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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컬 타이포 브랜딩: 개항로 서체 개발기 #첫답사

    개항로 서체의 바탕, ‘개항로 맥주’ 글자체가 탄생한 전원공예사를 방문하다.


    글. 이정은

    발행일. 2023년 03월 28일

    로컬 타이포 브랜딩: 개항로 서체 개발기 #첫답사

    [개항로 프로젝트]는 2018년 시작된 민간 주도 도시 재생 사업이다. 이 사업을 기획하고 지금까지 지속해 오고 있는 이들(개항로 노포 상인들, 브랜딩 전문가, 쉐프 등 10~20명이 협업한다)의 단체명이기도 하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인천 구도심(중구 동인천역 일대)의 낙후한 건물들을 리모델링하고,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킨 노포들에 브랜딩이라는 새 숨을 불어넣기 위해 기획되었다.
    
    19세기 말 이 지역, 그러니까 제물포항(지금의 인천항) 일대는 이른바 ‘개항’[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후 부산, 원산, 인천 등 3개 항구도시들이 차례로 대외 무역의 문을 열며 개항장(開港場)으로 불렸다. 이 시기가 이른바 ‘개항기’다.]과 함께 외래 신문물이 유입되면서 근대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정확히는 발전을 ‘당했다’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지 모른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문장으로 부연할 수 있다. “제물포 개항은 인천 지역 사회에 또 다른 시련을 가져왔다. 외세의 진입과 이질적 문물의 유입에 따른 갈등에서도 그러하였지만, 그보다는 일본이 원인천을 한국 식민지 경영의 발판으로 삼은 데 있었다.”
    
    시절의 명암이야 어떻든, 당시 개항의 격랑을 살아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오랜 살아냄, 혹은 이겨냄의 흔적들이 지금껏 거리 곳곳에 남아 있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그 흔적들에 다시금 빛을 비추는, 그곳에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는 사람들을 밝히는 작업이다. [개항로 프로젝트]의 발단과 전개를 기획한 이들은 이창길(경영 컨설턴트)과 권순만(브랜드 디렉터). 두 사람은 ‘플레이스랩’이라는 법인을 공동 설립하여 개항로 로컬 브랜딩을 지속·지원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23년 초 [개항로 서체] 개발 사업도 시작되었다. 윤디자인그룹 TDC(Type Design Center) 디자이너들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은 이 [개항로 서체] 개발 과정을 초창기부터 최종 공개 시점(8월 예정)까지 순차적으로 소개하는 시리즈를 매달 한 회씩 연재한다. 개발 담당 디자이너들이 일종의 일기체로 기록하는 에세이 연작이다. 이들은 이번 작업을 ‘로컬 타이포 브랜딩’이라 명명했다. 단순히 주목도 높은 서체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글자 디자인으로써 도시 재생에 기여하는 사례를 기록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목적이다.

    2022년 6월 16일. 정오보다 훨씬 이른 시간, 평일 인천행 지하철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개항로를 가기 위해선 (대부분 지상으로 다니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리는 것이 가장 좋다. 동인천역은 서울역 기준으로 스물다섯 정거장, 급행열차를 타지 않았을 때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처음 경인선은 지금의 인천역에서 노량진역까지만 달렸다고 한다. 그래도 한 시간 40분 만에 목적지에 갈 수 있었으니 당시에는 얼마나 놀라운 시간 단축이었을까. 인천이라는 도시의 성장에는 ‘서울로 진입하는 관문’으로서의 큰 역할을 빼놓을 수 없겠다. 동인천역에서 나와 개항로 방향으로 길을 건너는데 나란히 붙어 있는 도로 표지판 두 개가 눈에 띈다.

    ‘동인천역 앞’ 영어 표기가 [Tonginchŏn]이라고 되어 있는데, 보자마자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맞다, 예전에는 모음 [ㅓ]를 영어로 표기할 때 알파벳 [o] 위에 반달표(breve)를 붙여 표기했었지! 모음 [ㅡ] 발음은 [ŭ], 거센소리 뒤에 아포스트로피(apostrophe)를 붙이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그 바로 아래 도로명엔 [한길체]가 사용되었다는 것. [한길체]는 도로명판과 건물 번호판 사용을 위해 2008년 만들어져 2010년부터 도로명 표지판에 쓰이고 있으니 우현로 명판의 나이는 많아봐야 열한 살쯤일 터. 위 표지판은 국어 로마자 표기법이 나오기 이전 매큔-라이샤워(McCune–Reischauer) 표기법으로 쓰였으니 1984~1988년에 만들어졌으리라 추정한다.

