일본의 인물(화)에는 표정도 제스처도 별로 없지만 무엇보다도 시선이 없거나 돌아가 있다. 남녀 불문, 고관대작이나 게이샤라 하더라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사진이라면 시선이 카메라 바깥을 향하고 있다. 그림 5는 구한말 조선의 서민 여인이고 ‘그림 6’은 일본의 세련된 신여성이다. 카메라가 두렵다 해도 전자보다는 후자의 표현력이 더 컸어야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 여인의 자세와 표정, 태도에 구김살이 없다. 정면을 바라보며 시선을 카메라에 던진다. 반면 일본의 신여성임에도 표정이 없다. 얼굴은 정면을 향하지만(게다가 최대한 정면 사진을 골랐다) 왼쪽 어깨 부분이 뒤로 빠져 있다. 눈길은 카메라 밑으로 낮게 흘러내린다. 게이샤의 연출 사진을 제외한다면, 메이지 시대의 인물사진이란 것들이 모두 이렇다.

    [좌] 그림 7, A. Hiroshige, One hundred views of famous places of Edo, 1857
    [우] 그림 8 A. Kiyoshi, The 6th Exhibition of Contemporary Japanese Sculpture, 1975

    시선이 있으나 없으나 의미 없고, 형상이 동등하고, 표현 의지가 없는 형상? 그럼 그림과 사진은 왜 그리고 찍었을까. 그림 7을 보면 수직선의 빗줄기는 5도 정도 사선으로 교차하며 내린다. 저 멀리 어둠 속에 무엇인가(비의 원천) 있어 다른 형상이 호들갑스레 끌려다닌다. 수평적인 배와 다리, 사람의 움직임, 제스처가 비와 같은 각도로 구부러진다. 숲의 형세, 배의 나무모양이 비처럼 교차적이며 사람도, 다리 난간도, 교각도 불필요할 정도로 반복 교차된다. 만약 모티브가 비가 아니라 바람이나, 눈, 파도였다면 그에 따라 배열될 것이다.

    화면을 > 모양으로 3등분 하여 근, 중, 원경으로 장면(귀가, 어부, 바깥세상)을 풀어내는데, 3 장면 모두 화면 바깥에 귀결점을 가진다. 숲은 어둠 뒤편으로 어부는 좌측으로, 행인은 우측으로 화면을 빠져나가려 한다. 화면에 집중할 수 없다. 삶의 의미가 화면에 없는 것이다. “철수는 배가 아파 말을 못 했다.”처럼 배가 아프고 나서 말을 못했다는 시간의 순서를 이야기라 하고, 말을 못한 이유가 배가 아파서라는 정보를 줄 경우 이를 내러티브라 한다. 일본 그림에는 이야기도 내러티브도 보이지 않는다. 장면만 있다. 정보를 설명하지 않고 관조하며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한다. 병풍처럼 화면을 풀어보아야 한다. 정보의 목적이 분명한 일러스트레이션도 이야기를 멀리한다. 그림 8의 포스터는 얼굴, 뇌, 꽃, 무지개, 구름, 비 같은 도상부터 색상표, 원형그래프, 기초조형의 상징까지 배열시켜 놓았다. 그러나 이를 연결 짓는 이야기는 없다. 여러 형상이 형태인지 되도록 인간의 뇌를 그렸지만 이미지의 상호 관계도 없다. ‘조각 전시회’ 제목 밑으로 각종 이미지가 무작위로 모여들 뿐이다. 설명하지 않는 그림이 갈 길은 뻔하다. 작은 그림을 마구 배열하거나 문자로 도배를 하거나, 형상이나 문자 하나를 정면에 강하게 부각시키고 나머지 배경을 축소시켜 버린다. 일본 그림의 흔들리지 않는 무표정 형식이다.

