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산업의 구조
산업(Industry)이란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을 말한다. 그러므로 디자인 산업(Design Industry)이란 디자인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은 재화를 직접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재화에 일정한 특질을 부여하는 간접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일종의 서비스로 보아야 한다.1)그러므로 디자인 산업이란 디자인이라는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을 뜻한다고 하겠다. 그러면 디자인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에는 어떤 형태가 있는가. 여기에서 형태란 결국 디자인 산업의 형태를 가리키는 것인데, 크게 보아서 내부형과 외부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물론 디자인 제품(Design Goods)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이는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재화가 따로 있어서가 아니라 디자인을 강조하기 위한 마케팅적 용법에 지나지 않는 만큼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아무튼 디자인이라는 이름의 재화는 없다.
내부형이란 기업 내부에서 디자인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외부형이란 기업 외부에서 서비스가 공급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부형은 기업 내의 디자인 생산부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통상 하우스 디자인(House Design)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외부형은 기업 바깥의 디자인 서비스 전문업체, 이른바 디자인 회사(Design Enterprise, Design Consultancies)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중에서 내부형 디자인 산업은 사실상 생산 기업의 일부이기 때문에, 굳이 따로 지칭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디자인 산업이라고 하면 실질적으로는 외부형 디자인 산업, 즉 디자인 회사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즉 ‘디자인 산업(Design Industry)은 디자인 회사(Design Enterprise)이다.’
한 사회의 디자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것을 생산하는 영역인 디자인 산업의 발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디자인 산업의 발전이란 양적인 것만이 아니라 질적이면서도 균형적인 것이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디자인 산업의 현실은 한국 산업의 현실을 그대로 반복한다. 즉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는 디자인 산업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서, 디자인 산업의 부익부 빈익빈 구조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대기업의 하우스 디자인은 매우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반면, 중소기업은 디자인 부서를 거의 갖지 못할 뿐 아니라, 외부의 디자인 회사에 디자인 서비스를 의뢰할 형편도 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외국 디자인의 모방과 복제가 중소기업의 주된 디자인 방법론이 된다. 물론 이 점에서는 대기업도 결코 자유롭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디자인 생산 환경이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차이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는 결국 한국 디자인의 질이 크게 불균형해지는 원인이 되는데, 일부 대기업이 생산하는 글로벌한 내구재 소비제품의 디자인들은 그런대로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지만, 주로 중소기업이 담당하는 일상생활용품의 디자인 수준은 조악하기가 그지없다. 이것이 한국 디자인의 수준을 크게 불균형하게 만드는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디자인 산업 개념의 오남용
한국 사회에는 디자인 산업의 불균형 발전이라는 현실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디자인 산업과 관련하여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디자인 산업이라는 용어 자체가 크게 왜곡, 과장된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 산업이라는 말이 디자인 활동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2) 앞서 말했다시피 디자인 산업은 사실상 디자인 회사(의 활동)를 가리키는 말일 뿐, 결코 한 사회의 디자인 활동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가 될 수 없다. 한 사회의 디자인 활동에는 디자인 생산, 디자인 정책, 디자인 교육, 디자인 문화 등 디자인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영역이 존재하며, 디자인 장르별로 보더라도 산업디자인, 시각디자인, 공간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것을 모두 디자인 산업이라는 한정된 활동 영역 속에 구겨 넣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실제로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디자인의 다양한 계열체들(생산, 정책, 교육, 문화 등 또는 산업디자인, 시각디자인, 공간디자인 등)의 차이가 무시된 채 마치 디자인 산업이 디자인의 모든 것인 양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디자인 개념의 심각한 오남용이 아닐 수 없으며, 한국 디자인 학술의 수준이 얼마나 황폐한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디자인 산업이라는 개념은 객관성을 완전히 상실한 채 일종의 프로파간다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2) 이러한 오남용은 한국과기대 산업디자인과의 정경원 교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디자인 산업 세계화 방안 연구>(월간 디자인, 1996. 8.)에서 디자인 산업이라는 용어를 모든 디자인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함으로써 디자인 개념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디자인 산업이라는 보다 더 포괄적인 용어 속에 산업디자인, 시각디자인, 환경디자인, 패션디자인, 섬유 디자인 등과 같은 디자인의 전문 분야들을 포함시킴으로써…”(174쪽)
디자인과 산업의 관계
물론 이렇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한국 사회가 산업에 편향된 사회이며, 한국 디자인 역시 그 길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산업 이외의 다른 가치를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은 산업을 위해서 존재한다. 출산도 산업이고 교육도 산업이고 예술도 산업이고 김연아와 골프도 산업이다. 물론 한국 사회의 이러한 모습은 한국 근대화의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산업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에 몰입하는 사회를 사회학자 김덕영은 ‘환원근대’라고 부른다.3) 그러니까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근대화를 제쳐두고 오로지 경제적 측면에서만 근대화를 추진해온 사회가 바로 지금 한국 사회라는 것이다.
