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작가는 이번 세미나의 주제를 ‘옮기기’라고 정했지만, 구체적으로는 ‘번역하기’가 더 맞는 표현이라고 이야기 했다. 번역은 같은 글이라도 번역가가 텍스트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텍스트가 되는데, 번역가가 하는 일처럼 그도 직업의 특성상 원래의 텍스트(그림, 글, 사진, 음악)가 자신에게 오면 그것을 재가공하여 책이나 도록, 음반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3일(금) 저녁 7시, 윤디자인연구소 1층 세미나룸에서 열린 〈더티(The T)&강쇼: 제5회 이기준의 옮기기〉의 현장으로 함께 가보자.
음악 그리고 투명하게 보태기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다는 이기준 작가는 매일 음반가게를 방문해 판을 구경하는 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특히 십대 때 헤비메탈 밴드의 앨범 커버에 그려진 거친 그림과 뾰족한 글자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하는데, 음악을 좋아해 악기를 연주하는 것 대신 앨범 커버에 담긴 이미지나 밴드의 로고를 따라 그리곤 했다. 그것이 디자인인지도 몰랐던 그는 자연스레 관심사를 따라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연주에서 중요한 건 연주자의 자아를 투명하게 보태는 것이다.”
– 사드 카하드,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중
이기준 작가는 ‘디자이너는 지휘자다.’라고 했던 선배 디자이너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고 하는데, 지휘자는 자신이 연주하려는 곡에 맞춰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야 하고, 그 곡에 필요한 악기를 구성하고, 곡과 잘 어울리는 악기 연주자를 선정하는 등 자기가 생각하는 연주를 만들기 위해 이를 조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휘자처럼 디자이너도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이와 같은 작업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조금 다른 견해를 비추인다. 이기준 작가 스스로는 디자이너를 ‘연주자’라고 정의 내린다. 연주자가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곡의 느낌이 달라지듯이 디자이너가 어떤 가치관, 태도에 따라 접근하느냐에 따라 원안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기준 작가는 연주자가 곡에 자기자신을 투명하게 보태야 한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음악을 틀어주면서 분위기도 말랑말랑하게 할 겸, 그가 말한 투명도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잠시 그 음악을 함께 비교하며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