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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 개념어 사전_최범 편] ⑬ 디자인 문화

    디자인 문화는 디자인에 대한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디자인이 만들어낸,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개념일 뿐이다. 디자인과 디자인 문화의 차이는 대상과 경험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글. 최범

    발행일. 2015년 07월 23일

    [디자인 개념어 사전_최범 편] ⑬ 디자인 문화

    디자인과 디자인 문화는 다르다. 디자인과 디자인 문화가 같은 말이라면 당연히 디자인 문화라는 말은 쓸 필요가 없다. 그것은 언어의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데 대부분 디자인과 디자인 문화를 아무런 구분 없이 사용한다. 디자인 문화를 디자인에 문화라는 말을 덧붙인 장식물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디자인에 문화라는 말을 붙이면, 뭔가 좀 더 우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과연 문화의 의미는 그런 것일까. 문화라는 말은 양념이나 장식품처럼 그저 첨가하면 좋은 그런 것일까. 디자인 문화라는 말은 그저 디자인이라는 말에 꽃 하나 꽂은 것 같은 그런 것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디자인 문화는 실제로 디자인과 다르지 않거나, 아니면 디자인의 부풀려진 의미 이상이 아닐 것이다.

    디자인 문화는 그런 것이 아니다. 디자인 문화는 디자인에 대한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디자인이 만들어낸,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개념일 뿐이다. 디자인과 디자인 문화의 차이는 대상과 경험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디자인이 어떤 행위나 결과물을 가리킨다면 디자인 문화는 디자인 행위나 결과물이 경험되고 의미화된 차원을 말한다. 디자인이 사물이라면 디자인 문화는 사물의 의미이다. 디자인이 텍스트라면 디자인 문화는 독해된 의미이다. 디자인이 기표(Signifiant)라면 디자인 문화는 기의(Signifie)이다. 디자인 문화는 언제나 디자인 그 자체가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그 무엇이다.

    어쩌면 디자인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문화라는 형식을 통해서만 경험되고 의미화된다. 아니 디자인은 경험되고 의미화될 때만이 문화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문화가 된 디자인만이, 말 그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문화가 되지 못하는 디자인은, 말 그대로 의미가 없다. 결국, 디자인 문화가 아닌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단지 행위나 산물로서의 디자인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디자인 문화이다. 중요한 것은 경험된 디자인이다. 중요한 것은 의미를 낳은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물론 디자인 문화를 낳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원래는 문화가 디자인을 낳고 디자인은 다시 디자인 문화를 낳을 것이다. 이것이 상식적인 삶의 방식이고 문화의 원리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드시 상식적이지만은 않다. 그래서 디자인 문화 없는 디자인도 얼마든지 현실에는 있는 법이다. 디자인이 현실에서 그 자체로 자동적으로 의미화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일정한 조건 속에서 일정한 의미를 띠게 될 때 디자인 문화는 만들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구체적인 삶의 조건 속에서 디자인을 의미화할 때 디자인 문화가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러한 구체적인 삶의 조건이 없다면 설령 디자인이 생산되었다고 할지라도 디자인 문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화 없는 디자인. 그것은 마치 찍었지만 보이지 않은 사진이고 쓰였지만 읽히지 않은 소설과 같다.

    알다시피 현대적인 디자인은 인위적인 방식으로 계획되고 생산된다. 마치 공산품처럼. 오늘날 현대적인 산업은 선(先) 생산 후(後) 판매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생산은 판매와 소비를 전제로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은 많은 경우 문화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대적인 생산 방식 때문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문화 없는 디자인은 좀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현대문화를 주체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디자인은 문화가 되기보다는 일종의 프로파간다에 가까워진다. 저 소란스러웠던 ‘디자인 서울’ 연간(2007년~11년)을 생각해보라. 거기에 무슨 문화가 있었는가. ‘디자인 서울’은 디자인 문화일까. 물론 그것도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다수 시민을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정치가를 위한 디자인, 소수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인일 수는 있겠지만, 맹세코 시민을 위한 디자인은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문화에 속하거나 디자인 전문가 문화에는 속할지 모르지만, 시민문화에는 속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디자인 문화에도 속하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디자인이 자동적으로 디자인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문화가 되지 못한 디자인, 그러니까 삶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디자인은 결국 실패한 시장의 결과이거나 아니면 반문화적인 정치 기획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아무리 디자인이 많고(?) 디자인에 대한 말이 넘치더라도 삶 속에는 디자인이 없는 것이다. 한국 디자인에는 대체로 디자인 문화가 없다. 아무리 디자인 대학이 많고 디자이너가 많고 관공서에 디자인 부서가 많아도, 시민의 삶 속에 디자인이 없다면 디자인은 없는 것이다. 디자인은 있지만 디자인 문화는 없는 것이다. 디자인과 디자인 문화는 같은 말이 아니다. 디자인 문화는 디자인의 경험이고 의미이다. 경험되고 의미를 낳지 못한 디자인도 그냥 디자인일 수는 있지만, 결코 디자인 문화는 아니다. 디자인이 없으면 디자인 문화는 성립되지 않겠지만, 반대로 디자인 문화가 없다면 디자인,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 이론을 강의하는 한편 출판, 전시, 공공 부문 등에서 활동해왔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 <공예문화 비평>, <그 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이, 역서로 <디자인과 유토피아>, <20세기 디자인과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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