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문의





    검색

    닫기
    t mode
    s mode
    지금 읽고 계신 글

    [디자인 개념어 사전_최범 편] 25. 디자인 비평

    디자인 비평(design criticism)이란 디자인에 대한 가치판단(design evaluation)이다. 다만 그것은 어떤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계량적인 평가가 아니라 담론과 해석에 의한 가치판단이다.


    글. 최범

    발행일. 2016년 10월 05일

    [디자인 개념어 사전_최범 편] 25. 디자인 비평

    디자인 비평(design criticism)이란 디자인에 대한 가치판단(design evaluation)이다. 다만 그것은 어떤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계량적인 평가가 아니라 담론과 해석에 의한 가치판단이다. 그러므로 비평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담론이다. 그러니까 디자인 비평이란 담론을 통한 디자인의 평가이다.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한데, 디자인 비평에서 그 기준은 곧 디자인관(觀)이 되겠다. 디자인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디자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자인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정한 디자인관이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방법이다. 어떠한 담론적 도구를 사용하여 디자인 비평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곧 방법의 문제가 된다. 그러니까 디자인 비평을 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어떤 관점에서 디자인을 볼 것인가 하는 디자인관, 그리고 어떠한 담론적 도구를 사용하여 비평을 할 것인가 하는 방법이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디자인관과 방법을 개념적으로 구분하였지만 이 둘은 사실상 한 몸을 이룬다. 하나의 관점이 반드시 하나의 방법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어떤 관점은 특정한 방법과 친화성을 갖게 마련인데,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부분의 담론 패러다임들은 관점과 방법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디자인에 대한 기호학적 비평, 사회적 비평, 일상문화론적 비평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들은 사실상 모두 디자인을 보는 특정한 관점과 그것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일정한 담론적 방법의 결합체들이다. 그러므로 관점과 방법은 상호결합하여 어떤 디자인 비평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되며, 그를 통해서 특정한 비평적 행위를 이끌어내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디자인 비평의 이해를 위해서 인접 분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예술 비평과 비교를 해보도록 하자. 예술 비평, 즉 미술 비평이나 문학 비평의 경우 우리가 떠올리는 가장 전형적인 형태는 이른바 작품 비평이다. 그러니까 미술이나 문학 비평은 특정한 미술작품이나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피카소의 <게르니카>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작품에 대한 비평을 우리는 통상 미술 비평 또는 문학 비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예술 비평의 경우 그것은 개별 작품에 대한 담론적인 가치판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예술 작품 비평을 디자인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는 디자인 작품(work of design)을 예술 작품(work of art)과 같이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되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예술과 디자인의 개념과 차이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대체로 우리가 예술과 디자인을 구분한다는 점에서 보면 작품 비평으로서의 예술 비평의 방법을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그것을 작품이라고 부르든 산물이라고 부르든, 또 뭐라고 부르든 간에, 특정한 디자인 대상(object of design)에 대한 비평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설령 특정한 디자인 대상에 대해 비평을 할 경우에조차도 그것은 예술 비평에서의 개별 작품 비평과는 다른 무엇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이것은 비평과 감식(鑑識)의 차이라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사실 디자인만이 아니라 예술의 경우에도 비평과 감식은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감식이란 마치 미술품의 진위 여부나 품등을 가리는 것처럼 작품의 어떤 내적 특성의 판별을 통해 일정한 취미판단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감식이란 그 기준이 무엇이든 간에 철저히 그것이 다루는 대상, 즉 텍스트 내부에만 머문다. 그러니까 그것이 보석 감정이라면 보석의 종류와 품질 등을, 미술품이라면 작가와 진위 여부, 양식적 특성 등에 대한 분석에만 주목하는 것이다. 이처럼 감식은 텍스트 내부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이든 디자인이든 비평은 감식과는 다르다. 물론 비평은 감식을 기본적으로 포함하겠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평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단지 대상 그 자체의 진위 여부나 감별을 넘어선 어떤 문화적 해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디자인 비평이란 특정한 취향을 기준으로 한 디자인 대상에 대한 등급 부여 같은 것이 아니라, 일정한 디자인관에 기반하여 이루어진 해석에 의한 가치판단이기 때문에, 반드시 텍스트 내부에만 머무를 수 없다. 물론 예술이나 디자인에서도 텍스트에 머무르는, 즉 거기에 매몰되는 비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으며, 비평의 본령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비평이란 텍스트의 해석에 기반한 평가 행위이지만 그것은 텍스트에 머물지 않고 텍스트를 넘어서 현실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결국 디자인이 놓여 있는 세계에 대한 판단이다.

    칸트식으로 말하면 비평은 보편에 비추어 특수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편(일반적인 기준)에 따라 특수(구체적인 대상)를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평은 단지 특수에 대한 이해에 머물지 않고 반드시 보편(있음직한 또는 바람직한 상태)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날 디자인 비평의 패러다임은 다양할 수 있다. 텍스트의 분석에 집중하는 기호학적 비평이나 디자인을 사회적인 틀 속에 놓고 분석하는 사회학적 비평, 디자인을 일상문화로 보고 그 의미와 효과를 분석하는 일상문화론적 비평 등이 있을 수 있는데, 어느 것이든 디자인 비평은 전통적인 예술 비평과는 달리 삶의 문화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기본적으로 문화 비평적인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 이론을 강의하는 한편 출판, 전시, 공공 부문 등에서 활동해왔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 <공예문화 비평>, <그 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이, 역서로 <디자인과 유토피아>, <20세기 디자인과 문화>가 있다.

    Popular Series

    인기 시리즈

    New Series

    최신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