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국가들이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다. 디자인을 중요한 국가 경제적 요소 또는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 발전을 국가 발전과 동일시하는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오늘날 경제 발전과 국가 발전의 동일시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그리고 모든 국가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예컨대 19세기의 자유주의 국가는 국가의 기능을 사회 질서에 한정하고 경제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 경제는 시장 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여야지 국가가 정치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전형적인 자유주의라면 여기에 반대되는 관점이 이른바 보호주의이다. 보호주의는 경쟁력이 높은 외국 제품으로부터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국가가 보호 장벽(대표적인 것이 무역 관세)을 설정하고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19세기 당시의 선진 산업국가인 영국과 프랑스는 전자에 속하고, 후발 산업국가인 독일은 후자에 해당된다. 그리하여 영국과 프랑스는 자유주의, 독일은 보호주의 정책을 채택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디자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국가의 성격에 대한 원론적인 이해가 전혀 들어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자유주의 국가의 선두라 할 수 있는 영국이 가장 먼저 경제적 관심에 의해 국가가 디자인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은 점차 후발 산업국가들과의 무역 경쟁에 말려들게 되는데, 특히 프랑스의 섬유산업이 위협적이었다. 세계 최초의 산업혁명으로 가능해진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경쟁에서 앞서가던 영국은 품질 좋은 프랑스 섬유 제품의 도전에 직면했던 것이다. 특히 오랜 섬유산업의 전통을 지니고 있던 리옹(Lyon) 등지에서 생산된 프랑스 견직물의 품질은 영국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 영국 산업을 대표하는 섬유 부문에서 위기에 직면한 영국은 의회에서 그 원인을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영국 제품의 경쟁력 저하 원인이 디자인에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리하여 영국은 의회 차원에서 위원회를 꾸려 대응책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최초의 국가 차원의 ‘디자인 진흥(Design Promotion)’ 정책이었다. 그러니까 디자인 진흥이란 국가가 경제적 관심에 따라 디자인 발전을 추동하는 것을 말한다. 영국은 세계 최초의 디자인 진흥 국가가 되었으며, 이후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모범적인 디자인 진흥 국가로 인식된다.1)
1) 영국의 디자인 진흥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허버트 리드, 정시화 역, <디자인론>(원제는 Art and Industry), 미진사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국가가 디자인 진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디자인 진흥 정책을 추진하고 디자인 진흥 기관을 설립한다. 물론 디자인 진흥 정책과 기관의 형태는 국가마다 다르다. 디자인 진흥의 형태를 흔히 국가 주도와 민간 주도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그러나 외형적인 것만으로 구분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외형적으로는 민간 주도일지라도 국가가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표적인 디자인 진흥 국가인 영국의 경우, 디자인 진흥 정책 기관인 ‘디자인 카운슬(Design Council)’은 외형적으로는 민간 기구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상 국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기 때문에 내용적으로 국가 주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 주도라 하더라도 중앙정부 중심인가 지방정부 중심인가에 따른 차이도 있다. 독일과 일본은 중앙의 디자인 진흥기관이 없으며 지역별로 분산되어 지방자치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중앙정부 중심의 강한 국가 주도 디자인 진흥 국가에 속한다. 전통적으로 국가 차원의 디자인 진흥 정책이 존재하지 않았던 미국의 경우에도 최근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
이외에도 ‘굿 디자인(Good Design) 운동’ 같은 경우는 통상 민간 차원의 디자인 진흥 운동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도 국가와의 관련성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3) 이처럼 현대국가에서 디자인 진흥은 어느 정도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오늘날과 같은 탈산업사회, 정보사회에서의 디자인 진흥이 과거 산업사회의 방식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20세기적인 발전국가도 역사적으로 낡은 형태가 되어가는 만큼 디자인 발전을 경제 발전, 그리고 나아가 국가 발전과 동일시하면서, 디자인 발전을 국가가 이끌어가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과연 국가 주도의 디자인 진흥이라는 것 자체가 21세기에도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2) 참조: 정경원, <사례로 본 디자인과 브랜드 그리고 경쟁력>, 웅진북스
3) 원래 서구에서 민간에 의해 시작된 ‘굿 디자인(GD) 제도’ 역시 한국에서는 국가 설립의 디자인 진흥 기관인 ‘한국디자인진흥원(KIDP)’ 사업의 하나로 운영되고 있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 이론을 강의하는 한편 출판, 전시, 공공 부문 등에서 활동해왔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 <공예문화 비평>, <그 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이, 역서로 <디자인과 유토피아>, <20세기 디자인과 문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