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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호의 문화와 저작권 #7 저작권, 건축과 사진을 차별하다

    건축저작물과 사진저작물의 법적 차이 ― 언론학 박사 손수호의 ‘크리에이터를 위한 저작권 상식’ 강의


    글. 손수호

    발행일. 2020년 09월 25일

    손수호의 문화와 저작권 #7 저작권, 건축과 사진을 차별하다

    예술에 위계가 있을까. 위계(位階)란 지위나 계층의 등급을 일컫는다. 답은 “없다”이다. 각 장르는 고유의 미덕과 특성을 가진 채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공동체의 발전에 이바지한다. 대표적 예술단체인 예총(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조직을 보면 건축, 국악, 무용, 문학, 미술, 연극, 영화, 음악, 사진, 연예 등 총 10개 분야로 나뉘어 있다. 각자 대표성을 인정할 뿐 우열이나 등급은 없다.

    그러나 굳이 뿌리를 찾자면 문학, 음악, 미술이 순수예술의 바탕을 이룬다. 문자, 소리, 형상이라는 3요소가 인류 문화를 뒷받침해온 주역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에 비해 느지막이 예술의 대열에 합류한 장르가 건축과 사진이다. 예술과 기술의 경계에 자리하면서 건축은 독립성이 낮은 점, 사진은 기계 의존도가 높은 점이 특징이다. 저작권의 측면에서도 보호의 범위와 정도가 다르다. 살짝 차별하는 것이다.

    건축저작물·사진저작물을 바라보는 법적 시선

    건축의 독립성 문제는 건축주라는 존재에서 비롯된다. 그는 막강하다. 회화와 비교하면 관계가 선명해진다. 근대 이후 그림을 주문하는 경우는 드물다(초상화 같은 특수 분야는 다르지만). 이에 비해 건축은 주문에 맞춰 작업이 진행된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고객은 시장에서 작품을 고르는 것이 미술의 메커니즘이라면 건축은 건축주가 작품 아닌 건축가를 고른다. 화가가 혼자서 고독한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 건축가는 끊임없이 건축주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그게 건축의 숙명이다.

    건축저작물에는 ‘파노라마의 자유(Freedom of panorama)’가 작동되는 점도 세계공통이다. 공공장소에 영구적으로 설치된 건축물을 일반 공중이 사진, 동영상, 그림 등으로 만들어 배포해도 괜찮다는 원칙이다. 대놓고 공중의 이익을 위해 저작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건축물을 지어놓고 천으로 가릴 수 없으니 이 또한 건축의 운명이다.

    우리 저작권법도 제35조에서 ‘파노라마의 자유’를 도입하고 있다. 개방된 장소에 항시 전시되어 있는 미술저작물 등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이를 복제하여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미술저작물 등’에 건축이 포함된다. 다만 건축물을 건축물로 복제하지 말도록 하고 있다. 개방된 장소 등에 항시 전시하거나 판매 목적의 복제도 금하고 있다.

    사진은 어떨까. 건축과 더불어 저작권의 영역에 들어온 역사가 길지 않거니와 인간의 영감보다 기계 의존도가 높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 실제로 소설이나 회화, 작곡에 비하면 기계의 역할이 큰 것이 사실이다. 기계의 조작은 예술가가 아닌 엔지니어의 몫 아닌가. 카메라의 높은 가격도 기계성을 강조하는 데 한몫했다. 지금 중고 사이트에 들어가 ‘핫셀블라드(Hasselblad)’를 치면 고급 승용차 한 대 값이 뜬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진에서 창작적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장르와 동일한 대접을 받는다. 다만 창작성을 인정하는 기준이 엄격하다. 대법원은 사진저작물에 대해 “피사체의 선정, 구도의 설정, 빛의 방향과 양의 조절, 카메라 각도의 설정, 셔터의 속도, 셔터찬스의 포착, 기타 촬영방법, 현상 및 인화 등의 과정에서 촬영자의 개성과 창조성이 인정되어야 저작물에 해당된다”고 보았다.(2001. 5. 8. 선고 98다43366 판결)

    이에 따라 제품 자체만을 충실하게 표현한 광고사진은 단순한 기술의 차원이라고 보고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한다. 풍경사진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피사체의 촬영 그 자체는 아이디어로 보았고, 자연경관은 만인에게 공유되는 창작의 소재로서 독점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풍경사진의 저작권을 인정할 경우 다른 저작자나 예술가의 창작의 기회 및 자유를 박탈한다고 파악했다.

    사진저작물 이용 시 ‘발행연도’ 확인해야 하는 까닭

    사진을 차별한 흔적은 보호기간에도 남아있다. 지금은 모든 저작물의 보호기간이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동일하지만 사진의 경우 발행연도를 따져야 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저작권을 다룬 1957년법에서 다른 저작물은 보호기간을 ‘사후 30년’으로 정하면서 유독 사진은 ‘발행 후 10년’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87년법에 와서 모든 저작물이 ‘사후 50년’으로 통일됐고, 2013년 들어서는 한‧EU간 FTA협정에 따라 ‘사후 70년’으로 연장되었다.

    결국 사진저작물은 1987년 7월 1일이 아주 중요한 분기점인데, 촬영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1976년 12월 31일 이전에 발행된 사진의 보호기간은 종료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에 비해 1987년 7월 1일 시점에 10년의 보호기간이 끝나지 않은 사진, 즉 1977년 이후에 촬영된 사진은 사망 후 70년까지 보호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다만 1957년법상 예술작품을 촬영복제한 사진은 예술작품의 저작자 사망 후 30년의 보호기간이 적용된다. 학문적·예술적 저작물을 위하여 촬영된 것이라면 그 학문적·예술적 저작물과 동일한 보호기간을 부여한 것인데, 이 특이한 조항은 이후 법 개정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사진저작물의 권리자나 이용자는 늘 해당 저작물의 발행연도를 살펴야 한다. 우리 사진예술의 터전을 닦은 임응식 선생(1912~2001)을 예로 들어보자. 그의 대표작인 ‘구직(求職)’의 발표연도는 1953년이다. 당연히 1957년법을 적용받아 1963년에 보호기간이 만료돼 누구든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1977년에 발표된 ‘가을’은 사후 70년의 보호기간을 적용받는다. 사진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요소가 없지 않겠으나 이 또한 사진의 역사이니 어쩔 수 없다 하겠다.

    언론학 박사. 울산 출생. 경희대학교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향신문 기자, 국민일보 문화부장 및 논설위원,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저서로 『책을 만나러 가는 길』, 『문화의 풍경』, 『도시의 표정』(이상 열화당) 등이 있다. 건국대, 경희대, 동아방송예술대, 숙명여대, 중앙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인덕대학교 교수,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국민일보 객원논설위원, 『복지저널』 편집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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