    현재 동인천의 로마자 표기는 2000년 발표된 국어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Dongincheon]. 그러니 나란히 함께 붙어 있는 두 표지판의 나이 차는 얼추 25년 이상 된다는 얘기다. 시간의 켜가 느껴져 시작부터 ‘참 동인천스럽네’라고 생각했다.

    ‘개항로 맥주’ 글자체 본산지, 전원공예사

    우리(윤디자인그룹 TDC 소속 서체 디자이너 이정은과 이가희)는 우선 ‘개항로 맥주’ 글자체를 작업한 전원공예사로 갔다. 이 글씨는 앞으로 우리가 개발할 [개항로 서체]의 바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게 앞으로는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목간판들이 빼곡하게 겹쳐 세워져 있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희 여기 구경 좀 해도 될까요?” 여쭸다. “들어오세요.” 사장님의 흔쾌한 말씀에 긴장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본다. 출입문과 가까운 곳엔 목간판의 주원료인 목판들이 여러 겹으로 세워져 있고 가운데엔 아마도 사장님이 만들었을 오래된 목가구와 조형물들이 쌓여 있었다. 한쪽엔 작업 공간으로 보이는 나무 선반이 있는데, 닳고 닳은 모퉁이에서 오래된 세월의 힘이 느껴져 숙연해지기도 했다. 우리는 목적(?)을 숨기고 사장님께 여러 질문을 던지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전원공예사 전종원 사장님은 전원공예사를 열기 전 전국에서 가장 큰 목재 공장을 다니다 한국가구로 옮겨 티크(teak) 가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 돈 좀 있는 사람들은 모두 티크 가구를 들였다. 한마디로 티크의 전성 시대였다. 티크 원목을 잘 다루는 목공수들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장님은 목공예를 배웠다. 가구 공장에서 틈틈이 조각 기술을 익혔고, 1968년 한국가구를 나와 인천에 전원공예사를 차렸다.

    티크 가구는 1970~1980년대 전성기를 지나 새 유행에 밀려나게 된다. 그 바람에 목공예 인기도 사그라들었다. 새 활로를 찾아야 했던 사장님은 목간판을 시작했다. 인근 남동공단에 공장이 증설되거나 동네에 교회 하나만 생겨도 모두 목간판을 들이던 시절이다. 한창 잘나갈 때 전원공예사는 한 달에 목간판 100~200백 개 물량을 소화했다.

    또 세월이 흐르고 디지털 인쇄 시대로 접어들며 목간판 수요는 훅 줄고 말았다. 전원공예사는 한 달 한 건 주문이 있을까 말까 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개항로 프로젝트]의 이창길 대표를 만났고, 그렇게 전종원 사장님은 개항로 맥주의 글씨를 쓰게 되었다.

    ⋯⋯마치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손녀들이라도 된 듯, 우리는 ‘답사’라는 목적을 잠시 잊고 사장님의 지난 역사에 푹 빠져 있었다. 겨우 자세를 다잡은 우리는 개항로 맥주 글자체의 자세한 작업 배경을 여쭈었다.

    “나도 몰라요. 내 글씨가 좋대. 요즘은 목간판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이게 희귀하다나. 참 고마운 사람이지요.”

    도심 재생 붐과 함께 [개항로 프로젝트]가 뉴스에서 언급되고, 각종 지역 신문과 KBS 1TV 〈6시 내 고향〉(6889회, 2019년 10월 25일 방영)에서까지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면서 전원공예사의 사정은 반전을 맞는다. 지금은 전국에서 목간판 작업 의뢰가 꽤 들어오는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정이 가고 품이 생기는 ‘전원공예사 스타일’

    사장님의 작업대를 자세히 보았다. 의뢰 받은 글자를 종이에 먼저 써보면서 목재에 새길 글씨의 외곽을 정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리된 글자를 목재에 옮겨 그리고, 조각도와 망치로 글씨를 파낸 후 페인트로 글자를 칠한다. 전원공예사 전종원 사장님의 작업 스타일이다.

    글자는 사장님이 붓으로 직접 쓰기도 하고, 기존의 폰트를 출력해서 따라 그리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 책장에 낯익은 책이 한 권 있다. 대한민국 서체 디자이너들의 바이블, 김진평 교수님의 저서 『한글의 글자 표현』이다.

