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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원의 한글이야기 #8 세종은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였다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책을 읽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의 통치의 이념이었던 유학의 경전뿐만 아니라 역사·법학·천문·음악·의학 등 다방면의 책을 수십 번씩 읽었다고 한다. “몹시 추울 때나 더울 때에도 밤새 글을 읽어, 나는 그 아이가 병이 날까 두려워 항상 밤에 글 읽는 것을 금하였다.


    글. 박창원

    발행일. 2014년 08월 19일

    박창원의 한글이야기 #8 세종은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였다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은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책을 읽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의 통치의 이념이었던 유학의 경전뿐만 아니라 역사·법학·천문·음악·의학 등 다방면의 책을 수십 번씩 읽었다고 한다. “몹시 추울 때나 더울 때에도 밤새 글을 읽어, 나는 그 아이가 병이 날까 두려워 항상 밤에 글 읽는 것을 금하였다. 그런데도 나의 큰 책은 모두 청하여 가져갔다.”는 태종의 말바탕이 전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학문을 좋아하던 세종의 이러한 정신은 조선의 제도와 학문,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게 한다. 세종 2년(1420)에 집현전(集賢殿)을 궁중에 설치하여 학자를 키우고, 학문을 숭상하며 조선 초기 통치자를 보완할 인재를 키웠다. 그리하여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천문, 도덕, 예의, 문자, 운학, 문학, 종교, 군사, 농사, 의약, 음악 등에 관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각종 저술을 함으로써 조선 전기 문화와 문물의 기초를 닦았다. 이러한 많은 업적 중에서도 세종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당연히 새로운 문자인 ‘훈민정음’의 창제인데, 이 문자를 창제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세종의 언어학적인 지식이다. 세종의 언어학적 지식은 당대 세계 최고였다고 할 수 있다.

    플리커 Republic of Korea (CC BY-SA 2.0)

    자질의 설정

    인간의 언어 단위 중에서 독립적으로 발화할 수 있는 최소의 단위를 음절이라고 한다. 음절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음소라고 한다. 그리고 음소를 발화할 수 있게 하는 조음 기관의 위치나 방법 등을 자질이라고 한다. 언어의 발음에 직접 관여하는 조음 기관은 성문, 목젖, 혀와 입술 등이다. 이 다양한 기관의 상이한 작용이 동시에 실현되어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음은 성문의 개폐 정도, 목젖의 비강 폐쇄 여부, 다양한 혀 위치의 입천장 혹은 치조골에의 접근, 입술의 폐쇄 여부 등에 의해 그 종류가 결정되는데 이들 조음 위치와 조음 방식을 자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모음은 혀의 앞뒤 위치와 아래위의 위치(입이 벌어지는 정도), 입술의 모양 등에 의해 다양한 모음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역시 자질이라고 부른다.

    세종은 구체적으로 발화하는 최소의 소리 단위인 음절을 인식하고, 이를 세 개의 구성요소로 분리한다. 초성, 중성, 종성이 그것이다. 초성과 종성은 따로 만들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초성을 종성에 다시 사용한다. 세종이 초성을 만드는 과정은 철저히 조음기관을 관찰한 결과이다. 그 내용은 제자해에 나와 있는 그대로이다.(아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폐쇄하는 모양, 설음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 순음 ㅁ은 입의 모양, 치음 ㅅ은 이의 모양, 후음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각각 상형하였다.) 이들 조음하는 위치 자체가 훈민정음 제자에서 자질로 작용한다. 그리고 조음 방식에 따라 청탁으로 구분한다. 이들 초성의 자질은 당시 중국 성운학의 지식을 그대로 활용한다. 조음 위치를 ‘아설순치후’로 나누고, 조음 방식을 ‘청탁’으로 나누는 것이 그것이다. 반면에 모음의 자질은 완전히 독창적으로 설정된다. 모음의 조음에서 혀의 위치나 개구도에 관련해서는 ‘축(縮)’이라는 자질을 설정하고, 입술의 모양과 관련해서는 ‘장(長)’과 ‘축(蹙)’의 자질을 설정한다.

