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눈을 들어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모양새도 구성도 참 다양한 많은 글자를 접하게 된다. 수많은 글자가 제자리를 찾아가기까지, 디자이너들은 수천, 수만 가지가 넘는 망망대해와 같은 폰트의 바다에서 가장 적합한 폰트를 건져 올리기 위해 공을 들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가장 적절한 폰트를 사용하는 방법에는 어떤 조건들이 있을까? 지난 금요일 저녁 7시, 윤디자인연구소 1층 세미나룸에서는 글꼴 디자이너 이용제 작가를 통해 그 비법을 살짝 들어보았다. 〈더티&강쇼: 제12회 이용제의 ‘좋은 한글 폰트의 조건’〉의 현장으로 함께 가보자.
우리는 흔히 ‘좋다’라고 말할 때, 어떤 맥락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디자이너의 경우 디자인 작업물이 ‘좋다’라고 표현할 때 그것이 본인의 마음에 드는 것인지, 혹은 작업의 맥락에서 적합성, 적절성, 다른 것과의 비교 등을 통해 ‘좋다’라고 표현하는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한글 폰트를 구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폰트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려야 한다. 이러한 기준이 없다면 우리가 말하는 ‘좋은’ 폰트는 그저 본인의 마음에 드느냐 마느냐의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
그래도 디자이너는 꽤 오랜 시간 시각적인 훈련과 경험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폰트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스스로 알게 되는 점이 있다. 하지만 기존의 경험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무엇이 좋은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폰트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상적으로 폰트를 사용하고 있지만, 모든 폰트를 다 열어보는 것도 아니고, 폰트를 확대해보거나 비교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폰트를 비교하거나 조건이 충족되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는 폰트의 성질, 내용, 모습 등을 알아야 한다.
폰트의 사전적 의미는 ‘인쇄를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한 벌의 세트’이다. 물론 이는 예전의 기준. 디지털 폰트가 보급된 요즘에는 한 가지를 만들면 크기도 자유롭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이제 한 벌의 세트를 생각하기보다 주로 모양만 생각한다. 하지만 예전의 기준으로 하나의 폰트를 ‘좋다’라고 말할 때는 이것이 구성을 잘 갖추고 있느냐를 의미했다. 제대로 된 한 벌의 한글 세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11,172자를 갖추어야 하는데, 최근에는 2,350여 자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좋은’ 폰트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성질은 다루기 익숙하고 편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한글 11,172자뿐만 아니라 한글과 함께 쓸 문장, 부호, 특수문자 등 여러 모양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더불어 디자이너가 중요하게 여기는 조형적 완성도가 높아야 하고, 본문에 적합하게 쓰기 위해서 복잡도를 고려한 공간배분도 신경 써야 하며, 글자 사이의 짜임새가 좋아야 한다. 적절하게 상황을 판단해서 적절한 폰트를 사용하여 잘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지금 쓰고 있는 글자의 형태는 어디서 왔는지, 어떤 과정에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글자의 특징은 무엇인지 모른다면 판단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글자를 보면 가로쓰기, 세로쓰기와 같은 구조가 담겨있다. 이것을 이용했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와 이해도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폰트는 달라진다.
이용제는 이와 함께 소셜펀딩(Social Funding) 형태로 제작한 ‘바람’체를 예로 들며 제작 과정, 좋은 폰트를 만들기 위한 세심한 노력 등을 상세히 설명해주었고, 진행자 강구룡 작가와의 대담을 통해 폰트 사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이날 세미나에는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글꼴 디자이너들도 많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글꼴 디자이너 이용제의 강의를 마지막으로 1년 동안 진행된 세미나 〈더티&강쇼〉 첫 번째 시즌이 대단원의 마무리를 지었다. 강의마다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세미나 〈더티&강쇼〉는 한 달의 휴식을 하고 오는 3월 더욱 강력해진 디자인 쇼!! <더티&강쇼> 시즌 2로 돌아올 예정이다. 2015년 강연자 라인업 등 자세한 내용은 다음 달 타이포그래피 서울을 통해 공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