    『한글의 글자 표현』이 꽂혀 있는 전종원 사장님의 책장

    난 처음부터 사장님의 글씨가 굉장히 ‘개항로스럽다’고 생각했다. 고등 교육 과정을 마친 작업자의 미려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글씨는 아닌데 투박하지만 힘이 있고 거친 손맛이 살아 있는, 진짜 빈티지가 담긴 글씨 같았다. 사장님께 서예를 배우셨냐고 여쭸다. 정식으로 배우진 않았지만 옛날에 서당에서 한문을 배워서 붓글씨를 쓸 줄 안다고 하셨다. 완벽하지 않아 더 정이 가고 품이 생기는 개항로 글씨의 역사는 그렇게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달뜬 마음에 사장님과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았다. 그러면서 슬쩍 본색을 드러냈다. 사장님 글씨를 폰트로 만들어 봐도 좋겠다는 말을 꺼낸 것이다. “폰트? 난 그런 거 몰라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오늘은 폰트 얘기를 본격적으로 꺼내려고 온 건 아니니까 나중에 설득 자료를 잘 준비해서 다시 와야지, 결심하며 또 뵈러 오겠단 인사를 하고 전원공예사 답사를 마쳤다.

    개항로 뉴트로

    오늘 답사의 방향은 크게 두 갈래다. 개항로 맥주 글자체가 탄생한 전원공예사를 먼저 방문하고, 그다음 [개항로 프로젝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개항로 일대 모든 공간을 둘러보는 것이다.

    전원공예사를 나온 우리는 국숫집 ‘개항면’으로 갔다. 대표 메뉴는 온면.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오다 근대에 명맥을 잃은 온면을 재해석했다고 한다. 이곳 또한 [개항로 프로젝트]가 진행된 공간이다. 개항면은 인근 노포인 ‘광신제면’에서 면을 공급 받는다. 광신제면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쫄면을 만든 가게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가게 내부를 둘러봤다. 한쪽에 개항로 맥주 포스터가 붙어 있고, 천장엔 전구 조명과 백색 샹들리에 여러 개가 공간을 밝히고 있다. 동백, 소나무, 학 등을 그린 커다란 동양화가 표구되어 벽에 여럿 걸려 있고, 유리벽엔 오래된 밀가루 포대의 도안을 활용한 그래픽이 있다. 50년이 훌쩍 넘는 낡은 건물에 현대적으로 해석된 레트로 오브제가 매력적으로 어우러져 ‘개항로 뉴트로’를 연출해낸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개항로의 작은 잡화 백화점인 ‘개항백화’를 비롯해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 ‘메콩사롱’, 지금은 없어진 ‘개항로고깃집’과 ‘하오살룻’을 둘러보고, 시원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브라운핸즈 개항로점’으로 들어갔다. 여러 카페들 중 브라운핸즈를 택해 들어간 데에는 이유가 있다. 2018년 [개항로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일광전구 라이트하우스가 40년 이상 산부인과로 운영되던 건물을 활용했다면, 브라운핸즈는 1960년부터 40여 년간 이비인후과로 운영되다 10년 이상 방치되었던 4층짜리 폐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이비인후과가 4층 규모라니⋯⋯. 당시 인천 중구 일대에 얼마나 인구가 많았었는지 가늠하게 한다.

    다섯 손가락이 그려진 주물 손잡이를 밀고 들어가면 거친 시간의 흔적을 감싸는 초록 식물들이 우리를 반긴다. 최대한 기존 공간과 기물을 보존해 두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낡고 오래된 옛것에 초록이 생명을 불어넣는 느낌이랄까.

    [개항로 프로젝트] 이창길 대장과의 운명 같은 만남

    3층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장소를 옮기려 계단을 내려오는데⋯ 어라? 2층 구석의 남자 손님 두 명에게 눈이 간다. 한 사람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아무래도 [개항로 프로젝트]를 이끄는 이창길 대장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항로에 오기 전, 이곳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고자 인천에 관한 책들과 [개항로 프로젝트] 관련 기사 및 유튜브 콘텐츠를 열심히 찾아봤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 분이 계셨으니, 그가 바로 [개항로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창길 대장이었다. 수없이 기사를 찾아봤기 때문에 그분은 나를 몰라도 나는 이미 그분이 심정적으로 친숙했다. 개항로 답사 전 인스타그램 DM을 보내 만나달라고 졸라볼까도 생각했던 터. 그래서 브라운핸즈 계단을 내려오던 그 순간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내 눈은 계속 그분께 고정된 상태. 그분은 ‘누군데 나를 저리 뚫어져라 쳐다보나’ 했을 상황. 나는 1층에 커피잔을 반납하면서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2층에 계신 분, 이창길 대장님 맞나요?” 맞다고 한다. 흥분한 우리는 곧장 뒤돌아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이창길 대장님 맞으시죠?”
    “네네, 반갑습니다. 여기 앉으시죠.”