    관계의 인식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인간이 발화하는 개개 소리도 다른 소리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소리와 소리의 관계에 대해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은 20세기 초반 당시 최고의 언어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트루베츠코이에 의해 정리된다. 이 용어를 빌어 훈민정음에 나타나는 대립관계를 조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양면적 대립관계

    양면적 대립관계란 공유하는 자질의 총량이 두 항 사이에만 나타나는 대립관계를 말한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전체적인 체계에서 가장 가까운 두 항이 양면적 대립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훈민정음에 의하면 ‘ㆍ’와 ‘ㅏ’의 관계 및 ‘ㅡ’와 ‘ㅓ’의 관계는 양면적 대립관계에 해당한다. 무표항 ‘ㆍ’와 ‘ㅡ’에 ‘구장(口長)’이라는 자질이 더해져 ‘ㅏ’와 ‘ㅓ’가 되는 것이다. ‘ㆍ’와 ‘ㅗ’의 관계 및 ‘ㅡ’와 ‘ㅜ’의 관계도 동일하다. 무표항 ‘ㆍ’와 ‘ㅡ’에 ‘구축(口蹙)’이라는 자질이 더해져 ‘ㅗ’와 ‘ㅜ’가 되는 것이다. 앞에서 본 ‘ㄱ : ㄲ = ㅂ : ㅃ = ㅅ : ㅆ = ㄷ = ㄸ = ㅈ : ㅉ’의 관계는 양면적 대립관계를 구성하기도 한다. 무표음 ‘ㄱ, ㅂ, ㅅ, ㄷ, ㅈ’ 등에 ‘응(凝)’이라는 자질이 더해져 ‘ㄲ, ㅃ, ㅆ, ㄸ, ㅉ’ 등이 되는 것이다.

    비례적 대립관계

    비례적 대립관계란 동일한 관계가 다른 항들 사이에서도 존재할 때 그러한 대립관계를 비례적 대립관계라고 한다. 훈민정음에서 ‘ㆍ : ㅗ’의 관계는 ‘ㅡ : ㅜ’의 관계와 같고 ‘ㆍ : ㅏ’의 관계는 ‘ㅡ : ㅓ’의 관계와 같다. 즉 ‘ㆍ : ㅗ = ㅡ : ㅜ’의 관계가 성립하고, ‘ㆍ : ㅏ = ㅡ : ㅓ’의 관계가 성립한다. 자음의 경우도 동일하다. 소리의 세기에 따라 획을 더했기 때문에 ‘ㄱ 대 ㅋ’의 관계는 ‘ㅂ 대 ㅍ’, ‘ㄷ 대 ㅌ’, ‘ㅈ 대 ㅊ’의 관계와 동일하다. 즉 ‘ㄱ : ㅋ = ㅂ : ㅍ = ㄷ : ㅌ = ㅈ : ㅊ’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또한, 같은 소리를 더해 소리가 ‘응(凝)기는’ 관계인 ‘ㄱ 대 ㄲ’, ‘ㅂ 대 ㅃ’, ‘ㅅ 대 ㅆ’, ‘ㄷ 대 ㄸ’, ‘ㅈ 대 ㅉ’의 관계 또한 동일하다. ‘ㄱ : ㄲ = ㅂ : ㅃ = ㅅ : ㅆ = ㄷ = ㄸ = ㅈ : ㅉ’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등차적 대립관계

    등차적 대립관계란 자질의 있고 없음이 아니라 그 정도에 의해 차이가 나는 대립항들의 관계를 일컫는 말이다. 훈민정음에서 ‘ㅣ : ㅡ : ㆍ’의 관계는 등치적 대립관계에 해당한다. ‘ㅣ’는 혀가 ‘불축(不縮)’하고, ‘ㅡ’는 ‘소축(小縮)’하고, ‘ㆍ’는 ‘축(縮)’한다는 개념은 하나의 기준에 의하고, 그 기준의 정도 차이에 의해 음소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중화 대립관계

    가중화 대립관계란 특정한 위치에서 대립하던 두 음소가 다른 위치에서 변별력을 가지지 못하고 중화하는 관계를 말한다. 훈민정음의 종성해에서 초성에 사용하는 자음을 종성에 다시 쓰되, ‘ㄱ, ㆁ, ㄴ, ㄷ, ㅁ, ㅂ, ㅅ, ㄹ’ 등 8개 소리만 사용하기로 한 것은 거센소리는 평음으로 중화하고, ‘ㅿ, ㅈ, ㅊ’ 등은 종성의 위치에서 중화된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기술이다.

