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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호의 문화와 저작권 #2 『구름빵』도 조용필처럼

    작가 백희나의 『구름빵』 사건과 가수 조용필의 27년 만 저작권 합의 ― 언론학 박사 손수호의 ‘크리에이터를 위한 저작권 상식’ 강의


    글. 손수호

    발행일. 2020년 07월 17일

    손수호의 문화와 저작권 #2 『구름빵』도 조용필처럼

    필자 손수호의 2020년 7월 7일자 국민일보 기고문
    「백희나와 조용필의 비슷한 송사」를 수정·보완한 글입니다.

    이렇게 유명한 저작권 소송이 있었나 싶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작가가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저작에 참여한 사진작가의 공동저작권 부존재를 확인하는 소송이 뒤따랐다. 2013년에는 창조경제를 주창하던 당시 대통령이 비중 있게 이 책을 언급했고, 국회의원이 중재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올 4월 작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 ALMA)’이라는 국제적 명성의 상까지 받으면서 이 책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더 커졌다. 그런 와중에 소송은 불복을 거듭하다가 결국 최종심까지 갔다. 백희나 작가가 쓰고 한솔수북이 출판한 동화책 『구름빵』(2004) 얘기다.

    저작권법은 저작자에게 권리를 ‘묶어두는’ 법이 아니다

    대법원이 지난달 말 내린 결정은 지극히 단순했다. 심리불속행. 여기에는 여러 조건이 있지만 더 이상의 심리가 필요하지 않다, 하급심에서 충분히 다뤄졌다는 뜻도 있다. 그동안 쟁점이 된 매절계약에 대해 (하급심 판결문에도 담겼듯) “위험 분담 측면이 있어 작가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볼 수 없다”고 정리한 셈이다.

    백희나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작가의 미약한 권리에 처참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자신을 ‘(성인 대상의 문학책이 아닌) 동화책을 지은 여성 작가’라 표현하며 법이 약자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말하거나, 자신의 ALMA 수상과 현 상황을 비교하기도 했다. 외국은 외국 작가에게도 상을 주는데, 정작 우리나라는 자국 작가의 권리조차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분쟁의 출발은 계약이다. YTN 라디오가 작가 및 출판사 대표와 연속으로 진행한 인터뷰를 종합하면 당사자들 사이에는 두 번의 계약이 있었다. 첫 번째는, 출판사의 유아 대상 회원제 북 클럽book club 수록 도서로 『구름빵』을 제작한다는 계약이다. 그다음은, 단행본 흥행 이후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한 수정계약이다. 두 번 다 매절계약을 체결한 것은 사실이되 매절계약이 모든 권리를 양도하는 줄은 몰랐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 다툼의 핵심이었다. 출판물이 ‘예상외’ 성공을 거두었는데도 출판사의 ‘예상외’ 예우는 없었다.

    작가의 생각은 이렇다. “저작권이라고 하는 건 창작자에게 주어지는 가장 최소한의 권리인데, 그것을 출판사가 가진다는 게 문제죠.” “작품이 어떤 모습으로 변형되든 제가 제지할 수가 없는 거죠. 제가 모르는 상태에서 2차 상품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인 거죠.”

    작가의 심경은 이해할 만하다. 다만, 저작권은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싶다. 작가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언급한 권리는 인격권과 재산권을 분리하지 않은 데서 오는 착오다. 인격권은 거래가 불가능한 일신 전속권이다. 하지만 재산권은 다르다. 양도, 상속 등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처분할 수 있다. 오로지 저작자 한 명에게만 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맞다. 단, 그 권리를 불가침의 것으로서만 ‘묶어놓는’ 법이 아님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름빵』 사건, 다시 한 번 들여다볼 이유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알려졌듯 법원은 출판사의 손을 들어줬다. 작가의 입장과 사법부의 결정은 왜 이리 다를까. 작가의 주장에 무리가 있었나. 출판사가 너무 가혹한가. 판사들이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가.

    궁리를 거듭하면서 사안을 한 번 정리해보았다. 그러고 나니 『구름빵』 사건이 꽤나 큰 오해들로 얽히고설켜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오해가 오해를 불러 갈등을 증폭시킨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오해들로 인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방향이 애초부터 잘못 잡힐 소지 또한 충분해 보였다.

    『구름빵』이 4,000억 원대 수익을 창출했는데 작가에게는 1,850만 원만 갔다는 부분이 오해의 핵심이다. 2014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불법 복제시장 규모가 4,400억 원’이라고 언급한 뒤 『구름빵』을 거론했다. 공개 석상에서의 이 발언이 ‘『구름빵』 수익은 4,400억 원’으로 와전되면서,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이 불공정 계약의 대표 사례로 회자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오해도 있다. 백 씨가 『구름빵』의 사진 작업을 담당한 사진작가의 공동저작자 지위를 놓고 소송 끝에 단독저작물임을 확인받은 일이 있다. 이 내용이 저작권을 되찾았다고 잘못 알려진 것이다. 백 씨와 출판사 한솔수북 사이에는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이었던 이종걸 의원이 중재자 역할을 했다.

