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5일(토) 윤디자인연구소 1층 세미나룸에서 〈The T와 함께하는 강쇼 세미나: 제2회 이지원&윤여경의 디자인 학교〉가 열렸다. 봄바람 부는 눈부신 토요일 오후건만, 세미나룸엔 앉을 곳이 모자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다. ‘디자인 교육’은 분명히 무거운 주제였지만, 디자이너라면 누군가는 겪었음에 답답함이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현재 진행형이기에 궁금한 점이 많은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더군다나 디자인 쪽에서는 소위 핫한 학교라고 정평이 난 국민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는 현직 선생들의 생각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날 세미나는 한마디로 명쾌함, 그 이상의 해답을 속 시원히 들을 수 있었던 자리였다.
진행자 강구룡과 이날 초대작가였던 이지원, 윤여경은 오랫동안 알던 사이. 서로에 대한 여유로움 때문인지 첫 소개부터 유쾌함이 묻어난다. 프로필을 읊었을 뿐인데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이미 관객과 강연자 간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윤여경
오늘 세미나는 ‘디자인 교육’이 진짜 주제입니다. 이지원 선생과 ‘디자인 학교’라는 온라인 교육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희가 기존에 진행했던 디자인 읽기, 디자인 말하기를 기반으로 일종의 사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지요. 이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는 기존 대학의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서인데요, 오늘은 왜 이런 것이 필요한지, 현재 디자인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이지원 선생과 저는 여러분보다 약간 선배인 분들이 디자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는지 현장에서 들어왔어요. 그런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디자인 학교를 시작하려 합니다.
때론 토론자로 때론 학생 시절을 겪은 현직 디자이너로서 학생의 관점에서 강구룡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가 뽑은 디자인 담론 키워드는 세미나의 중요한 화두가 되며 토론에 토론을 잇는 끈이 됐다. “디자인은 이론화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습과 경험을 통한 암묵지는 가르치기 힘든 부분인데, 여기에서 오는 애로사항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지원
공부는 왜 할까요? 대학에서 디자인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이죠? 원래 공부의 의미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동이에요. 대학은 직업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디자인을 잘하는 방법은 배울 필요가 없어요. 그런 요령은 인터넷 보면서 혼자 해도 되는 것이지요. 그걸 암묵지로 배우면 되는 것이고 대학 교육에서 중심이 되면 안 됩니다. 현실적인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요즘은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뭐 하나만을 목표를 잡고 하는 게 위험해요. 디자인 예쁘게 하는 사람은 너무 많으니 그것보다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디자인을 제안해 준다면 좋겠죠. 남들이 못하는 다른 생각을 할 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문은 더 넓어요. 더 많이 알고 폭넓게 볼 수 있는 게 중요하죠.
선생을 뛰어넘으려는 학생, 선생의 자리를 탐하는 학생에 관한 강구룡의 질문이 이어졌다. “디자인의 정체성을 가르치는 것이 모호해요. 지금 저도 그래픽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요. 이에 대해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나요?”
윤여경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광고회사에서 억대 연봉을 받고 있었던 이지원 선생에게 어느 날 한국의 유명 대학교에서 교수 제의가 들어왔어요. 많은 기대를 하고 지원했지만, 결국 떨어졌죠. 그렇게 좌절의 기간을 겪던 중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대요. ‘아, 내가 나의 스펙으로 선생이 되려 했구나….’ 그때부터 매일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그것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여러 대학의 교수직에 지원하게 됐고, 결국 한곳의 학교가 돼서 그야말로 신 나게 수업을 했답니다. 자, 여러분. 이것이 ‘선생’입니다. 결국, 선생은 학생이지요. 공부하면 나누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그 마음으로 주절주절 의미 있는 데서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선생을 뛰어넘으려는 학생입니다. 공부하다 보니 책을 쓰게 되고 공부하다 보니 교수가 된 거죠.
이지원
저는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해요. 너희는 나보다 디자인을 잘해야 한다. 그래야 A를 준다고요. 난 가르침에 충실했으니 제자가 선생보다 잘하는 건 당연한 거로 생각해요. 자신의 재량에 선생의 경험을 더했기 때문이죠. 학생들이 선생을 따라잡고 덧붙이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현재 디자인 교육에선 부족함이 느끼고 사교육을 받으려니 검증이 안 된 곳도 많은 현실에서 스스로 공부를 하는 방법은 없느냐는 강구룡의 질문이 이어졌다.
윤여경
우리 어렸을 때 브로셔 하나 만드는 데 3천만 원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300만 원 정도로 확 떨어졌죠. 왜냐하면, 그만큼 인력이 많아요.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러분은 그냥 ‘잠자코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 등 아주 폭넓게 공부해야 해요. 그렇게 하면서 직업을 찾다 보면 체계가 쌓여요. 한 가지만 집중하고 그것이 되기 위해 이리저리 계산기 두드릴 시간에 책 한 권 더 보고 고민 한 번 더하고, 궁금한 건 물어보고 또 대답하고. 그런 시간을 축적하다 보면 이지원 선생처럼 교수도 되고 강구룡 작가처럼 대기업에 취직도 하죠. 자연스레 그렇게 말이에요.
끝으로 디자인 교육이란 무엇인가, 란 질문이 이지원, 윤여경 각자에게 주어졌다.
윤여경
디자인 교육이란 공부에요. 나누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주고 싶은 거. 그런데 말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물론 대학에서 강의하지만 전 직장인이에요. 그래서 책을 쓰는 것밖에 할 수가 없어요. 깨지고 부딪히고 고민하는 그런 교육이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디자인 학교를 만들었어요. 저는 제가 공부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고 누군가는 저렴한 가격에 만나서 듣고 싶을 때 듣고 안 듣고 싶을 때 안 듣고. 저는 그거 만들면서 또 다른 공부를 하는 셈이죠.
이지원
제 뒤에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있어요. 이런 위에 고리가 바꿔놓은 것을 토대로 아래 고리가 또 바꾸었고 그러면서 디자인이란 분야가 변화하고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저라는 고리가 있고 또 제 옆에도 고리가 있겠죠. 나라는 고리는 나 다음에 연결된 고리를 찾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 교육이에요. 그렇다고 수제자를 찾는 개념은 아니고요, 수많은 사람이 엮이는 것이지요.
장장 4시간에 걸친 강연(강연 후 관객과의 대화를 2시간 했기에)을 지면에 다 싣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야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로 꽉 찬 시간이었다. 어딘가에 속한 선생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기에 강연자와 관객들은 이 소중한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이게 바로 ‘선생’이다.’라는 말이 명확하게 다가오는 순간, 삶에 대해, 공부에 대해 큰 도전을 받은 시간이었다.
한편, 〈The T와 함께하는 강쇼 세미나〉는 매월 둘째 주 금요일 혹은 토요일에 열린다. 오는 4월 11일 금요일 저녁 7시에 예정된 제3회 세미나는 ‘땡스북스 대표 이기섭의 호기심 공장’이다. 자세한 내용은 타이포그래피 서울을 통해 곧 공지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