    노인의 팔이 침대 위로 펼쳐 떨어지는 장면이 죽음을 의미할 때처럼 노인의 진짜 모습이 화면 바깥에 있으면 이를 환유(metonymy)라 한다. 반면 창밖에 낙엽이 떨어지는 장면이 노인의 죽음을 의미할 때처럼 진짜 모습이 우리의 머릿속에 있으면 은유(metaphor)라 한다. 따라서 은유가 환유보다 더 넓고 깊은 차원의 창작 작업에 쓰이는 편이다. 눈이 아니라 뇌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일본 그림은 환유다. 보여주되 다 보여주지 않고 설명도 없다. 형상은 화면 속에, 에너지는 바깥에 있으니 장면이 찰나적일 수밖에 없다. 찰나의 그림을 계속 그리면 화면이 패턴화되어 화투나 엽서, 카드에 가져다 쓰기 적합하다. 인쇄만화에는 최적합인데 만화의 이야기는 프레임 내부가 아니라 그림을 이어붙이는 편집과정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환유는 일본영상산업의 특징을 이룬다. 이야기를 바깥에서 통제하는 캐릭터 디자인과 섭외인물 중심의 영상이 만발하고 실사로는 표현이 부족해 그래픽을 함부로 끼어 넣는 조합형 영상디자인이 그렇다. 화면 내부의 은유적 상상력이 부족하니 내비게이션을 위한 통로구실만 하는 옥외간판형 웹 디자인도 수두룩하다. 이는 인쇄만화에 비하여 프레임 조작이 어려운 웹툰 환경에서 쩔쩔매는 일본만화계의 속사정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자기 시선 없이 형상을 배열하고, 개성을 숨기고, 정면을 피하며, 환유이며, 이야기가 아닌 장면을 강조하는 일본의 시각문화는 한마디로 ‘입 닥치라’의 무사, 막부의 전통을 보여준다. 바깥에 누군가 쎈 놈이 있으니 안에서 말을 조심하는 딜레마다. 이 딜레마가 또한 일본디자인 전반에 걸쳐있다.

    [좌] 그림 9, 일본의 네모 수박 [우] 그림 10, Shingler uchida(출처 바로 가기) 

    수박을 균등하게 배열시키는 방법은 형태를 네모로 만드는 것이다(그림 9). 어린아이들에게는 재밌어 보일지 모르겠으나 이는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사물을 배열하는 공간의 한계에 충실한 것이다. 수박에 대한 인간의 경험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그림 10’은 길거리 금속 벤치다. 금속의 휘어지는 특성에 충실하고 거리공간의 무한계의 한계에 충실하다. 양쪽 끝선이 없으니 정처 없다. 찰나적이다. 벤치의 모든 기능(앉음, 쉼, 대화, 응시)을 균등화 해 놓았으니 앉을 수도, 쉴 수도, 대화할 수도, 응시도 어려운 벤치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단지 요가에나 필요할까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재질과 공간 그 자체를 위한 디자인일 뿐이다.

    그림 11, 일본의 각종 현대의자, 탁자들(출처 바로 가기) 

    ‘그림 11’은 합판, 섬유, 유리로 만든 의자와 탁자다. 사람이 앉아 몸을 돌리거나 등을 긁거나 다리를 꼬거나 뒤로 감을 때를 감안하면 의자며 탁자며 불안하기 짝이 없다. 사람이 사물을 고려하여 행동을 취해야 한다. 앉아서 움직이지 말라 명령을 하니 방의 구석에 놓여야 몸이 편할 정도의 것들이다. 인간의 삶이 아니라 재질과 바닥, 혹은 공간과의 소통만 만들어내고 있다. 단순하고, 최소한의 형태와 기능으로 효과를 보려는 일본의 미적 전통이란 결국 공학정신 이외의 것이 아니다. 공학이 문제가 아니라 공학에 인간과 디자인을 종속시키니 문제다.

    주전자는 물을 들고 따르는 물건이다.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 주전자가 크면 든다는 개념을, 작으면 따른다는 개념을 가진다. 일본 주전자는 뜨거운 김이 올라올 뚜껑부분에 버릇처럼 손잡이를 달아 ‘든다’는 공학 개념에 충실하다. ‘물을 따른다’는 인간관계 개념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젓가락은 음식을 ‘집는다’는 손가락의 개념보다는 ‘찌르거나 자른다’는 칼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주전자(출처 바로 가기)와 젓가락(출처 바로 가기)

    일본의 실내외 디자인을 보면, 형태와 공간을 변화시키기보다는 배열과 크기를 통해 디자인의 균형을 잡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형태를 줄이고, 문양이 없으며, 기능중심의 마인드로서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배열과 크기마저 동일하면 마지막으로는 색을 통해 형태와 기능의 차별성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동일하게 생긴 것들을 늘어놓거나 위계화 시켜 동일형태가 자연스럽게 다른 형태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한다(그림 12, 그림 13). 새로운 무엇이 공학적 유기성에 의해 나오길 바라고 기존 것에 유기화 되기를 원한다.

