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과학의 달을 맞아 학교에서는 20년 후의 미래를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는 참 엉뚱한 상상이었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그 엉뚱했던 상상들이 현실이 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렇게 우리의 상상은 과학의 발전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로 실현되곤 한다. 지난 12월 19일(금) 저녁 7시, 윤디자인연구소 1층 세미나룸에서는 뉴미디어 아티스트 신기헌을 통해 새로운 관점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상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더티&강쇼: 제11회 신기헌의 New Spectrum, New Platform 그리고 New Media〉의 현장으로 함께 가보자.
신기헌은 스스로를 디자이너와 아티스트의 경계인 ‘크리에이터’라고 표현했다. 그는 다양한 크리에이티브 영역 가운데 등장한 ‘새로운 스펙트럼’과 ‘새로운 플랫폼’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뉴미디어’라는 재료에 익숙해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덴티티’ 혹은 ‘정체성’을 이야기 했다. 뉴미디어는 하나의 분야이기 보다 건축, 디자인, 사용자경험, 마케팅, 교육, 사회혁신 등 다채로운 분야와 결합하여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따라서 다른 분야 혹은 다른 사람과의 협업을 통해 전문성을 확장시킨다. 인상적인 점은 하나의 명료한 아이덴티티를 가질 것을 강조하는 세상과 달리 반대 방향으로 자신의 정체성 찾기에 대한 실험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뉴미디어는 특정한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되면 뉴미디어라는 권위를 잃어버리게 된다. 신기헌은 ‘낯설게 하기’라는 과정을 통해 경이로움을 가지는 것으로 그 해결점을 찾고자 하는 것. 발전하는 기술이나 트렌드만을 쫓다 보면 경쟁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는 새로운 매체, 새로운 접근을 통해서 이런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뉴미디어 콘텐츠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관심’을 갖고 ‘집중’하여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생각들이 ‘해제’가 되고, 적극적으로 ‘반응’속으로 들어가 그 메시지를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게 된다고 한다. 뉴미디어에 담긴 메시지는 목적과 수단에 따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스펙트럼에는 양극단의 경계가 존재하게 되는데, ‘현실’과 ‘가상’, ‘아날로그’와 ‘디지털’, ‘고정된’과 ‘변화하는’ 등과 같은 경계가 있다. 신기헌은 이 경계의 양극단을 경험했다면, 그 경계 사이에 참여하고 있는 분야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스펙트럼은 크게 두 가지로 확장할 수 있는데, 첫째로 실험과 도전을 통해 양극단의 경계를 넓히는 것이고, 또 하나의 방법은 작은 배움이나 짧은 경험 등을 통해 스펙트럼 경계 사이의 공극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경계의 확장과 채움을 통해 스펙트럼의 해상력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은 ‘플랫폼’이라는 용어가 난무하고 있는 시대이다. 신기헌은 뉴미디어라는 매터리얼을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역이 하나로 연결되고, 규모나 형태에 관계없이 모두의 필요가 모이고 해결되는 곳이 바로 플랫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더 나아가 그는 개인이 플랫폼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역할은 점점 많아질 것이고, 모두에게 가능성이 열려있으며, ‘문화’, ‘교육’, ‘체험’, ‘제품’, ‘마케팅’, ‘콘텐츠’, ‘공간’ 등 플랫폼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범위는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소제목처럼 궁극적으로 신기헌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크리에이터는 플랫폼이다’라는 이야기였는데, 새로운 매터리얼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스펙트럼을 가진 플랫폼으로써의 크리에이터를 뜻한다. 한 분야를 깊게 파는 ‘스페셜 리스트’를 강조하는 시점에서 다양한 사람 혹은 분야를 이어주는 중개자로써의 ‘미디에이터(Mediator)’, 수 많은 기술을 연결해주는 ‘테크 큐레이터(Tech Curator)’, 대중성 확보라는 필요를 도출하기 위해 크리에이터를 설득하는 ‘매스 커뮤니케이터(Mass Communicator)’까지 세가지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제너럴 리스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한다. 신기헌은 우리가 갖는 새로운 스펙트럼, 새로운 플랫폼, 새로운 아이덴티티가 모여 우리의 관점이 바뀌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상상이 시작된다고 말하며 세미나의 마무리를 지었다. 이어진 강구룡 작가와의 대담과 더불어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놓는 참가자의 질문에도 진심을 다해 응답해주었다.
어느덧 첫 번째 시즌의 마지막이 성큼 다가온 세미나 〈더티&강쇼〉. 오는 2015년 1월 23일(금) 저녁 7시에는 서체 디자이너 이용제를 초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자세한 내용은 타이포그래피 서울을 통해 곧 공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