    이창길 대장님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와 동석한 분은 브라운핸즈 개항로점 이철순 대표님. 어떻게 이런 순간이!

    윤디자인그룹 서체 디자이너라고 우리 소개를 했다. 우리가 오늘 휴가까지 내고 개항로에 온 이유, 개항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개항로 글씨의 매력, 폰트화하고 싶은 욕구를 차근히 설명했다. 오전에 전원공예사 전종원 사장님을 뵀다, 짜놓은 각본처럼 여기서 대장님까지 만났다, 이 일([개항로 서체] 개발)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신의 계시다, 운명이다, 등등 궤변도 늘어놓았다.

    유쾌한 대장님은 우리와 나눈 이야기를 [개항로 프로젝트] 멤버들과 공유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제안서를 잘 만들어 보내드리겠다고 답했다. 오늘 답사의 특별한 모먼트를 선사한 브라운핸즈를 나오며 이 일은 반드시 되겠구나란 확신이 차올랐다. 아니, 어떻게 이래요? 우연히?

    브라운핸즈 개항로점 이철순 대표(왼쪽), [개항로 프로젝트] 이창길 대장과 함께

    개항로 맥주로 수미상관

    우리는 [개항로 프로젝트] 공간들 외에도 근대 문화 유산의 보고인 개항장 문화권 역시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100년이 훨씬 넘은 우리나라 첫 근대식 실내 극장 ‘애관극장’, 1920년 일본의 수탈을 위해 소금 창고로 쓰이다 지금은 복합 문화 공간이 된 ‘잇다스페이스’, 옛 항도백화점(1954년 세워진 인천 최초의 백화점) 건물 2층에 있는 ‘임충휴 갤러리’, 서울 약현성당 다음으로 오래된 가톨릭 건축물인 답동성당, 평양냉면 노포 ‘경인식당(구 경인면옥)’, 일제강점기 하역 노동자들이 착취 당한 현장을 카페로 개조한 ‘팟알’, 지역 책방 ‘인천서점’, 옛 인천일본제1은행지점 건물인 인천개항박물관, ⋯⋯. 개항로의 역사와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목적 아래 신나게 시간 여행을 하느라 다리가 아픈지도 몰랐다.

    개항로통닭 입구
    이 골목은 이른바 ‘개항로 포토 스폿’으로 유명하다.
    ‘개항로통닭’ 글씨는 개항로 맥주 포스터 모델인 최명선 어르신이 썼다.

    개항로 맥주의 탄생지 ‘인천맥주’를 안 들를 수 없다. 우리를 이곳에 오도록 한 장본이 바로 개항로 맥주 아닌가. 성심당 튀김소보로빵을 먹으려면 대전에 가야 하듯, 개항로 맥주를 마시려면 반드시 인천에 와야 한다. 우리는 라거와 에일을 한 잔씩 마시고, 근처 ‘개항로통닭’으로 옮겼다. 여기서 전기 구이 통닭에다 또 개항로 맥주 한 잔. 개항로 맥주로 시작한 첫 답사는 마무리 또한 개항로 맥주였다.

    날씨도 좋고 운까지 따라준 멋진 하루. 내일 회사에 가면 할 얘기가 많겠는 걸. 자, 이제부터는 제안서를 기획해볼까! (다음 연재에서 계속)

    윤디자인그룹 TDC(Type Design Center) 소속 서체 디자이너. 2000년대부터 글자를 짓기 시작했으며 서울시 전용서체 [서울남산체]·[서울한강체] 개발 참여를 시작으로 [어반빈티지], [YTN 뉴스 자막 서체], [KoddiUD 온고딕] 등 다양한 서체를 만들었다. 2023년 [개항로 서체]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로컬 타이포 브랜딩’의 효용성과 그 가치를 알리고 있다. @booook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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