    [좌] 그림 12, 효고현의 히메지성, 1609, 출처: 플리커 sungtae kim(CC BY-NC-SA) [우] 그림 13, 일본의 전통 실내디자인(출처 바로 가기)

    실상, 한글만큼 감각의 유기성이 강조되는 디자인도 없을 것이다. 양순음(ㅁ, ㅂ 등)은 생긴 것이 부드럽고 치찰음(ㅌ, ㅊ 등)은 거칠다. 개방음(ㅏ, ㅑ 등)은 선 바깥으로 향하고 폐쇄음(ㅓ, ㅗ 등)은 선 안으로 접어든다. 각각의 청각음소가 시각으로 구현되는 고도의 디자인이다. 시각으로만 문자를 만든 일본인들이 한글을 이해하기 만무다. 창문을 본 따 한글을 만들었으리라 상상하는 철부지가 있을 정도로 일본 타이포그래피에는 음성학적 상상력이 없다. 하이쿠가 문장과 구를 잘라내듯이 형태소와 음소를 잘라 내거나 문자 중간에 다른 형상을 함부로 끼워 넣는다. 형태소와 음소를 잘라내는 습관이 없는 서양문자를 활용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음성학적 고려 없이 문자를 자르고 넣고 쌓는다(그림 14).

    그림 14, 일본의 타이포그래피 활용(좌부터 출처1 바로 가기출처2 바로 가기출처3 바로 가기)

    CI작업에서 문자를 잘라내는 것은 모험이다. /아버지/처럼 한글은 음소와 형태소가 긴밀하게 합쳐서 기능하는 문자이기 때문에 이런 모험(아♥버지)을 잘 하지 않는다. 형태소 중심의 서양어 또한 이를 꺼린다. 처음부터 그림문자였던 중국어라면 모를까, 일본인들이 이를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한다. 음성에 상관없이 문자를 잘라내는 습관은 환유적 상상력에서 오는 것이다. 주인님의 기침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듯이, 엄지와 검지 발가락으로 슬리퍼(조리와 게타)의 기능을 대표하듯이, 독도를 보고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떠 올리듯이, 미국을 서구라고 일괄하듯이 문자나 상징의 일부분만 떼어내어도 뜻이 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그림 15).

    그림 15, 일본의 환유적 CI와 조리, 게타(좌부터 출처1 바로 가기출처2 바로 가기출처3 바로 가기)

    롤랑 바르트(기호의 제국, 2008년, 도서출판 산책자)가 잘 보았다. 일본에서는 모든 실물이 기호(표현수단)이듯이 인간도 기호다. 기호 아닌 실물을 기호로 만드는 습관은 실물 아닌 기호를 실물로 만드는 습관도 같이 키운다. 분명 기호인데도 실물인 양 하는 것이다. 이를 물신화(fetishism)라 하는데, 신체의 일부분을 보고 전체를 느끼는 태도, 드라마 속 악인을 진짜 악인이라 믿는 정신상태, 군인을 인간이 아닌 무기로만 활용하는 인해전술과 가미가제와 같다. 대도시 어디서나 커다란 간판을 볼 수 있지만 일본 건물간판의 특이한 점은 회사건물과 간판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점이다(그림 16). 인절미 가게를 인절미 모양으로 대시하는 경우와 유사하게, 회사의 명칭으로 건물을 대신하려 하는 것이다. 건물 전체를 감싸는 간판은 소통의 기호에 불과한 상표를 실제 생활위로 덮고자 하는 제국적인 욕망을 드러낸다. 기호를 실물인 듯 강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서 앵글로색슨 문화가 가진 기호의 제국적 성격을 지적한 바 있는데, 일본도 그와 유사하다. 반면 실물을 기호화한 대표적인 예는 일본의 고산수 정원(그림 17)이다. 자갈과 모래를 가지고와서 바닷물인 양 바꿔쳤다. 바위를 들고 와서 산이라 표현하고 잔디를 심어 들판이라 표현했다. 물론 일본의 분재도 마찬가지이다. 실물과 실물, 기호와 기호, 기호와 실물을 서로 혼동한다.

