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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호의 문화와 저작권 #4 저작권 공유의 아이콘 ‘수달’

    일찍이 수달은 저작권 공유 문화를 실천했노라 ― 언론학 박사 손수호의 ‘크리에이터를 위한 저작권 상식’ 강의


    글. 손수호

    발행일. 2020년 08월 14일

    손수호의 문화와 저작권 #4 저작권 공유의 아이콘 ‘수달’

    수달은 귀엽다. 눈이 땡그랗고 수염이 멋지다. 수중 생활에 맞게 몸매도 미끈하게 빠졌다. 물과 뭍을 마음대로 오가는 수륙 양용이다. 보금자리는 맑은 하천이나 바위틈, 나무뿌리 등을 가리지 않는다. 귀한 동물이어서 천연기념물 제330호로 지정돼 있다.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그들의 생태를 가끔 보는데, 뛰어난 물고기 사냥 기술이 기억에 남아 있다.

    수달은 고전에 많이 등장한다. 요즘보다 흔하고 사람들과 가까웠던 모양이다. 신라의 혜통스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삼국유사』 신주(神呪)편 ‘혜통항룡(惠通降龍)’조는 혜통과 수달의 인연을 다루고 있다.

    혜통의 집은 경주 남산 서쪽 기슭 은천동 어귀에 있었다. 하루는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 죽여 뼈를 뒷동산에 버렸는데 이튿날 새벽에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갔더니, 수달의 뼈가 예전에 살던 구멍으로 돌아가 새끼 다섯 마리를 안은 채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혜통이 놀라고[驚], 이상히 여기며[異], 감탄[感嘆]하고, 머뭇거리다가[躊躇] 그만 출가했다. 이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고승이 된 이야기는 기록에 나오는 대로다.

    저작권 공유, ‘수달이 고기 제하듯’

    저작권 혹은 지식의 공유와 관련된 수달 스토리도 있다. 성리학의 거두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문집에 수달이 나온다.

    白髮蒼顔與世踈 백발창안여세소
    흰머리에 창백한 낯은 세상과 소원하여

    蛾眉班上强躊躇 아미반상강주착
    아미반가에 억지로 주저하고 있노니

    詩書舊業戈舂黍 시서구업과용서
    시서의 옛 학업은 창으로 기장 찧는 격이요

    翰墨新功獺祭魚 한묵신공달제어
    한묵의 새로운 공은 수달이 고기 제하듯 하네

    澁眼却慚巖下電 삽안각참암하전
    흐린 시력은 문득 암하의 전광에 부끄럽고

    枯腸不耐瓮頭蛆 고장부내옹두저
    마른 창자는 술동이의 거품을 참지 못하네

    自斟自酌成孤笑 자짐자작성고소
    혼자 따라 혼자 마시며 외로운 웃음 짓노니

    歲晩如何憶孟諸 세만여하억맹저
    세모에 어찌하여 맹저가 생각나는고

    번역자 임정기 선생(한국고전번역원)에 따르면, 『순자(荀子)』의 권학(勸學)에 “예법을 따르지 않고 시서만 가지고 일을 하면, 마치 손가락으로 하수(河水)를 헤아리고 창으로 기장을 찧는 것처럼 성취하기 어렵다”는 데서 비롯된 글이다. 여기서 “제하듯 하네”는 시문(詩文)을 지을 적에 책을 좌우에 많이 늘어놓음을 비유한 말이다. 사람이 제사를 지낼 때 제상 위에 여러 제물을 진설하듯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서 사방에 늘어놓는 습성을 비교한 것이라고 한다.

    비슷한 이야기는 중국에도 있다. 당(唐)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글을 지을 때 많은 서적을 펼쳐놓는 모습이 수달과 같다고 하여 당시 사람들이 달제어(獺祭魚)란 호(號)를 지어 준 일도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참고 문헌을 많이 활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점필재는 이 내용을 살짝 비틀어 옛날 사람들은 업적을 힘들게 이루어 놓았는데 요즘 문장은 단어를 늘어놓는 것에 불과하다며 창의성의 빈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훌륭한 글은 임서(臨書), 방서(傍書), 모서(模書)를 거쳐 나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콩나물이 물을 기억하면서 자라지 않고, 벌이 꿀을 따올 때 어느 꽃에서 왔는지 모르듯이. 문장을 창조하는 것은 남의 것을 베끼면서 수련하는 과정을 거친다. 스승의 작품을 베끼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정립해 나간다. 창힐(蒼頡)도 새의 발자국과 지렁이 기어가는 흔적을 보고 한자를 만들었다고 하지 않는가. 필자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검색하는 일도, 수달의 영상을 찾는 일도 모두 ‘제하는’ 행위에 포함되리라.

    수달식 공유 문화가 어려워진 까닭

    많은 전적(典籍)에서 보듯 동양권에서는 지식 공유의 문화가 있다. 이상은과 김종직이 그러했듯 공통의 텍스트를 기본으로 끝없는 인용과 변용을 거치면서 생각의 크기를 넓히고, 지식을 체계화시킨 것이다. 글을 공부하는 목적 또한 새로운 지식의 창조라기보다 과거에 급제하려는 학습의 목적이 강했으니 창의성이 발현되는 저술이 더디 발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양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근대를 맞이한 일본도 ‘copyright’라는 단어를 놓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등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서양은 판이하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로 발생한 저작권 개념이 1710년 영국에서 최초의 저작권법[The Statute of Anne]으로 법제화되는 역사는 공유의 영역에 있던 지식을 개인의 권리[私權]로 발전시킨 과정이나 다름없다. 미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창작 활동을 위한 인센티브 차원에서 경제적 보상과 함께 제한된 독점권을 준다는 사실을 헌법에 명시하였다. 1957년에 제정된 우리나라 저작권법도 개정에 개정을 거치면서 권리자와 이용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듯 공유에서 사유로 이행하던 저작권의 역사에서 공유가 다시 부각된 것은 인터넷 혁명 때문이다. 초기 인터넷은 참여, 개방, 공유를 내세운 디지털의 바다였기에 여기서 내 것, 네 것을 주장하는 일은 촌스러운 일로 치부됐다.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늘 증식을 추구하는 자본은 인터넷에도 그물을 내리기 시작했다. 만인이 자유롭던 저작권의 바다에 소유와 독점의 가두리가 등장하면서 공유 문화와 각을 세웠다. 수달과 같은 방식이 더이상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언론학 박사. 울산 출생. 경희대학교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향신문 기자, 국민일보 문화부장 및 논설위원,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저서로 『책을 만나러 가는 길』, 『문화의 풍경』, 『도시의 표정』(이상 열화당) 등이 있다. 건국대, 경희대, 동아방송예술대, 숙명여대, 중앙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인덕대학교 교수,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국민일보 객원논설위원, 『복지저널』 편집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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