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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항식의 Designology #4 문화와 21세기 디자이너

    “디자인에 중독되면 디자인에 해를 끼친다”는 말을 곱씹으며 ― 기호학자 신항식의 디자인-학(design-ology) 강의


    글. 신항식

    발행일. 2013년 05월 22일

    신항식의 Designology #4 문화와 21세기 디자이너

    나는 영문과를 나와 언어학과 이미지학을 전공했다. “디자인을 하려면 디자인에 적절한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Lorraine Wild)라거나 “디자인의 핵심은 민중과의 소통이다.”(Victor Papanek)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당황했다. 당연한 말을 왜 쓸데없이 반복할까. 그럼 디자인은 문화나 민중에 관심이 없었다는 말인가. 알고 보니 무관심이 진짜였다. 디자인을 ‘사물의 기능에 맞춘 형태작업'(Bauhaus)으로만 알아온 지 100년이 넘어가는데 정작 그 ‘기능’이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지 않았던 디자인 세계였다. 그러하니 사물의 기능이 복잡해지면 기능을 단순하게 한다든가(Minimalism), 굿 디자인이라는 불분명한 단어를 만들어 지금껏 경험한 여러 필요항목을 적당히 나열시키곤 했다. 사물의 기능이란 인간의 정신세계가 사물에 발현된 것이라는 사실을 수 없는 디자이너들이 알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한국의 사례로 본 디자인과 문화의 관계

    인간의 정신세계는 뇌의 자극과 반응(디자이너들은 이것만 지겹도록 붙잡고 공부했었다)으로 알 수 없다. 디자인이 그렇게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정신은 민족, 지역, 사회, 젠더, 시대문화별로 구분되며 그런 토대에 근간을 둔 디자인일수록 창조성을 드러낸다. 뇌 기능을 조금만 벗어나면, 디자인이 접할 문화의 영역은 우주만큼 넓다. 문화를 접하기가 두려워 눈을 감으면 창의적 디자인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한국의 예를 통해 약간이라도 디자인과 문화의 관계를 살펴보자. 한번 접해보면 그리 두려워할 일도 실은 아니다.

    2009년 모 기업연구소가 개척형, 고민형, 혼동형, 현실순응형으로 나누어 한국인의 정체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한국인 74%(4명 중 3명)가 현실순응형이었다. 이 유형은 안정, 복종, 무반성, 위기대처 능력부족 등의 설문으로 구성된 것이다. 서양사회에 많다는 개척형과 고민형에 비하면 거의 정반대이다. 물론, 정체성 설문이란 것은 인간 본연의 것이 아니라 특정시대가 만들어 놓은 특정정서를 측정하는 것뿐이다. 연구소는 2000년대 한국인에게 현실순응형이 많은 이유로 대가족제도, 대기업문화, 군사문화를 들었다. 이 3가지 문화의 공통점이 ‘위계질서’, ‘가부장’인 만큼 가부장적인 위계성이 현실순응의 인간을 만드는 핵심인자라는 결론 내릴 수 있다. 높고, 강하고, 큰 상대에게 종속하는 정서이자, 거꾸로 보면 높고, 강하고, 크게 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정서이다. 하나씩 사례를 보자.

    한국의 군사문화(플리커 대한민국 국군 CC BY-NC-ND)

    태안반도에 기름을 쏟은 대기업에 원상태 회복을 요구하기는커녕, 100만 명이나 달려가서 기름을 공짜로 닦아준 국민이 한국인이었다. 설비투자와 기업몸짓 불리는데 외국 돈을 빌려 쓴 대기업이 망할 것 같으니 국민 세금을 쏟아부어 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금가락지 빼서 국가와 대기업에 가져다주었던 순둥이(?) 국민이 또한 한국인이었다. IMF의 부당한 요구에 저항했던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멕시코 국민과 사뭇 다르다. 국민을 막무가내로 부려 먹었으며 폭력을 일상으로 행사했던 대통령을 선호하는 반면, 부드러웠던 대통령을 놀려 댔던 국민이 또한 한국인들이었다. 이런 국민은 저항도 가부장적으로 했다. 꼭 위계적인 조직을 통해 국가에 저항하려 했고 중요인물이나 장소를 중심으로 일을 꾸미려 했다. 즉 회장님 중심이다.