    [좌] 그림 16, 일본의 건물간판 문화(출처 바로 가기)  [우] 그림 17, 일본 대덕사 고산수 정원(출처 바로 가기)

    너와 내가 기계의 부품처럼 균등하고, 시간이 공간에 멈추고, 형상에 대한 설명이 불가하고, 사건임에도 이야기가 없는 찰나이며 기호와 실물이 구분되지 않는 일본 디자인은 공학의 문화를 가졌다. 개인이 없고 당장의 결과에 목을 매며, 강압적이고 조직에 디자인이 종속한다. 디자인을 위한 공학이 아니라 공학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일본 디자인은 공학의 변화에 존재가치를 위협받는 운명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과학의 천재인 폰 브라운, 오펜하이머, 아인슈타인 등은 공학은 공업에 머물러야지 사회에 나오면 안 된다 했다. 인류의 보편도덕에 반하기 때문이다. 공학이란 엔진(Engine)을 운영(~ing)하는 일이다. 엔진(에너지)이 세부부품까지 영향을 끼쳐 균형, 관리되도록 통제하는 과정이다. 한번 에너지를 작동시키면 최종결과물을 만들어 낼 때까지 모든 부품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처음의 통제가 끝까지 가야한다. 부품간의 기능이 강조되며 순서와 위계가 철저하다. 쓸데없는 부분은 존재할 수 없다. 피드백(반성)이 있다면 오로지 노이즈(세부결함)를 걸러 내기 위한 것이다. 기계주변에 사람이 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굴러가기만 하면 진리”, “결과가 좋으면 시발점이 좋고 시발점이 좋았으면 다 좋은 것”이라는 기능과 효율이 전부이다. 공학에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무엇을 위해 기능하는지, 누구에게 효율적인지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이 없다. 일본 디자인이 그런 문화 아닌 문화에 젖었던 것이다.

    일본은 근대경제를 공학으로 착각했다. 1600년대 서구중세의 길드가 해체되고 공장(factory)이 들어서자 기술에 불과했던 ‘industry’의 뜻이 제조/공업(manufacture)으로 변했다. 1850년이 지나면 제조, 유통, 소비를 모두 아우르는 경제체제 개념으로 정착했다. 마케팅과 광고, 디자인, 자본주의 이론도 본격화되어 사람들은 이를 산업시대라 불렀다. 반면 일본에서는 그런 개념전환이 없었다. 산업하면 제조/공업을 뜻했다. 면직물, 자기, 시계, 향수, 단추, 안경, 가죽제품 같은 수공업 그리고 유통과 소비가 제한적인 중공업중심 국가였다. 1900년대부터는 마케팅 없는 식민지에 익숙했다. 1,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통해 만들면 팔리고 가만있어도 주문이 쏟아지던 시대도 겪었다. 마케팅 능력은 낮고 제조능력이 높았다. 산업이 공장개념을 가졌으니 산업 디자인을 공업(工業)디자인이라 쓰는 습관도 생겼다.

    일본은 근대정치도 공학으로 착각했다. 나라의 통치제도인 국가(State)를 나라(Country)로 착각했다. 개인(Individual) 개념은 아예 이해하지도 못해 사람(human)과 혼동했다. 핏줄공동체인 민족(nation)을 통치의 대상 즉 국민으로 알아먹었다. 번역도 그리했다. 어느 단어에도 국(國, State)이라는 표현이 없음에도 patriotism(동포애)을 애국심, traitor(배신자)를 매국노, national anthem(민족가요)를 국가로 번역했다. 막부일본의 공학 습관은 민족, 나라, 사회, 민중, 개인을 일목요연하게 국가로 흡수했다. ROK, UK, USA는 국가명이고 Korea, England, America는 나라명인데, 일본은 그런 구분이 없다. Japan이 곧 Japan(日本國)이다. 그러하니 독일의 나치처럼 사회와 국가, 개인과 국민을 혼동했다. 권력제도에 불과한 국가 혹은 대표자인 천황에게 충성했고 파시즘을 애국심으로 알았다. 나라와 민중을 사랑했던 사람을 매국노로 몰았다. 민주주의를 배운 지식인들은 국가와 민족주의도 극복하지 못한 채 동양평화네 세계시민입네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에 마음을 피신시키기도 했다. 이런 엉터리 인문학이 메이지시대이래 일본을 관통했다.

    메이지 정권설립 공표일이 1868년 1월 3일. 한 해의 시간표를 공학적으로 맞추었다. 슬로건은 부국강병. 모델은 군국 프로이센이었다. 군비체제를 갖추자마자 청일전쟁을 일으켜 3억 5천 엔의 보상금을 빼앗아 75%를 군비로 썼다. 자유무역을 못 배워 외교는 강권적이었고 전쟁용 중공업에 목을 매었다. 1907년에는 이웃나라 조선의 화폐를 멋대로 개혁하고 통신을 확장하여 침탈에 들어갔다. 조선을 합병한 것은 1910년이었지만 수탈은 이미 시작되어 1907년 200만 엔이었던 일본의 국가순이익이 1917년에는 1500만 엔으로 불어났다. 이 때에도 GNP의 50%가 군사비로 쓰였다. 조선과 대만수탈을 통해 번 돈으로 전쟁을 위한 집체교육의 학교를 짓고 군사항구를 만들고, 침략의 도로를 닦았다. 1차 대전 특수는 엄청났다. 영국이 빠져나간 인도와 중국, 동남아시아가 시장으로 변해 일본제품 90%를 수출했다. 공업이 5배나 발전했지만 제품의 경쟁력은 없었다. 디자인도 에도시대의 패턴을 반복했다.

