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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개념어 사전_최범 편] 19. 디자인 정책

    정책이란 정부가 어떤 것을 일정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행하는 의식적인 노력이다. 여기에서 정부는 정책 주체, 어떤 것은 정책 대상, 일정한 상태는 정책 목표, 그리고 의식적 행동의 방편은 정책 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 최범

    발행일. 2016년 03월 23일

    [디자인 개념어 사전_최범 편] 19. 디자인 정책

    정책이란 정부가 어떤 것을 일정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행하는 의식적인 노력이다. 여기에서 정부는 정책 주체, 어떤 것은 정책 대상, 일정한 상태는 정책 목표, 그리고 의식적 행동의 방편은 정책 수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를 통틀어 정책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정책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책 주체, 정책 대상, 정책 목표, 정책 수단 그리고 정책 과정을 분절적이면서도 통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정리(定理)에 따르면, 디자인 정책이란 정부(정책 주체)가 디자인(정책 대상)을 일정한 상태(정책 목표)로 만들기 위하여,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법(정책 수단)을 사용하는 일련의 행동(정책 과정)이라고 일단 정의할 수 있다.

    물론 정책에 대한 정의는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정책의 의미를 좀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다음 두 가지 견해를 추가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첫째는 ‘정책은 행동하기 위한 하나의 지침'(M.V. Higginson)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정부가 하기로 혹은 하지 않기로 결정한 모든 것'(T.R. Dye)이라는 것이다. 전자는 공공 영역과 민간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있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책이 행동을 위한 지침이라는 것이다.1) 정책의 의미를 한 마디로 똑 부러지게 정의해준다. 즉 공공 영역으로 한정할 경우, 정책이란 결국 ‘정부의 행동 지침’인 것이다.

    1) 노시평 외, <정책학의 이해>, 비앤엠북스, 2007년, 18쪽

    두 번째인 T.R. 다이의 정의는 정책을 상관적으로 보도록 해준다. 말 그대로 정책은 정부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가를 한 눈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부가 무엇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정부에 의해 의미 있거나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고, 반대로 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정부에 의해 의미 있거나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책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 매우 시사적이다. 결국 정부가 무엇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무엇을 하지 않는가도 중요한데, 이는 곧 정부, 그리고 그 정부가 대표하고 있는 국가의 성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민간 영역과의 관계를 통해서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이렇게 보면 디자인 정책이란 정부가 디자인과 관련하여 어떠한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지침이며, 또 그것은 디자인과 관련하여 정부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디자인 정책에 대한 인식과 평가의 기본 틀이 되어야 한다.

    디자인 정책 주체

    디자인 정책 주체는 당연히 정부이다. 정부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지자체)가 있다. 그리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산하의 각종 단체들도 있다. 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정책 수립과 집행(행정), 각종 단체는 사업 수행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실제로는 역할 분담이 그렇게 잘 이루지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는 정부가 정책보다는 직접 사업을 하는 데 눈이 팔려 있거나, 거꾸로 단체에서 정책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디자인 정책을 이야기할 때 보통 국가 주도형과 민간 주도형을 구분하는데, 정책이 정부의 전유물이라고 본다면, 디자인 정책에 대한 논의도 국가에 한정해야 할 것이다. 다만 국가 주도라고 하면, 단지 국가가 디자인 정책의 주체라는 차원을 넘어서 위로부터 강하게 이끌어가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데, 한국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국가 주도형 디자인 정책 국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편에 속한다. 이러한 특성이 초래하는 결과는 별도의 분석 대상이 되어야 한다.

    디자인 정책 목표

    디자인 정책 목표는 매우 다양할 수 있다. 현대국가에서 발견되는 디자인 정책 목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정치 선전(Political Propaganda), 산업 진흥(Industrial Promotion), 사회 복지(Social Welfare)이다. 이중에서 어떤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가는 결국 그 국가의 성격에 직결되는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대체로 전체주의 국가는 선전에, 발전주의 국가는 진흥에, 복지국가는 복지에 관심을 갖고 디자인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점 역시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서 디자인 정책의 목표는 단일하다기보다는 복합적이다.

    디자인 정책 수단

    디자인 정책 수단은 크게 직접 수단과 간접 수단이 있다. 직접 수단은 정부가 주체가 되어 디자인 개발과 지원을 하는 것이 해당되며, 간접 수단은 각종 기반 조성이나 홍보, 교육, 세제 혜택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직접 디자인 개발 사업을 하는 것은 대표적인 직접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근래에는 몇몇 지자체들이 디자인 연구소를 만들어 직접 간판 디자인 서비스를 하는 경우도 그에 해당된다.

    하지만 직접 수단은 디자인 정책의 수단으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많다. 디자인 영역의 성격상 국가가 그것을 직접 생산하여 어떤 부문이나 대상에 직접 제공한다는 것은, 공공정책적 관점에서 볼 때 공정성이나 실효성에 있어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우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를 막론하고 디자인 정책 수단으로서 직접적인 수단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는 한국의 중앙집권적인 국가 성격이나 전시 행정적인 관료주의 사업 방식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가능한 한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모델보다는 기반 조성이나 인센티브 부여 등을 통한 간접 지원 방식이, 디자인의 특성이나 현대 민주주의의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더 적합하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디자인 정책 과정

    디자인 정책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 과정이다. 정책 수립에서부터 집행까지의 전체적인 과정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잘 설계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의 정책 의지와 목표가 분명해야 하며, 이러한 것이 체계적인 절차를 거쳐 공정하고 투명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중앙집권적이고 개발국가적인 성격이 강한 한국의 경우 이처럼 체계적인 정책 과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디자인 정책 시스템은 산업 관료를 비롯한 정치·행정 엘리트와 대학 교수 같은 디자인 엘리트의 결합에 의한 관학복합체의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디자인 정책 과정 역시도 이들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 정책은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실무 디자이너의 현실과도 거리가 먼 뜬금없는 내용들이 만들어지고 추진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7년여의 기간에 걸쳐 수천 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디자인 서울’ 정책이 오로지 단체장과 일부 엘리트 디자이너의 밀착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된 사례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 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한국 디자인 정책 과정은 체계적이거나 효율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디자인 정책 평가

    모든 정책은 집행 뒤 평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 디자인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평가는 단지 정책에 대한 점수매기기가 아니라 정책의 전체 과정과 성과를 되짚어봄으로써, 유의미한 결과를 추출해내는 중요한 행위이다. 따라서 디자인 정책은 평가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완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정책은 결코 어떤 의미에서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디자인 정책에서는 평가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다. 앞서 언급한 서울시의 ‘디자인 서울’ 같은 초대형 정책조차도 간단한 공개토론회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체계적인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디자인 서울’ 정도로 시민과 디자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정책과 사업은 철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도 디자인계도 아무런 관심과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서울시가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디자인계 차원에서라도 <디자인 서울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이 한국 디자인계의 최소한의 책임이자 양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 이론을 강의하는 한편 출판, 전시, 공공 부문 등에서 활동해왔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 <공예문화 비평>, <그 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이, 역서로 <디자인과 유토피아>, <20세기 디자인과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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