    발음의 관계를 제자에 반영

    세종은 조음기관을 관찰하고 소리의 자질을 파악하고 이에 의한 소리의 관계를 훈민정음 창제에 그대로 활용하였다. 그래서 문자의 모양을 주의 깊게 살피면 그 발음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자음에서 같은 획을 공유하고 있으면 조음되는 위치가 동일하다. ‘ㅁ’을 공유하고 있는 ‘ㅁ, ㅂ, ㅍ, ㅃ’ 등은 모두 입술이 닫혔다 열리면서 발음이 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ㄱ’을 공유하고 있는 ‘ㄱ, ㅋ, ㄲ’ 등은 모두 혀의 뒷부분이 입천장의 뒤쪽 연구개를 막았다가 열면서 나는 소리가 된다. ‘ㄴ’의 모양을 공유하고 있는 ‘ㄴ, ㄷ, ㅌ, ㄸ’ 등은 모두 혀의 앞부분이 윗잇몸에 닿았다가 나는 소리가 된다. 하나의 글자와 겹친 글자의 관계는 ‘평음 대 된소리’의 관계가 된다. ㄱ : ㄲ 의 관계는 평음 대 된소리의 관계이고, 이는 ㅂ : ㅃ, ㅅ : ㅆ, ㄷ : ㄸ, ㅈ : ㅉ의 관계와 모두 같다. 평음에 획이 더하면 거센소리가 된다. ‘ㄱ’에 획이 더해진 ‘ㅋ’은 거센소리가 되고, ‘ㄷ’에 획이 더해진 ‘ㅌ’은 거센소리가 된다. ‘평음 대 거센소리’의 관계는 ‘ㅂ : ㅍ, ㅈ : ㅊ’의 관계도 모두 동일하다.

    나오는 말

    음소의 구성성분인 소리의 자질을 파악하고, 이 자질에 의한 음소의 관계에 대한 인식은 서구의 언어학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소리를 분류하기 위해 자음의 조음위치를 ‘아설순치후’로 구분하고 조음 방식을 ‘청탁’으로 구분하고, 성운을 ‘등’과 ‘호’로 구분한 정도이다. 세종은 중국 성운학의 개념 중 자음을 조음위치와 조음 방식으로 나누는 것은 그대로 수용하고, 중국의 성운학에 없던 모음의 자질 – 혀의 움직임과 입의 움직임을 반영한 모음의 자질을 설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질에 의해 음소들이 관계 속에서 존재함을 밝히고, 이를 훈민정음의 창제에 활용하고, 이 과정이 훈민정음해례에 담겨 있는 것이다.

    자질의 파악에서 세종이 선택한 분류 방법은 다분법적이다. 때로는 2분법을 선택하기도 하고, 때로는 3분법을 선택하기도 하고, 때로는 5분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종의 분류 방식은 촘스키의 존재하는 대립항의 상대적 위치에 의한 이분법이 아니고, 존재 그 자체의 ‘있음’을 선택하는 입자음운론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세종의 천재성 때문에 세종의 언어학이 후대에 이어질 수는 없었겠지만, 세종의 언어학은 서구의 20세기 구조언어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15세기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종대왕 동상(플리커 rreckoner CC BY-NC-SA) 
    박창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학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있으며,
    한국어세계화재단 운영이사, 국립국어원 어문규범연구부장을 지냈다.
    〈훈민정음〉, 〈중세국어자음연구〉 등 100편 내외의 연구업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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