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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항식의 Designology #7 ‘대체 테스트’와 컬러의 체계

    흑과 백의 체계에서 ‘흑·백·은’ 삼각 체계로 ― 기호학자 신항식의 디자인-학(design-ology) 강의


    글. 신항식

    발행일. 2013년 11월 20일

    신항식의 Designology #7 ‘대체 테스트’와 컬러의 체계

    여행을 떠날 때면 흔히 가방 크기를 줄이는 법이다. 그래서 아이브러시 대신 면봉을 가져가도 되나, 샴푸 대신 비누를 써도 되나, 반바지를 수영복으로 그냥 사용해도 되나, 여행지에서 고추장을 구할 수 있나 등을 따져서 조금이라도 짐을 덜 싸서 가져가려 한다. 제 편리함에 따라 이것저것 대체할 만한 것을 찾아서 대체가 되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필수용품이니 따로 가져가야 한다. 이것이 당신의 여행용품 필수항목 챙기는 방법이다.

    외국어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배운다. 이를 대체 테스트(Commutation Test)라 한다. 말할 때의 필수사항을 챙기는 방법이다. 영어의 /coffee/와 /coppee/는 대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발음이 동일해서 대체가 가능하다. 한국어에는 /coffee/의 /f/ 음가가 없어서 그냥 /p/음가를 대체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실험을 원한다면, 한국과 미국의 카페에 들어가서 두 사람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coffee, coppee를 달라고 말하면 된다. 미국에서는 한 사람에게만, 한국에서는 두 사람에게 모두 커피를 가져다줄 것이다. 외국어 발음, 단어, 문장을 배운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런 대체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플리커 Frédéric BISSON (CC BY) 

    대체가 불가능한 것만 찾아내어 영어나 한국어의 알파벳, 단어가 정해지며 이를 언어체계(Langue)라 한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를 체계의 구성요소(Elements)라 한다. 당신의 여행용품 체계라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필수 체계가 되는 것이 아니듯이, 당신에게 말이 통한다고 남에게도 통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남의 체계를 모방한 모든 요소는 체계적인 존재로서의 가치도 없다. 체계적인 요소로서의 가치가 없는 요소는 기존체계의 기생적인 존재가 되거나 아니면 체계와 충돌하여 무너지게 되어 있다.

    대체의 방식은 민족, 지역, 사회의 문화체계를 만들어 낸다. 디자인이 성립시키는 문화의 원리도 이와 같다. 점, 선, 면, 컬러, 크기, 공간의 대체 테스트를 해 가면서 디자인의 소통을 이루어 낸다. 그것이 얼마나 체계적인가 하는 문제는 오로지 조형의 역사를 이해하는 디자이너의 역량에 달린 것이다. 얼마 전 새누리당이 당의 컬러를 붉은색으로 바꾸더니 민주당은 파란색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들의 컬러 대체테스트 방법이 참 재미있다. 새누리당은 정치적으로 보수라서 서구의 보수정치 컬러의 체계 그대로 파란색을 사용해 왔다. 파란색은 1,200년대 영국을 제외한 유럽 왕실에서 특별히 사용된 정통 왕실 컬러이며, 1,900년대 이후로는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공화당의 보수 컬러다. 반면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는 민주당은 서구에서 오랫동안 민중의 컬러로 알려진 붉은색을 사용하지는 않고 적당히 대체된 노랑 혹은 하늘색을 사용했다. 한국사회에서 붉은색은 특별한 거부감을 지닌 공산주의의 컬러였으니 말이다. 그것이 한국 정치의 파생적인 컬러체계였다.

    그랬던 두 정당이 컬러 정체성에 혁명을 일으켰다. 새누리가 이전 파란색에 붉은색을 대체했고, 민주당이 하늘색과 노랑 조합의 기존 컬러를 파란색으로 대체시킨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저런 혁명을 일으켰을까? 정치이념이 변했나? 전혀 아니올시다. 당직자에게 그 이유를 물어볼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응답을 해 줄 리 만무라는 것을 우리 국민은 잘 알고 있으니 이들이 지금껏 해 왔던 행동을 참고하여 이 혁명을 해석해보자.

    먼저 새누리당의 붉은색 대체 이유라면 파란색과는 반대 컬러인 붉은색으로 바꿈으로써 기존의 보수 이미지(꼴통이라고도 비난받았던)를 벗어나겠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컬러의 미적 감수성에 정면으로 반하는 단순한 전략이다. 빨갱이라는 꼬리표를 즐겨 사용했던 한국의 보수집단에게 반하는 컬러이자, 파란색을 통해 유지해 왔던 보수 정치이념을 바꾸지 않은 채 정반대의 이미지 컬러를 사용했으니 말이다. 다른 이유라면 붉은악마 이후로 붉은색에 대한 감수성이 꼭 정치적으로만 윤색되어 있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붉은악마가 지닌 애국심을 새누리당이 가져가겠다는 도둑놈 혹은 동냥 컬러 의식일 수도 있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미국의 보수 공화당 컬러가 서구 일반의 청색과는 다른 붉은색이니 그것을 따라가자는 친미 사대주의일 수도 있다. 이랬든 저랬든, 새누리당의 컬러 대체 방식에서는 정상적인 정치문화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제 민주당의 파란색을 보자. 이것은 새누리당 옛 컬러이거나 예전 극보수 정당의 컬러다. 민주당이 이제는 보수 이념을 가지기로 서로 합의했는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는 표를 받기 어려울뿐더러 당내의 반발이 있었을 터인데 그랬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으니 말이다.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보자. 일단 새누리당에 비하여 후발적으로 당 컬러를 바꾸었다. 한국 2대 정당 경쟁구도로 보면 새누리당의 붉은색에 대항마로 내세운 파란색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경쟁상대의 치마를 붙들고 늘어진 찌질이 컬러가 된다. 다른 이유라면 미국의 민주당이 파란색이니 그것을 따라간 친미 사대주의 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라면 평소에 파란색이 부러웠다든가, 아니면 당대표들의 선호색이었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민주당은 거의 소아병 수준에서 정치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두 당의 컬러 대체 테스트에는 체계도, 역사도, 정치도, 줏대도 없는 것이다.

