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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호의 문화와 저작권 #5 저작권 나눔의 가치

    언론학 박사 손수호의 ‘크리에이터를 위한 저작권 상식’ 강의 ― 저작권 공유 문화가 생겨난 이유


    글. 손수호

    발행일. 2020년 08월 28일

    손수호의 문화와 저작권 #5 저작권 나눔의 가치

    ‘공유’의 의미는 다의적이다. 문면으로 보면 ‘公有’는 ‘私有’의 반대이고, ‘共有’는 ‘專有’의 대척점이다. ‘公有’는 공공이 소유하고 있다는, 다시 말해 아무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공적 영역(public domain)이다. 주인이 없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원래 私有였던 재산이 公有가 되었다면 이는 원래의 소유자가 소유권을 포기한 경우에 해당한다. 일단 公有가 된 재산은 다시 私有 재산으로 환원될 수 없다. 누구도 마음대로 이를 처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共有’는 ‘sharing’의 결과를 나타내는 ‘common’의 뜻이다. 즉, 전유 내지 독점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의미이다. 주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느 사유 재산처럼 소유자가 엄연히 존재하되 독점적 이용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이용을 허락한다. 이는 민법 제26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동소유의 한 형태인 共有와는 구별되어야 하는 데, 민법상의 共有는 복수의 당사자 사이의 공동소유로 共有者 사이에 권리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저작권 제도에서 언급하는 ‘共有’는 소유자와 이용자의 권리 사이에 차이가 엄연하다. 이용자는 이용의 권리만 있을 뿐 그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할 수는 없다.

    ‘公有’와 ‘共有’를 혼동해선 안 되는 까닭

    공유를 둘러싼 혼선 가운데 하나는 ‘공유’를 ‘公有’로만 이해하거나 ‘公有’와 ‘共有’를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유’라는 논의를 이념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거나 사유재산제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윤종수는 저작물 공유는 사유를 거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적인 이용을 양보하자는 것이고, 독점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제공을 기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레식(Lawrence Lessig, 하버드 로스쿨 교수 겸 사회운동가)은 법률상 저작권이 소멸되어 일반인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 즉 어떤 형태의 저작권에 의해 창작물이 보호되지 않아 공중의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하였다. 박성호는 디지털 환경을 반영하는 공유 개념은 공동소유권, 정보의 공유, 공적인 소유를 각각 지향하거나 모두 포함된 넓은 개념으로 파악하였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저작권 공유(sharing copyright)는 레식과 박성호, 윤종수의 의견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다. 즉, 공정이용이 가능한 공적 영역(public domain)을 기본으로 하되 권리자가 스스로 자유이용을 허용함으로써 독점이 배제된 상태(common)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카피레프트 개념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전개되는 저작권 공유운동과 그 실천으로서의 정보공유 라이선스는 법적 측면에서는 public domain을, 사회운동 측면에서는 common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 공유’ 개념의 뿌리는 세계인권선언

    저작권 공유의 정신은 세계인권선언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는 인간이 과학기술의 혜택을 고루 누릴 권리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인간의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또 2002년에 열린 ‘정보사회를 위한 세계정상회의(WSIS: World Summit on the Information Society)’에서도 지적재산권과 공공이익 간의 균형을 주창하였다.

    공유론자들은 노동의 성격에 대해 진공상태에서의 성취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모든 지적 생산물은 앞서 이루어진 학문적 성과에 보태질 뿐이며, 노동의 결과물로서의 지적 업적은 재능에다 운의 요소가 결합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작권이 창작의 촉진에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오히려 다른 창작의 기회를 박탈하는 측면도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대한 독점론자들의 반론도 무성하다.

    저작권 공유가 실천되는 현장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운영하는 ’공유마당‘이다. 여기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가게를 연상시킬 만큼 나눔을 실천하는 사이버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기간이 만료돼 자동으로 공유영역에 들어온 저작물은 물론이고 각종 기증저작물이 많다. 분쟁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폰트만 해도 안중근체나 김훈체 등 처음부터 자유이용을 전제로 개발된 글꼴이 수두룩하다.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CCL(Creative Commons License)

    국제적으로는 CCL의 활용도가 높다. 사이버 시대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1년에 설립된 CC(Creative Commons)는 2002년 독자적인 라이선스인 CCL을 개발해 보급했다. 인터넷 공간에서 모든 사람이 저작권 행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저작권자가 권리의 성격을 밝힐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각국의 저작권법은 저작재산권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저작물의 이용을 허락할 수 있고, 허락을 받은 자는 개별적인 계약을 통해 일정한 조건 안에서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게 돼있다. 이에 따라 CC는 실제로 많이 쓰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용방법 및 조건을 중심으로 몇 가지 유형의 표준 라이선스를 마련해 저작자와 이용자가 개별적인 접촉 없이 이용허락의 법률관계가 발생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CCL은 자유와 책임을 강조한다. 첫째, 자유로운 이용을 허용하되 저작권자의 의사에 따라 일정하게 제한한다. 둘째, GNU GPL(GNU General Public License: GNU 일반공중사용허가서)과 같은 공동체적인 가치를 추구하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하며, 소프트웨어를 제외한 저작물만 대상으로 한다. 셋째, 현행 저작권 제도 안에서 움직이므로 이용자가 CCL 조건을 위반하면 저작권 침해로 본다. 넷째, 무료. 다섯째, 세계적인 시스템이다. CCL은 저작자 표시(attribution), 비영리(noncommercial), 변경금지(no derivative works), 동일조건 변경허락(share alike) 등 4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한국도 공공저작물의 민간 이용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2012년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를 도입하여 ‘공공누리’로 칭하면서, 일정한 조건에 따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조건만 준수한다면 기간 제한 없이 모든 저작재산권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CCL의 정신을 존중하되 공공저작물로 좁혔고, 이용 형태도 단순화한 점이 특징이다. 나는 CCL을 개발해 수많은 저작권 분쟁을 예방하도록 이끈 로렌스 레식 교수의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노력을 높게 평가한다. 기회가 된다면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고 싶다. 요컨대 독점의 가치, 독점의 의사가 있는 저작물은 확실히 보호하되 그렇지 않은 저작물은 널리 나누는 것이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언론학 박사. 울산 출생. 경희대학교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향신문 기자, 국민일보 문화부장 및 논설위원,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저서로 『책을 만나러 가는 길』, 『문화의 풍경』, 『도시의 표정』(이상 열화당) 등이 있다. 건국대, 경희대, 동아방송예술대, 숙명여대, 중앙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인덕대학교 교수,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국민일보 객원논설위원, 『복지저널』 편집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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