    백희나 작가가 단독저작자로 인정받은 뒤, 이종걸 의원이 “좋은 소식이 있다. 출판사 측이 저작권을 돌려주기로 했다.”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양측의 저작권 협의는 결과적으로 무산됐다. 이렇듯 『구름빵』 사건은 팩트와 오해가 얽히고설켜 있다.

    27년 만에 저작권 합의가 이루어진 사연

    작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출판사의 입장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두 번의 계약에서 당사자는 저작권 양도 및 2차적저작물 활용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서명했다고 출판사는 밝혔다. 2003년 처음 계약할 때 책 가격이 3,000원이었는데, 신인이던 작가에게 850만 원을 지급한 것은 당시 4만 부의 인세에 해당한다고도 설명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위험을 안고 투자했다는 것이다. 또한, 『구름빵』으로 인해 발생한 매출은 20여 억원, 투자 비용을 제한 수익은 2억여 원이라고 공개하기도 했다.

    작가를 존중하는 것과 계약의 유효성을 다투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최근 저작권법 개정을 위해 논의 중인 ‘추가보상청구권’은 『구름빵』 사태에서 비롯된 것인데, 민사법의 바탕을 흔드는 내용이라 도입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바탕이라는 것은 근대를 지탱시켜온 ‘사적 자치’ 혹은 ‘계약 자유의 원칙’이다. 개인 간 거래가 공정성을 잃지 않는 한 책임은 각자의 몫이라는 입장 말이다.

    자 그렇다면, 최종심에서 재판부가 출판사 손을 들어줬으니 이대로 이야기는 일단락되는 걸까? 작가는 작가대로의 행동을 취하고, 출판사는 출판사대로의 행보를 이어가면 되는 걸까? 이런 물음들에 쉽게 대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하나 있다. 바로 가수 조용필 씨의 송사다.

    조 씨는 1986년 한 레코드사와 음반 계약을 하면서 ‘창밖의 여자’ ‘고추잠자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자신의 대표곡 31곡에 대해 저작권 일부(복제 + 배포) 양도계약을 했다. 86년은 우리나라가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하기 전이라 저작권 의식이 희미할 때였다. 양측의 치열한 법리 대결 끝에 레코드사가 승소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법원은 저작권 양도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궁박, 경솔, 무경험으로 인한 불공정한 법률 행위가 발생했는지, 그 계약이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 질서에 반하는지, 착오에 의한 의사 표시가 있었는지를 놓고 들여다봤으나 문제가 없다고 봤다. 조 씨는 많이 억울해 했다.

    그러나 2013년 반전이 일어난다. 일부 아티스트가 당시 31곡을 빼앗겼다고 폭로하고 나서자 네티즌이 격하게 호응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문이 공개됐음에도 “탈취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먹혀들었다. 압박이 계속되자 레코드사는 이듬해 2월 문제의 31곡에 대한 복제 및 배포권을 원저작자에게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이때 레코드사가 그냥 권리를 돌려줬을까. 나중에 밝혀진 서류에는 계약 내용을 당분간 비밀에 부친다는 조항도 있었다. 권리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돈이 오갔다는 점, 계약을 존중하고 쌍방을 배려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구름빵』 사건의 경우, 위와 같은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 ALMA 상금을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만큼 작가와 출판사 양측의 갈등이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작가는 시종일관 권리의 원상회복을 주창하지만, 대법원이 이미 확인해준 권리를 무조건 넘기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출판사 역시 재판의 승자이긴 해도 상처 입은 권리를 마냥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한 번 금이 간 신뢰를 회복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합의에 의해 저작권을 찾아오는 것은 당당하고, 자연스럽다. 27년 만에 합의를 이룬 조용필과 레코드사의 사례는, 쌍방 입장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저작자와 출판사가 적절한 조건에 맞춰 저작권 양도계약을 다시 맺는 방식 말이다. 『구름빵』의 작가와 출판사가 눈여겨봐야 할 사례 아닐까.

    언론학 박사. 울산 출생. 경희대학교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향신문 기자, 국민일보 문화부장 및 논설위원,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저서로 『책을 만나러 가는 길』, 『문화의 풍경』, 『도시의 표정』(이상 열화당) 등이 있다. 건국대, 경희대, 동아방송예술대, 숙명여대, 중앙대에서 강의했다. 현재 인덕대학교 교수,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국민일보 객원논설위원, 『복지저널』 편집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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