    일본은 근대문화와 근대인마저 공학으로 착각했다. 1912년 일본 군부정권은 기계의 스위치를 올리듯이, 모든 것이 첫 단추에 있다고 믿었다. 시민과 군인에게 툭하면 하는 말이 ‘(처음의)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이었다. 출신학교, 중등학교 성적이 평생을 좌우했다. 학생들에게 번호표를 붙였고 전공일치를 강조했으며, 사람을 기계처럼 때리고 조이고 기름 치면 되는 줄로 알았다. 기합(氣合)이라 해서 집단으로 두들겨 패면 군인과 학생의 기가 합쳐질 줄 알았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지 않고 실험실의 시뮬레이션에 매달렸다. 결정이 한번 떨어지면 상황이 반대로 벌어져도 처음의 억지를 계속 부렸다. 한번 공격하면 후퇴가 없어 자국 군인을 몰살시키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다. 총알을 아끼고 목숨을 쉽게 소비했다. 원자폭탄이 오히려 군국 일본정부의 자국민 몰살행위를 저지하는 길이라 했던 맥아더의 말이 변명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근대중국의 유교 공산주의가 개인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습관을 키웠다면 근대일본의 사무라이 자본주의는 당장의 질서에 종속하는 경제, 정치, 문화를 키웠다. 중국인이 “나 말고 저 분에게 물어보라”는 무법인치의 해결책을 제시할 때, 일본은 “하면 된다”는 무뇌억지를 해결책이라고 내어 놓았다. 생각은 위에서 하는 것이지 자기가 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일본 군인정신이고 또한 공학정신이었다. 싸우거나, 싸워서 지거나, 싸워서 홀로될 두려움에 위에서 시키는 데로 했다. 시키지 않는 일은 질서에 대한 반항으로 이해했다. 그러니 인간을 피하고 조직만 강조했으며, 형식에 내용을 감금했다. 죽는 것이 싸우는 것 보다 쉬웠으니 토론과 비판문화를 멀리하여 패거리에 끼거나 구석에 파묻히는 것을 선호했다.

    민중이 아니라 영웅이 승리를 이끈다는 중국의 엉터리 개인숭배 문화가 북한에 뿌리를 내렸듯이, 인간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일본의 엉터리 군사, 공학문화가 한국의 정당, 기업, 군대, 학교 안에 뿌리를 박았다. 일본 디자인의 주류 리스트를 챙겨보라. 유니버셜, 스탠다드, 매뉴얼, 개발지표형의 ‘차렷!’ 디자인이다. 한번 만들면 더 이상 디자인할 수 없는 죽음의 디자인이다. 한국인들에게 오버랩 되는 것이 있지 않은가. 디자인 공학, 찰나를 중시하는 인지 디자인, 창의성을 한 방에 보내려는 뇌의학 디자인, 디자인을 통제하는 매뉴얼 지표연관 디자인, 실험실을 나오지 않는 앵글로색슨의 내용에 일본의 형식을 가진 반사회적 디자인이 여기저기 보인다.

    일본의 뒷간 안에 들어가 밥을 먹으면 아무리 새 밥을 지어 주고 고개를 돌려도 뒷간 밥이다. 필자가 일본문화를 공부한 지 3년 동안 수천 일러스트레이션과 디자인을 살폈지만 그에 대한 분석은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다. 그냥 좋다거나 작품의 주변만 빙빙 둘러대는 말 못할 언술이 대다수였다. 일본에 대한 비난이 난무하는 한국에서 일본 디자인에 대한 비평을 찾기 어렵다니 이게 무슨 기만인가. 일본 디자인을 말함으로써 한국에서 받게 될 불이익이 두려운 것 일게다. 그래도 그렇지 70년을 변소에 앉아 살면 되나? 이제는 그만 바깥으로 나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짜 밥 먹고 살아갈 방도도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신항식 
    현재 한양대학교 초빙교수 겸 SSBC 연구소장.
    저서로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시각영상 기호학〉, 〈디자인 이해의 기초이론〉 등이 있고, 〈재현의 논리와 미학의 재구성〉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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