    더 높고 더 강하고 더 크게

    높고, 강하고, 큰 상대에게 무조건 종속하는 정서는 국가단위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 개인에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폭력배들이 백주에 가스통에 불붙여 폭력을 행사해도 노인이라는 이유로 제압하지 못하는 젊은 경찰이 있다. 반면 그 노인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젊은 검사에게 끝없이 복종한다. 이성 교제 기준으로 ‘키 큰 남자’ 혹은 ‘대머리’를 선호하거나 무시하는 여성은 세계적으로 극히 드물다. 그러나 한국여성은 그리한다. 애인에게 배신당하면 위기를 대처하지 못해 차선의 이성을 급히 찾아 자존심을 회복하거나 배신이 두려워 아예 양다리를 걸친다. 양다리를 부도덕한 것으로 보며, 배신당하면 따지고, 설득하고 재결합을 위해 노력하는 서구의 연인들과 사뭇 다르다. 초중고에 다니는 자식이 반에서 1등이라는 사실을 자랑하는 OECD 국가 중 유일한 부모가 또 한국인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OECD 국가의 초중고교는 등수를 거의 따지지 않을뿐더러 불가피하게 등수를 도입한 경우라 해도 부모는 아이가 1등이란 것을 걱정스러워 한다. 다른 부분에서 분명 하자가 있을 것이며 행여 아이의 사회관계가 어긋날까 두려워서 그렇다. 차나 아파트의 크기에 따라 사람의 위계를 지우려는 ‘크기의 정서’를 가진 이들도 한국인이다. 특히 이 경우는, 필자의 세계 주거문화 연구를 통틀어 세계적으로 단 하나의 유례가 없다.

    언론과 교육도 그렇다. 미국과 서구, 정부와 엘리트, 재벌과 대기업, 군대와 경찰, 서울대 및 특목고에 대한 자세가 절대 종속적이다. 미국신문이나 방송내용을 그대로 베끼는데 도가 튼 언론사들이다. 대학교수들은 컴퓨터 DB를 위해 짜 맞춘 미국의 논문작성법을 거리낌 없이 모방한다. 미국과 서구의 것은 무조건 높고, 크고, 강한 것이라 믿는 것이다. 정부, 재벌, 군대의 무관심 속에서 시민이 자살하면 “평소 지병도 앓았다”거나 “학업과 가정불화의 스트레스” 혹은 “부대원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우울증이 있었다”면서 국가는 아무런 책임이 없고 단지 국민 자신이 잘못한 것으로 몰아붙인다. 국민은 그저 그런 줄 안다. 서울대는 최선이고 특목고는 무조건 선이다. 대학이나 중등교육을 특성화시킬 생각은 없고 위계화시키는 데에만 민감한 한국 언론들이다. 이렇게 2000년대 한국인의 정서가 만들어져 왔다.

    문화적 편견, 상상력의 장애 요인

    높고 강하고 큰 상대에게 무조건 종속하는 한국인의 정서는 디자인 문화를 구현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을 보자. 1980년대 한국의 저항 민중미술이 독일 순회전시에 나갔을 때 현지로부터 ‘가부장적인 그림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비판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형태를 단순하게 처리한 굵은 선, 강한 컬러의 대조, 거친 면 처리, 국민의 자학적 주제 등이 서구인들 눈에는 위계적이고 폭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광고가 대표적이다. ‘높다(잘났다, 뭔가 있다)’, ‘약하다(늙어 보인다, 없다)’의 상징으로 남자의 키와 머리를 파악하는 한국여성의 사고방식은 미디어, 광고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된다. 키 큰 남자는 실업자로 쓸 수 없고, 대머리 남자는 연애장면에 쓸 수 없다. 2000년대 한국인의 문화적 편견은 세계를 설득하는데 상상력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노인도 사회의 일원이라는 상상력이 한국 영상디자이너들에게는 없다. 드라마에서 항상 한복, 양장을 입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최불암, 이순재식 패러디로 밖에는 사용하지 못한다. 양다리는 있지만, 화해의 아이디어는 한국디자인의 상상력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 근거도 없이 사용하는 일등, 최고, 최다, 유일, 세계적, 역대 등 지자체 심벌마크 슬로건도 세계에 내어 놓기에는 폭력적이다. 콘크리트처럼 강하고 크고 높은 한국 공간 및 건축디자인은 ‘행복’이 아니라 ‘대단한 것’의 아이디어만 추구하게 한다. 문화와 디자인의 관계는 이런 것이다.

    민중판화가 오윤(1946~1986)의 작품(글의 내용과 관계없음)
    경쟁 문화의 지자체 슬로건

    2000년대 한국적 감수성이 그렇다면 거기에 기대어 디자인하면 된다. 그러나 산업이 모두 세계화된 21세기, 한국디자인은 한국적 감수성이나 세계 어디에도 융합하거나 화해하지 못하는 절름발이 디자인으로 남아 있다. 이 사태를 어찌할 것인가? 특별한 방법은 없다. 단지, “디자인에 중독되면 디자인에 해를 끼친다.”(Andy Altmann)는 말을 상기코자 한다. 진정한 디자인을 하려면 디자인으로부터 잠시 떨어질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엮어진 21세기, 디자인은 더욱 심하게 엮어져 있다. 디자이너는 회사와 아틀리에를 잠시 벗어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살피고 사람들과 함께하며 긴 호흡을 쉬어 볼 생각을 해야 한다. 학제적 영역에 충실히 하는 디자이너만이 21세기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항식
    현재 한양대학교 초빙교수 겸 SSBC 연구소장.
    저서로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시각영상 기호학>,
    <디자인 이해의 기초이론> 등이 있고, <재현의 논리와 미학의 재구성>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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