    컬러의 역사는 언어만큼이나 체계적으로 움직여 왔다. 한국의 오방색이 음양오행과 주역의 원리에 맞추어 실생활에서 활용됐고 그 진하디진한 디자인의 역사가 오색 비빔밥에서부터 저녁밥상의 밥(백), 김치(적), 콩자반(흑), 나물과 국(황), 시금치(청=초), 길거리 튀김집(어묵, 떡볶이, 튀김, 순대)까지 펼쳐져 일종의 음식체계를 이루는 사실과 같다. 한국 도시에 도착한 외국인은 길을 걷는 한국인의 의상으로부터 오색으로 시야를 정리한다. 간판도 그렇다. 사용할 수 있는 컬러야 많지만, 한국인이 선택해 왔던 컬러의 감수성은 결국 5가지 범주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서구와 문화를 교류했어도 한국의 전통컬러의 체계란 것이 그리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플리커 Crossett Library (CC BY-NC-SA)  

    서구도 그렇다, 붉은 왕실 영국과 파란 왕실 프랑스는 사이좋게 십자군 전쟁을 떠나 초록의 이슬람과 싸웠다. 그래서 유럽의 파랑은 아군, 보수, 내면을 의미해왔고 붉은색은 바다 건너 독자적인 힘을 가진 마침표의 의미(강조, 끝냄, 혁명, 독립)를 지녀왔다. 영국의 붉은색이 미국으로 건너가 보수정당의 컬러로 쓰인 것은 영국과 미국의 혈맹과 종속관계를 의심 없이 보여준다. 아울러 초록은 서구인에게 오랫동안 이교도 이슬람의 화학 즉 독약의 컬러, 초인적인 힘을 가진 비인간의 컬러였다. 마스크, 슈렉, 외계인의 피의 컬러였다. 이리 보면 초능력 아기공룡 둘리는 서구의 컬러 감수성을 모방한 것 아닌가. 공룡이 어찌 초록색인가 노란색이지. 링컨이 남북전쟁을 앞두고 지폐를 초록 일색(그린백)으로 만들었을 때 북부 미국인들은 거기서 일종의 초인적 힘을 보았을 것이다.

    동서양이 서로 교차하는 부분도 있지만, 서양 근대사에서 나타나는 흰색의 체계도 무시할 수 없다. 흰색은 생명과 삶(존재)을 드러내 주는 보조체계를 지녀 왔다. 검정 문자를 드러내 주는 흰색 바탕 종이, 새로운 생명을 감싸주는 아기보, 음식을 올려주는 접시, 몸의 형상을 드러내 주는 비누의 흰색이 그렇다. 사물을 드러내는 보조체계를 벗어나 흰색이 저 스스로 형상이 되어 버리면 유령으로 이미지화 한다. 서구의 마귀는 검은색이지만, 유령은 흰색이다.

    흑백의 조화가 명료한 문서는 곧 지식을 상징했다. 중세 이래로 지식은 신부와 수사들의 몫이었고 이들의 흑백 의상을 체계화했다. 아직도 흰색셔츠에 검은색 정장은 스마트한 의상조합으로 알려졌다. 지식=흑백의 체계는 근대사회에 들어와 첨단지식의 컬러를 다시금 체계화한다. 열차, 사진기, 영상기, 전화기, 자동차, TV,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첨단컬러가 흑과 백 중심이란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컬러의 체계가 그래서 그런 것이다.

    인간의 생명과 음식을 지지해주는 흰색의 상징체계도 후발 체계를 만들어낸다. 생일 케이크, 속옷, 생리대, 침대보, 약품, 약품 포장지, 식탁보를 지배하는 흰색 컬러가 그렇다. 몸의 형상을 지지해 주는 흰색도 체계화했다. 육체 외부의 때를 벗겨 주는 욕조와 육체 내부의 때를 배출시키는 변기, 얼굴의 형상을 드러내는 비누, 이의 형상을 드러내는 치약, 제2의 피부로서 옷을 세탁하는 세제가 모두 흰색에 의해 체계화했다. 롤랑 바르트가 지적했듯이 너무 견고한 체계는 오래갈 수 없다. 그래서 몇 가지 변이형이 끼어들게 되어 있는데, 첨단 기술에 은색이 끼어들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였다. 첨단지식의 범위에 금속성의 의미를 가지고 끼어들어 첨단 기기가 지녔던 흑백의 체계 안으로 서서히 들어와 흑-백-은의 삼각체제를 이루었다. 물론, 흰색의 다른 체계에서도 약간의 변이가 나타나고 있긴 하다. 그러나 마치 의사가 붉은색 가운을 입지 못하듯이, 컬러의 체계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함부로 대체 테스트를 했다가 브랜드 이미지를 함부로 해하는 경우도 여전하다.

    T. S. Eliot은 전통의 역사 속에서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때 개인의 역사적 정체성마저 유지된다고 했다. 일본강점기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전통이 무너져 갔던 한반도였다. 그럼에도 미학적 감수성만은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곳곳에서 발견한다. 남의 것을 가지고 와서 자기 것에 함부로 대체하지 말 것이다.

    신항식
    현재 한양대학교 초빙교수 겸 SSBC 연구소장.
    저서로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시각영상 기호학〉, 〈디자인 이해의 기초이론〉 등이 있고, 〈재현의 논리와 미학의 재구성〉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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