이는 디자인에도 정확히 해당되는 말이다. 한국 디자인은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나 문화적 가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에만 관심이 있다. 그 결과가 바로 모든 디자인의 ‘디자인 산업화’인 것이다. 이리하여 한국에서 디자인 산업과 ‘디자인의 산업적 가치’, 나아가 모든 디자인 활동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디자인 산업은 아무 데나 적용된다. 심지어 ‘서울디자인재단’ 같은 공공적인 디자인 기관조차 그 설립 목적을 디자인 산업 진흥에 두고 있는 실정이다.4)
3) “한국 근대화의 출발을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19세기 말 개항과 더불어 근대화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1960년대 국가의 주도 아래 본격적인 근대화가 추진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본격적인 근대화는 환원적 근대화였다. 왜냐하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근대화는 도외시한 채 오직 경제적 근대화, 즉 경제를 위한 근대화만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의 근대화는 경제적 근대화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예컨대 민주화, 즉 정치적 근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국가 권력에 의해 억압되었다. 아니면 다른 분야의 근대화는 경제적 근대화에 기여할 수 있는 한에서만 의미를 부여받았다.”, 김덕영, <환원근대>, 도서출판 길, 87쪽
4) <서울특별시 재단법인 서울디자인재단 설립 및 운영 조례안>은 서울디자인산업의 진흥을 위한 각종 사업의 수행을 위해 재단법인 서울디자인재단을 설립하고 그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조례안의 문구 그대로 보면 서울디자인재단의 설립 목적은 디자인 산업 진흥, 즉 디자인 회사의 진흥인 것이다. 과연 서울 시민 모두를 위해야 할 서울시의 출연기관이 이처럼 디자인 회사만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개념의 착종인가, 아니면 복심(腹心)의 표현인가.
이처럼, 오로지 산업적 가치밖에 모르는 한국 사회의 구조 속에서 한국 디자인 역시 자신을 오롯이 디자인 산업이라고 정의하면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이는 디자인 산업이라는 말을 통해 ‘디자인의 산업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며, ‘디자인의 산업적 가치’를 사실상 ‘디자인의 모든 가치’와 동일시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디자인계의 기회주의적 태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디자인계 내에서도 가장 기득권을 가진 디자인 교수들이다. 그들은 디자인 산업과 ‘디자인의 산업적 가치’를 오독하고 오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기득권을 챙기고자 하지만, 그들이 그럴수록 한국 디자인의 개념은 혼란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디자인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방치하고 있는 한국의 디자인계가 오로지 자기 몸값 부풀리기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디자인 산업 개념의 과잉화는 결코 디자인 산업 자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차피 디자인 산업 개념의 과잉을 통해 이익을 얻는 이들은 디자인 산업 종사자들이 아니라,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디자인계의 이익집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자인 산업을 디자인 산업으로 보는 것이 가장 디자인 산업다운 것이다. 그럴 때만이 한국 디자인 산업의 모습은 제대로 포착될 것이고, 그 문제점과 발전 방향을 합리적으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디자인 산업 개념의 오남용은 디자인 산업을 위해서도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 이론을 강의하는 한편 출판, 전시, 공공 부문 등에서 활동해왔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 <공예문화 비평>, <그 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이, 역서로 <디자인과 유토피아>, <20세기 디자인과 문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